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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 일시: 2019년 9월 8일 (일) [토요무박]
o 날씨: 흐림/안개
o 산행경로: 오도치(재) - 국사봉 - 방장산 - 배거리재 - 주월산 - 무남이재 - 천치고개 - 존제산 - 주릿재 - 석거리재
o 산행거리: 24.1km
o 소요시간: 10시간
o 지역: 전남 보성군
o 일행: 울산다물종주클럽
o 산행정보: 오도치, 방장산, 주월산, 존제산, 주릿재, 석거리재
o 트랙:
▼ 코스지도
오늘 산행은 숙제로 남아있는 호남정맥 땜빵입니다. 오도치에서 석거리재까지 약 24km 남짓이지만 호남정맥 중에서도 난이도가 있는 구간으로 알려져 있고, 또 어제 강타한 태풍 링링의 영향이 아직 남아 있어 쉽지않은 하루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걱정은 되지만 나홀로 땜빵보다는 '함께하면 더 멀리갈수 있다' 주문을 되뇌이며 베낭을 꾸립니다. 아침 5시반에 도착한 들머리는 한밤중처럼 두텁고 짙은 안개가 사방을 채우고 있네요...
▼ 오도치 (들머리)
시작부터 우왕좌왕, 들머리 초입에 벌목된 나무가지들이 널부러져 있어 진입부터 난관입니다. 게다가 몇m 앞도 보이지 않는 짙은 안개는 방향조차 헷갈리게 합니다...
등로가 헷갈려 선두는 벌목구간을 가로질러 무작정 언덕을 치고 오르고, 후미는 새로 생긴 듯한 임도를 따라 갑니다. 결국은 만나네요. 합류지점에 후미가 먼저 도착해 있습니다. 이렇게 한바탕 숨을 헐떡인후 들머리부터 약 1km 지점에 있는 국사봉에 도착했습니다....
▼ 국사봉
습하고 짙은 안개가 옷속으로 파고들어 온몸은 벌써 흥건하게 젖었습니다. 나뭇가지에 붙어 있던 물기는 마치 비처럼 쏟아지고 발길에 채이는 수풀은 금새 등산화를 적시고...
파청재를 지나면서 날도 밝아오고 사방을 철통같이 차단하던 두껍고 짙은 안개도 점점 옅어지고 있습니다...
▼ 파청재
파청재를 지나면 임도길을 따라갑니다. 아침기온이 높지는 않지만 습한 공기가 후덥지근하게 온몸을 파고드네요. 임도를 따라 올라가면 방송통신탑이 있는 곳이 방장산입니다...
▼ 방장산(方丈山)
안개도 걷히고 고도가 높아지면서 세상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냅니다. 안개가 산허리를 휘감고 도는 풍경은 비온 다음날에 만날 수 있는 절경이지요. 마음이 정화되는 느낌입니다...
고인돌 돌무덤도 지나고 이드리재와 배거리재를 차례로 통과합니다...
배거리재 위에 있는 주월산이 옛날 홍수때 '배가 넘어갔다'는 산이고 배거리재는 그때 '배가 걸려 있는 재'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배가 넘어가다가 걸렸거나 배를 걸어 두었다는 뜻이겠지요. 우리나라에는 이와 비슷한 전설을 간직한 지명이 많습니다. 배넘이산, 배넘이재, 배맨 바위 등등...
▼ 배거리재
배거리재 정상이 주월산입니다. 주월산 정상에는 패러글라이딩장이 만들어져 있는 사방으로 개방감이 좋습니다. 전망데크와 쉼터도 설치되어 있네요. 옛날 득량만 바닷물이 홍수로 밀려올때 배가 이 곳을 넘어갔다고 하는데, 이곳의 해발고도가 557m이니 파도의 높이가 적어도 600m는 되었다는 뜻이네요. 퍼펙트스톰이었나? ㅎㅎ 주월산은 소이산이라는 별칭도 있다고 합니다....
▼ 주월산(舟越山)
땀도 식히면서 사방을 둘러봅니다. 지나온 방장산의 방송통신탑이 구름위로 솟아있고, 안개때문에 흐릿하긴 하지만 득량만도 내려다 보입니다...
▼ 주월산에서 바라본 방장산(좌)
▼ 주월산 패러글라이딩장에서 바라본 조성면(?) 방향
▼ 오봉산(?)
주월산의 일망무제를 즐긴후 정맥길을 이어갑니다. 다음 경유지는 무남이재입니다. 패러글라이딩장으로 연결되는 아스팔트길을 따라가도 무남이재로 연결됩니다만 정맥길은 어김없이 숲길로 이어집니다...
가을의 숲길은 잡목과 덩쿨과 가시덤불들이 얽히고 설켜있지만 아직은 견딜만 합니다. 무남이재를 앞두고 무남이봉을 지나고...
▼ 무남이봉
주월산에서 쭉~ 미끄러져 내려온 정맥길은 무남이재에서 멈춘후 광대코재를 향해 급반전합니다. 이곳에서 광대코재까지가 오늘 구간중 최고의 급경사를 자랑(?) 합니다. 무남이재는 득량만 바닷물이 넘어왔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고요...
▼ 무남이재
등로는 임도의 우측 숲으로 이어집니다. 후덥지근하고 끈적끈적한 공기와 사투를 벌이며 힘겹게 비탈길을 올라서면 광대코재 이정표를 만납니다. 왜 산꼭대기에 '재'라는 이름이 붙어 있을까 의아스러웠는데 바로 위에 '광대코봉'이라는 팻말도 붙어 있습니다...
비록 광대코재가 산꼭대기이긴 하지만 이전에는 이곳을 통해 인근주민들이 왕래를 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산꼭대기에 봉(峰)이라는 이름보다 재(峙)나 령(嶺)이 붙어 있는 지명이 더러 있지요...
▼ 광대코재
▼ 광대코봉
▼ 광대코봉에서 바라본 금천리 방향
▼ 광대코봉에서 바라본 존제산 방향
광대코재에서 서쪽으로 대략 4km 떨어진 곳에 철쭉으로 유명한 초암산이 있습니다. 철쭉철에는 이곳에서 초암산을 왕복하는 정맥꾼들도 있다고 하더군요. 오늘도 일행중 한분이 과감하게(?) 광대코재에서 초암산으로 향했다가 길을 막고 있는 잡목과 가시덤불을 뚫지 못하고 후퇴하였습니다. 여름철의 정맥길은 산과의 싸움이 아니라 덤불과의 싸움입니다. 광대코봉을 지나면 정맥길은 천치고개(모암재)로 하강하는데, 이곳도 가시덤불과 잡목과 잡풀 때문에 발걸음이 쉽지 않습니다. 봄에는 철쭉군락지라고 하네요...
▼ 내려다 본 대곡제 방향
천치고개로 향하던 호남정맥길은 572봉에서 고흥지맥이 분기합니다. 직진하면 고흥지맥, 호남정맥길은 좌틀하여 천치고개 방향입니다. 고흥지맥은 이곳에서 남으로 흘러내리면서 태봉(326m), 가마봉(258m), 장군봉(414m), 천봉산(195m), 운암산(484m), 수덕산(301m), 오무산(357m), 천등산(554m), 유주산(417m)을 일으키고 지죽대교 앞 고흥반도 남단 남해바다에서 그 맥을 다하는 약 90km의 산줄기를 말하며, 고흥반도를 남북으로 가로질러 반도 끝까지 이어진답니다...
▼ 고흥지맥 분기점
▼ 진행방향으로 내려다본 천치고개 (모앙재)
천치고개를 앞두고 잠시 쉬면서 몸을 추스리며 원기를 보충합니다. 싸가지고 온 도시락도 꺼내먹고 과일로 수분도 보충하고 맥주로 정신도 세탁하고... 뒤따라온 낭만조의 파티가 벌어지는데 오늘도 베낭에서 온갖 먹거리가 쏟아지네요. 저렇게 무거운 것을 들고 다니는 걸 보면 '먹는 것의 즐거움'이 '무거움의 고단함' 보다 훨씬 큰 모양입니다. ^^
천치고개는 지도에는 느재로 표기되어 있으며 2차선 아스팔트 길이 지나고 있습니다. 등로는 아스팔트길 위로 설치된 생태통로를 통과합니다. 천치(天峙)고개는 '하늘과 만난다'는 뜻이며, 부근에 있는 신라시대의 징광사와 관련이 있다고 합니다. 일부 산행지도에는 모암재라고 표시되어 있습니다...
▼ 천치고개 (모암재)
천치고개에서 존제산까지는 광대코재 구간과 맞먹는 급경사 구간입니다. 게다가 이곳은 가시덩쿨과 덤불이 훨씬 심하고 군사지역이라 곳곳에 철조망이 설치되어 있어 개인적으로는 난이도가 훨씬 큰 것 같습니다...
▼ 뒤돌아본 천치고개 방향 (두번째 사진은 펌)
가시에 찔리고 나무뿌리에 걸리고 철조망에 찢기고... 또다시 밀려오는 짙은 안개는 오늘 후반전의 험난함을 예견하는 것 같습니다. 이곳은 지뢰매설지역이라 특히 조심해야 합니다...
키높이의 수풀도 힘겨운데 철조망까지 애를 먹입니다. 무성한 덤불을 헤치다 보면 보이지 않던 철조망 가시가 옷을 찢고 살을 파고 들고 시그널도 제대로 보이지 않아 등로가 엄청 헷갈립니다...
▼ 진행방향으로 바라본 가야할 방향
다운 받아온 트랙도 오락가락... 어쩔수 없이 가야할 방향을 대충 가늠하고 억센 덤불숲을 헤쳐나갑니다. 보기에는 별것 아닌 것 같지만 허리높이의 무성한 잡풀과 잡목을 헤쳐나가는 것이 만만치가 않네요. 다리에 엉킨 수풀은 바쁜 걸음을 자꾸만 옭아메고...
왔다 갔다 한참을 헤매다가 군사시설로 이어지는 군사도로에 올라섰습니다. 정맥길 마루금은 뒷편 언덕쪽인데 정맥길에서 약간 벗어나 버렸습니다. 정맥길로 복귀하는 길도 모르겠고 진을 뺏더니 빨리 이곳을 벗어나고픈 생각뿐입니다. 존제산은 아래 사진의 군사시설 뒷편 산봉우리이며, 군부대가 주둔하고 있다고 하네요...
존제산(尊帝山, 704m) 은 보성군에서 웅치면 제암산에 이어 두번째 높은 산으로서 해발 300m 이상의 고지가 무려 65㎢나 되어 가장 넓은 산지를 형성하고 있다. 벌교의 진산으로서 남북 이데올로기가 빚어낸 비극의 현장으로 유명한 산이다. 소설 태백산맥 중심무대로 외지에 더 알려진 존제산 자락을 작가 조정래는 그의 소설 "태백산맥"을 통해 "그만 그만한 높이의 산들이 줄기를 뻗고, 그 줄기들이 겹쳐지고 이어지면서 원을 이루어 가고 있다. 그건 산들이 손에 손을 맞잡은 강강술래 춤이거나 어떤 성스러운 것들을 받들어 올리고자 하는 산들의 어깨 동무였다."고 존제산의 산세를 역사적인 사실과 연관지어 풀이하고 있다. (펌)
또 한번 난관에 부딪힙니다. 군사도로 중간에 높은 철문이 굳게 닫혀 있습니다. 혹시 좌우로 우회길을 찾아보지만 이중삼중의 철조망과 가시덤불에 막혀 후퇴... 할수없지요 철문을 넘는 수 밖에... 발을 디딜곳도 마땅치 않지만 '궁하면 통한다'고 괴력(?)을 발휘했지만 다리를 삐긋하여 쥐(근육통)까지 내리는 통에 정말로 혼쭐이 났습니다. 이곳에서 시간을 많이 허비(?)하는 바람에 앞서간 일행들과의 간격은 더욱 벌어져 버렸네요...
철문 좌측으로 올라가면 어렵지만 철조망을 넘을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 하던데 가보지 않았으니 알길이 없네요. 뒤에 따라온 일행들도 대부분 철문을 넘었다고 합니다. 호남정맥 마루금이 이곳을 통과할수 밖에 없다면 정맥꾼들이 군사시설도 보호하면서 무탈하게 경유할 수 있는 대안이 마련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뒤돌아본 존제산과 군부대
[존제산 전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존자산(尊者山)은 보성군의 동쪽 28리에 있다.", "일월사(日月寺)가 존자산(尊子山)에 있다."라고 지명이 등장한다. 『해동지도』(낙안)에 금화산(金華山)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금화산 동편 아래에 징광사(澄光寺)가 표기되어 있다. 산 지명은 고려 충렬왕이 지었다고 전한다. 충렬왕이 남부 지방을 순시하는 길에 광주에 이르러 시종 관원에게 전남의 명산을 물었더니 첫째가 광주 무등산, 둘째가 나주 금성산, 셋째가 고흥 팔영산, 넷째가 보성의 존자산이라고 아뢰자 왕은 존자산보다 존제산이라 부르는 것이 낫겠다고 했다고 한다. 일설에는 이 고장 산수의 조종산 격인 제암산을 잊지 못해 돌아보고 높이 받든다는 뜻에서 그렇게 불러 왔다고도 한다. 이 산 기슭에 있던 일월사에 철로 만든 말이 있었는데, 이 철마의 머리 방향에 있는 마을은 운세가 좋지 않아 흉년이 들거나 질병이 발생한다 하여 각 마을에서는 서로 다투어 철마의 머리 방향을 돌려세워 오다가 마침내는 철마를 산속 깊이 묻어 버렸다는 불교와 연관된 전설이 있다. 산록에 일월사와 징광사라는 큰 사찰이 있었는데 1800년 무렵에 폐사하였다. (네이버 백과사전)
철조망을 지나면 한국통신중계소가 있는 곳까지 군사도로가 계속됩니다...
▼ 한국통신중계소
한국통신중계소 앞에서 또 한번 난관에 부딪힙니다. 출입문은 잠겨있고 도데체 등로가 보이질 않습니다. 주변을 살펴보니 출입문 우측 철조망에 시그널이 하나 보입니다만 도저히 사람이 지나갈수 있는 상황이 아닙니다. 다운 받아온 트랙은 중계소 좌측방향이라고 하는데 등로라기 보다는 키높이의 난잡한 덤불만 가득합니다. 할수없이 무작정 수풀속으로 들어가보니 선답자들의 시그널이 보입니다만 사람이 다닌 흔적은 없고 사람이 다닐수도 없을 정도로 가시덤불과 덩쿨과 관목들이 온몸을 휘감으며 할키고 듭니다. 일수불퇴... 죽기 아니면 까무르치기로 전진합니다. 길을 찾는데 몰두하느라 찍은 사진이 한장 없네요...
▼ 봄에는 이런 모습입니다(펌)
관목과 가시덤불과 덩쿨이 우거져 등로가 아예 보이질 않습니다. 간간이 보이는 시그널을 따라 좌충우돌하며 등로를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 가는 꼴입니다. 지금껏 이런 등로를 다닌 기억이 없네요. 온몸으로 덤불장벽을 뚫고 내려가니 임도를 만나고 한번더 가시덤불의 바다를 헤쳐 내려가면 주릿재입니다.
산행기를 쓰면서 복귀를 해보니, 한국통신중계소 앞에서 좌측의 임도(군사도로)를 따라가면 조금 구불구불하기는 하지만 편하게 주릿재로 내려갈 수 있는데 그때는 그것을 몰랐으니 지독한 고생을 한 셈이지요. 좋게 생각하면 난코스의 정맥길을 지켰다는 자위ㅎㅎ. 지금 다시 하라면 저는 편한 길을 택할 것 같습니다. 이후에 이곳을 지나는 호남정맥꾼들은 선답자들의 산행기와 도상훈련을 충분히 하여 임도(군사도로) 이용을 추천드립니다...
주릿재까지 내려오니 체력이 많이 방전되었습니다. 주릿재는 긴 밧줄을 풀어놓은 것처럼 구불구불한 모양새라고 이름이 붙었으며 한자로는 주로치(周老峙), 주뢰치(周牢峙) 또는 주로치(周路峙)라고도 한다네요. 고개 왼쪽으로는 벌교읍내에서 가장 높은 지대에 위치한 백동(栢洞)마을이 있고, 정상에는 쉬어가는 정자와 조정래 대하소설 ‘태백산맥 문학비’가 세워져 있습니다. 산 정상에 있어야 할 존제산 표지석도 이곳에 세워져 있네요 ^^
▼ 주릿재
시간을 내어 소설 '태백산맥'을 다시 한번 정독해야 겠습니다...
주릿재를 지난 등로는 이제 날머리 석거리재로 향합니다. 남은 구간은 지나온 주월산이나 존제산에 비하여 해발고도가 낮은 산길이지만 결코 만만치가 않습니다. 체력이 떨어진 탓도 있겠지만 이곳도 덩쿨과 잡풀과 잡목이 예사롭지 않거든요...
도중에 58번 지방도를 건너갑니다. 58번 지방도가 석거리재로 이어진다는 확신만 있었다면 아마 그 길을 따라 갔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잘못하면 크게 알바를 할 수 있다는 염려 때문에 트랙을 따라 무거운 발걸음을 다시 숲속으로 옮길수 밖에 없었습니다. 산행기를 쓰면서 지도를 살펴보니 주릿재에서는 895번 지방도와 58번 지방도를 따라오면 이곳으로 연결됩니다. 조금 쉽게 올수도 있었는데ㅉ
▼ 58번 지방도는 요런 모습... (펌)
작은 오르내림이 반복되지만 지친 심신은 큰 산봉우리를 오르고 내리는 기분입니다. 곳곳에 어제 태풍 링링이 할퀴고 지나간 흔적도 보이고...
다시 임도길을 만났습니다. 그냥 쭉~ 임도길이면 좋겠는데 정맥길은 어김없이 우틀합니다. 이곳도 산행기를 쓰면서 지도를 살펴보니 물탱크를 지나 직진하면 구불구불 임도를 따라 석거리재로 연결됩니다. 사전 충분한 도상훈련과 등로에 대한 이해가 심신의 고통을 줄여줄 수 사실을 간과하면 안되겠습니다ㅎ. 일행중 후미 일부는 현명하게(?) 임도길을 따랐다고 하네요 ㅋ...
진행방향으로 보이는 백이산이 하늘처럼 높아 보입니다. 오늘 날머리가 석거리재라는 것이 정말 다행입니다. 원래 땜빵해야할 구간은 석거리재에서 백이산을 넘어 빈계재까지인데 오늘 날머리는 석거리재거든요. 만약 오늘 백이산을 넘어야 했다면 아마 KO패 당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 진행방향으로 바라본 백이산
코앞으로 다가온 석거리재를 앞두고 정맥길은 다시한번 인내심을 테스트 합니다. 동네뒷산 같은 곳에서 가시덤불과 잡목과 잡풀로 뒤덮혀 보이지 않는 등로를 찾아 짐승처럼 허우적거립니다. 덕분에(?) 등산복도 많이 헤졌고 온몸에는 등산복을 뚤고 들어온 나뭇가지와 가시에 긁힌 상처가 가득합니다. 누가 보면 심하게 학대를 당한 모습이라고 오해할 정도로...ㅎ
▼ 초겨울의 등로 모습 (펌)
후퇴 할수도 없고 우회길도 보이질 않으니 전진 밖에는 달리 대안이 없습니다. 설상가상으로 비가 다시 내리기 시작합니다. 마음은 급한데 몸이 따라주질 않고...
▼ 석거리재 부근의 15번 국도
저 밑에 기다리고 있는 버스가 보입니다만 마지막을 앞두고 다시 혼쭐이 납니다. 시그널을 따라 갔더니 철조망에 가로막혀 왔다갔다 한참을 우왕좌왕했네요. 할수없이 우측으로 우회하니 석거리재 휴게소 앞으로 연결되더군요...
석거리재는 원래 '섶거리재'로 이 고개에 섶나무가 많았던 데서 유래하였다는 설이 있으며, 섶거리재를 한자화해 신거치(薪巨峙), 혹은 신치(薪峙)가 된 것으로 보인답니다. 또한 존제산 부근은 불교와 연관된 지명이 많은데 지나온 천치고개와 석거리재(승려들이 모여 문장을 자랑하던 곳) 등이 이에 해당한답니다...
▼ 석거리재
산의 형세가 험해서가 아니라 빨래판 구간과 덤불구간 등 난코스가 많은 호남정맥이지만 오늘이 가장 어려웠던 것 같습니다. 계절적으로 지금이 덤불과 가시덩쿨 그리고 수풀이 가장 무성한 시기라 딱히 대안도 마땅치 않습니다. 사전에 도상연습을 많이 하여 우회길을 터득하거나 초겨울~초봄 기간을 택하는 것이 최선이지 않을까 싶네요...
석거리재 논두렁 도랑에서 땀과 비와 습한공기에 흠뻑 젖은 몸을 대충 씻고 시원한 맥주 한잔으로 오늘의 고난을 털어냅니다. 뒷풀이는 벌교 우렁집에서... 뒷풀이 내내 오늘 구간에 대한 評이 화두입니다. 특히 존제산 부근 난코스를 통과한 에피소드와 영웅담(?)이 재미있게 회자됩니다. 일행중 OO님은 존제산에서 군부대의 신고를 받고 달려온 경찰에게 잡혀 편하게(^^) 군용차를 타고 석거리재까지 왔다는 이야기는 두고두고 추억거리가 될 것 같습니다. ㅎㅎ
힘든 하루였습니다. 태풍뒤의 후덥지근한 날씨도 그렇고 등로 꼬라지(^^;;)도 그렇고... 체력훈련 강화라는 숙제가 추가되었고 자신하지 말고 도상훈련을 충실히 해야한다는 교훈도 얻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