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모로코 여행기
김재환
지브롤터 해협
군사요충지 지브롤터, 영국령을 지나고 있다.
바다건너 아프리카 대륙에 에스파냐의 땅 세우타가 어슴푸레 보인다.
스페인과 영국은 각기 다른 대륙에 요새를 갖고 있는 게 한없이 부럽다.
국력이 하늘을 찌르고 바다를 갈랐던 옛 영광스런 역사가
있었기 때문이리라.
아득히 먼 초등학교 때 뇌리에 각인된 지브롤터 해협이 눈앞에 있다.
지브롤터와 세우타는 직선거리 14km, 30분 거리란다.
이베리아반도의 시작점이고 끝점이기도 한 스페인의 남서쪽 땅 끝,
아니 유라시아 대륙의 서남단에 서있다.
해협건너 아프리카 대륙이 손에 잡힐 듯하다.
타리파 항 언덕 위 전망대에서 구름아래 스페인의 직할령
세우타를 바라보고 있다.
바람은 풍력 발전기의 프로펠러를 돌리며 아프리카로 넘나든다.
국경의 성채들이 우람한 항구에서 출국수속을 밟는다.
모로코 탕헤르 항 까지 페리로 한 시간 남짓, 가로질러 30km.
국제항이지만 승하선 시설은 반자동이라 불편하기 그지없다.
캐리어를 끄는 나이 먹은 여성가이드가 힘들어한다.
신사도를 발휘한다.
“그라시아스!”
아시아 다음으로 큰 대륙 아프리카, 유럽과 아프리카를 나누는 바다,
대서양과 지중해의 바닷물이 서로 만나 하나 되는 곳, 물색이 다르다.
염도도 다르단다.
거센 물살을 예상했으나 의외로 해협은 잔잔하다.
인간이 금 그어 놓은 대륙의 경계선을 갈매기들은 자유롭게 넘나든다.
덩치 큰 화물선들이 우렁찬 기적을 울리며 해협을 자주 오고간다.
조금 뒤면 나는 아프리카 대륙의 땅위에 서 있을 것이다.
내 생애 처음인 역사적인 순간이 될 것이다.
수 년 전 남아메리카 대륙에 첫 발을 디딜 때처럼 가슴이 뛰고 설렌다.
"탕헤르"
6년 전 피치 못할 사정으로 취소한 아프리카 방문을 오늘에 이루게 되었다.
2010 남아공 월드컵 축구와 일정을 맞추었으나 갑작스런 집안의
중대사가 발생, 포기 할 수밖에 없었다.
동남 아프리카 6개국 투어였다. 나일 문명의 발상지 이집트를 가고
싶었어도 내란으로 인한 여행 위험지역으로 지정되고 에볼라 바이러스의
창궐로 자유롭지 못했다.
이런 저런 이유로 늦어졌다.
“꿩 대신 닭”이라고 대륙의 북서쪽 모로코를 선택 하였다.
계단을 오르내리며 모로코 입국수속을 마쳤다.
'노트르담의 꼽추'로 유명한 배우 <안소니 퀸>을 닮은
이름이 재미있는 현지가이드 ‘사이다’가 호방한 웃음으로 환영한다.
꾀죄죄한 차림이나 기골이 장대하다.
이 나라에서 꽤나 알려진 조연 배우이며, 일이 없을 때 부업으로
가이드 일을 한단다.
묻지도 않았는데 부인이 셋이어서 먹여 살리기 힘들단다.
우리 남자들에게 “절대 마누라 여럿 두지 말라”고 너스레를 떤다.
모로코, 아랍 국가들은 일부다처제 국이다.
법적으로 일부일처제이나 관례는 일부사처까지 허용되고 있단다.
남녀의 성비가 맞지 않을 진대 여기서도 재력이 풍부한자들의 특권이리라.
가난한 자는 장가도 못 가는 세상이다.
우리나라 역시 흙 수저는 결혼도 못 하고 빈민 국 이민족과
결혼하는 슬픈 현실이 된지 꽤 오래 되었다.
프랑스 식민지였던 모로코, 탕헤르 시는 인구 30만으로 휴양지로
각광받으며 현대도시로 발전하고 있었다.
가난한 나라이나 도시는 비교적 깨끗한 편이었다.
바다에서 본 시가는 고층건물이 눈에 많이 띄었다.
항구 한 편에는 날렵하고 호화스러운, 영화 007 시리즈에
나옴직한 화려한 대형 요트 한 척이 몸과 마음을 유혹하고 있었다.
약 1,000여 톤, 흰빛 선체에 푸른빛 유리로 꾸며진 선박, ‘사이다’에게
물으니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의 호화 요트라고 알려준다.
석유의 위력은 대단했다.
국왕의 요트와 전용기 등등은 얼마나 화려 휘황찬란할까?
이슬람 문화권이라 용납은 되겠지만 빈부의 격차에서 오는 갈등은
어떻게 해결 할 것인지 걱정이다.
사람은 태어날 때 계급과 서열, 신분이 구분된다.
슬픈 일이다.
신은 부의 균형분배에 무관심 한가보다.
금 수저와 흙 수저를 본다.
신은 정말 공평하지 않은 것 같다.
인간은 신에 대해 분노한다.
순백의 화려한 호텔에서 조밥 비슷한 현지 식, 빵 한 조각에
당근 호박 가지를 쪄 노란색의 향신료를 듬뿍 부어 비빔밥
비슷하게 먹는다.
지쳐 시장했으나 시장기를 때우지 못 했다.
모두들 음식을 남긴다.
프랑스 에티켓이 몸에 밴 종업원들의 서비스는 최고급이다.
호텔 앞 자카란다 꽃이 향과 화려함을 뽐낸다.
수년 전 멕시코시티에서 처음 본, 자줏빛 자카란다
꽃의 고혹적인 색과 향의 강렬한 인상이 오래 남아있어 지울 수 없다.
"리바트"
대서양 해변 길을 따라 남서로 달린다.
고속도로 수준은 우리네 지방도 수준에도 못 미친다.
허접 하다.
비포장도 많다.
소나기가 내렸는지 웅덩이엔 황토 물이 고였고 강물은 흙탕물이다.
버스 속도는 80∼90km, 드넓은 초원과 구릉이 끝없이 펼쳐진다.
차창엔 빗방울이 번진다.
언 제 비가 내렸냐는 듯이 햇빛이 반짝인다.
낮은 하늘아래 뭉게구름이 화려하다.
우리나라 여름날 소나기 한 줄기 내린 뒤 풍경보다 더 진하다.
낮은 산맥도 이어진다.
대서양 푸른 물빛을 보고 바다의 파도 소리도 이따금씩 듣는다.
버려진 땅, 비 경작지나 하천 옆 풀밭에서 벙거지를
뒤집어 쓴 채 풀 먹이는 목동을 본다.
비 맞은 양떼라야 고작 스무 마리 남짓, 많아야 서른 마리 정도,
소와 말은 다섯 마리 안팎, 젖소 역시 5마리 정도다.
비경제적이다.
모로코의 GNP 4,000달러. 농업소득은 더 낮을 것이다.
그들의 삶과 생활을 이해하려니 소년시절 큰집에 얹혀 살 때,
소 풀 뜯기다 저녁노을을 바라보며 산 너머 또 다른 세상을 꿈꾸던
일이 파노라마처럼 스친다.
우리네 삶도 소 한 마리가 재산의 큰 밑천인 때가 있었다.
반세기 전 우리들의 자화상을 보고 있었다.
농지는 비옥한 듯하다.
대규모 비닐하우스가 눈에 띠고 농장의 규모가 커진다.
북아프리카의 중요한 농업국이며 대부분 농산물은 해협을 건너
유럽으로 수출되는 중요 산업이었다.
파인애플 생산량이 아프리카 최고란다.
이따금 사막의 왕자 낙타 무리가 어슬렁거린다.
서 사하라 사막이 그리 멀지 않게 이웃해 있다.
리바트는 모로코 수도이다.
옛 수도 내륙 페스에서 지배국 프랑스에 의해 대서양 해안으로
옮겨온 새로운 수도이다.
교통과 경제적 이점을 살린 전략적인 천도遷都는, 페루가 스페인에 의해
내륙의 쿠스코에서 바닷가 리마로 천도한 것과 일맥상통한 것 같다.
평원의 언덕위에 우람하게 서있는 하산 5세의 왕궁과 왕궁탑의
위용은 압도적이다.
미완성의 왕궁, 건축 중 지진으로 파괴되었단다.
흙과 돌기둥이 우람하다.
파괴된 흔적 역시 거창하다.
죽은 자의 저택은 화려함의 극치다.
옛 왕국의 화려한 복장의 거인 근위병이 사주 경계를 한다.
금빛 찬란한 금박, 모자이크 장식, 대리석의 화려함,
예술의 경지를 뛰어 넘은 신의 솜씨였다.
푸른빛 실내조명 역시 신비롭다. 하산 5세 국왕의 묘소는
화려함 속에서 괴기가 느껴졌다.
하노이 호치민 묘소를 많이 닮았다.
아니나 다를까 설계자가 베트남 사람이란다.
호치민 묘소를 설계한 사람이 아닐까? 추측한다.
"카사블랑카"
바닷가 길을 따라 남서로 강을 건너고 평원을 지난다.
해안 성벽과 요새도 심심찮게 나타난다.
강변 모래밭에서 맨발로 축구를 하는 아이들이 눈에 띤다.
어릴 적 우리들의 모습이다.
대서양 바다 가운데로 태양이 휴식을 취한다.
저녁놀이 붉은 색이 아닌 신비한 그레이-회색이다.
그윽하다.
메카를 향한 대규모 공동묘지가 구릉을 이어 가며 계속된다.
삶과 죽음이 공존 상생하고 있었다.
해안 길을 따라 이 나라 최대의 도시 카사블랑카 도심으로 접어든다.
<험프리 보가드>와 <잉그리드 버그만>이 주연한 영화로 더 잘 알려진
고도, 달빛 스며드는 초저녁 녘 베르베르인들의 숨결을 듣는다.
이내 달빛은 사라지고 소나기 한줄기 지나간다.
중심가, 교통신호등도 없지만 자동차들은 제 맘대로 역주행
역회전은 보통이다. 아찔하다.
벤츠 천국이다.
폐차 직전, 이미 폐차했어야 할 벤츠가 심벌마크를 자랑이라도 하는 둣
의기양양 대부분 운행한다.
페루와 쿠바에서 잘도 운행하던, 우리나라 꼬마자동차 티코가 활개 치던
경악이 되살아난다.
비교적 신 차종은 옛 지배국 프랑스제 푸조가 대세였다.
대서양에 인접한 모하메드 5세 광장에서 아침을 맞았다.
푸른빛이 신비한, 세계에서 제일 높다는 모스크 - 하산 메스키다(140m)의
위용은 대단했다.
코발트빛 모자이크의 신비롭고 정교한 아라베스크 미술과 건축의
진수를 본다.
비둘기와 갈매기와 사람들이 싱그런 갯내를 공유하는 일상도
행복한 순간으로 이어진다.
주변의 해안선은 밀려오는 큰 파도와 부서지는 포말에 썩 어울려
기대이상의 풍광을 선물한다.
등대가 보이는 포토 포인트에서 몇 컷 풍광을 담는다.
경비견 세퍼트를 카메라에 담으려니 초상권 침해라며
재빨리 자리를 뜬다.
영화 (카사블랑카)의 주 무대였던 카페 <릭-스>에 갔다.
해변 가에 있는 영화 속 그대로 이다.
시에서 문화재로 관리 보존한다고 한다.
두 남녀의 이루지 못한 사랑의 비애를 추억한다.
주인공의 흉내를 내며 창가에 앉아 수평선을 바라보며 차를 마신다.
사실은 촬영 주 무대는 미국이었으나 유명세는 이곳이 더 타고 있었다.
역사의 아이러니를 본다.
주인공 <험프리보가드>의 멋있는 흰색 정장처럼 말끔하고 깨끗한
모로코 최대의 도시 카사블랑카를 떠난다.
페스-뒤로 메면 남의 것
고대도시, 옛 수도로 가는 길은 멀었다.
가는 도중 허름한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교민이 만든 도시락으로
점심을 때웠다.
쌀이 좋아 반찬이 어설프나 밥맛은 최고급이다.
왁자지껄 시끄러운 소리가 진짜 시장다운 구시가지 메디나에 들어섰다.
모로코에서 세 번째 큰 도시, 100만 인구에 구도심과 신시가에
반반이 살고 있다한다.
8세기 아드리스 2세에 의해 수도가 되어 오늘날까지 종교 예술,
문화 학문의 중심지 역할을 하고 있다.
세계최초의 대학이 있고 철학 수학 과학을 14C기 유럽으로
전파한 문명 선진국이었다.
13C 최고 번성기를 누렸으나 지금은 옛만 못하단다.
그래도 아프리카에선 잘 사는 편이란다.
시장 안은 한 낮인데도 어둠 컴컴했다.
이스탄불의 바자르처럼 건물과 건물 사이로 가림 막이 얼키설키 쳐져있다.
지진에 의한 건물 붕괴의 위험을 방지하는 건축술이란다.
9,000여개의 골목, 겨우 두 사람 비켜 갈 수 있을 정도다.
큰 골목은 노새나 나귀를 타고 지나간다.
미로이기 때문에 시장골목투어 현지안내인을 하나 붙인다.
소매치기 천국이니 가방 조심하라고 여러 번 강조한다.
“앞에 메면 내 것, 옆에 메면 반만 나의 것, 뒤로 메면 남의 것.”이란
말을 여러 번 강조한다.
구릉과 계곡 위 아래로 이리저리, 발길 닫는 대로 걷는다.
사원 학교 궁전 찻집 공방 가게 염색공장 시장 목욕탕 많기도 하다.
빨리빨리 대충대충 가려 보아도 2시간 남짓, 천천히 돌면 하루,
꼼꼼히 살피려면 사나흘이란다.
테너리라 불리는 염색공장을 구경한다.
온갖 가죽 공예품이 즐비한 매장의 계단을 오른다.
지독한 냄새로 머리가 아파 온다.
4층의 지붕 테라스 위로 올라 유명한 염색공장을 내려다본다.
비수기를 이용, 보수 수리중이라 작업하는 광경을 볼 수 없었다.
TV 화면을 통해 자주 본 광경으로 상상했다.
만약 작업 중이라면 고약한 냄새를 견디기 힘들단다.
박하 잎으로 콧구멍을 막고 구경해야 하며 토하고 뛰쳐나가는
사람이 비일비재하단다.
낙타 소 말 양 노새 나귀 등 가죽을 소 오줌, 비둘기 똥 등 천연재료를
이용 염색소로 사용하여 세계적 명품을 만드는 장인정신이 경외스럽다.
금속공예, 향신료 또한 이 나라가 자랑하는 산업의 하나이다.
낙타가죽 허리띠를 사기 위해 매장에 들렸다.
잘생긴 이슬람인 하나가 우리 일행 하나에게 치근댄다.
낙타가 200여 마리 있는 부자이며 아내는 셋이 있고 마지막
넷째 부인으로 맞고 싶다고 가이드에게 통역을 부탁한다.
청혼 받은 40대 초반 여인네는 얼굴이 빨개져 곤혹스러워 한다.
미모도 아닌 뚱뚱한 몸매에 작은 키, 복스러운 얼굴이다.
이곳의 미인 기준은 뚱뚱한 몸매를 선호하는 것 같았다.
이슬람 여인들, 이 곳 모로코 여인들은 날씬한 여성을 찾기가 힘들었다.
아랍어를 모르는 나로서는 농담인지 진담인지 구분 할 수 없다.
분위기나 표정으로 유추 할 때 진심인 것 같아 그 여인에게
“프러포즈 받은 걸 축하한다.” 했더니 금세 얼굴이 빨개지며 수줍어한다.
카라위안 회교사원 관람은 제한적이다. 모자이크 건축물의 정수를 본다.
근엄한 경비병의 감시의 눈초리가 매섭다.
사원 옆 국가 주요시설 국방부 건물이라 사진촬영도 자유롭지 못했다.
아틀라스 산맥 고원도시 고도 페스에서 지중해 바닷가 도시 북북서
탕헤르로 떠난다.
비옥한 고원의 농토는 푸르다.
몇 시간을 달려도 밀밭과 비닐하우스가 끝이 없다.
아프리카 최대 미개발 농업국답다.
대서양에 지는 저녁놀이 처연하다.
20~30여 마리 양떼를 모는 양치기는 하루의 고단을 쉬러 집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지중해에서 떠오르는 열이레 달빛 또한 외롭고 쓸쓸하다.
아프리카의 달이 모자이크되어 차창에 아른거린다.
첫댓글 기행문 잘 보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