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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6-04
“어서 오십시오.”
집무실 앞에 선 이명박이 웃음 띤 얼굴로 이회창을 맞는다.
“아이고, 요즘 바쁘신데, 이거.”
하면서 이회창은 이명박이 내민 손을 잡고 따라 웃었다. 이회창은 당 대변인 변웅전만 대동했기 때문에 인사가 간단히 끝난다. 이회창과 집무실로 들어선 이명박이 자리를 권한 뒤 마주 보고 앉았다. 11월 초순의 오전 11시, 이명박은 지난번 ‘10월유신’ 때 협조해준 선진당 대표 이회창을 인사차 초청한 것이다. 집무실 원탁에는 이명박과 비서실장 류우익, 그리고 건너편에 이회창과 변웅전이 앉았다. 각 자리 앞에 생수병과 물잔이 놓였고 필기구도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다.
“지난번 개헌 때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명박이 정색하고 말하자 이회창은 풀썩 웃었다.
“새삼스럽게 왜 그러십니까? 우리 선진당도 개헌에 찬성했기 때문에 도와드린 것입니다.”
“저는 든든한 동반자를 모시게 되어 영광입니다.”
“아이고, 이젠 고만 하십시다.”
하고 이회창이 손까지 저었으므로 이명박이 의자에 등을 붙였다. 이제는 긴장이 풀린 변웅전도 얼굴을 펴고 웃는다. 옆쪽 벽에 붙어 있는 시계에서 초침소리가 잠깐 들렸다가 이명박의 목소리에 지워졌다.
“제가 부탁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예, 말씀하시지요.”
물잔을 들었던 이회창이 내려놓고 웃음 띤 얼굴로 말했다.
“또 개헌하실 것이 있습니까?”
“이 총재께서 국무총리를 맡아주셨으면 합니다만.”
그 순간 이회창은 입을 꾹 다물었고 변웅전의 얼굴은 대번 돌같이 굳었다. 대통령중심제인 대한민국에서 국무총리의 위치는 애매하다. 한글날 행사 같은 때 대통령축사를 대신 읽는 것이 국무총리의 위치를 딱 대변한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헌법상 국무총리의 실권은 막강하지만 추천자인 대통령의 위세에 눌려온 것이 사실이다.
이명박 정권의 초대 국무총리는 한승수다. 그는 당연히 유능하며 경륜도 뛰어나고 성품까지 온건해 2008년 11월 지금까지 무난하게 업무를 수행해왔다. 그림자처럼 대통령을 보좌해왔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하지만 워낙 눈부시게 활동한 이명박 그늘에 가려 그동안의 업적이 빛을 보지 못한 점도 있다. 그때 이회창이 입을 열었다.
“이거, 또 놀라게 하시는군요.”
“진심입니다. 놀라셨다면 죄송합니다.”
정색한 이명박이 말을 잇는다.
“이제는 강한 총리가 필요한 시기가 되었습니다. 부탁드립니다.”
“아이고, 이것 참.”
이회창의 얼굴에 쓴웃음이 번졌다. 이회창이 누구인가. 총리도 진즉 해본 거물인 것이다. 김영삼 정권 때인 1993년 12월에서 94년 4월까지 넉 달 동안이었다. 이회창은 당시 하늘을 찌를 것 같던 대통령 김영삼의 권위에 굽히지 않은 대쪽 이미지로 남아 있다. 그때 이명박이 말을 잇는다.
“총리께 조각권은 물론 국정운영 전반에 관한 권한을 드리겠습니다. 헌법에 명시된 권한을 그대로 갖게 되시는 것입니다. 저는 남북관계와 외교, 그리고 대통령이 결정할 일만 하겠습니다.”
이제 이회창은 묵묵히 듣는다. 치켜뜬 눈으로 앞쪽 벽을 바라보고 있다.
# 박근혜의 얼굴은 굳어 있다. 표정 관리가 잘되는 편이어서 대개 포커페이스로 넘어가지만 이번은 잘 안 되었다. 눈썹 사이가 좁아졌고 시선을 탁자 위로 내린 상태다. 국회 당대표실 안이다. 원탁에는 홍사덕과 진영, 이한구 등 측근이 둘러앉았는데 비슷한 표정들이다. 그때 홍사덕이 입을 열었다.
“곧 연락이 오겠지요. 대통령이 납득할 만한 이야기를 해주겠지만 총리 임명은 대통령 고유 권한인 데다 이회창 씨가 지금까지 여러 번 협조해준 상황 아닙니까? 충청권 민심도 얻을 수 있을 테니까요.”
그들은 지금 이회창 총리 지명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중이다. 모두 눈만 껌벅였으므로 홍사덕이 말을 이었다.
“그리고 대선은 앞으로 4년이나 남았습니다. 그동안 어떤 변수가 생길지 정치판은 알 수 없는 것입니다.”
그때 박근혜가 말했다.
“곧 연락이 오겠지요.”
주위의 시선을 받은 박근혜가 희미하게 웃었다.
“청와대로서는 꽤 좋은 카드인 것 같네요.”
4년 중임제로 헌법이 개정된 데다 이명박이 차기에는 나서지 않겠다고 선언한 상태다. 차기 대권만 쥐면 연임을 통해 8년간 통치할 수 있는 터라 대권을 노리는 잠룡들이 들썩이고 있다. 여권에서는 박근혜가 타의 추종을 불허하며 독주하지만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잠룡들이 드러났다. 정몽준, 김문수, 그리고 이재오까지 거론되는 상황인 것이다. 거기에 앞으로 또 어떤 대선주자가 나타날지 모른다. 이번에 이회창이 국무총리가 되면 비록 선진당이 소수당이라 해도 강력한 경쟁자가 될 수 있다. 대선전에 합종연횡이 어디 한두 번 있었는가. 그때 이한구가 혼잣소리처럼 말했다.
“충성심 경쟁을 시키려는 의도 같습니다.”
# 개정된 법에 의해 직선제로 선출한 교육감을 해임했고, 교과부에서는 관선 교육감 선정 작업을 진행 중이다. 교육감이 공석이라고 교육행정에 차질이 생기지는 않았다. 오히려 현장에서는 당분간 교과부에서 직접 관리할 수 있어 더 기능적이라며 반기는 상황이다.
2008년 11월 12일 오후 3시, 광주광역시의 보명중학교 사회과 교사 김태철은 교무실에 앉아 있다가 손님을 맞는다. 사내 두 명이다. 둘이 거침없이 다가와 책상 앞에 섰으므로 김태철은 긴장했다. 헐렁한 점퍼 차림이었지만 눈빛이 매섭다. 경찰이 아니면 기관원이다.
“김태철 씨 맞죠?”
하고 사내 하나가 묻는 순간 김태철은 가슴이 덜컹 내려앉는 느낌을 받는다. 맞다. 경찰이나 기관원이다. 그때 주위가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쉬는 시간이어서 교무실에는 선생님 30여 명이 앉아 있다.
“예, 맞는데요.”
아니라고도 할 수 없는 노릇이다. 다 알고 온 놈들이니 비굴하지 말자. 그때 사내가 말했다.
“체포영장을 가져왔습니다. 당신은 변호사를 선임할 수 있고 본인에게 해롭다고 생각하면 묵비권을 행사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서 사내가 주머니에서 수갑을 꺼내들었고 다른 사내는 영장으로 보이는 서류를 펴 김태철 앞에 대고 흔들었다. 김태철의 팔을 끌어 수갑을 채우며 사내가 말을 잇는다.
“국보법 위반입니다. 2007년 5월 학생 12명을 데리고 1박2일로 삼학산 캠프에 가서 빨치산의 영웅담을 교육했지요?”
사내가 이제는 김태철의 등을 밀며 쓴웃음을 지었다.
“세상이 달라졌습니다. 당신은 아마 반역죄로 최소한 5년은 살아야 할 것입니다.”
사내는 보통 크기의 목소리로 말했지만, 교무실 안 사람들이 모두 숨을 죽이고 있던 터라 끝에서도 다 들었을 것이다.
# 공안정국은 맞다. 요즘은 절도범이나 사기범 등 이른바 잡범보다 공안사범이 더 많이 잡혀 들어간다는 소문이 돈다. 그리고 그 말이 거의 맞았다. 보명중학교 사회과 교사 김태철뿐 아니라 중국을 통해 노동당 당원 명부를 북한 측에 넘긴 노동당 간부와 그 동조자 30여 명이 체포됐다. 이것으로 민족해방(NL)계, 민중민주(PD)계로 나뉘어 정치조직으로 기반을 다져온 NL계 진보정당 한 곳이 붕괴되었다. 야당과 사회단체에서 ‘유신독재’라고 악을 썼지만 시민의 호응도는 낮다. 1972년 박정희의 10월유신과는 근본적으로 달랐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은 지금 재정비 중이다.
이명박이 국회 세우리당 대표실로 박근혜를 찾아왔을 때는 소문이 퍼진 다음 날 오후 3시경이다. 미리 약속을 한 터라 박근혜가 문 앞에서 이명박을 맞는다.
“또 왔습니다.”
쓴웃음을 지은 이명박이 말하자 박근혜는 잠자코 방 안으로 안내한다. 이명박은 류우익과 박재완이 수행했는데 박근혜는 혼자다. 이명박이 요청했기 때문이다. 소파에 마주 보고 앉았을 때 이명박이 헛기침부터 했다. 옆쪽에 나란히 앉은 류우익과 박재완은 긴장한 상태다. 이명박이 똑바로 박근혜를 보았다.
“이회창 선진당 총재를 국무총리로 모셔야 할 것 같습니다.”
박근혜는 시선만 주었고 이명박이 말을 이었다.
“그러고 나서 선진당과 합당할 예정입니다.”
머리를 든 박근혜가 이명박에게 묻는다.
“이 총재님하고는 합의하셨어요?”
“원칙만 얘기했으니까 구체적인 사항은 박 대표가 맡아 해주셔야지요.”
그러고는 문득 묻는다.
“우리 세우리당에서 반대하는 분은 없으시겠지요?”
“저쪽 조건을 들어봐야 할 텐데요.”
“서로 양보하면 되리라 믿습니다.”
그러더니 이명박이 얼굴을 펴고 웃는다.
“우리가 포용해야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이명박의 시선을 받은 박근혜가 머리를 끄덕였다. 선진당의 기반은 충청도다. 지금은 많이 약해졌지만 10여 년 전 김종필 시대에는 충청도를 석권해 이른바 ‘DJP 연합’으로 대권을 창출했다. 이명박이 부드러운 표정으로 말을 잇는다.
“선진당을 키워 우군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그것이 박 대표님께 달렸습니다.”
박근혜는 심호흡을 했다. 이런 말까지 듣고 ‘토’를 달 인간은 없다. 있다면 정신병자다. 충청도의 선진당까지 품에 안겨준다는 뜻인 것이다. 이윽고 박근혜가 머리를 끄덕였다.
“잘 알겠습니다.”
# 열흘 후인 2008년 11월 23일 국회에서는 국무총리 청문회가 열렸다. 청문회 내용은 TV를 통해 전국에 방송되었는데, 여당은 그렇다 쳐도 야당 의원의 질문 태도는 정중했다. 두 번이나 여당 대통령후보로 나섰다가 석패한 이회창이다. 국무총리 청문회 자리에 앉아 질문을 받는 자신을 돌아보고 인생무상, 격세지감을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인지 야당 의원의 질문까지 다 끝난 뒤 사회자가 하실 말씀이 있느냐고 물자 그는 TV 화면을 바라보며 이렇게 말했다.
“또 아들 병역문제가 나올까봐 자료를 챙겨왔는데, 이번에는 아무도 묻지 않으시는군요. 허허허.”
국민은 화면에 클로즈업된 이회창의 웃는 모습을 보았다. 이회창의 웃는 모습은 천진스럽다. 자주 안 찍혀서 그렇지 웃는 모습이 일품이다.
# 본래 18대 총선에서 한나라당은 지역구와 비례대표에서 131석, 22석을 얻어 153석을 차지했다. 민주당은 66석과 15석으로 81석, 선진당은 14석과 4석으로 18석, 친박(친박근혜)계는 6석과 8석으로 14석, 민노당은 2석과 3석으로 5석, 창조한국당은 1석과 2석으로 3석을 차지했다. 세우리당 비상대책위원회가 가동할 때 한나라당과 친박계가 합병했으므로 세우리당 의석수는 167석으로 불어난 상황이다. 이제 선진당까지 합당하면 185석이 된다.
이회창이 국무총리로 취임한 다음 날, 선진당 비례대표 조순형이 의원실에서 손님을 맞는다. 청와대 비서실장 류우익이 들른 것이다. 예전에는 청와대실장이 여의도에 나타나면 떠들썩했지만 지금은 대통령과 하도 들락거려서 다들 그러려니 한다. 오늘도 류우익은 대통령 심부름으로 박근혜에게 들렀다가 이곳에 온 것이다. 이제 선진당 총재가 국무총리로 들어간 터라 한집안이나 같다. 그래서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도 없다.
조순형은 1935년생이니 2008년 현재 74세, 이명박보다 6세 연상으로 7선의원이다. 2004년 민주당 대표일 때 노무현 탄핵을 주도했던 조순형은 17대 총선에서 낙선했다가 이번 18대에는 선진당 비례대표로 국회에 진입했다. 소신이 강하고 불의에 굽히지 않아 ‘미스터 쓴소리’라는 별명을 얻었지만 관운은 없는 편이다. 조순형의 방에서 둘이 마주 보고 앉았을 때 류우익이 물었다.
“이 총재님이 행정부로 가셔서 당이 좀 바빠지지 않겠습니까?”
류우익의 시선을 받은 조순형이 빙긋 웃었다.
“뭐, 바쁠 게 있겠습니까? 곧 양당 통합을 할 텐데 말이오.”
“아니, 그렇더라도….”
“류 실장도 거짓말을 잘 못하시는구먼.”
쓴웃음을 지은 조순형이 말을 잇는다.
“얼굴에 다 표시가 나요. 포커페이스가 되는 연습을 하셔야겠어.”
“아, 그렇습니까?”
저도 모르게 손바닥으로 볼을 만진 류우익이 헛기침을 했다.
“저는 정치인 스타일이 아닌가 봅니다.”
“누구는 처음부터 정치인 스타일이 배었나요? 겪다 보면 다 그렇게 됩니다.”
그러더니 조순형이 정색하고 류우익을 보았다.
“자, 용건을 들읍시다. 내가 국회에서 총대 멜 사건이 있습니까?”
“예, 그것이….”
입맛을 다신 류우익이 머리를 들었다. 그도 정색하고 있다.
“대통령께서 측근 정리를 하셨지 않습니까?”
조순형은 시선만 주었다. 민정수석실에서 조사한 측근 비리는 며칠간 언론을 즐겁게 했다. 한때 나는 새도 떨어뜨릴 것 같던 최측근들이 집권 1년도 안 돼 구속된 것이다. 그야말로 화무십일홍이다. 류우익이 말을 잇는다.
“이번에 정리했지만 앞으로가 더 문제라고 대통령께서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더 철저히 관리를 하셔야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야지.”
머리를 끄덕인 조순형이 의자에 등을 붙였다.
“측근비리 차단에 대한 법을 만들려는 겁니까? 그건 시간이 좀 걸리겠는데.”
“예, 그것이….”
머리를 든 류우익이 조순형을 보았다.
“대통령께서는 조 의원님이 청와대 비서실장으로 오시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
“오셔서 측근들을 감독, 관리하고 국정을 함께 상의해주기를 바라십니다.”
그러고는 류우익이 길게 숨을 뱉는다.
“조 의원님과 함께 대통령 임기를 멋지게 마치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조순형도 시선만 준 채 움직이지 않는다.
# “대통령실장에 조순형이라.”
KBS 보도국장 임명수가 눈을 가늘게 뜨고 혼잣소리처럼 말했다.
“그것 참, 인사가 망사(亡事)라고 씹었더니 이젠 깜짝깜짝 놀래는구먼.”
“글쎄 말입니다.”
하고 말을 받은 차장 박동민이 커피를 한 모금 삼켰다. 둘은 곧 뉴스로 내보낼 원고를 확인하는 중이다.
“선진당하고는 곧 통합하겠지요?”
박동민이 묻자 임명수가 원고를 넘기면서 대답했다.
“당연하지. 이런 식으로 대우해주는데 내가 민주당이라도 통합하겠다.”
그때 노크 소리가 들리더니 아나운서 유경환이 들어섰다.
“국장님, 큰일났습니다.”
아나운서 4년차인 유경환은 자주 국장실에 들른다. 사내 정보를 전달해준다는 명목이지만 같은 ‘노빠’에다 광주 출신 후배인 것이다.
“뭐야, 어디 불났어?”
이맛살을 찌푸린 박동민이 대신 묻자 유경환은 서둘러 다가와 섰다.
“사장이 청와대로 끌려갔습니다.”
“뭐?”
임명수가 외마디 소리를 뱉었다. 눈을 치켜뜬 임명수가 조금 경솔하고 또 조금 귀여운 18년 후배를 노려보았다.
“얀마, 똑똑히 말혀. 사장이 청와대로 끌려가? 거그가 교도소냐?”
“아니, 그러니까….”
“아, 씨벌놈.”
입맛을 다시고 난 임명수가 이제는 눈을 가늘게 떴다.
“누구한티서 들었냐?”
“예, 사장 비서실 미스 전한테서.”
“뭐라고 그래?”
“청와대에서 연락이 와가지고 바로 끌려갔다고….”
“누가 와서 끌고 간 것이 아니고?”
“예, 그것이….”
“언제?”
“두 시간쯤 전에요.”
“이러니까 방귀 뀐 것이 똥 쌌다는 소문으로 번진다고.”
했지만 임명수의 표정은 개운치 않다. 이명박이 취임했을 때부터 사장 정연주는 정리 대상 1호였던 것이다. 그러나 정연주는 지금까지 끈질기게 버티고 있다.
# 그 시간에 청와대 대통령 집무실에서 이명박이 앞쪽에 앉은 정연주에게 말했다.
“정 사장, 그동안 마음고생 많으셨지요?”
“아, 아니, 저는….”
말을 그친 정연주가 심호흡을 했다. 대통령에게서 만나자는 전화가 온 것은 두 시간 전이다. 정무수석 박재완이 먼저 전화를 하고나서 대통령을 바꿔준 것이다. 이건 마치 중소기업 사장이 총무과 여직원을 시켜 전화를 걸게 하고, 전화기를 건네받은 모양새였지만 분위기가 색달랐다. 그래서 청와대로 달려오는 동안 오만 가지 생각이 났던 것이다. 그리고 청와대 정문을 통과한 순간 결심을 했다.
‘그래, 사표 내자.’
그때 이명박이 말했다.
“선거 전에 언론에서 조금 치우친 보도를 했다고 내 주변에서 그런 모양인데, 오늘 이 순간부터 잊읍시다.”
그러고는 이명박이 이를 드러내고 웃었다.
“내가 진즉 나서서 말렸어야 했는데 미안합니다. 아시다시피 바빴거든요.”
“대통령님, 저는….”
갑자기 목이 멘 정연주가 입안의 침을 삼켰을 때 이명박이 앞에 앉은 이동관에게 말했다.
“대변인이 간단하게 사과성명을 내도록 하지. 아주 탁 털어놓고 말하는 것이 나을 거야. 그래야 국민이 받아들여.”
작가 / 이원호
자료출처 : 주간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