가 발간되었다.
세량지(細良池)
나무가 물에 잠겨 있었다
무엇에 잠겨 산다는 것
물이라서
좋았다
다행이잖아 봄이라서
수온이 적당하기를
비가 저수지에 떨어질 때 네가 우산을 꺼냈다
둑방길을 걸으려 할 때 막
비가 와서
좋았다
우산이 커다랗고 동그랗게 펼쳐지고
자리가 생겨
나는 가방을 오른 어깨에 옮겨 맸다
왼손을 어디다 둬야 할지 몰라
둘 곳 없는 손이 하릴없이
흔들 흔들
저수지 안을 오래 기억하는 나무들
연둣빛으로 흔들리는 표정
두근대는 빗방울
나무를 더 자주 더 멀리 보냈다
흐려지는 물속을 들여다보며
비가 한참 오려나 봐
우산 밖으로 손을 내밀어 보았다
차가운 살
너는 내 손바닥 안의 비를 만져 보았다
그대로 멈춰 서 있었다
비가 내리고 있었다
나무들이 더 빠르게 흩어지고
노랑에 관한
유리창 눈을 대고 기타를 바라보고 있었지 실제보다
열배는 작아져서
기타에서 어린 소리가 날까
병아리만 한 소리 솜털만 한 소리
그 시간 네가 나를 마지막으로 불렀을지
모르는 그 순간
작은 기타는 세상에 없던 노랠 가지고 있었지
지붕이 온통 노랗던 시간
부러진 나뭇가지 끝 물방울 매달려 있었지
노랗던 말갛던 물방울 혀를 갖다 대며
이건 꽃의 탄식
기타 소리 들리는 것 같았지 돌담 따라가 보았지 마루에
작년에 저문 치자 열매 마르고 있었지 산수유 열매 더 마르고 있었지
사람들이 웅성거리고 앰뷸런스 울고 있었지 결국 결국
말을 잇지 못했지 다시 돌아오지 못할 테지
기타를 구경하고 있었지
아주 작다고 예쁘다고
[약력]
이서영 시인은 전남 해남에서 태어났다.
2021년 『광주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시인으로 등단했다.
시집 『안녕 안녕 아무 꽃이나 보러가자』를 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