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이산에서 옥계폭포를 가슴에 품다
충북 영동의 월이산을 향해 달린다. 30도가 넘는 무더위가 며칠 동안이나 숨통을 쥐어짜는데도 일행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목적지로 향한다.
“달이 떠오르는 산”이란 이름을 가진 월이산은 옥계 폭포를 떠받치고 있는 산이다. 월이산 정상으로 오르는 길은 급격히 비탈지고 산길이 험해 산행하는 데 고역이지만 울창하게 뒤덮인 솔숲을 걷는 고즈넉한 기분으로 산꾼들이 많이 찾는다. 어느 산인들 달이 떠오르지 않는 산이 없을까마는 특히 월이산은 어둠에 물든 산자락을 환한 달빛이 휘감을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인근 계곡을 찾아 열기에 지친 가슴을 식히려다가 빛바랜 낮달이라도 볼 겸해서 무작정 월이산을 찾았다.
더블클릭을 하시면 이미지를 수정할 수 있습니다
옥계폭포 입구에는 피리를 불며 길손을 맞는 박연을 형상화한 조형물이 서있다
칡넝쿨 사이에서 불쑥불쑥 얼굴을 내민 칡꽃
옥계폭포 옆에 새로 지은 정자가 보인다
월이산 산행은 옥계 폭포가 출발점이다. 대전과 영동간의 4번 국도변에 맞닿아있는 옥계리가 옥계 폭포로 들어가는 길목이다.
옥계리를 거쳐 천국사 주차장에 차를 세워 놓고 옥계저수지를 휘감아 오르는 길은 붉게 꽃물을 들인 칡꽃들로 지천이다. 헝클어진 칡넝쿨 사이에서 불쑥불쑥 얼굴을 내민 칡꽃이 청초하기 이를 데 없다. 한여름 열기에도 벌들은 쉴 새 없이 칡꽃에 달라붙어 잉잉거린다. 산자락을 타고 올라 숲을 망치고 나무들을 휘감아 질식시키면서도 가슴 한켠에는 예쁜 꽃을 피우는 절절한 사랑이 녹아있다니 이 얼마나 모순된 사랑인가.
박연이 피리를 불며 맞아주는 옥계폭포
벌들의 날개 터는 소리를 가슴에 담고 조금 올라갔더니 피리를 부는 박연을 형상화한 조형물이 일행들을 맞는다. 두둥실 떠오른 달을 배경으로 구름위에 다리를 꼬고 앉아 피리를 부는 박연의 모습은 마치 신선을 방불케 한다. 구슬픈 피리 소리에 취해 달을 스치며 날아가는 기러기 떼의 행렬은 내 어깨춤마저 들썩이게 한다. 그만큼 박연은 옥계폭포와 인연이 깊다.
마타리
어린 모가 자라는 농촌 들녘
영동이 고향인 박연은 세조 2년(1456년) 3남 계우가 단종 복위사건에 연루된 탓에 관복을 벗고 81세로 세상을 등질 때까지 옥계폭포에서 대금과 가야금을 연주하며 세월을 보냈다. 박연이 악기를 연주할 때는 산속에서 금수들이 그 소리를 듣고 찾아와 덩실덩실 춤을 추고 돌아갔다는 믿지 못할 전설이 내려오고 있다. 박연의 호 난계도 이 폭포에서 자생하는 난에 매료되어 지었다고 한다.
그러나 날을 잘못 잡은 탓일까. 계속되는 가뭄으로 옥계 폭포의 물줄기는 바싹 말라있다. 20여 미터의 절벽은 주변 산세와 어우러져 장관을 연출하지만 질금거리며 떨어지는 물줄기는 옥계 폭포의 명성을 날려버릴 정도로 안타까움을 더한다.
고풍스런 정자도 새로 짓고 폭포 아래 소(물웅덩이)를 있는 아취형 다리도 생겨났지만 웬일인지 옛 정취를 잃어가고 있는 느낌마저 든다. 자연은 그대로 나둬야 제 맛이 나는 법이다. 관광객들의 편의를 휘해 덧씌우는 인공의 손길이 자연에게는 폭력이 되고 상처가 된다는 사실을 왜 모를까.
금불초
심한 가뭄으로 물줄기가 말라붙은 옥계 폭포
월이산 정상 못 미쳐 능선위에 있는 8각정
아쉬운 마음을 접고 정자 옆 산길을 타고 오른다. 거대한 배관이 비탈진 산길을 따라 한없이 연결되다가 길손고개 아래 낭떠러지 아래로 방향을 튼다. 알고 보니 옥계 폭포를 위해 만들어진 시설물이다. 심한 가뭄 때문에 골짝에서 내려오는 물이 줄어들 것에 대비해 옥계저수지에서 가압펌프로 물을 끌어올려 폭포로 내려 보내는 방식이다.
길손 고개에 도열해 있던 장승들의 모습은 이제 보이지 않는다. 3년 전 그때 이곳에 왔을 때 장승들이 해학적인 얼굴로 길손들을 맞이하던 자리에는 정적만이 감돌고 있다.
월이산을 떠받친 마곡리, 펼쳐지는 농촌 들녘
계곡의 나무다리를 건너 산길을 타고 조금 오르면 이정표가 나타난다. 일지명상센터로 빠지는 길을 외면하고 오른쪽 산길로 오른다. 울창한 솔숲에 묻혀있는 산길은 걷기에는 꽤나 힘이 드는 코스다. 숲속이지만 땡볕이 뿜어대는 열기가 일행들의 숨을 꽉꽉 막히게 한다.
중간에서 두 번 정도 쉬며 막걸리로 목을 축이며 꾸역꾸역 오르자 돌탑을 배경으로 8각정이 눈앞에 나타난다. 팔각정에는 산꾼들이 들어앉아 북적거린다. 사방이 확 틔어 주변의 풍광이 시원스레 펼쳐진다. 푸른 들녘을 휘감아 돌아가는 초강천이 햇살에 물비늘을 털며 유유히 흐르고 저 멀리에는 중첩된 산을 어렴풋이 감싼 산그리메가 아련한 그리움으로 다가온다.
천화원 담벽을 타고 오르는 담쟁이넝쿨
푸른 들녘을 휘감고 유유히 흐르는 초강천
마곡리의 낡은 집과 담배건조실
8각정 정자에서 부터는 완만한 산길이다. 높고 낮은 봉우리를 몇 번 오르내리자 울산 박씨 묘소와 헬기장이 있는 월이산 정상에 닿는다. 달이 떠오른다는 월이산, 월이 총각과 일향 처녀와의 애틋한 사랑이 숨 쉬고 있는 월이산, 월이를 사모하던 일향이 집안의 반대에 부딪혀 소나무에 목을 매 자결하자 월이도 함께 죽었다는 전설을 품고 있는 월이산, 그 월이산에서 아래를 굽어보니 확 트인 조망이 속을 시원하게 한다.
조금 더 걸어가면 갈림길이다. 직진을 하면 천모산 가는 방향이고 왼쪽 방향은 마을로 내려가는 길이다. 일행들이 여기에서 잠시 설왕설레가 있었다. 어느 쪽 방향이 정상적인 산행 코스인지 감이 잡히지 않은 탓이다. 일단 마을로 내려가는 방향에 점을 찍어 놓고선 산길에 도시락을 펼쳐놓고 때 이른 점심을 먹는다.
지칭개
마곡리 정자 앞에는 활짝 꽃을 피운 배롱나무가 있다
푸른 들녘이 펼쳐지는 저 아래에 천화원이 보인다
하산을 하니 월이산 깊은 오지에 둥지를 틀고 있는 마곡리가 일행들을 반겨준다. 십여 채의 집들은 오랜 세월이 휩쓸고 지나간 흔적으로 낡고 누추한 몰골이고 간간히 눈에 띄는 담배 건조실이 고향을 생각나게 한다.
어릴 적 내 고향에는 담배 건조실이 많았다. 건조실 안에 담배잎을 매달아 놓고 바깥에서 불을 지펴 그 열기로 담배잎을 건조시켰다. 담배잎이 꾸들꾸들 말라갈 때는 구수한 담배 향기가 마을 골목을 따라 퍼지곤했다.
마을 한 가운데로 뚫린 골목길에는 땡땡한 열매를 매단 호두나무가 드문드문 보이고 노거수의 그늘을 깔고 앉은 정자 옆에는 새끼를 감싼 돌조각이 보인다.
보나마나 민간 신앙처럼 보인다. 마곡리에는 아직도 마을의 수호신인 산신에게 재를 지내는 풍습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오지에 갇힌 마을의 특성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아직도 산신제를 지낸다는 사실이 신기하기까지 하다. 박연의 어머니 묘소가 이곳에 있어 박연 또한 이 마을과 인연이 깊다. 박연이 대금을 불며 호랑이와 함께 시묘살이를 했다는 그 묘소다.
"참나"를 찾기위해 천화원을 둘러보고 싶었지만
마곡리에서 들녘길을 죽 타고 내려가면 일지명상센터가 자리 잡은 천화원에 닿는다. 마곡리와 천화원 사이에는 한가로운 농촌 들녘이 펼쳐진다. 마을을 빠져 나와 넓게 펼쳐진 들녘을 보니 답답했던 속이 뻥 뚫리는 기분이다.
땡볕이 쏟아지는데도 들녘길을 걷는 기분은 남다르다. 언제 이런 들녘길을 걸어본 적이 있었던가. 어린 시절 농촌을 떠나온 후 도회의 환경에 젖어 산 체질로서는 모처럼 걷는 들녘길이 반갑기 그지없다.
짚신나물
허리가 구부러진 소나무를 받침대가 받치고 서있다
들녘길 양옆으로 다닥다닥 붙어있는 다랑논과 밭에서는 어린모와 작물들이 한창 여물어가는 소리가 들려온다. 들길에는 야생화들도 지천이다. 며느리밥풀꽃과 마타리, 금불초, 엉겅퀴, 지칭개, 짚신나물, 층층이꽃이 제 모양대로 빛깔대로 모여앉아 들녘을 아름답게 수놓고 있다. 쳐다보기도 아까울 정도로 앙증맞다.
호판공 묘소라고 쓰인 화강암 비석을 지나자 천화원이 눈앞이다. 붉은 꽃이 이글거리는 배롱나무를 배경으로 서있는 아담한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여기가 자연 명상을 즐기며 참나를 찾아가는 사람들이 수행을 하는 천화원이다.
천화원은 뇌 교육의 창시자인 일지 이승헌 박사가 “홍익인간, 이화세계”를 만들기 위해 만든 일지명상센터다. 참나를 찾기 위해 천화원을 한 바퀴 돌아볼까 생각하다 곧장 아래로 발길을 돌린다. 계곡 아랫녘에서 어렴풋이 탁족을 즐기며 노는 일행들의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이 계곡 끝에는 옥계폭포가 있다. 한참동안 탁족을 즐기다가 옥계 폭포에 도착한 시간은 2시, 옥계폭포를 출발점으로 월이산, 마곡리, 천화원을 거쳐 옥계폭포로 회귀하는데 거의 3시간이 걸렸다.
며느리밥풀꽃
배롱나무가 붉게 타오르는 천화원 건물
다시 한 번 옥계폭포 앞에 서 본다. 일행 중의 한명이 나에게 슬며시 말을 걸어온다.
“옥계폭포에 이런 전설이 전해 온다지요, 혹시 알고 있나요”
모른다고 고개를 가로 젓자 차분한 목소리로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는다
“옥계폭포가 음폭 즉 여자폭포라고 하네요. 모양이 그렇게 생겼잖아요. 그런데 폭포 아래 물웅덩이에 불쑥 바위 하나가 솟아올랐는데 사람들이 경관을 해친다고 다른 곳으로 옮겼다나요, 그때부터 회괘한 일들이 벌어졌지요, 마을 사람들이 죽거나 다치는 일들이 많았지요, 그래서 사람들이 다시 그 바위를 원래의 자리에 옮겨놓은 후에는 일상처럼 평온을 되찾았다지요”
옥계폭포가 절경이었던 그 당시에는 그럴 수도 있겠구나 생각하며 “난”이라는 자작시 한 수를 풀어놓는다.
벚꽃잎에 휘날려 떨어지는 폭포수가 보고 싶구나
우렁찬 물소리에 무지개로 퍼지는 물보라,
그 영롱한 가슴에 스며들어 피리를 불고 싶구나
산새와 짐승도 찾아와 훨훨 춤을 추고 놀았다는 아찔한 절벽아래
새로이 눈뜬 난의 그림자가 그립구나
눈물처럼 이슬 떨치고 사라진 난이 다시 절벽으로 찾아와
고운 꽃 피울 때까지 폭포에서 피리 불며 살고 싶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