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정도 신정동 지점에서 근무 후 나는 영등포지점으로 전근하게 되었다. 영등포지점에서는 한 6개월 정도 근무하다 군대를 가게 되었다. 영등포지점은 매우 큰 점포였다. 총 5개층으로 이루워진 건물은 1층은 입출금 전담. 2층은 주택부금, 3층은 대출, 4층은 본부부서, 5층은 식당이었다. 직원도 약 80여명이 근무했다. 2층에서만 근무하다 군대를 간 나는 2층에서 근무하는 직원들이 아닌 다른 층 직원들의 얼굴도 파악하기 어려웠다. 영등포는 강서구에 살던 나에겐 복잡한 도심이었다. 크리스마스 이브에 국민학교 친구들과 밤새 영업하는 다방(그땐 카페가 아니라 다방이었다)에 앉아 혹 여자들과 합석할 수 있을까 기대하며 담배를 죽이고 있었다. 그러나 역시나 아무일도 없었다. 영등포지점에 오니 회식으로 삼겹살을 주로 먹었다. 나는 그때까지 삼겹살을 먹어보질 못했다. 그래서 처음 삼겹살을 먹게 됐을 때 돼지 특유의 냄새때문에 잘 먹질 못했다. 그러나 지금은 소주한잔에 삼겹살이 최애 음식이 되었다. 6개월 후 나는 군대에 가게 되었다. 나는 눈이 좋지 않아 방위생활을 하게 되었다. 훈련소에 가기 전, 먼저 육본에서 방위생활을 하고 있던 동기동창이 자기 자리가 힘도 안들고 하니 후임으로 오라고 했다. 나는 무조건 좋다고 했다. 방위를 명 받아 한달간 훈련을 받고 자대 배치를 받았다. 나는 광명에 있는 52사단에서 훈련을 받았다. 그 당시 군사훈련은 누구나 받는것이었고 일반병보다 단기사병이었던 나는 훈련소 입대를 마음 편하게 할 수 있었다. 그러나 군대는 군대였고, 훈련소는 훈련소였다.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방법으로 훈련을 받는다는것이 쉽지않았다. 훈련소에 입소한지 일주일 정도 지났을 때 침상에 부동자세로 자세를 잡고 일석점호를 준비하고 있었다. 조교가 내무반에 들어와 점호를 시작했다. 나는 긴장한채 서있었다. 내 앞에는 뚱뚱하고 나이가 들어보이는 동기가 있었다. 조교 앞에서 떨리는 목소리로 관등성명을 외치는 그를 보고 있자니 웃음이 났다. 그는 금복주라는 소주에 붙어 있는 달마대사 같은 모습이었다. 나는 픽 소리를 내며 웃고 말았다. 갑자기 군화발이 내 가슴으로 날아왔다. "아니 일석점호 시간에 웃어, 이 새끼들이 군기가 빠졌구만" 나는 조교의 뒤돌려차기 한방에 뒤로 날아갔다. 아픈지도 몰랐다. 다행히 가슴을 빚맞아선지 나는 벌떡 일어나 자리로 돌아갔다. "대가리 박아" 나는 머리를 침상에 박고 엉덩이를 뒤로 빼고 원산폭격 자세를 취했다. 나는 간혹 나도 모르게 긴장된 상태에서 웃음을 흘리는 경우가 있다. 절대 해서는 안되는 행동을 해서 사람들에게 오해를 사는 경우가 있다. 이게 병인지 뭔지, 너무 긴장해서 그런건지 잘 모르겠다. 병이라면 고질병이다. 그 이후 나는 훈련소에서 정신을 바짝차리고 군기가 잔득 들어 훈련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훈련을 마친 후 친구 후임으로 육군본부로 자대 배치를 받았다. 내가 하는 일은 훈련소에서 교육을 받은 병들을 자대 배치시키는 일이었다. 수도방위사령부에 몇명, 1사단에 몇명 등 인원을 배치하는 일을 맡아했다. 우리 사무실에 대령 1명, 중령 1명, 나이가 대령쯤되는 군무원1명, 여 군무원 1명 그리고 일반병 1명과 내가 근무를 했다. 병들 교육이 끝나 자대 배치 시기가 오면 일이 많아져 야근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위에서 순찰을 올때도 일이 바쁘면 나는 일을하고 중령이 빗자루를 들고 청소를 했다. 군대라기 보단 일반 사무실에서 근무하는것 같았다. 사무실을 찾아오는 사람들도 병들은 없고 위관, 영관 장교들만 찾아왔다. 부대 보급인원을 충분히 책정해달라는 부탁이 많았다. 우스개 소리로 일병에게도 짜웅을 한다고 했다. 별들을 하도 많이 봐서 별들은 무섭지 않았고 담임 부대장인 대위가 제일 무서웠다. 방위는 영내 생활을 하지 않고 출퇴근을 했는데 처음엔 대중교통을 이용했으나, 6개월 정도 지나며 육본버스를 타고 장교들과 함께 출근을 한적도 많았다. 학교나 군대나 정문을 통과하기가 어려운데 버스를 타고 가니 그런 염려가 없었다. 처음 육본에 갔을 때 고참들이 나를 불러 "너 족구 잘하냐"고 물었다. 나는 체질적으로 운동에 약했고 특히 공을 다루는 운동은 젬병이었다. 그래도 무조건 족구시합에 참여해야 했고, 매일 매일 고참들에게 욕을 먹었다. "야, 난 살면서 너처럼 개발은 처음본다" 수요일 오후는 전투체력의 날이었는데 나는 사무실을 지키는게 더 마음이 편했다. 나는 사무실에 혼자 남아 소설책을 읽는것이 더 좋았다. 그때 나는 선, 도, 요가 등에 관심이 많았고 인간과 신, 종교에 대한 생각을 많이 했다. 김성동의 "만다라" 이문열의 "사람의 아들" 이 그때 읽었던 책들이다. 도와 관련된 책을 읽고, 기를 모으는 연습도 했다. 숨을 쉬었다가 단전에서 숨을 멈춘 후 그 기를 손끝, 발끝으로 보내 바람을 일으키는 연습을 했다. 촛불을 앞에두고 기를 모아 촛불을 끄는 연습도 했다. 기를 운용하여 내 몸을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도록 수련을 했다. 몇 달 훈련을 했지만 이룰수 있는게 없었다. 젠장, 어떻게 해야 되는거야 나는 포기하고 말았다. 만다라를 읽고 파계에 대하여 생각했고, 사람의 아들을 읽으며 인간과 신에 대하여 생각했다. 신은 인간을 만들었으면서 왜?자꾸 인간을 시험에 들게 해서 힘들게 만드는가? 왜? 착하게 살고있는 사람들에게 고통을 주는가? 나쁜 놈들이 세상을 농단하고, 맘대로 권력을 휘두르고, 많은 사람들을 죽이는데도 왜? 지켜보고만 있는가? 자신이 점지한 최고의 추종자에게 그의 아들을 재물로 바치라는 령을 내리고 믿음을 시험하는가? 일은 없고, 책 읽을 시간이 많으니 이런저런 끝없는 생각이 나를 뒤흔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