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연명(陶淵明)/ 음주(飮酒) 10수(首)
- 음주시(飮酒詩) 서문(序文)
나는 조용히 사니 달리 즐거운 일도 없고 余閑居寡歡
게다가 요즘은 밤도 길어졌는데 兼比夜已長
우연히 좋은 술이 생겨 저녁마다 마시게 된다. 偶有名酒 無夕不飮
등불에 비친 내 그림자를 벗 삼아 마시다 보니 顧影獨盡
혼자서 다 비우돈 금방 취해 버렸다. 忽焉復醉
취해서 자주 시 몇 구 짓고는 혼자 흐뭇해했다. 旣醉之後 輒題數句自娛
시를 적은 종이가 제법 되나 글의 순서가 맞지 않아 紙墨遂多 辭無詮次
그냥 친구더러 다시 정서해 달라고 했다. 聊命故人書之
이는 같이 기쁘게 웃을 거리를 만들려 했을 뿐이다. 以爲歡笑爾
음주(飮酒) 1
쇠락과 영달은 정해진 게 아니며 衰榮
無定在
바뀌고 서로 돌게 마련이거늘 彼此更共之
오이밭을 가는 소평(邵平)이 邵生瓜田中
동릉후였다고 누가 알겠는가? 寧似東陵時
춥고 더운 세월 바뀌는 계절같이 寒署有代射
인간의 삶도 그와 같으리라. 人道每如玆
달인은 그런 이치를 터득하고 達人解其會
그것을 다시는 의심치 않는다네. 逝將不復疑
홀연히 한 동이 술이 생겼으니 忽與一樽酒
밤낮 기꺼이 술 마시며 즐기리라. 日夕歡相持
[* 邵生 : 소평(邵平)으로 진(秦)나라 때 동릉후(東陵候)라고 전한다.]
음주(飮酒) 2
착하게 살면 복 받는다 했는데 積善云有報
백이 숙제는 수양산에서 굶었네. 夷叔在西山
선과 악이 닦은 대로 되지 않으니 善惡苟不應
어찌 빈 말만 앞세웠는가. 何事立空言
구십노인 허리띠 졸라 가난하게 사는데 九十行帶索
젊은 내가 이 정도를 못 참겠는가? 飢寒況當年
곤궁해도 굳은 절개를 믿지 않으면 不賴固窮節
먼 후세에 어찌 이름 남기겠는가? 百世當誰傳
음주(飮酒) 3
도(道)가 사라진 지 어느덧 천 년 道喪向千載
사람들은 서로 정을 나누기도 꺼리네. 人人惜其情
술이 있어도 함께 마시려 하지 않고 有酒不肯飮
오직 세속 명리만 즐겨 찾는구나. 但顧世間名
출세해서 화려하게 살더라도 所以貴我身
짧은 한 생에 지나지 않거늘 豈不在一生
그 한 생이 과연 얼마나 되겠는가 一生不能幾
한순간의 번갯불과 같은 것 倏如流電驚
길어야 백 년도 못 사는 인생에 鼎鼎百年內
부귀 명리를 애써 얻어 무엇 하랴. 持此欲何成
음주(飮酒) 4
무리를 떠나 불안한 새 한 마리가 栖栖失群鳥
해가 저물도록 혼자 날고 있네. 日暮猶獨飛
둥지를 틀지 못한 채 배회하며 徘徊無定止
밤마다 더욱 서글피 운다 夜夜聲轉悲
문듣 날카로운 소리로 맑은 새벽 맞으며 厲響思淸晨
멀리 날아갔으니 뭘 바라 의지하려 했나. 遠去何依依
홀로 외롭게 자란 소나무를 찾아서 因値孤生松
먼 길 돌아 날아서, 나래 접고 쉬네. 斂翮遙來歸
세찬 바람에 꽃을 피우지 못한 나무 勁風無榮木
우거진 덤불 속 외딴 소나무에 此蔭獨不衰
이제 몸 의지할 곳을 찾았으니 託身旣得所
천년이 가도 떠나지 않으리라. 千載不相違
음주(飮酒) 5
초가집을 짓고 마을 어귀에 살다 보니 結廬在人境
시끄러운 수레나 말도 없어서 좋구나. 而無車馬喧
그대여, 어찌 그럴 수 있나 생각하니 問君何能爾
마음이 멀어지니 땅은 더 아득하네. 心遠地自偏
동쪽 울타리 아래서 국화를 따다가 采菊東籬下
한가롭게 남산을 바라보네. 悠然見南山
해질녘 산 기운은 더 아름답고 山氣日夕佳
나는 새들도 무리 지어 돌아오는구나. 飛鳥相與還
여기에 참다운 뜻이 있으려니 此間有眞意
뭔 말을 하려다 이미 말을 잊었네. 欲辯已忘言
음주(飮酒) 6
사람의 행동은 사람마다 다르기에 行止千萬端
그 누가 잘잘못을 가리겠는가? 誰止非與是
저마다 멋대로 옳고 그름 정해 놓고 是非苟相形
잘했다 못했다 부추기고 헐뜯는구나. 雷同共譽毁
은,하,주나라 후 이런 일은 너무 많으니 三季多此事
덕있는 선비만이 편을 가르지 않네. 達士似不爾
참으로 가련한 세상 어리석은 사람들아, 咄咄俗中愚
마땅히 황공이나 기리계를 따라야 하리. 且當從黃綺
[*黃綺 : 폭군 진시황을 피해 낙양 근처의 상산(商山)으로 은거한 황공(黃公), 기리계(綺里季) 등을 말함.]
음주(飮酒) 7
가을 국화가 빛깔도 고와서 秋菊有佳色
이슬 내려앉은 꽃잎을 따서 裛露掇其英
근심 잊으려 술에 띄워 마시니 汎此忘憂物
내가 남긴 속세의 정 더 멀어진다. 遠我遺世情
잔 하나로 혼자 마시다 취하니 一觴雖獨進
마신 빈 술병 스스로 쓰러지네. 杯盡壺自傾
날 저물어 만물이 쉬는 때 日入群動息
날던 새도 깃을 찾아 돌아온다. 歸鳥趨林鳴
동쪽 처마 아래서 휘파람을 부니 嘯傲東軒下
이러한 삶을 어찌 다시 얻을소냐. 聊復得此生
음주(飮酒) 8
푸른 소나무가 동쪽 정원에 있는데 靑松在東園
풀에 묻혀 안 보이더니 衆草沒其姿
서리에 초목들이 시들고 나자 凝霜殄異類
높은 가지 우뚝하게 보이는구나. 卓然見高枝
잡초에 가려 사람들이 몰랐으나 連林人不覺
홀로 남으니 더욱 당당하구나. 獨樹衆乃奇
술병을 차가운 솔가지에 걸고 提壺掛寒柯
몇 차례 멀리서 바라보니 遠望時復爲
이 삶은 꿈과 환상 속에 가는데 吾生夢幻間
뭣 땜에 속세 굴레에 매어 지내나. 何事紲塵羈
음주(飮酒) 9
아침 일찍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 淸晨聞叩門
서둘러 옷 입고 대문을 열어주었다. 倒裳往自開
그대는 누구신가 묻는 내 앞에 問子爲誰歟
착해 보이는 한 농부가 서 있다. 田父有好懷
멀리서 술병 들고 인사 왔다며 壺漿遠見侯
세상 등지고 사는 나를 나무란다. 疑我與時乖
누차하게 초가집 오두막에 사니 襤縷茅詹下
고결하게 살아가기엔 미흡하다오. 未足爲高栖
세상 사람들이 서로 어울려 살듯이 一世皆相同
그대도 같이 흙탕물에 잠겨 사시구료. 願君汨其泥
농부 말에 깊이 느끼는 바 있지만 深感父老言
본래 성품이 남과 어울려 살지 못하니 稟氣寡所諧
사는 태도 바꿔 짐짓 벼슬살이 배워도 紆轡誠可學
내 뜻 거스르면 어찌 미혹이 아니겠소. 違己詎非迷
잠시 이렇게 마시며 함께 즐길 뿐이니 且共歡此飮
내 수레를 뒤로 돌릴 수는 없으리. 吾駕不可回
음주(飮酒) 10
오래 전 군대를 따라 멀리 갔다가 在昔曾遠游
곧바로 동해 끝에 이르렀지요. 直至東海隅
종군의 길은 낯선 길에 위험도 하고 道路逈且長
도중에 풍파가 심해 고생도 했소. 風波阻中塗
누구를 위해 그 고생을 했는지 此行誰使然
생각하니 가난에 몰려간 듯 하오. 以爲飢所驅
노력하면 주린 배도 채울 수 있고 傾身營一飽
젊은 나이면 먹고도 남을 것이련만 少許便有餘
그 길은 별로 자랑스런 대안이 아님에 恐此非名計
수레 멈추고 돌아와 한가로이 살지요. 息駕歸閒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