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이 간직한 그리움에 잊혀가는 것에 대한 슬픔에
-5·18
송병호
오월이 간직한 너르고 깊은 사유 하나가
시간적 저편에서 기막힌 소멸에 멈춘 태엽을 풀고 있네요
붉은 바람에 그을린 소화기의 뼛조각
동전지갑 백 원짜리 묵직한 칩거인가요
우비를 걸친 타성은 사막여우의 배교입니다
몰라도 부끄러운 연민하나쯤 껴안았겠지요
오월의 초록은 꺾인 적이 있어서
늘 아픕니다
생떼 같던 응석마저 어긋난 갈림인 줄을
허공에 베끼는 오후, 그래서 슬픈 색이지요
꽃이 꽃의 추천서를 만지작거리지만
구름 비늘이 달라붙은 장송곡에 가깝습니다
그야말로 어떤 인생이 다 못다 지우고
그렇게 남기고 간 우연한 익명의 제보
사르르 잊힌다는 것은 슬픔입니다
아침에 나가 돌아오지 않은 평일의 실종이나
밤의 출구가 폐기된 눈꺼풀의 잠식이나
표준과 다른 정상이 세상 끝단에 매달린 무게만큼
생각의 견해는 냉수에 믹스커피 같아서
그가 나로 우리가 될 수 없다는 것이 소금구덩입니다
한쪽 팔이 땅 아래로 휜 들꽃은
사실이 거짓에 지혈된 천의 통증을 앓겠지요
간혹 오월이 간직한 그리움에
잊혀가는 것에 대한 슬픔에
소소한 일상은 사유를 잃어버린 절름발이로
소모적 애도를 배웅하겠지요
그러하듯이 다시 오월에
목련꽃 화사한 봄날
-그해 통계조사
송병호
군데군데 수술 자국이 가파른 계단 쏟아지는 호흡의 무게만큼 발목 따로 무릎 따로다 앙상한 거미줄이 가리키는 처마 끝에서 몇 마디 질문을 묶은 목련촉 흐릿한 문패에 여러 번 센 지번을 꾹 눌러 쓴다
짝눈의 바퀴가 헛발 디딘 할머니와 유모차 제 몸 하나 비켜갈 틈 낯선 이방을 채록하고 있다 어깨끈에 걸친 다음은 괄호 안에 남겨 둔다 눈 걸음으로 셈한 뒤란 담장 울밑은 햇볕이 헤아렸다
키만 꽂아놓고 일 나간 뒷굽 꺾인 운동화와 채워지지 않을 칸의 수 연착을 모르는 맥박과 양말 속으로 녹아드는 봄볕에 쪼그리고 앉은 발가락이 기형으로 기운 간이 화장실 널빤지처럼 휘어있다
배를 깔고 비스듬히 누워 젖을 물린 어미 개와 눈이 마주친 뒷걸음은 올 풀린 매듭처럼 왜 하늘이 노랗게 부풀어 오르는지 유기견 잔반봉지에 볼멘 송곳니 뚜껑 열린 목덜미를 쓸어 ‘개조심’씨 추가로 쓴다
괄호를 열어 짝을 채워가는 고요가 고요한 외딴 섬 녹슨 빗살 창틀에 양팔이 낀 비닐봉지 왕왕거리는 늦은 오후 알코올 충전소에 달라붙은 문장 문장마다 달달 외우고 돌아오는 시종들의 인기척은 늘 취해 있었다
낮에도 불을 켠 보안등과 오독으로 읽히기 쉬운 타다만 연탄재의 액면가에 수수료가 붙은 탓과 덕분의 거리를 재보는 어느 봄날 명퇴와 맞바꾼 계약직이 입을 먹여 살리는 그런 봄날
절망은 다 써버리고 푸른 여백만 남은
목련꽃 화사한 그런 봄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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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병호 | 2018 《예술세계》, 제10회 《국민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2020 《문학예술》 評論 당선. 김포문학상 대상. 중봉조헌문학상. 《강원일보》 DMZ문학상. 계간 《문예바다》 공모시 당선. 시집 『궁핍의 자유』 『환유의 법칙』 『괄호는 다음을 예약한다』가 있다. 가천문화재단과 김포문화재단 창작지원금 수혜. 2017 김포시장 표창장(문학). 2022 경기도지사 표창장(문화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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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병호
10077 경기도 김포시 김포한강11로 38, 101동 1602호(운양동, 모담마을 한강파크드림)
010-3744-2516
첫댓글 꽃이 꽃의 추천서를 만지작거리지만
구름 비늘이 달라붙은 장송곡에 가깝습니다
그야말로 어떤 인생이 다 못다 지우고
그렇게 남기고 간 우연한 익명의 제보
사르르 잊힌다는 것은 슬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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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이 좋지만.....
절망은 다 써버리고 푸른 여백만 남은
목련꽃 화사한 그런 봄날
------어딘가 가슴 아리는 이 시로 선택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그런데 선생님, 우편번호 포함한 주소와 핸드폰, 이메일
모두를 이 댓글 창에라도 적어주시기 바랍니다.
아 네~~~
원고 아래쪽에 주소적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이곳에 다시 적습니다
송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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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ungin94@naver.com
감사합니다. 좋은 저녁 되세요~
송병호 시인님 감사합니다. 아마 이번 호에는 빠뜨리지 않고 잘 챙기리라 믿습니다.
고맙습니다 감사하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