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은 시가 되고, 시는 별이 되고 -김기수 첫 시집 《별은 시가 되고 시는 별이 되고》 서문
蘭亭주영숙
김기수 시인, 하면 ‘백산’이라는 호와 잘 어울리는 그의 흰 머리칼, 그리고 별이 함께 떠오르곤 하였는데, 아니나 다를까, 기어이 ‘별’일을 저지르는군요. 언뜻 너무 평범한 제목이 아닌가도 싶지만, 사실은 새길수록 충격의 파장이 이는 별은 시가 되고, 시는 별이 되고 ……. 시인은 모든 종류의 개념과 표현을 의식적으로 사용하게 됩니다. 자연현상들에 대한 관찰을 진술해야 하니까요. 그러고 보면 시인은 생동하는 의미를 생동하는 표현으로 붙들어 표출함으로써 독자에게 만족스러운 결과를 전해줄 임무가 있지 않은가 싶은데요. 그러기 위한 일차적인 극복과정이 형상화작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시 창작에 임하는 진정한 자세는 가장 단순한 현상을 기본으로 삼고 거기서부터 파생되는 다양한 현상들을 이끌어내고 전개시킴일 겁니다. 그러나 살아있고 살아있다고 표현되어야 할 대상물들은 우리가 흔히 쓰는 상투어들에 의하여 의미 없는 그 무엇이 되어버리기 일쑤입니다. 그런데 자기가 만들어 낸 익사 직전의 그 표현어를 되살려낸다 하고 좀 더 섬세한 도덕적인 용어를 구사하였다면, 그것은 그저 단순한 비유로만 그쳐 말장난의 영역으로 떨어지는 불상사가 도래합니다. 아무도 기억하지 못할, 기억하고 싶지 않을 문장이 되어버릴 테니까요. 하지만 기호를 사물 쪽으로 갖다 붙이지 않고 생동하는 본질을 말(시)로써 살려놓는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게 쉽다면 누구나 시인이게요? 김기수 시인을 만나면 문득, “누구나 시인이 될 수 있다”라는 말에 반기를 들고 싶어집니다. 틈날 때마다 별의 탄생과 별의 성장과 별의 소멸에 대한 갖가지 모티브로 카페를 장식하는, 이러한 자세의 별 마니아야말로 천상시인의 운명을 타고났다고 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꼬리별 떨어지는 새벽녘 차가운 바람이 달력 한 장 넘긴다 살갗 한 겹이 시끄럽다
-<동박새 봄을 쪼다> 도입부
그날도 별을 사랑하느라 새벽녘까지 잠을 설치던 시인은 기어이 꼬리별 떨어지는 광경까지 목격합니다. 게다가 시인은 꼬리별이 떨어지면서 시작되었을 법한 차가운 바람이 달력 한 장을 넘기는 순간까지 포착합니다. 꼬리별 떨어짐의 서술은 단순히 풍경재현이고 진술이며 구상이되, ‘차가운 바람이 달력 한 장을 넘긴다’라고 한 장면묘사는 단순히 계절, 혹은 한 달이라는 시간 경계의 동선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차가운 바람이 달력 한 장을 넘긴다’는 사실 관념적 묘사로써, 상상의 산물이고 추상적 표현입니다. 그러므로 시 창작의 비결이 “구상+추상=형상화”라는 견해로 볼 때 이 도입부는 매우 바람직한 시도라는 평가를 획득할 수 있습니다. ‘형상화’는 시작詩作에서나 회화繪畵에서나 필연적 기법에 해당합니다. 따라서 문학작품이든 미술작품이든, 그 작품을 완전히, 또는 제대로 읽어내려면 장르 구분한 ‘문학적으로만 인식하기, 미술적으로만 인식하기’ 방법으로서는 해석이 불완전하기 마련이죠. 반면에 그림을 시처럼 그려 보이거나 시를 그림같이 지어 보이면 작품의 메시지가 한층 실감나게 전달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정작 시를 그림 같이 지어 보이고자 할 때 시 내면의 ‘구상화’는 어렵지 않을 것이나 ‘추상화’는 매우 난감할 수 있습니다. 바로 그러한 점이 시의 질, 즉 ‘문학적 상상력’을 발휘한 작품인가 아닌가를 구분하는 거겠는데, 김기수 시인은 바로 추상적 표현에 도전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구상적 표현으로서는 불가능할, 우주의 생성, 별의 탄생 등등을 연구 분석함으로써 사람살이의 갖가지 형태에 비유하여 나타내려는 움직임이 그의 속에서 물밀 듯 일고 있다는 게 감지되기 때문입니다. ‘살갗 한 겹이 시끄럽다’는 그럼 추상적 표현일까요? 아닙니다. 이는 삶의 원초적 형태에 초점을 맞춘 형상화인 동시에 표현의 동화작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시인은 순간 겨울잠을 깨어야 하는 모든 몸들로 동화되어 갔다는 게 그 증거인 셈인데, 이 시인의 장점은 바로 여기에 있는 거죠. 새벽녘에 떨어지는 꼬리별의 몸으로 동화되었다가 언뜻 그 꼬리별이 일으킨 차가운 바람으로 들어갔다가 이윽고 그 모든 깨어나야 할 것들, 깨어나기를 바라는 것들의 살갗이 된 채로 봄을 쪼고 있는‘동박새’의 하는 양을 보고 있습니다. 시인이 이끄는 곳으로 사념을 모으니 문득 동백꽃과 동박새가 대표적 공생관계라는 게 떠오릅니다. 동백꽃은 동박새에게 꿀을 제공하고 동박새는 동백꽃의 꽃가루를 날라다주며 서로 돕고 산다는 이야기 말이지요. 그 공생관계를 유지하기 위하여 부지런을 피우는 동박새, 동백꽃봉오리를 들여다보며 “피어라, 얼른 피어라.”하고 있는 동박새가 그림으로 떠오릅니다. 그러고 보면 김기수 시인의 문학적 상상력은 ‘별’과 ‘시’ 역시 공생관계라고 주장하고 펼치는 데에까지 다다라 있습니다. 아니면 그저 무수한 별과 무수한 시들이 열렬히 사랑을 나누고 있는 현장인지도 모릅니다만, 어쨌든 김기수 시인의 심상찮은 첫 시집 발간을 진심으로 축하하오며 기꺼이 별꽃 한 다발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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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오래전 일이 새롭습니다
지난일이 지금까지도 감사한 일이고요
멋진 평이었습니다
선생님~늘 건필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