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09. 10.
지난 9월 7일 삼성과 LG의 잠실경기가 끝난 뒤 한 LG 팬이 구장을 나서던 삼성 투수 배영수의 뒷머리를 때리는 돌발 사건이 벌어졌다. 8일에는 LG 외국인 선발투수 레다메스 리즈가 던진 공이 삼성 배영섭의 헬멧에 맞고, 뒤이어 박석민의 몸도 맞혀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리즈의 제구력이 썩 정교하지 못한 것을 감안할 때, 특정 선수를 겨냥한 빈볼로 단정 짓기는 뭣했지만 1위 자리를 놓고 첨예하게 맞서있는 양 팀 간의 경기여서 여러 해석을 낳게 했다.
더욱이 배영섭이 구급차에 실려 병원으로 긴급 후송된 다음 리즈가 세 타자를 거푸 삼진으로 처리한 다음 격정적인 세리머니를 펼쳐 입길에 올랐다. 리즈의 빈볼 시비는 정삼흠의 예전 빈볼 소동을 연상케 한다.
LG와 삼성은 올 시즌 가장 강력한 라이벌 구도를 형성하고 있다. 물론 후반기 들어 선두다툼을 벌이고 있는데 따른 자연스런 흐름이기도하다. LG와 삼성의 라이벌 의식의 뿌리는 깊다. 근년엔 LG가 삼성 선수 출신 지도자의 영입을 시도했다가 구단 고위층의 반대로 무산된 일도 있었을 정도다.
1990년, 프로야구 원년(1982년) 4할 타자인 백인천 감독을 모셔온 LG는 한국시리즈에서 삼성을 4연승으로 물리치고 창단 첫해 우승의 기쁨을 누렸다. 삼성은 시즌 뒤 정동진 감독을 퇴진시키고 김성근 감독을 영입, 1991시즌을 맞았다. 삼성의 LG에 대한 ‘질시’는 그 때부터 시작됐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그해 7월 9일부터 삼성과 LG가 잠실에서 시즌 10~12차전을 가졌다. 7월 10일, LG는 선발로 정삼흠을 내세웠다. 2-5로 LG가 뒤지고 있던 9회 초 2사 후 삼성 8번 타자 강종필의 타석 때 볼카운트 1스트라이크에서 정삼흠이 공 두 개를 연달아 강종필의 몸 쪽으로 던졌다. 박찬황 주심은 즉각 퇴장을 선언했다.
이튿날, 한국야구위원회(KBO)는 상벌위원회를 열고 ‘정삼흠의 투구에 고의성이 강하게 들어 있다’고 판단, 제재금 50만 원, 10게임 출장정지의 중징계를 내렸다. 이 징계는 1990년 6월 5일 OB 김진규가 삼성 강기웅에게 빈볼을 던져 난투극을 유발, 벌금 100만 원과 출장정지 10게임에 이은 무거운 벌이었다.
▲ 1991년 7월 11일, 백인천 감독(맨 오른쪽)을 비롯한 LG 선수단이 잠실구장에서 그 전날 일어났던 정삼흠의 빈볼 소동과 관련, 팬들에게 모자를 벗고 마리를 숙여 사과 인사를 하고 있다. / 제공=일간스포츠
7월 11일 LG 구단은 삼성과의 잠실 경기에 앞서 백인천 감독을 비롯한 선수단이 그라운드에 나가 모자를 벗고 팬들에게 사과의 인사를 했고, 삼성 선수들과 화해의 악수를 나누었다.
징계 당사자였던 정삼흠은 20년이 훌쩍 지난 현 시점에서 당시 KBO의 그 같은 징계에 대해 억울하다고 극구 항변했다.
정삼흠은 “강종필은 서로 식사도 하고 잘 아는 후배였는데 굳이 맞힐 필요가 없었다. 빈볼이 아니고 포크볼을 던졌는데, 비디오 상으로도 공을 손에 낀 장면을 볼 수 있다. 박찬황 주심이 느닷없이 퇴장을 선언해 강하게 항의한 기억이 난다”면서 “KBO는 당사자들의 말은 전혀 들어보지도 않고 그저 심판 얘기만 듣고 마음대로 그런 징계를 내렸다. 잘못됐다. 더욱이 선발투수를 10게임이나 징계를 내린 것은. 그 때 구단 기록지를 보면 볼 빠르기가 120킬로미터밖에 안 됐을 것이다. 140도 안 되는데 빈볼이라고 할 수 있겠나. (KBO가 징계를 하려면) 비디오를 보고 정확하게 판단을 해야 하는데 책상 징계를 내렸다.”고 주장했다.
LG 에이스 투수였던 정삼흠은 “나는 맞히는 선수는 정확하게 맞히지 그렇게 던지지 않는다. 맞히려고 마음먹으면 거의 맞힌다.”면서 사례까지 들어 설명했다.
“OB(두산) 투수들이 우리 팀 유지현을 자꾸 맞혀서 내가 일부러 OB 김상호를 맞힌 적도 있다. 빙그레(한화)의 이중화는 볼카운트 3-2에서 치러 나오다가 손목에 공을 맞아 골절상을 당한 일도 있었다. 몸 쪽 공은 치려고 하다보면 몸에 맞는 수가 많다. 리즈의 경우 워낙 컨트롤이 들쑥날쑥한 투수이기 때문에 머리를 향해 일부러 공을 던지기 쉽지 않을 것이다. 배영섭이 칠 의사가 강했기 때문에 그런 것이지. 타자들은 다 안다. 상대 투수가 의도적으로 맞히려고 하는지를.”
당시 사령탑이었던 백인천 전 감독이 기억을 더듬어가며 “(삼성이 1990년 한국시리즈에서 4연패를 당해) 그전부터 쌓인 게 있었을 것이다. 아마 삼성 벤치에서 야유를 했을 것이다. 보복이라면 뭣하지만, 정삼흠이 열이 좀 많은 투수인데 던진 적이 있다. 순간적인 선수의 행동이기 때문에 감독이 말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면서 “빈볼은 위협적으로 던지는 경우와 대놓고 까버리는 경우가 있다. 그래놓고 후회하는 투수들도 있다. 내가 일본에 있을 때는 기술적으로 미묘하게 던지는 투수들이 많았다. 일부러 던지지 않았던 척하지만, 의식적으로 한 냄새가 났다.”고 돌아봤다.
정삼흠은 백인천 전 감독의 그 같은 회고에 대해 강하게 부정했다. 다만 정삼흠은 “예전엔 삼성 타격코치였던 장효조 선배가 덕 아웃 앞에 나와 타자들에게 투수의 구질을 알려줘 예민하게 받아들였던 적은 있다. 그날도 그 문제 때문에 경기 중간에 내가 효조 선배한테 뭐라고 한 마디 했을 것이다.”면서 “열 받아서 그랬을 것이다? 그건 아니다. 그 전해(1990년 한국시리즈를 말함) 삼성이 우리한테 당했고, 내가 삼성에 워낙 강했기 때문에 장효조 선배나 3루 코치였던 배대웅 선배가 타자들에게 구질을 자꾸 일러줬다. 워낙 오래돼서 확실치는 않지만 ‘그러면 선수들이 다칠 수 있다’고 말 한 것 같기는 하다.”고 길게 설명했다.
리즈의 탈삼진 세리머니와 관련, 정삼흠은 적극 옹호했다. “리즈의 세리머니는 과잉 제스처가 아니라고 본다. 1, 2위 다툼을 하고 있는 마당에 배영섭 건은 지나간 것이고, 그 후에 삼진을 뺏고 나서 그런 세리머니를 할 수도 있는 것이 아니겠나. 그렇다면 상대 타자가 홈런을 치면 세리머니를 안 하겠는가.”
2013시즌 LG와 삼성의 눈터지는 1위 경쟁의 구도가 아스라한 옛일도 떠올리게 만든다.
홍윤표 선임기자
자료출처 : OS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