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사카는 일본열도의 거의 중앙에 위치하고 있다. 면적은 1,894㎢로 전국토의 0.5%에 불과하며 도도부현 (都道府縣) 중 2번째로 작지만 인구는 880만여명으로 전인구의 7%를 차지한다. 도쿄도(東京都), 가나가와현(都道府縣)에 이어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다. 또한 오사카에는 전국의 10.5%에 이르는 21만여명의 외국인이 거주하고 있다. 지리적으로는 남북으로 긴 형태며 북, 동, 남쪽은 산, 서쪽은 오사카항과 면하고 있다. 엔터테인먼트, 쇼핑, 박물관, 미술관과 같은 문화시설 등 모든 부분에서 관심을 모으는 오사카. 지난날의 모습을 현대로 전하는 근대건축, 옛 정취를 느낄 수 있는 역사적인 거리모습, 가까운 미래를 예감케 하는 디자인의 건조물 등 새 것과 옛 것을 융합시킨 오사카만의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활기찬 오사카 거리에서 쇼핑은 물론 독특한 오사카만의 먹거리를 즐기는 것도 좋다.
오사카의 관광명소
북쪽 지역 우메다(梅田) 주변 철도와 지하철 터미널역이 모인 북쪽. 우메다역과 주변에 들어선 백화점, 쇼핑센터, 가전제품 판매점 등이 지하철과 직접 연결되어 있으며, 패션, 전화제품 등 다양한 쇼핑을 즐길 수 있는 대형 쇼핑 지역이다.
남쪽 지역 난바, 신사이바시, 도톤보리 주변 오사카 최대의 번화가인 신사이바시, 미국마을, 유럽마을을 비롯하여 도톤보리(道頓堀), 센이치마에(千日前), 소에몬초(宗右衛門町) 같은 음식점 등이 오사카의 매력을 한층 더한다. 변화무쌍한 거리는 물론 호젠지요코초와 구로몬 시장 등 옛 모습도 건재하다. 신구를 함께 즐길 수 있는 남쪽 지역은 언제나 내국인과 외국인으로 붐비는 오사카의 상징이다.
항만 지역 오사카에서도 손꼽히는 어뮤즈먼트 관광지. 헐리우드의 영화 세계를 즐길 수 있는 테마파크‘유니버설 스튜디오 재팬’을 비롯하여 세계 최대급 수족관‘가이유칸(海遊館)’과 박물관, 쇼핑센터 등 스케일은 물론 만족감도 크다.
오사카성(大阪城) 주변 오사카의 상징인 오사카성 주변은 광대한 대지에 우뚝 솟아있는 덴슈가쿠(天守閣)와 거대한 돌담, 실록이 우거진 공원 등 풍요로운 오사카의 역사문화를 탐색하기에 더할 나위없이 좋다. 오사카성에서 오사카 비즈니스 파크 를 지나 교바시(京橋)로 가다 보면 서민적인 인정을 느낄 수 있다.
쓰루바시(鶴橋) 본고장의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한국시장 쓰루바시. 한국색 짙은 잡화, 패션 등이 진열되어 있으며 불고기, 김치, 나물의 맛에 이끌린 사람들로 언제나 붐빈다.
시텐노지(四天王寺) 주변 북쪽과 남쪽에 이어 제3 터미널 시텐노지 지역에서 가까운 신세계에는 에펠탑을 모티브로 설계된 오사카의 명물 쓰텐가쿠(通天閣)를 비롯하여, 구시가쓰(꼬치튀김), 서서 술을 마시는 가게, 바둑, 스마트볼(영업용 실내탁구의 하나) 등 서민적인 문화로 가득하다. 천연 온천을 이용한 슈퍼 어뮤즈먼트 ‘슈퍼월드 세계의 대온천’도 빼놓을 수 없다.
호쿠세쓰, 기타가와치(北河內) 1970년에 개최된 오사카 Expo의 상징인‘태양탑’이 있는 Expo기념공원과 자연의 예지에 무심결에 숨을 죽이게 되는 미노오타키의 자연경관을 살린 온천숙박지 등 풍요로운 자연환경 속에서 휴식을 취할 수 있다.
히가시오사카(東大阪), 추가와치(中河內), 미나미가와치(南河內) 오사카부(大阪府) 남북의 중앙부에 위치하며 넓은 레크레이션 시설이 많다. 기념관과 박물관 같은 문화시설도 충실하며 고분이나 고사찰 등 오사카의 문화재 보고다.
센보쿠(泉北), 센난(泉南) 오사카부의 남단에 위치하며 항만의 멋을 즐길 수 있다. 교외에 위치한 대형 쇼핑몰도 있어 주목을 모은다. 오사카의 현관인 간사이국제공항에서 가장 가까운 곳이다.
오사카부와 조선통신사
일본의 에도시대, 조선에서 온 통신사는 에도(도쿄)로 가기 위해 부산에서 타고 온 외양선을 내려 통신사도 감탄한 호화로운 장식이 달린 대형 나룻배로 갈아 타고 교토로 향했는데, 이를 위해 반드시 1주일 정도는 오사카에 머물렀다. 당시 오사카는 일본 제1의 경제도시로서 그 발전상에 통신사 일행도 일제히 놀랐다도 한다.
통신사가 머물던 곳은 주로 추오쿠에 있는 사원이나 기타미도(北御堂)였으며 체재 중에는 오사카의 문인이나 서민 등과 다양한 교류가 이루어졌다. 1719년 제술관으로서 통신사에 참여한 신유한은‘해유록’에 숙박지로 달려온 사람들이 다른 도시보다 많았으며 새벽녘까지 잠들지 않던 때도 있었다고 적고 있다. 오사카인들이 통신사 일행을 크게 환영하는 모습을 떠올릴 수 있다.
니시쿠의 치쿠린지(竹林寺)에는 1764년 통신사로 왔던 김한중의 묘석이 있다. 김한중은 항해중 중병이 들자 오사카에 도착하여 의사의 치료를 받았지만 약효가 듣지 않아 치쿠린지에서 타계했다. 병상의 김한중이 본국에 남겨둔 두 명의 자녀를 그리워하자 일본측에서는 이를 위로하기 위해 닮은 아이들을 불러와 만나게도 했지만 보람이 없었다. 불과 22살에 타계한 김한중의 죽음을 애석하게 생각한 치쿠린지의 주지는 100만번의 염불을 외웠다고 한다. 슬픈 이야기지만 이처럼 오사카인들은 진심으로 통신사 일행을 맞이했다.
오사카는 통신사와 진심어린 교류를 나누던 곳으로서 이러한 역사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꼭 한번 오사카인들과의 만남을 체험하기 위해 방문해 보시기 바란다.
제공처 : 다음일본유학생모임 http://cafe.daum.net/kojabad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