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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행(萬行) 길 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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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허집(鏡虛集) (26) ]
20231113
스물여섯 번째 이야기
수행을 처음 접하시거나 초보자분들을 위해서 한 말씀 올리자면 경허선사라는 분은 1849년에 태어나서 1912년에 돌아가신 분인데요.
쉽게 말하면 경허선사라는 분은 참선수행을 해서 깨달음으로 이르는 길을 다시 여신 분이라고 보시면 된답니다.
그동안 우리 불교가 조선이 들어서면서 무학대사를 이어 잠깐 서산대사와 사명대사를 기점으로 이후로는 거의 선지식인들의 법맥이 끊겨있다가 경허선사라는 분이 나와서 다시 그 선맥을 이으신 분이라고 보시면 되는데요.
불자들은 경허선사를 모르시는 분들이 거의 없지만 카톡으로 이 글을 받아보시는 분들 대부분은 저의 지인들인 경우가 많고 불자들이 아닌 분들이 많아서 모르시는 분들도 계실 줄 아는데요.
쉽게 말하면 경허선사라는 분은 가요계에 이미자라고 보시면 된답니다.
저의 이 글은 대부분이 초보자분들을 위주로 설명하고 있기 때문에 가급적이면 요즘 표현으로 설명하려고 노력 중인데요.
그러다 보니 때로는 설명이 길어질 때가 많답니다.^^
아무쪼록 제 바람은 많은 일반 사람들이 이 법을 깨닫고 이어나갔으면 하는 바람인데요.
경허선사 이후로 잠깐 그의 제자들이 선풍을 일으키긴 했지만 지금은 거의 그 맥이 다시 끊기고 있
는 실정이랍니다.
이럴 바에는 차라리 이 선맥이 일반 사람들에게 널리 전파되어 좀 더 고급스럽고 새롭게 태어났으면 하는 바람이 저의 바람인데요.
아무쪼록 이것은 여러분들이 상상하는 그 이상의 가치가 있으니 꼭 열심히 따라 해 보셔서 모두가 이 맛을 보시기 바랍니다. ♡
저 같은 농땡이도 하고 있는 이것을 여러분들이 못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답니다.
다른 것은 다 필요 없고요 이렇게 해보십시오.
[현재 이 순간 의식이 깨어서 생활해 보십시오.]
[또는 현재 이 순간 나를 알아차려 보세요.]
[그리고 내 마음을 자주자주 보세요.]
[그리고 들고 있는 내 마음을 알아차리고 내려놓고 버리려고 노력해 보세요.]
★ 수행이란 내 마음을 보는 거랍니다.
그러면 처음에는 모르고 하게 되지만 나중에는 아주 신기한 일들이 벌어진답니다.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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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 이 글은 경허선사의 제자 만공스님의 부탁으로 만해 한용운 스님이 경허선사의 글들을 옮겨 적으신 건데요. 옛 분들의 표현들이라 가급적이면 띄어쓰기나 받침 등이 지금과 다른 글자가 간혹 있는데요. 그러나 수정하지 않고 그대로 글을 옮겼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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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허집 본문 내용》
홍주(洪州)가 이르기를 "착한 것도 마음이라 마음을 가지고 마음을 닦지 못하며 악함도 마음이라 마음을 갖고 마음을 끊지 못한다." 하였으며, 우두선사(牛頭禪師)가 이르기를 "마음에는 다른 마음이 없으므로 탐욕과 음욕을 끊을 게 없기 때문에 선지식의 목우행(牧牛行)의 81 가지가 있으니 불행(佛行/부처의 행) 범행(梵行/맑고 깨끗한 행실.)으로부터 살생, 도둑질, 음행, 음주 등이 있어도 도의 눈이 분명하면 또한 걸릴 바가 없다." 하였다.
그래서 위산선사(潙山禪師)가 이르기를 "다만 너의 눈이 바름만 귀하게 여기고 행동거지는 귀하게 여기지 않노라" 하였으니 이 법문이 삼승(三乘)을 널리 배우는 일들을 멀리 벗어나서 실로 불가사의하도다. (27 ~ 2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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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어 풀이)
★ 홍주(洪州) 인물 자료
(아래의 링크를 복사 또는 누르세요..)
http://chonghwajong.org/?page_id=43
★ 우두선사(牛頭禪師) 인물 자료
(아래의 링크를 복사 또는 누르세요..)
https://m.blog.naver.com/ldh5111/223114340387
★ 목우행(牧牛行) 뜻
목우행이란 고려 지눌 스님의 수심결(修心訣)에 있는 내용인데요.
목우행(牧牛行)을 한문 그대로 해석하면 [소를 기르니는 행위] 란 뜻인데요.
이 말은 불교에서는 십우도(十牛圖)처럼 본성(불성/성령)을 소(牛)로 비유를 많이 하고 있는데요.
쉽게 말해 목우행(牧牛行)이란 깨닫고 증득한 후에도 계속해서 마음(소)을 바라보면서 하는 후 공부를 뜻하는 내용이랍니다.
★ 위산선사(潙山禪師) 인물
위산영우(潙山靈祐, 771-853)는 중국의 당나라 시대에 천오백 대중을 지도하는 총림(叢林)의 방장(方丈)이셨다고 하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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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이뭣고]의 곁가지 김태현입니다.😄
한 주일 잘 보내셨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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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해설)
오늘 내용도 전편과 같은 내용인데요.
지금까지 경허 선사께서는 자신의 마음 이야기를 아주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계시는 건데요.
아시는 분들은 잘 아시겠지만 지금 같은 이야기들은 경허 선사가 깨닫고 나서 자신의 삶을 이야기하고 있는 거라고 보시면 된답니다.
왜냐하면 경허선사의 자료를 찾아보면 원효스님처럼 누가 뭐라 하든 자신의 삶을 거침없이 사셨던 분이라고 정평이 난 분이라 그런 건데요.
제 경우는 지금 경허선사가 왜 이런 말씀들을 하고 계시는지 잘 이해를 하고 있지만 일반 사람들은 이런 내용들이 이해가 잘 안 가실 것 같은데요?
왜냐하면 자칫 잘못 들으면 깨닫고 증득한 사람들은
"살생, 도둑질, 음행, 음주 등을 해도 되느냐?"
라는 내용으로 이해를 하실 수가 있기 때문인데요?
그래서 오늘은 본문 내용을 설명드리기 전에 먼저 부연 설명을 드리고 본문 내용을 설명해 보겠습니다.^^
일반 사람들은 "어떻게 깨닫고 증득한 사람들이 살생이나 음주 등을 할 수 있느냐?"라는 말을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견성성불을 한 사람들이 도둑질을 하고 음행을 해도 마음에 걸리는 바가 없을 수 있겠느냐?고 하실 수도 있고요.
그래서 저도 이러한 내용들이 나오면 가급적이면 말을 아끼는 편인데요.
왜냐하면 일반 사람들은 자칫 잘못 들으면 엉뚱한 방향으로 분별을 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제가 아무리 이야기를 잘 해도 일반 사람들은 자신들이 그동안 가지고 있는 옳고 그름 등의 기준(깃대/印)들이 마음에 각인(刻印) 되어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왜냐하면 본성에는 이러한 기준들이 없는데 반해 일반 사람들의 마음에는 "옳다, 그르다" "그렇다, 아니다" 같은 자신들 만이 가지고 있는 기준점들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스님들이 술만 먹어도 "에이...?" 하는 것이고요.
자신들의 기준에는 '스님들은 술을 먹으면 안 된다'라는 도덕적인 기준들이 이미 마음에 정해져 있기 때문에 이 기준에 맞으면 '좋은 스님' 안 맞으면 '나쁜 스님' 하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일반 사람들이 아셔야 할 것은 중생의 마음과 본성의 마음은 완전히 다르다는 것인데요.
"깨닫고 증득했다"라는 것은 내 마음을 내 마음대로 쓸 줄 안다는 것을 뜻한답니다.
여기에는 악한 마음도 포함이 되고요.
무슨 말이냐 하면 예를 들어 일반 사람들은 자신이 통제가 안 되는 상태에서 화를 낸다면 깨닫고 증득한 사람들은 때에 따라서는 서산대사처럼 화가 안 일어나더라도 일부러 화를 일어나게 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본성의 마음에는 선하고 악한 마음이 따로 없기 때문입니다.
깨닫고 증득한 사람들의 마음에는 그런 기준(깃대/각인)이 없답니다.
그렇다고 자기 마음대로 마음을 쓴다는 것이 아니고 본성에서 쓰는 마음이 따로 있답니다.
그리고 이러한 것들을 알아차릴 줄 알아야 깨달았다 하는 것이고요.
자신이 지금 중생의 마음을 쓰고 있는지 본성의 마음을 쓰고 있는지도 못 알아차리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고요.
그런데 오늘 내용의 핵심은 이런 것이랍니다.
예를 들어 깨닫고 증득한 사람의 마음은 평시에 엄청 고요하고 평온한데요.
그런데 문제는 매일 절 안에서만 생활을 하고 해주는 밥만 먹고 제자들에게 존경만 받는다면 누구나 마음이 편하고 걱정거리가 없을 수 있겠지요?
그래서 세상 밖으로 나가서도 내 마음이 온전한지 확인을 해보는 것인데요.
이것을 만 가지의 경험을 통해 내 마음 상태를 본다고 해서 만행(萬行)길을 떠난다고 하는 거랍니다.
그리고 이런 만행길에는 술집은 물론이고 사창가도 가보고 노름도 해보고 싸움도 해보고 살생도 해 보면서 내 마음이 그쪽으로 끌려들어 가지는 않는지 어떤지 등을 관찰해 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수행들은 대부분 밀교(密敎)에서 행해지고 있는데요.
그러나 이런 수행들은 어디까지나 깨닫고 증득한 수행자들이나 하는 것이지 일반 수행자들이 했다간 큰일이 날수 있답니다.
쉽게 말하면 깨닫고 증득한 사람들이 편한 곳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불타는 곳에 나 자신을 던져보는 것입니다.
거기서도 내 마음에 변화가 없는지를 보는 것이지요.
오늘 경허스님 말씀도 이런 것이고요.
이런 것을 모르고 깨달았다고 하는 경허가 술이나 먹고 더군다나 파계를 하고 함경도로 가서(?) 아이들에게 글이나 가르치고 있으니 당시에 제자들이나 다른 스님들이 경허선사를 어떻게 봤겠어요?
기록에는 자세한 내용은 없지만 다른 스님들은 물론 제자들 하고도 특히 만공도 이런 스승(경허)을 의심하고 있었답니다.
어떻게 스스님이 저런 짓들을 하고 있느냐 이거지요?
여기에 대한 자신의 마음을 글로 담은 것이 오늘 같은 내용이랍니다.
아무튼 깨닫고 증득한 사람들의 마음은 일반 사람들과의 마음과는 완전히 다르답니다.
어떻게 다르냐 하면..
깨닫고 증득한 사람들은 무슨 짓을 해도 괜찮다는 얘기가 아니라 어떤 것을 해도 마음에 걸림이 없다는 것입니다.
술과 고기를 먹어도 그냥 먹을 뿐이지 술과 고기에 집착을 하거나 애착을 하거나 욕심을 내거나 "먹어도 되니? 안 되니?" 하는 등의 그 어떠한 마음에 갈등이나 걸림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런 기준(깃대/각인)들이 마음에 없다는 것입니다.
부처님도 쭌다가 끓여준 상한 돼지고기 스프를 드시다가 식중독으로 돌아가셨지만 뭐를 먹던 그것은 중생들의 마음의 기준이지 깨닫고 증득한 사람들의 기준이 아니랍니다.
쉽게 말하면 육체는 육체, 마음은 마음이라는 뜻입니다.
불교식으로 말하면 모든 만법은 고정된 바가 없기 때문에(無常) 그렇습니다.
쉽게 말하면 깨닫고 증득한 사람들의 마음은 [정해진 것이 없다]는 뜻입니다.
깨닫고 증득한 사람들의 마음은 성문사과(聲聞四果)에 따라 다소 차이는 있지만 거의가 공(空) 또는 무(無)라고 보시면 된답니다.
깨닫고 증득한 사람들의 마음은 그냥 텅 비어있다고 보시면 된답니다.
물론 깨닫고 증득한 사람들도 세상을 살아가면서 다투고 따지고 때로는 싸우기도 하고 심지어는 서산대사처럼 살생을 하는 경우도 있답니다.
그러나 같은 행동을 하더라도 일반 사람들과 다른 점은 일체 마음의 변화나 동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이대로 두면 많은 사람들의 마음이 다치겠다?" 싶으면,
본성의 마음이 자동으로 작용(지혜)을 하게 되는데요?
전혀 마음에서 화가 안 일어나더라도 서산대사나 사명대사처럼 얼마든지 다투고 따지고 싸울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불교에는 자비만 있는 것이 아니랍니다.
대표적인 예가 사찰 입구에 가면 대문 양쪽에 칼과 도끼 같은 것들을 들고 어마 무시한 모습으로 서있는 신장(神將)이나 야차(夜叉)의 마음도 있다는 것입니다.
기독교의 성경에는 한 도시를 완전히 불태워 없애버리는 경우도 있고요.
무슨 말이냐 하면 때에 따라서는 깨닫고 증득한 사람들의 마음은 그 어떠한 마음을 쓰더라도 걸림이 없다는 뜻입니다.
화가 전혀 안 일어나는 상태에서도 얼마든지 큰 소리를 칠 수도 있고 서산대사처럼 호령을 하면서 중생들 마음을 고단하게 하는 (넘?)들을 살생을 하는 경우도 있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일반 사람들보다 더 엄청 무서울 수도 있답니다.
왜냐하면 깨닫고 증득한 사람들의 마음은 생(生)과 사(死)가 없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은 경허선사나 서산대사나 사명대사처럼 혼만 내주고 끝까지 밀어붙이는 경우는 거의 없지만 말입니다.^^
오늘 경허선사의 말씀은 일반 사람들이 하는 모든 것들을 하되 깨달은 사람들은 그냥 할 뿐이지 마음에 담아두거나, 집착하거나, 걱정하거나, 고민하거나, 두려워하는 등의 마음을 가지고 있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그냥 현재 이 순간에 할 뿐이지 그 어떠한 것도 마음에 영향을 주는 일은 없다는 것입니다.
깨닫고 증득한 사람들의 마음에는 옳고 그르다는 그 어떠한 기준점도 없기 때문입니다.
깨닫고 증득한 사람들의 마음은 그냥 본성에 따라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라고 보시면 된답니다.
일반 사람들은 내 마음의 반응에 따라 화도 내고, 흥분도 하고, 즐거워도 하지만,
깨닫고 증득한 사람들의 마음은 본성의 마음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참으로 이것이 말로는 어떻게 설명을 드릴 수가 없는 그런 것인데요?
오죽하면 부처님도..
천상천하유아독존(天下唯我獨尊)이라 했을까요?
그만큼 본성 자리의 마음은 자유롭다는 뜻입니다.
그렇다고 망나니처럼 막 한다는 것이 아니고요.^^
이런 내용을 아시고 오늘 경허선사의 말씀을 보시면 좋을 것 같은데요? ^^
언제 기회가 있으면 본성을 깨닫고 증득을 하게 되면 마음이 어떻게 바뀌고? 그 순간의 느낌이나 기분은 어떤지? 등에 대해 말씀드릴 기회가 있을 거라 보는데요?
아무튼 그렇답니다.^^~
그럼 오늘 본문 내용을 같이 보실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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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주(洪州)가 이르기를 "착한 것도 마음이라 마음을 가지고 마음을 닦지 못하며 악함도 마음이라 마음을 갖고 마음을 끊지 못한다." 하였으며,]
이 말은 깨닫고 증득한 사람들의 마음에는 착한 것도 악한 것도 없다는 뜻입니다.
왜냐하면 본성(불성/성령)의 마음에는 그 어떠한 것도 없기 때문입니다.
다만 그때그때 인연에 따라 본성의 마음은 알아차리고 반응을 할 뿐이지요.
무슨 말이냐 하면 일반 사람들은 아직 팔정도(八正道)가 안 되어 있기 때문에 '바르게 보고' '바르게 생각' 하는 능력이 아직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불쌍하다고 마음이 끌려서 착한 일이라고 해서 했는데 상대나 나에게 더 나쁜 영향을 주는 경우도 많고
나쁜 일이라고 했는데 오히려 나중에 보면 더 좋아지는 경우도 많기 때문입니다.
아직은 자신이나 상대의 전생들을 보지를 못하기 때문에 상대가 왜 지금 저렇게 어려움에 처해 있는지를 모르기 때문에 도와줘서 좋은 것이 있고 더 안 좋은 결과를 가져오는 경우도 허다하다는 것을 일반 사람들은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전생에 큰 죄를 짓고 현생에서 과보를 받고 있는 상대를 불쌍하다고 무조건 구해준다면 상대는 더 큰 곤경에 처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것입니다.
이 법은 마음 법이기 때문에 상대가 어려운 곤경에 처했을 때 자신을 돌아보면서 반성을 하고 있을 때 그때에나 조금씩 도와줘야지 무조건 불쌍하다고 도와줘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다만 먹을 것, 입을 것, 잘 곳 정도는 도와줄 수는 있어도 그것도 어디까지나 죗값을 제대로 치르고 있을 때에나 얘기이지 죗값을 치르고 있으면서도 아직도 자기가 잘 났다고 뻗대고 있는 상태에서 도와주면 오히려 더 큰 곤경에 처하도록 밀어 넣는 것과 같다는 뜻입니다.
그러자면 상대의 전생부터 지금까지의 행적을 알아차려야 하는데 일반 사람들은 이러한 것을 전혀 모른다는 것입니다.
이 내용은 길 잃은 아들 이야기에서도 자세히 표현되어 있는 내용인데요.
거기서도 보면 길 잃은 아들도 부자인 자기 아버지를 만나고도 못 알아차리고 발버둥을 치면서 뻗대지 않던가요?
이때 아버지는 어떻게 하던가요?
혹시나 또 겁을 먹고 먼 곳으로 떠날까 봐 하인들에게 "내가 그 사람(아들)을 쓰지 않을 것이니 그 사람을 자유롭게 그대로 내버려 두라" 하지 않던가요?
이 내용은 자식이 남루하고 불쌍하다고 무조건 막 도와줬다간 멀리 도망갈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또 먼 곳으로 떠나면 그만큼 불종자를 끊게 되기 때문입니다.
아이가 운다고 해서 안됐다고 해서 아이가 좋아하는 사탕으로 달랜다면 그 당시는 울음을 잠깐 그칠지는 몰라도 다음 생에 또 울어댈 것이 뻔한데 그때는 또 어떻게 하겠습니까?
지금 아이가 고통스려워서 울고 있다면 그의 전생에서의 원인을 알고 뿌리체 뽑아줘야 하는데 이것이 일반사람들은 어렵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뿌리째 뽑는 것도 다 때가 있기 때문에 한참 아이의 마음이 곪아 터져서 스스로 그 고통을 뱉어낼 때까지는 부모의 마음으로 안타깝지만 지켜봐 줄 줄도 알아야 훌륭한 스승이라 하는 것이고요.
그래서 일반 사람들은 이러한 이치를 구분하지 못하기 때문에 이런데 신경 쓰기보다는 가장 쉬운 자신의 마음부터 돌보라 하는 것입니다.
그래도 자기 마음은 의지만 있으면 쉽게 볼 수가 있잖아요?
자기 마음도 제대로 보지를 못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남의 마음들까지 돌보려 하느냐 이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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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또
[우두선사(牛頭禪師)가 이르기를 "마음에는 다른 마음이 없으므로 탐욕과 음욕을 끊을게 없기 때문에 선지식의 목우행(牧牛行)의 81 가지가 있으니 불행(佛行/부처의 행) 범행(梵行/맑고 깨끗한 행실.)으로부터 살생, 도둑질, 음행, 음주 등이 있어도 도의 눈이 분명하면 또한 걸릴 바가 없다." 하였다.]
이 내용은 일반 사람들의 내용이 아니라 경허스님처럼 최소한 깨달은 사람들에게 하는 내용인데요.
이 내용은 지금은 경허 자신에게 하는 말이기도 하답니다.
경허 자신은 지금 이미 마음을 비운 상태이기 때문에..
"다른 마음이 없으므로 탐욕과 음욕을 끊을 게 없기 때문에 선지식이 수행하는 목우행(牧牛行)의 81 가지가 있으니 그것을 해야 할 때"라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불행(佛行/부처의 행) 범행(梵行/맑고 깨끗한 행실.)으로부터 살생, 도둑질, 음행, 음주 등을 해 봄(만행/萬行)으로 해서 도의 눈이 분명한지? 즉 마음이 온전한지? 마음에 걸리는 바가 없는지? 등을 보고 싶다는 뜻이랍니다.
살생을 한다고 해서, 도둑질을 한다고 해서, 음행을 한다고 해서, 술을 먹는다고 해서 진짜로 사람을 죽이고 큰 도둑질을 한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그러한 곳에 내던져 봄으로 해서 자신의 마음을 스스로 점검해 보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만행(萬行) 길인 것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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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위산선사(潙山禪師)가 이르기를 "다만 너의 눈이 바름만 귀하게 여기고 행동거지는 귀하게 여기지 않노라" 하였으니 이 법문이 삼승(三乘)을 널리 배우는 일들을 멀리 벗어나서 실로 불가사의하도다.]
라고 말씀을 하신 건데요. ^^
이 말은 당시에 제자들과 경허를 아는 사람들에게 하는 말이랍니다.
"다만 너의(제자들과 그 외에 사람들에게..) 눈이 바르다 하는 것만 귀하게 여기고 내가 어떻게 하는지에 대한 본성(불성)의 행동거지는 귀하게 여기지를 않으니.. 이 법문이 삼승(三乘)을 널리 배우는 이들에게 멀리 벗어나 있다"라는 뜻이랍니다.
(※) 쉽게 말하면 너희 눈에는 나의 행실이 옳고 그른 것만 보이지? 나의 본성이 행하고자 하는 삼승의 법문은 못 보고 있다는 뜻입니다.
지금 사람들도 경허가 파계를 하고 누구(?)와 함경도로 간 것을 두고 이렇다 저렇다 하시는 분들이 많으신데요?
오늘 내용만 보더라도 경허라는 사람이 얼마나 수행(후 공부)에 대한 열정이 처절했는지를 저는 그의 마음을 엿볼 수 있었는데요.
여러분들은 어떠셨나요..???
불성을 깨닫기 전에는 열심히 부처님 말씀을 따라 하면서 깨닫고 증득을 하셔야 한답니다.
그러나 깨닫고 나서는 경허스님처럼 부처를 버리셔야 한답니다.
깨닫고 나서도 부처님 부처님 하는 것은 마치 장가간 어른이 자식들을(제자들을) 앞에 두고도 엄마 젖을 입에 물고 있는 거나 같은 것이랍니다.
깨달았으면 즉 장가를 가서 일가(一家)를 이루었으면 경허선사의 말씀처럼 자기 살림을 일구어야지 하지 않을까요?
오늘 내용의 목우행(牧牛行/마음을 키우는..) 가르침처럼 말이지요?
깨닫고 나서도 장가를 가서 일가를 이루었으면 자기 밥벌이 정도는 자기가 알아서 해야지 아직도 본가(本家)에 가서 부모에게 쌀 달라, 돈 달라 해서야 되겠느냐? 이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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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이 글은 경허선사가 스님으로 있을 때 쓴 글이 아니고 파계를 하고 함경도에 있을 때 이집 저집을 다니면서 식사와 약주 한 잔씩 하시면서 답례로 적어준 글들을 어느 거사가 사 모아 둔 것을 다행히 만공에게 소개되어 만해 한용운에게 부탁을 해서 책으로 만든 것이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경허집]인데요.
이렇게 우리 불자들의 옛 어른들은 어떡해서라도 후대 사람들에게 이 법을 잘 전해 주려고 노력을 많이 하셨답니다.
문제는 지금 사람들이 제대로 알고 안 해서 문제이지요.
이런 노력과 성의를 봐서라도 우리들도 열심히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저의 마음이기도 한데요?
아무튼 그렇답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우리 모두 열심히 해서 우리도 경허선사처럼 멋지게 견성성불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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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동영상 내용들도 같은 뜻이랍니다. 😄🙏
(아래의 링크를 복사 또는 누르세요..)
제목 : 고승열전 경허대선사 7편 -'마음에서 버리다'
https://youtu.be/oe0QZrlGuFg?si=GD4ANZaXaIHsNzK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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