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만 되면 나를 텔레비전 앞으로 끌어당기는 프로가 있었다. 바로 전국노래자랑이다. 원로 코메디언 송해가 마이크를 잡아 전국을 웃음바다로 만드는 노래자랑은 하루가 다르게 인기가 치솟고 있다. 그 인기는 다름 아닌 코메디언 송해의 구수한 말투와 농담에서 나오는데 그의 행동을 보고 있으면 천상 타고난 기질의 소유자라는 걸 느낄 수 있다. 좌중을 압도하거나 웃게 만들어 내 마음을 쏙 빠지게 하는 힘은 송해 만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매력이다. 그가 아니면 노래자랑을 제대로 이끌고 갈수 없을 정도로 그의 인기는 하늘을 찌른다.
그래서 그런지 이제는 전국 노래자랑 하면 송해라고 할 정도로 전국노래자랑은 그의 트레이드마크가 되어 버렸다. 송해대신 다른 사람을 사회자로 교체한 일이 있었지만 밋밋하게 사회를 보는 그의 마이크는 얼마못가 보기 좋게 꺾이고 말았다. 그래서 다시 송해를 사회자로 교체할 정도로 노래자랑의 인기는 능력과 재주가 겸비한 사회자에 달렸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똑같은 반찬이라도 손재주가 좋은 주부가 만든 것들이 맛깔 날 정도로 텔레비전 프로도 마찬가지다. 똑같은 텔레비전 프로라도 어느 사회자가 마이크를 잡느냐에 따라 그 프로의 생명력은 확실히 달라진다.
40여년 전에도 콩쿨대회라는 노래자랑이 있었다. 전국을 상대로 노래자랑을 벌이는 요즘과는 달리 그 때는 인근의 몇 몇 마을을 대상으로 노래자랑을 열었다. 마을에서 노래깨나 한다는 사람들이 콩쿨대회를 기다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시골에서 노래를 하면 얼마나 잘하겠는가. 그런데도 무대에서 한바탕 노래를 부르고 나면 자신이 무슨 가수라도 된 듯 기고만장하던 시절이었다. 심사위원이라고 해보았자 마을이장이나 새마을 지도자 그리고 인근 마을에서 초청된 유지들이었다. 노래에 식견이 없다보니 대충 박자만 맞고 음색이 좋으면 수상자로 선정되었다. 이런 사람들로 심사위원이 구성되다 보니 얕보는 사람들도 간혹 있었다. 어떤 때는 노래자랑이 엉망이 되기도 했다. 불량끼있는 동네 형들이 무대 위로 올라가 희환한 노래를 부르거나 성적인 행동을 해 그것을 말리는 진풍경도 벌어지곤 했다. 그렇지만 콩쿨대회가 열리는 날이면 노래에 목마른 사람들의 마음이 설레기도 했다. 한해에 한 번 정도 열릴 정도라 콩쿨대회를 더 목마르게 기다렸다.
그런 기다림이 현실로 다가왔다. 매곡의 노천리라는 마을에서 콩쿨대회가 열린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우리 마을에서 거의 10리쯤 떨어진 이웃마을이었다. 이렇게 어중간한 거리는 운송수단으로 경운기가 딱 좋았다. 사람들을 가득 싣고 달빛이 내려깔린 거리를 달리면서 밤바람을 쐬는 맛도 일품이었다.
언제나 그렇듯이 경운기 운전수는 토리 아버지였다. 토리 아버지는 우리 이웃집에 살았는데 늘 빈둥거렸다. 일하는 꼴을 본 적이 없었다. 농사철이 되면 늘 약삭 빠르게 뛰어다니는 건 몸집이 작은 토리 엄마였다. 아무리 일이 밀려도 토리 엄마는 투덜거리지 않았다. 말만 하면 성질만 버럭지르는 토리 아버지한테 지쳤기 때문이었다. 원래 일하기 싫은 체질이라 그런지 노는 데는 일가견이 있었다.
그래서 콩쿨대회만 열려도 토리 아버지는 자기 집 경운기를 대령해 마을 사람들을 실어 날랐다. 그 때만은 마을 사람들에게 호감을 샀다.
콩쿨대회가 열리는 날, 막 어둠이 내려앉자 토리 아버지는 경운기 시동을 켜고 사람들을 기다렸다. 마을 사람들이 속속 모여들었다. 낮에 하루 종일 논밭에서 일을 한 사람들은 피곤해 가지 못했지만 그래도 몇 명은 피곤한 기색도 없이 경운기에 올라탔다.
다행히도 경운기 한 대를 채울 만큼 사람들로 모이자 경운기는 봄바람을 뚫고 마을을 벗어났다. 마을 옆 철로를 넘고 고속도로 굴다리를 통과하면 급히 도착할 수 있었지만 간신히 사람 하나 정도 빠져나갈 조붓한 길이어서 국도를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마을에서 황간을 거쳐 매곡으로 돌아가는 비포장도로는 한없이 돌아가기 때문에 시간이 많이 걸렸다. 그런데도 경운기를 타고 가는 재미에 사람들은 싫은 표정을 하지 않았다. 비포장 길을 달리다보면 울퉁불퉁한 돌에 경운기가 울렁거려 사람들의 몸은 마구 흔들렸다. 그래도 좋았다. 어이쿠 하는 이 한마디에 그냥 웃음으로 채워 넘겼다.
토리 아버지는 묵묵히 운전대만 잡았다. 허장강을 쏙 빼 닮은 혈색 좋은 얼굴에 술취한 듯한 걸걸한 목청으로 말을 하면 사람들은 배꼽을 잡고 웃었다. 집에서 빈둥거려도 사람들에게 인심을 잃지 않았다.
어느덧 황간을 도착한 경운기는 지금의 버스 정류소 사거리에서 좌측으로 돌아 철교 밑 터널을 빠져 좌회전으로 방향을 틀어 계속 직진을 했다. 여기서 20분정도를 가면 노천리가 나오기 때문에 조금만 더 참고 기다리면 되었다. 비포장 길 옆으로 펼쳐지는 산자락에서 내려오는 솔잎 내음에 숨이 막혔다. 참나무 냄새도 났다. 더덕 냄새도 났다. 보름달이 쏟아내는 달빛이 산자락의 잡목들에 속속들이 스며들어 반짝반짝 빛을 뿜었다. 경운기가 달리면서 전신을 훑어주는 봄바람은 부드럽고 감미로웠다.
노천리에 도착하자마자 손바닥만한 작은 동네가 들썩거렸다. 냇가 옆으로 넓게 깔린 자갈밭에 천막을 쳐놓고 무대를 꾸며 놓았다. 심사위원석도 있었고 상품도 푸짐하게 진열되었다. 무대 앞에는 벌써 사람들이 줄을 맞춰 앉아 노래자랑이 열리기를 기다렸다. 대부분이 노인들 아니면 어린이들이었다. 보름달 하나 휘영청 떠 오른 하늘에는 개똥벌레처럼 많은 별들이 반짝거렸다. 마을에서 제법 사회깨나 보는 청년이 말쑥한 정정차림으로 무대에 올라 마이크를 시험해 보고 있었다.
가끔씩 삐삑거리는 소리들이 마이크에서 신경질적으로 새어 나왔다. 그 때마다 사회자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다시 한 번 목소리를 깔았다. 이윽고 사회자가 콩쿨대회의 시작을 알리더니 곧장 대망의 노래자랑이 시작되었다. 사회자의 호령에 따라 인근 마을에서 모인 노래꾼들이 무대에 올라섰다. 갓 반주를 배운 것 같은 3류 악단들이 내는 반주의 리듬에 맞춰 노래를 부르면 옆의 심사위원석에서 진지하게 심사를 보았다. 그 폼이 너무나 진지하여 우스꽝스럽기도 하였다. 노래에 대한 식견도 없으면서 그냥 감으로 점수를 매기는 폼을 보면 마치 지금의 전국노래자랑 심사를 보는 심사위원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몰론 내가 들어도 가수 뺨치게 노래를 잘 부르는 사람도 있었고 저기 노래냐고 할 정도로 시원찮은 노래도 있었다. 그러나 시골 사회자답게 분위기를 잘 이끌고 나갔다. 전국의 나이트나 카바레를 떠돌아다니며 사회깨나 본 사람처럼 그의 사회는 매끄러웠다. 가수 한사람씩 불러 세우고 농담을 한다든지 아니면 이상한 행동을 하여 웃기는 폼이 그냥 즉흥적으로 꾸며낸 몸짓 같지 않았다. 구경꾼들이 지루하고 하품을 할 때쯤 박수를 유도해서 분위기를 일신시켜 노래자랑에 생기를 넣어주는 일이 산전수전 다 겪으며 사회를 배운 재담꾼 같았다.
사회자의 호명에 따라 각설이 하나가 올라왔다. 각설이는 다 낡은 벙거지 모자를 쓰고 걸레 같은 옷을 걸치고 깡통을 차고 나왔다.
먹칠을 한 잇빨 하나가 멀리서 보면 꼭 빠진 것 같아 쳐다만 봐도 웃음이 나왔다. 벙거지를 확 벗기자 그는 다름 아닌 머리를 단정하게 빗어 넘긴 중년 사내였다.
구경꾼들은 배꼽을 잡고 웃었다. 객석 뒤쪽에서는 뭐시 아빠하며 손을 흔드는 사람도 있었다. 각설이 분장을 했던 중년 사내는 흘러간 유행가를 걸판지게 뽑고는 무대를 내려갔다. 다음번에는 한복을 빼 입은 아주머니 한분이 올라왔다.
“어서 오세요, 아주머님, 불편하기 한복을 빼입고 나오셨는데 불편하지 않으세요”
“불편하기는요. 노래 자랑한다고 해서 한불 빼입고 나왔시유”
그러더니 아주머니는 양 손을 얌전히 오므리고 무릎을 꿇고 큰절을 올렸다.
“무슨 노래 해주실래요”
“달 타령 할 게유”
무대에 올라온 몇 사람이 노래를 뽑고 나자 조금 후에 수상자가 결정되었다. 하도 오래된 일이라 어느 동네 누가 결정되었는지는 감이 잡히지 않지만 하여튼 꽃다발을 든 채 두 손을 번쩍 들고 웃던 그 모습은 아직도 선명하게 머릿속에 박혀있었다.
그렇게 해서 노래자랑이 끝이 났다. 땅이 비좁도록 빽빽하게 모인 사람들이 바람결에 흩어지듯 빠져나갔다. 그래도 보름달은 중천에 높게 떠서 흩어지는 사람들의 발길을 비춰주었다. 동네 사람들도 토리 아버지 경운기로 올라왔다. 밤은 이슥해 자정 쯤 되었다. 달빛은 더 짙어 보였다. 중천에 더 오른 달은 공해 한 점 묻지 않는 은행잎 같은 빛을 마구 지상에 뿜어댔다.
경운기가 출발하자 모두들 몸을 웅크렸다. 초가을의 밤바람은 너무나 차가웠다. 깜빡깜빡 조는 별처럼 사람들의 눈빛도 힘이 없었다. 눈꺼풀이 무너지고 졸음이 몰려들었다. 돼지새끼처럼 웅크리고 있는 사람들은 경운기 바퀴가 돌부리에 걸려 울렁거려도 끽 소리도 하지 않았다. 엎어져서 졸거나 달이 내려주는 비포장도로의 달빛 냄새에 숨이 막혀 꼼짝도 하지 않았다. 이제 참나무냄새나 더덕 냄새는 하나 나지 않고 오직 달빛 냄새만 내 옷에 달라붙어 을씨년스런 서정 한가락씩 뽑아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