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라팔가 광장에서 피카딜리 서커스를 지나 더 몰(The Mall) 거리를 따라 계속 가면 영국 왕실을 상징하는 버킹엄 궁전이 나온다. 버킹엄 궁전은 영국 왕실의 사무실이자 집이며, 국빈을 맞이하는 공식적인 장소이다. 궁전 앞에는 영국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했던 빅토리아 여왕의 기념비가 황금빛을 발하며 위풍당당하게 서 있다. 꼭대기에 있는 황금 천사 조각(브리타니아 여신)이 마치 궁전의 수호천사처럼 사방을 환하게 비춰 주고 있다.
버킹엄 궁전은 원래 버킹엄 공작의 집으로 지어졌는데, 1762년 조지 3세가 왕비 샤를 로테를 위해 구입했다. 그 후 조지 4세가 당대 최고의 건축가 존 내쉬에게 명하여 개축했다. 건축 비용이 엄청나게 들어 국민들의 비난을 사기도 했다. 개축 과정이 워낙 중구난방이어서 전체적으로 조화롭지 못한 궁전이 되었다는 평가를 받기도 하지만, 그래도 왕실다운 격식과 중후한 분위기를 풍기는 정면은 관광객의 기념촬영에서 빠지지 않는 곳이다.
완성 후 이 궁전에 처음 거주한 사람은 빅토리아 여왕이었다. 그 후 역대 국왕들의 거처로 쓰여 명실상부한 영국 왕실이 되었다. 현재의 여왕 엘리자베스 2세도 평일에는 이곳에 머무른다. 여왕이 궁전에 있을 때는 궁전 중앙의 게양대에 로열 스탠더드(왕의 깃발, Royal Standard)가 내걸린다.
이 궁전은 대영제국의 위용을 자랑하듯 궁전 뒤쪽에 48,000평에 달하는 널따란 정원이 있고 방도 650개가 넘는다. 궁전의 실내 장식도 화려하기 그지없다. 그러나 당시 의회의 견제가 심했기 때문에 다른 유럽의 궁전만큼 화려하지는 않다. 1992년 윈저 성에 화재가 나서 이를 재건하기 위한 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그 다음해부터 매년 8~9월 동안 궁전의 일부를 공개하고 있다.
퀸스 갤러리(Queen's Gallery)는 왕실의 미술품을 전시하는 곳이다. 반다이크, 렘브란트, 푸생의 그림과 베르메르의 <음악 교실(Music Lesson)>을 볼 수 있다. 로열 뮤스(Royal Mews, 왕립 마구간)는 퀸스 갤러리와 같은 라인에 있는 건물로 버킹엄 궁전과는 별도로 떨어져 있다. 조지 4세 이래 역대 국왕들의 대관식에 사용되었던 명품 마차가 있다. 단, 이 두 곳은 가이드 투어로만 관람이 가능하다. 무엇보다 현재 왕실의 모습을 볼 수 있으니 기회가 된다면 꼭 관람하자. 티켓은 궁전 오른쪽의 그린파크 캐나다 게이트(Green Park Canada Gate)에서 구입할 수 있다.
버킹엄 궁전에서 최고의 하이라이트는 오전 11시 30분(5~7월 매일, 8~4월 격일)에 거행되는 근위병 교대식이다. 교대식이 벌어지는 동안 궁전 앞은 차량이 통제되고 퍼레이드가 펼쳐진다. 그러나 근위병 교대식 일정은 왕실 주요 행사가 있거나 국빈이 궁에 머무르는 경우 예고 없이 바뀌기도 하므로 현지에서 스케줄을 확인해야 한다. 근위병 교대식을 보기 위해 몰려드는 인파가 엄청나므로 요령껏 관람하자. 근위병 교대식은 우선 세인트 제임스 궁전에서 출발해 퍼레이드를 하면서 더 몰을 거쳐 빅토리아 기념비를 돌아 버킹엄 궁전으로 들어간다. 궁전 앞에서 근위병 교대식을 끝내고 나면 다시 병영으로 되돌아간다. 그러므로 이 순서를 잘 활용하는 것이 관람의 노하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