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01. 11.
설날이나 추석이면 차례에 쓸 놋그릇을 반짝거리게 닦느라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실수로 옹기나 유리그릇을 떨어뜨려 박살내는 일도 흔했다. 먼 과거 일이 아니다. 지금은 광 낼 필요도, 깨뜨릴 걱정도 없고, 더군다나 무겁지도 않은 플라스틱 그릇이 우리 식탁을 점령했다. 내구성이 강해 한번 쓰기 시작하면 싫증이 나서 버리면 버렸지, 못쓰게 돼 버리지는 않는다. 그릇뿐만이 아니다. 우리 주변을 둘러보면 플라스틱이 없는 곳이 없다.
플라스틱은 우리 생활을 편하게 해주었다. 그러나 편리함을 담보로 심각한 환경문제가 생겨났다. 플라스틱은 인공적으로 만든 것이라, 미생물에 의해 자연 분해가 안 된다. 썩지 않고 그대로 남아있다 보니, 환경오염 문제가 생긴다. 무심코 버린 플라스틱 낚싯줄은 600년이나 간다고 한다. 만약 고려시대에 플라스틱이 있었다면 그때 버린 쓰레기가 아직도 남아있는 셈이다. 미래를 보자. 우리가 버린 낚싯줄은 서기 2600년이 지나도 남아있다. 600년 뒤에도 해양생물이 지금 버려진 낚싯줄에 목숨을 잃을 수 있다.
이런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그동안 많은 연구가 있었다. 미생물에 의해 분해되는 생분해성 플라스틱이 개발되기도 했다. 녹말처럼 분해가 가능한 물질을 섞어 시간이 흐르면 잘게 부서지도록 만든 플라스틱 봉지가 그 예다. 분해되는 것처럼 보여도 플라스틱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작아져 눈에 잘 띄지 않을 뿐이다. 크기가 아주 작은 미세플라스틱은 오히려 더욱 심각한 환경 문제를 일으킨다. 요즘 치약이나 각질제거제 등에 들어있는 미세플라스틱 알갱이가 일으키는 오염에 사회적인 관심이 부쩍 높아졌다.
얼마 전 우리나라 연구팀이 해조류에서 환경 친화적인 바이오플라스틱을 만드는 기술을 개발했다는 뉴스가 있었다. 녹조류나 미세조류에서 얻는 지방과 지방산을 원료로 플라스틱 제조에 사용되는 증쇄 카복실산을 만든 것이다. 이 물질은 자연에 없는 물질로 섭씨 200~300도 고온에서 독성물질을 이용해 만들기 때문에 제조 과정이 위험하고, 환경에도 악영향을 미친다는 단점이 있었다. 기술은 개발됐지만 실용화하려면 생산 단가를 낮춰야 하는 문제가 남는다. 우리가 사용하는 플라스틱은 석유와 같은 화석연료를 기반으로 만들어진다. 그러나 바이오플라스틱은 재생 가능한 생물 소재로 만들어진다. 생물이 가지고 있는 물질로 만들기에 플라스틱이라도 세균에 의해 분해돼 친환경적이다.
우리는 예로부터 바닷말(해조류)을 식용으로 해왔다. 해조(海藻)라 하면 바닷새 해조(海鳥)와 바닷물의 흐름 해조(海潮)와 헷갈리기 쉽다. 해조류를 우리말인 바닷말로 사용하는 것이 좋겠다. 산모는 아기를 낳고 미역국부터 먹는다. 참기름 바르고 소금 뿌려 구운 김은 맛이 최고다. 김을 보고 ‘검은 종이’라고 하던 서양 사람들도 좋아하게 됐다. 다시마튀각, 파래무침, 매생이국도 낯설지 않다. 뿐만 아니다. 바닷말에서 추출한 알긴산, 카라지난, 한천 등은 산업적으로 다양하게 활용된다. 우리가 모르고 사용해서 그렇지 식품, 의약품, 화장품, 치약 등에 바닷말이 들어있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매일 바닷말을 만나고 있다.
우리 조상은 바닷말을 이처럼 지혜롭게 이용할 줄 알았다. 서양에서는 바닷말을 바다의 잡초란 뜻으로 ‘시위드’(seaweed)라 한다. 이름에서 바닷말을 보는 서양인들의 시선을 알 수 있다. 바닷말을 바다에서 나는 쓸모없는 잡초로 여겨왔다. 지금은 바닷말을 더 다양하게 활용한다. 미세조류로부터 바이오디젤이나 바이오에탄올을 만들어 연료로 사용한다. 하찮게 보이는 바닷말이 자동차를 움직인다. 그뿐인가. 바닷말은 종이로도 다시 태어난다. 이렇게 효용가치가 높은 바닷말은 더 이상 바다의 잡초가 아니다. 서양에서도 이제는 바다의 채소라고 부른다. 바닷말이 친환경 플라스틱의 원료로 사용되면 더욱 귀한 대접을 받을 것이다.
김웅서 / 한국해양과학기술원 책임연구원·한국해양학회장
세계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