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동글 🍀속 터진 만두🍀
60년대 겨울, 인왕산 뒷자락엔 세칸 초가들이 다닥다닥 붙어 가난에 찌든 사람들이 목숨을 이어갔다.
이 빈촌 어귀에는 길갓집 툇마루 앞에 찜솥을 걸어놓고 만두를 쪄서 파는 조그만 가게가 있었다. 쪄낸 만두는 온기를 유지하라고 찜솥뚜껑 위에 얹어두곤했다.
만두소를 만들고 만두피를 빚고
만두를 찌고 손님에게 만두를 파는 일을
혼자서 다 하는 만두가게 주인 아줌마는
순덕이란 이름의 아줌마였다.
입동이 지나자 날씨가 제법 싸늘해 졌다.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어린 남매가
보따리를 들고 만두가게 앞을 지나다
추위에 곱은 손을 따뜻한 솥뚜껑에 붙여 녹이고가곤 했다.
어느날 순덕 아줌마가 부엌에서 만두소와 피를 장만해 나갔더니 솥뚜껑에 언손을 녹이고 있던 어린 남매는 떠나고 없었다.
얼핏 기억에 솥뚜껑 위에 얹어둔 만두 하나가 없어진 것 같아서 남매가 가는 골목길을 따라 올라갔다.
꼬부랑 골목길을 오르는데 아이들 울음소리가 났다. 그 남매였다. 흐느끼며 울던 누나가 목이 멘 소리로 말했다.
나는 도둑놈 동생을 둔 적 없다. 이제부터 나를 누나라고 부르지도 말아라.
예닐곱 살쯤 되는 남동생이 답했다.
누나야 내가 잘못했다. 다시는 안 그럴게.
담 옆에 몸을 숨긴 순덕 아줌마가
나가서 남매를 달랠까 하다가
더 무안해 할 것 같아 가게로 내려와 버렸다.
이튿날도 보따리를 든 남매가
골목길을 내려와 만두가게 앞에서
걸음을 멈추더니 누나가 동전 한닢을
툇마루에 놓으며 중얼 거렸다.
어제
아주머니가 안계셔서
외상으로 만두 한 개를 가지고 갔구먼요.
어느날 저녁 나절
보따리를 들고 올라가던 남매가
손을 안 녹이고 지나 치길래
순덕 아줌마가 남매를 불러세웠다.
얘들아
속이 터진 만두는 팔 수가 없으니
우리 셋이서 나누어 먹자꾸나.
누나가 살짝 미소를 지어 보이며 고맙습니다만 집에 가서 저녁을 먹을래요 하고는 남동생 손을 끌고 올라 가면서
얻어 먹는 버릇 들면 진짜 거지가 되는 거야라고 했다.
어린 동생을 달래는 나지막한 목소리가 찬바람에 실려 내려와 순덕 아줌마 귀에 닿았다.
어느날
보따리를 들고 내려가는 남매에게 물었다.
그 보따리는 무엇이며 어디 가는 거냐?
누나 되는 여자 아이는 땅만 보고 걸으며
할머니 심부름가는 거예요. 메마른 한마디 뿐이었다.
궁금해진 순덕 아줌마는
이리저리 물어봐서
그 남매의 집사정을 알아냈다.
얼마 전에 서촌에서
거의 봉사에 가까운 할머니와
어린 남매 세 식구가
이리로 이사와 궁핍속에 산다는 것이었다.
그래도 할머니 바느질 솜씨가 워낙 좋아
종로통 포목점에서 바느질 꺼리를 맡기면 어린 남매가 타박타박 걸어서 자하문을 지나 종로통까지 바느질 보따리를 들고 오간다는 것이었다.
남매의 아버지가 죽고 나서 바로 이듬해 어머니도 유복자인 동생을 낳다가 그만 이승을 하직했다는 것이었다.
응달진 인왕산 뒷자락 빈촌에도
매서운 겨울은 어김없이 찾아왔다.
남동생이 만두 하나를 훔친 이후로
남매는 여전히 만두가게 앞을 오가지만
솥뚜껑에 손을 녹이기는 고사하고
고개를 돌리고 외면하고 지나갔다.
너희 엄마 이름이 봉임이지 신봉임 맞지?
어느 날 순덕 아줌마가 가게 앞을 지나가는 남매에게 묻자 깜짝 놀란 남매가 발걸음을 멈추고 쳐다보았다.
아이고 봉임이 아들딸을 이렇게 만나다니 천지 신명님 고맙습니다. 남매를 껴안은 아줌마 눈에 눈물이 고였다.
너희 엄마와 나는 어릴 때 둘도 없는 친구였단다. 우리 집은 찢어지게 가난했고 너희 집은 잘 살아 인정 많은 너희 엄마는
우리집에 쌀도 퍼담아 주고 콩도 한자루씩 갖다 주었었다.
그날 이후 남매는 저녁나절 집에 올라갈 때는
꼭 만두가게에 들려서 속 터진 만두를 먹고 순덕 아줌마가 싸주는 만두를 들고 할머니께 가져다 드렸다.
순덕 아줌마는 구청에 가서 호적부를 뒤져
남매의 죽은 어머니 이름이 신봉임 이라는 것을 알아냈고 그 이후로 만두를 빚을 때는
꼭 몇개는 아예 만두피를 찢어 놓았었다.
인왕산 뒷편 달동네 만두솥에
속 터진 만두가 익어갈 때면
만두 솥 또한 눈물을 흘렸다.
그로부터 30여년 지난 후 어느날
만두가게 앞에 고급 승용차 한대가 서고
중년신사가 내렸습니다.
신사는 가게 안에서
꾸부리고 만두를 빗고 있던
노파의 손을 덥석 잡았습니다.
신사는 눈물을 흘리며 할머니를 쳐다보았습니다.
할머니는 신사를 보며
봉임이... 하고는 말끝을 흐렸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는, 속터진 만두를 얻어먹던 소년이었고
그 소년은 열심히 공부하고 정직하게 최선을 다한 삶을 살아서 서울대 의대를 졸업하고 미국유학까지 다녀와 병원 원장이 된 봉임이 아들 최낙원 강남제일병원 원장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감동이 흐르는 글이네요. 누나의 어른보다 더 어른스러운 품격있는 가치관 만두가게 아줌마의 고매한 인격에 두손이 여며집니다.
세상의 화려한 학력과 경력과 재력이
과연 이들의 삶보다 비교 우위에 있을까요?
오늘날에도 우리 주위에서
이렇게 아름다운 이야기가 쓰여지고 있는지
이런 아이들이 훌륭하게 성장할 수 있는지
확신이 들지않으니 안타깝기도 하고
나이든 사람으로 무한 책임을 느끼게 합니다.
내 이웃은 누구인가요?
혹시 나는 지금 내 도움이 필요한
가장 가까운 이웃을 외면하고 있지는 않는지요? 우리 자신을 되돌아보게 되는 영하의 추워진 겨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