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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왜 이혼당해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이 상 욱 명예교수(법학전문대학원)
‘행복한 가정은 모두 모습이 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모두 제각각의 불행을 안고 있다.’〔레프 톨스토이, 안나 카레니나 1, 연진희 번역(민음사. 2012.), 13면.〕
정년퇴임 후 대구가정법원의 가사조정위원으로서, 한동안 거의 매주 수요일 또는 목요일마다 하루 3, 4건의 이혼 조정 사건을 맡게 되었습니다. 매번 참으로 다양한 이혼 사례를 접하게 되면서, 불행한 가정을 바라보는 톨스토이의 뛰어난 통찰력을 새삼 실감하게 된 중요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혼하는 부부의 모습이나 가정의 면면을 비롯하여 이혼 사유도 정말 상상을 초월할 정도라고 할까요, 일반적으로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얘기들이 톨스토이 표현처럼 제각각이면서 다양한 형태로 나오곤 했습니다.
저는 2001년 「대구지방법원 가정지원」으로 확대 개편될 때부터 (민사) 가사조정위원을 시작하였습니다. 그렇지만 학교에 재직하는 동안에는 시간적인 여유가 없었던 탓에 해마다 법원으로부터 가사조정위원으로 위촉한다는 위촉장만 받았을 뿐, 2012년 「대구가정법원」으로 확대 개편되고, 2013년 달서구 용산동 현청사로 이전되고 난 후에도 한 해에 한두 번 조정 업무를 맡을까 말까 할 정도로 활동하였습니다. 그런데 제가 2021년 8월 정년퇴임을 하게 되자, 비교적 시간적인 여유가 있다는 이유로 거의 매주 이혼 조정 업무를 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제가 맡은 사안은, 이혼 소송 중에 있던 사건이 담당 판사의 결정에 따라 조정으로 회부된 사안도 더러 있었지만, 대부분은 처음부터 ‘조정에 의한 이혼’을 신청한 사안이었습니다. ‘조정에 의한 이혼’은, 당사자의 호칭도 원고와 피고가 아니라 ‘신청자’와 ‘피신청자’로 하고, 이혼 사유를 묻거나 따지지도 않습니다. 왜냐면, ‘조정신청서’에 이혼 사유가 기재되어 있더라도 이를 증명할 증거자료를 제출할 필요가 없고, 첨부된 증거물 역시 대부분 없기 때문입니다. 결국 당사자들의 합의가 제일 중요합니다.
간략하게나마 ‘조정에 의한 이혼’ 절차를 소개하자면, 조정위원(통상 남녀 조정위원 각 1인)이 먼저 당사자들의 신분을 확인합니다. 이는 상당히 중요한 절차입니다. 반드시 당사자가 직접 출석하여야 하지만, 부득이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가정법원의 승인을 받아 소송대리인이 출석할 수도 있습니다. 사실 조정에 의한 이혼은 절차가 비교적 간략하므로 대부분 소송대리인을 선임하지 않고 본인들이 직접 출석합니다. 그리고는 이혼 신청을 하면서 신청인이 법원에 제출한 ‘조정신청서’에 기재된 사안을 하나하나 확인하는 절차를 진행하게 됩니다. 물론, 제일 중요한 점은 당사자의 이혼 의사 확인입니다. 신청인이 요구하는 이혼에 피신청인도 아무런 이의 없이 이혼에 동의한다고 명확하게 답을 하면, 그 다음 단계로 넘어가지요. 일단 미성년자녀(‘사건본인’이라고 합니다)가 있는 경우에는, 첫째, 누구를 그 미성년자녀의 양육권자와 친권자로 지정할 것인가? 둘째, 미성년자녀의 양육권자가 아닌 비양육친은 매월 양육비를 얼마나 지급할 것인가? 셋째, 비양육친은 자녀와의 면접 교섭을 어떻게 행사할 것인가? 등에 대하여 하나하나 확인을 하게 됩니다. 법원에 이혼 신청서를 제출하기 전에 당사자들끼리 사전에 합의된 내용이 소상하게 조정신청서에 기재되어 있다면, 그 사항을 하나하나 확인하는 절차에 불과하지만, 당사자들의 주장이 일치하지 않을 경우, 조정위원들이 합의를 유도하는 중재안을 제시하기도 합니다. 다만 조정에 의한 이혼은 재판상 이혼과 달리 당사자들이 주장하는 내용에 대한 입증자료가 하나도 없으므로 합의안을 제시할 때 상당히 조심스럽습니다. 조정신청서에 기재된 사항이나 당일 당사자들이 구두로 주장하는 내용이 사실인지 아닌지 조정위원들로서는 확인할 길이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당사자들이 전혀 다른 이야기를 주장하는 경우, 예컨대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서로가 자신이 유리한 양육환경에 있다고 하면서, 자녀의 양육권자와 친권자가 되겠다고 다투는 경우, 조정위원은 그 사실을 확인할 수 없으므로 조정장(판사)은 ‘조정 불성립’을 선언하고, 이혼 소송으로 진행할 것을 결정하게 됩니다. 최근에 접한 사건인데요. 결혼한 지 17년 가까이 되는 40대 중반과 초반의 부부인데, 남편이 이혼하겠다고 조정신청서를 제출한 사안입니다. 신청인인 남편은 혼인 파탄 사유가 아내에게 있다고 하면서 자신이 17세와 11세인 두 자녀를 양육하겠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런데 아내 역시 그 동안 불성실한 남편의 태도로 미루어 남편에게는 절대로 자녀를 맡길 수 없다고 하면서,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자신이 양육하여야 한다고 맞섰습니다. 근 1시간 가까이 같은 말만 되풀이될 뿐, 재산분할 문제는 아예 언급할 기회도 없을 뿐만 아니라, 도무지 합의가 도출될 기미도 없고 진척이 되지 않더군요. 이런 경우, 종래의 관행에 따르면 ‘조정 불성립’으로 결정되겠지만, 당사자 모두 재판 보다 조정으로 마무리하겠다는 의지는 강해 보였습니다. 결국, 부부 모두 자신의 자존심만 내세우지 말고 자녀들의 입장에서 다시 한번 더 깊이 생각을 해보고, 사건본인인 자녀들의 의견도 고려해보자는 안이 제시되면서, 조정을 속행하기로 하여 약 1개월 후에 다시 조정 기일을 정한 적이 있습니다. 이처럼 이혼 성립이나 조정 불성립 이외에 속행으로 조정이 이어지는 결정을 하게 되는 경우도 더러 있습니다.
그 다음 중요한 것이 재산분할 문제입니다. 이 역시 사전에 당사자들이 재산분할에 대한 합의안을 준비해 왔다면 그 사실을 하나하나 확인만 하면 되지만, 그렇지 않고 서로가 양보 없이 다툴 때는, 이 또한 ‘조정 불성립’ 사유가 되어 소송으로 이첩하게 됩니다. 제가 맡았던 사안 중에는, 60대 초반의 부부로서 아내가 이혼을 신청하면서 다른 재산은 필요 없고 현재 부부가 함께 기거하고 있는 아파트를 매각하여 그 절반을 가져가겠다고 주장하였는데(자녀들은 이미 성장하여 출가한 상태), 남편이 말하기를, “마누라가 분명히 딴 주머니 차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 상태로는 이혼 못 합니다. 내가 금융감독원에 조회해 볼 낍니다.”라고 항변하면서, 좀처럼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고 합의할 기미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런 경우는 무리하게 합의를 종용하지 않고, 조정 불성립으로 처리한 예에 해당됩니다. 이처럼 재산분할 문제 역시 중요한 사안이 되고요. 또한 각종 보험과 연금(국민연금 포함)도 어떻게 배분할 것인지 논의 사항이 됩니다. 그리고 그 밖에 이혼과 관련된 위자료 및 이와 관련된 일체의 분쟁을 제기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부제소합의’에 대한 당사자의 명확한 의사도 확인합니다.
이 모든 사항에 아무런 이의 없이 부부 쌍방의 합의가 성립되면, 조정장이 그 내용을 ‘조정확인서’에 기재하고, 각 당사자가 읽어보고 확인한 후, 그 확인서 말미에 자신의 이름을 기재하고 자신의 무인을 찍을 경우, 그 즉시 이혼 효력이 발생합니다. 물론 사후 절차로서 약 1주일 후에 그 조정확인서의 내용이 기재된, 판결문과 동일한 의미의 ‘조정조서’가 각 당사자의 주소지로 송달되어 그로부터 1개월 이내에 신청인이나 피신청인 중에 한 사람이 그 조정조서를 들고 구청이나 동사무소에 가서 가족관계등록부의 정리를 하여야 하지만, 그 정리를 하지 않는다고 해서 이혼의 효력이 무효로 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당사자에게 5만 원 정도의 과태료가 부과될 뿐이며, 법원이 직권으로 가족관계등록부의 정리를 하게 됩니다. 이 점이 협의이혼과 다른 점이 되겠습니다. 협의이혼의 경우, 가정법원의 협의이혼 의사 확인을 받으면 3개월 이내에 이혼신고를 하여야 하는데, 이혼신고를 하지 않고 석 달이 지나면 가정법원의 이혼 의사 확인은 그 효력이 상실됩니다. 즉, 협의이혼을 하기로 한 당사자의 합의는 의미가 없어진다는, 이른바 무효가 된다는 것이지요. 그렇지만 조정에 의한 이혼은 조정확인서에 자기 이름을 쓰고 자신의 손도장을 찍는 즉시, 이혼이 성립되어 그때부터 이제는 부부가 아니라 서로 남남이 되는 것입니다. 조정실에 들어올 때는 서로 간에 불화가 있을지언정 그래도 부부로서 들어왔지만, 조정이 성립되어 조정확인서를 작성하고 마무리된 뒤에 조정실의 문을 나설 때는, 이미 법적으로 서로 남남이 된다는 의미입니다. 제가 맡았던 사건 중에는 쌍방 당사자의 합의가 쉽게 성립되어 무려 10분 만에 이혼이 성립한 예도 있습니다. 당시 60대 중반의 부부가 이혼하게 된 사안으로서, 부인이 이혼을 청구하였는데 10분 만에 끝나자, “30년을 참고 살았는데, 이렇게 빨리 끝나다니요. 참 허무하네요”라고 말하면서 눈물을 글썽이던 모습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이제는 이혼을 단순하게 죄악시할 것만은 아닌 듯합니다. 인생의 갈림길에서 좋은 인연이 아니라고 판단된다면, 부득이 선택할 수도 있는 하나의 선택지에 불과합니다. 어떠한 사유든 이혼은 할 수 있지요. 그렇지만 그 과정이 매우 중요합니다. 상대방의 가슴을 후벼 파고 할퀴어서 가슴에 깊은 상처를 남기는 이혼이 아니라, 서로가 미래를 위로해 줄 수 있는 건강한 이혼을 하도록 하여야 할 것입니다. 건강한 이혼! 이혼할 때 가장 중요한 덕목입니다.
건강한 이혼을 염두에 두고, 정년퇴임 후 대구가정법원의 가사조정위원으로서 이혼 조정을 맡았던 사안 중, 기억에 남는 몇 가지 사례(지면 관계상 3건 정도)를 소개해 볼까 합니다.
에피소드 1 : 바람피우는 건 참아도 돈 쓰는 건 못 참겠습니다.
60대 초반의 부부로 기억합니다. 아내가 이혼을 신청한 사안이었습니다. 부부 사이에 낳은 딸은 이미 출가하였고, 늦둥이 아들은 군대에 있다고 했습니다. 남편은 자수성가하여 대구 근교에서 중소기업을 운영하고 있는데, 어느 정도의 재력가로서 재산이 꽤 많은 듯, 상당한 양의 재산 목록이 조정신청서에 기재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남편은, ‘마누라가 택도 없는 이혼을 청구해서 친구들이고 동료 사업가들 사이에 내 체면이 말이 아니고, 이 나이에 큰 우사를 당하고 있다’며 엄청 화를 내고 있었습니다. 아내는 자신이 이혼을 결심한 이유는 남편의 바람기 때문이라고 하면서, 이제는 도저히 더 이상 참고 살 수 없다는 것입니다. 남편은, 남자가 사업하다 보면 여자를 만날 수도 있지 그걸 가지고 이혼을 청구했다고 노발대발하면서 자기는 절대로 이혼은 할 수 없다고 강경한 자세를 보였습니다. 한참 동안 두 사람의 서로 힐난하는 공격적인 이야기를 듣다 보니, 아내의 눈에 약간 눈물이 비치는 모습을 발견했습니다. 노련한 조정위원이라면 이 순간을 놓칠 수 없습니다. 아내의 속내는 반드시 이혼하는 것은 아닐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번개같이 스쳐 갔습니다. 이럴 때는 부부 쌍방을 분리하여 따로따로 각자의 속마음을 털어놓게 함으로써, 진정한 속마음의 진실을 알아내는 조정기법을 사용하는 것이 상책입니다. 남편에게 잠시 조정실 밖의 대기실에 나가 있으라고 양해를 구하고, 아내와 단독으로 앉아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그제야 아내도, 사실은 딸이 엄마 이렇게 살지 말고 이제는 이혼하라고 부추겨서, 덜컥 이혼하겠다고 했는데, 막상 군에 있는 아들은 아직 장가도 안 보냈고, 결혼식도 걱정이 되고 … 하면서, 눈시울을 적시며 말끝을 흐렸습니다. 그렇지요. 제 옆에 있던 여성 조정위원께서도 아내의 역성을 들면서, 이혼이 쉬운 일은 아니라고 한마디 거들었습니다. 그러자 아내가 속마음을 털어놓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남편은 젊었을 때부터 바람을 피워왔다는 것입니다. 그래도 한번 스치는 바람이려니 하고 참고 살았는데, 요사이는 바람피우면서 불륜녀에게 금전적인 지원까지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최근에도 우연히 알게 된 사실인데, 몇 천만 원이나 하는 신형 자동차를 1대씩 사주는 등 돈을 펑펑 쓰고 있다는 것입니다. 통장에서 한 번씩 목돈이 빠져나가는 것을 보면, 금전적 지원도 엄청난 것 같다는 것이지요. 이렇게 되자 덜컥 걱정이 되더랍니다. 어느 여자가 뭐 볼 게 있다고, 공부도 많이 못했고(부부 두 사람 모두 초등학교밖에 다니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인물도 변변찮은 늙은 남자(사실, 누가 봐도 남편은 키도 작달막하고 인물이 그다지 좋은 편은 아니어서 여자들이 막 따를 정도는 아닌 듯했습니다)한테 빠지겠습니까? 결국 돈이겠지요. 남편이 늘그막에 바람을 피우다 보니 돈으로 왕창 떼운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돈은 아내인 자신에게 돌아올 재산일 진데, 저렇게 흥청망청 써버리면 남편이 죽고 나면 자신에게 돌아올 재산이 몽땅 사라질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자 도저히 참을 수 없더라는 것입니다. 지금이라도 이혼하고 재산을 어느 정도 받아서 내 살길을 찾아야겠다는 욕심이 들더라는 것이지요. 딸도 같은 생각을 하게 된 듯 이혼하라고 부추겼답니다. 자세히 물어보니, 재산이 상당히 있는데. 모든 재산이 남편 명의로만 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때 조정위원의 기지가 발휘되는 순간입니다. “그럼 남편 명의의 재산을 어느 정도 아내의 명의로 이전하면 이혼은 하지 않아도 되겠습니다.” 아내가 물끄러미 저를 바라보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게 할 수 있는지 물었습니다. 그러면서 사실 남편이 바람피우는 거야 어제오늘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지만, 그 여자들한테 돈까지 펑펑 쓰는 것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이번에는 아내를 조정실 밖에 나가 있게 하고 남편을 들어오게 했습니다. 남편은 여전히 씩씩거리며 이혼은 절대 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남편에게 이혼당하지 않고 조용하게 마무리할 수 있는 방안이 있다고 슬며시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피신청인, 남편 명의로 된 재산 중에 일부를 아내 명의로 이전해줍시다. 어차피 이혼하게 되면 재산분할에 따라 재산 중 일부를 아내에게 이전해 주어야 한다는 등등. 처음에는 한 푼도 못 준다고 기세가 등등하던 남편의 태도가 서서히 변하면서 점점 수긍하기 시작하더군요. 결국 남편 명의의 재산 중 일부(건물과 토지 등)를 아내의 명의로 이전하기로 하고, 아내는 이혼을 취하하는 내용의 조정확인서를 작성하면서 조정은 성립되었습니다. 아! 그렇습니다. 남편의 바람이야 한순간이려니 하고 겨우겨우 참을 수 있다지만, 그로 인한 재산 탕진까지는 단연코 참을 수 없는 법이지요.
그런데 이처럼 남편 명의의 재산으로부터 일정한 몫의 재산분할을 받기 위해서는 극단적인 방법으로서 이혼까지 불사해야 하는 것일까요? 네. 그렇습니다. 유감스럽게도 ‘부부별산제’를 채택하고 있는 현행 법제 하에서는, ‘혼인 중의 재산분할청구’가 허용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현행 민법상, 재산분할청구는 이혼을 전제로 하고 있으므로 결국 이혼을 원치 않는 배우자라도 재산권을 보장받으려면 이혼을 할 수밖에 없는 실정입니다. 이러한 말도 안 되는 불합리한 점을 시정하는 방법은 아주 간단합니다. 혼인 중에도 재산분할청구를 할 수 있도록 민법전의 관련 조문을 개정하면 됩니다. 그런데 그게 참 어려운 과제가 되고 말았습니다. 아래의 글은 제가 2016년에 ‘한국가정법률상담소 대구지부’의 ‘상담소식’에 기고한 글(‘혼인 중의 재산분할청구도 허용되어야 한다’)인데, 참고삼아 일부를 그대로 옮겨봅니다.
「혼인 중의 재산분할청구를 인정하고 있는 외국의 입법예가 없지는 않다. 이미 독일과 프랑스에서는 혼인 중의 재산분할제도를 도입하여 일정한 요건 하에 혼인 중이라도 재산분할청구를 할 수 있도록 인정하고 있다. 예컨대 ① 부부가 최소한 3년 이상 별거하고 있는 경우, ② 부부 중 일방이 그 책임 있는 사유로 장기간 혼인 관계에서 발생하는 경제적 의무를 이행하기 않았고, 장래에도 이행하지 않을 것으로 보이는 경우, ③ 부부 중 일방이 상대방의 동의 없이 재산을 임의로 처분하거나 고의로 낭비하여 재산을 감소하는 행위를 함으로써 장래의 재산분할청구권을 현저하게 위태롭게 할 우려가 있는 경우, ④ 충분한 이유 없이 재산 상태에 대한 정보를 알려주는 것을 완강하게 거부하는 경우 등 일정한 사유가 있는 경우에는 혼인 중이라도 재산분할을 청구할 수 있는 것이다.
명목상의 부부재산 별산제에 불과한 온전하지 못한 부부 재산제도를 가지고 있는 우리나라에서는 혼인 중 재산분할제도의 도입은 심각하게 고려되어야 한다. 사실 2005년도 국회에서 일부 국회의원에 의하여 혼인 중 재산분할제도를 도입하는 민법 개정안이 발의된 적이 있었지만, 그 결과는 참담하였다. 혼인 중 재산분할을 인정하면 가정파탄을 촉진시키는 역할을 할 것이라는 비판을 비롯하여, 증여세 등의 회피에 악용될 수 있다는 등, 공청회에서 빗발치는 비판에 직면하여 국회 임기 만료로 그 개정안은 결국 폐기되고 말았다.」
에피소드 2 : 결혼하고 1년 되었는데, 그 동안 아내랑 밥상을 같이 한 적이 한 번도 없어요.
이 사안 역시 60대 중반의 부부 이야기입니다. 남편이 이혼을 신청하였는데, 기록을 보니 혼인하지 1 년이 채 못 된 부부로서, 부부 모두 재혼, 아니 아내는 3번째 혼인이더군요. 약속한 조정시간이 도래하여 우선 먼저 와있던 남편부터 조정실에 들어오게 하였습니다. 원래는 쌍방 당사자가 모두 도착하여 조정실에 같이 들어오게 하는 것이 원칙입니다만, 먼저 와있던 남편이 아내가 오늘 조정에 참석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몇 달 전부터 이혼 이야기가 오갔고, 그날 아침에도 아내에게 오늘 오전 10시까지 가정법원에 가야 한다고 알려주었지만(물론 아내에게도 가정법원의 조정실에 출석하라는 통지는 송달되었지요), 아내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더라는 겁니다. 그리고 이혼 조정신청서에는 지극히 추상적으로 간략하게 성격 차이 등으로 이혼을 원한다는 내용만 기재되어 있었고, 재산분할에 대해서도 아무런 언급이 없었습니다. 통상 신청인은 조정위원과 마주 보는 좌석에 앉고, 피신청인은 조정위원의 오른쪽 좌석에 앉습니다. 조정장은 조정위원의 왼쪽에 있는 좌석, 즉, 피신청인의 맞은편 좌석에 앉습니다. 신청인은 저와 마주 보는 자리에 않자마자, 신분을 확인하기도 전에 성급하게 무언가 말을 꺼내려고 하기에, 잠시 기다리라고 하고는 일단 신분증을 보자고 해서 신분부터 확인했습니다. 그러자 곧바로 신청인은, “위원님 한마디 해도 되겠습니까?”라고 물으면서 한숨부터 내쉬더군요. “아니 이럴 수가 있습니까?”라고, 시작한 신청인의 이야기는 상당히 충격적인 내용이었습니다.
신청인은 대구 근교에서 농장을 경영하고 있는데, 아내가 오랫동안 암 투병 끝에 몇 년 전 사망했답니다. 두 사람 사이에는 자식으로 아들 둘이 있는데, 모두 결혼해서 다른 도시에서 잘살고 있답니다. 그런데 얼마 전에 잘 알고 지내던 지인이 외롭게 살지 말고 재혼하라고 자꾸만 권하며 한 사람을 소개해 주었다는군요. 그녀도 몇 년 전 남편과 사별하고, 딸 하나 있는데, 역시 결혼하여 잘살고 있다더군요. 처음에는 뭐 이 나이에 재혼인가 하면서 대수롭지 않게 그냥 웃고 넘어가려고 했는데, 소개해 준 자가 서로 외로운 사람끼리 즐겁게 살아보라고 강권하며 자꾸 자리를 만들어 주는 바람에 차차 마음을 열게 되었고, 상대방 여성도 다소곳하고 조용한 성품이라 만남을 거듭할수록 점차 가까워지게 되어 자녀들에게도 알리게 되었고, 결국 결혼하게 되었답니다. 두 사람 모두 결혼 경험이 있고 나이도 있으니, 크게 어색하지 않고 부부로서의 생활을 잘 영위해 왔답니다. 그런데 최근 들어 자꾸 손이 저려 와서 이상하다 싶어 큰아들에게 지나가는 말투로 이야기를 했더니, 곧바로 진료를 받아보라고 서울에 있는 큰 병원에 예약을 잡아 주었답니다. 그래서 서울에 있는 큰 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아보니 청천벽력 같은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는군요. 담당 의사 왈, 검사 결과, 몸에서 소량의 농약 성분이 검출되었다는 것입니다. 아니 이럴 수가! 자신은 유기농을 표방하여 농약은 거의 사용하지도 않고, 부득이하게 농약을 살포하는 작업을 할 때는 다른 업자에게 위탁하여 최소한의 농약만 사용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자신은 농약과는 아무런 연관성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자신의 몸에서 농약이 검출되었다니! 순간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충격을 받았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아무것도 모르는 의사는 신청인에게 농사를 지으면서 농약을 많이 사용하지 말라고 조언을 하더랍니다. 일단 약을 처방받고 병원을 나서면서 곰곰이 생각해 보았답니다. 농약은 취급한 적도 없고, 만진 적도 없는데, 어떻게 내 몸에 농약이 들어갔단 말인가? 그러자 번개같이 스치는 생각이 있더랍니다. 아내와 결혼하고 한 해가 되도록 한 번도 아내와 같이 밥을 먹은 적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늘 아내는 자기는 나중에 먹겠다고 하거나, 밥맛이 없다고 하면서 남편인 자기 밥상만 차려서 혼자 먹게 했다는 것이지요. 결혼하고 나서 오늘까지 계속해서 말입니다. 순간 등골이 쏴 해지더랍니다. 그것 말고는 자신의 몸에서 농약이 발견될 리가 없다는 확신이 드는 순간, 갑자기 아내가 무서워지기 시작했답니다. 그때의 충격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고 하더군요. 그리고는 아내의 행적을 추적해 보기로 했답니다. 그제서야 아내의 가족관계 기록을 자세히 열람해보니, 아내와 재혼하였던 전 남편은 결혼한 지 1년 반 만에 사망한 사실을 알게 되었답니다. 경악한 신청인은, 아! 이 여자하고는 도저히 같이 못 살겠다. 같이 살다가는 내가 내 명에 못살 것 같다는 불안한 마음에 이렇게 이혼을 신청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 이야기는 아무런 증거도 없는 신청인의 일방적인 이야기에 불과합니다만, 실로 충격적인 이야기가 아닐 수 없었습니다. 신청인은 이 사람하고는 절대로 같이 살 수 없다고 하면서, 꼭 이혼은 해야 한다고 하며 끝을 맺었습니다만, 결국 피신청인인 아내는 그날 조정에 참석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조정 불성립으로 마무리했지만, 그 후 신청인이 다시 이혼 소송을 제기했는지, 아니면 협의이혼을 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신청인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실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제는 부부로서 한솥밥을 해서 먹을 게 아니라, 한 밥상에서 같이 앉아 밥을 먹어야 합니다. 매끼 마다 밥은 한 상에서 부부가 꼭 같이 드시고 계시지요?
에피소드 3 : 내가 왜 이혼당해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이 사안 역시 60대 중반의 부부였습니다. 결혼한 지 30년이 훌쩍 넘었는데, 아내가 이혼을 신청한 사안입니다. 통상적인 절차에 따라 부부 각자의 신분을 확인한 후, 이혼 조정신청서에 기재된 내용을 하나하나 확인하기로 했습니다. 이혼을 신청한 아내가 조정신청서에 기재한 내용은 재산분할도 필요 없고(1남 1녀인 자녀들은 모두 성년에 도달했지요), 오직 이혼만 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아내에게 이혼하겠다는 마음에는 변함이 없다는 확답을 받고, 남편에게 물었습니다. 아내가 이혼을 신청하고 있는데, 피신청인도 이혼에 동의하십니까? 남편은 먼저 ‘후우-’하고 한숨을 쉬더군요. “그래, 우짜겠습니까? 마누라가 저렇게 이혼하겠다고 난리를 치는데....”라고 마지못해 답을 하더군요. 그리고서는 대뜸, “난 내가 왜 이혼을 당해야 하는지 도대체 모르겠십니다. 평생을 농사짓고 아들딸 잘 키워서 장가보내고 시집보내서 잘살아 왔는데, 내가 잘못한기 뭐 있습니까?”라고 하면서 푸념(?)을 늘어놓기 시작했습니다. 너무나 한(?)이 맺힌 이야기 같아서 중간에 끊을 수 없고 일단 그냥 듣기로 했습니다. 이어지는 남편의 하소연(?)을 들으면서 남편을 가만히 살펴보니, 햇볕에 거슬린 듯 검은 얼굴에 작달막한 키지만, 다부진 몸매를 하고 있었습니다. 다만, 책상 위에 올려놓은 손을 보니, 투박하고 매우 거칠어진 손인데, 손끝의 손톱 밑에도 까만 때가 끼어 있는 게, 농사를 지으면서 자신의 몸은 그다지 돌보지 않았음을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남편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데, 맞은편에 앉아 있는 아내는 기가 찬다는 듯이 저거 보라고 아직도 뭐를 모르고 있다고 핀잔을 주었습니다. 아내의 항변은, 평생을 따뜻한 말 한마디 없이, 그저 윽박지르기만 하고, 이제는 자기도 숨이 막혀 못 살 것 같아 이혼을 신청한다고 했습니다. 남편이 버럭 소리를 질렀습니다. “내가 뭘 모른단 말이고. 내가 생활비를 제대로 안줬나. 바람을 피웠나? 니한테 손찌검이라도 했나? 내가 잘못한 게 뭐꼬?” 아! 이 부부는 소통의 결핍이었습니다. 서로 흥분하지 마시고 차분하게 대화로 해결하자고 남편과 아내에게 경고성 주의를 준 후에 남편에게 물어보았습니다. “자녀들은 결혼했습니까?” “네. 다 결혼했지요.” “그러면 자녀들도 두 분이 이혼하겠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까?” “저 사람이 얘기해서 알고 있지요.” “그럼 자녀들은 뭐라고 합디까?” “가들이야 마카 저거 엄마 편이지요.” 아! 갑자기 남편의 외로운 모습이 왈칵 눈에 들어 왔습니다. 사실 가장으로서 한 가정을 꾸려 간다는 게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지요. 이 남편은 그저 농사짓고, 열심히 돈 벌어 생활비 주고, 자녀들 학비 대주면 자신이 할 일은 다 한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던 듯합니다. 부모에게 받은 재산도 별로 없이, 결혼해서 나름 그저 성실하게 열심히 노력한 끝에 논밭도 장만하고, 그럭저럭 큰 여유 없이 힘들게 살아오느라 아내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 할 여력이 없었던 것입니다. 아니 부부간에 그런 대화가 필요한지조차 몰랐던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아내는 남편의 따뜻한 말 한마디, 부부로서의 정이 절실하게 필요했던 것이지요. 아내는 재산도 필요 없고, 국민연금 받게 되면, 딸네 집에서 손자 손녀들 돌봐주면서 살겠답니다. 남편하고 둘이 있으면 숨이 막힐 것 같다는 것입니다. 아내의 주장이 너무나 절박하게 보여 차마 부부관계에 관한 심리 상담을 받아보라는 이야기도 하지 못하고, 결국 두 사람은 이혼에 합의하고, 조정확인서를 작성했습니다. 모든 절차가 끝나고 남편이 먼저 일어나서 조정실 문을 나서는데, 어깨가 추욱 쳐진 그 뒷모습이 너무나 쓸쓸하고 처량해 보였습니다. 베네치아 법정에서 포오샤의 재치 있는 판결에 안토니오와의 재판에서 패소하고, 모든 재산을 몰수당한 채 힘없이 돌아가는 샤일록의 뒷모습이 그러했을까요? 한동안 내가 왜 이혼을 당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하던 남편의 절규가 계속 머릿속을 맴돌며 마음이 편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직접 확인한 것은 아니지만, 가정법원 관계자의 말을 빌리면, 대구 경북에서의 황혼이혼 비율이 전국에서 제일 높다고 하더군요. 결코 소통과 무관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걸 꼭 말해야지 아나’라고 볼멘소리를 할지 모르지만, 말하지 않으면 모르지요. 「가섭존자」 같은 분이야 구구절절 말없이도 이심전심으로 다 알 수 있다지만, 우리 같은 범인이야 말하지 않으면 어찌 속속들이 그 속마음을 알겠습니까? 가끔은 ‘고맙다’는 말도 전하고, ‘좋다’는 감정도 표현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시대의 지성이라고 일컫는, 자칭 사회철학자인, 영국의 「찰스 핸디」가 전하는 말을 귀담아 새겨도 좋을 듯합니다. 「결혼을 유지하려면 최소 세 번은 계약서를 갱신하라.」「모든 관계가 ‘기대치의 균형’이란 암묵적인 계약을 기반으로 한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기대치가 명확히 표현되지 않으면 오해는 필연적이다. 게다가 계약은 양쪽 모두에게 공정하여야 한다.」「사람들이 재혼이나 삼혼에 대해 언급할 때 나도 세 번 결혼했다고 반(半)농담조로 말하곤 한다. 그러나 내 경우에는 세 번의 결혼 상대가 똑같은 여자였다는 게 다르다. 같은 배우자와 다른 식으로 살아보길(찰스 핸디, 삶이 던지는 질문은 언제나 같다, 인플루엔셜(2022), 247면, 253면, 259-260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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