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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의 씨앗
1. 도시생활
하루 종일 수학을 가르치다 보니 머리가 어질어질하고 목에서 단내가 난다.
돈을 벌기 전에 내가 쓰러질 모양이다.
매일 생맥주를 마시지 않으면 안 되고, 일상의 생활이 술로 마무리되는
하루하루가 이어지다 보니, 몸이 축축 늘어지고 정신까지 황폐해지기 시작하였습니다.
가끔씩 꿈에 나타나는 푸른 농촌의 고향이 그립기도 했습니다.
언젠가는 고향에 내려가겠다는 생각을 그려보았지요.
그러나 자신이 없었습니다.
남들은 ‘할 것 없으면 시골에 가서 농사나 짓지’라는 말들을 자주 하는데,
비록 과거의 일이기는 하지만, 내가 농촌에서 태어나 농촌에서 중학교를 나온 터라
우리 부모님의 농사경영을 통하여 농촌의 현실을 전혀 모르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지요.
한 여름 무더운 장마에 잡초를 뽑느라 얼마나 고생하는가?
땀 흘려 지은 농산물의 가격이 과잉생산으로 가격이 떨어져 밭에서 그대로 썩어갈 때
‘올해 농사는 망했다’라는 농민의 심정을 나는 잘 알고 있답니다.
그러나 도시 생활도 마찬가지였지요.
대학을 나와서 직장을 다니고 그럭저럭 결혼하여 아이를 낳고 기르면서
큰 목표 없이 나름대로 인생사를 걷는 답니다.
우리 아이들이 커가면서 아빠의 역할을 얘기할 때, 나는 무엇을 얘기해주지?
그런 저런 고민의 시간이 많아지기 시작하였다.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데... 나는 이름을 어떻게 남기지?
나이가 마흔이 되니 조급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생각하는 목표에 이뤄진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보다 뜻있는 일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보다 뜻있는 일을 통하여 나의 존재를 찾고 싶었습니다.
그러면서 사업성이 있는 사업 아이템을 찾았습니다.
그리고 나의 후손들에게 이름을 남길 수 있는 사업장을 마련하는 것이
나의 이름을 남기는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사실 귀농의 동기는 다른 데에 있었습니다.
수험생활에서 얻은 허약체질을 고치고자 건강과 관련된 책을 보기 시작하면서
내 몸을 치료하는 방법을 찾기 시작하였습니다.
자연에서 채취한 산야초를 끓여서 차로 만들어 먹고, 나물로 먹고,
분말로 만들어 환으로 먹으면서 내 몸은 빠르게 회복되었습니다.
그러던 중에 동생이 간염으로 시작하여 간경화에 이르고,
장모님이 당뇨합병증으로 실명을 하고 고통 속에서 숨을 거두시고,
인후두암 선고를 받고 항암치료를 받으며 고생하는 제수씨를 보며,
이런 분들에게는 오염이 안 된 자연식품과 스트레스를 받지 않게 하는 것이
유일한 해결방법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내가 도와드려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자연으로의 동화였습니다.
내 몸이 나아지면서 자연으로 돌아가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습니다(1997년)
이러한 나의 주변 경험이 귀농의 결심을 갖게 한 동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2. 귀농을 위한 준비, 벤처농업교육
제가 알고 있는 농업에서 성공하는 농업으로 변화되기 위해서는
열심히 일만해서는 안 될 것이란 생각에서 2002년부터 2003년까지
서울 소재 ‘농촌경제연구원’에서 교육을 실시하고 있는 벤처농업교육 강의를 들었습니다.
농업을 통해 나름의 성공을 거두고 있는 경험자들의 사례 발표를 때면
부러울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기억에 남는 강의로는 ‘유통을 잡아야 농업이 산다’라는
주제로 성공사례를 발표를 해주신 길덕한씨 강의였습니다.
발표교재 제목에 ‘정직한 머슴 이용하기’를 사람으로 한창 강의가 무르익어가는 중에
‘머슴’이 일하는 사람이 아니라 컴퓨터였다는 것을 알았답니다.
직접 경험한 홈페이지를 통한 판매방법, 불량 구매자 응대하기,
전화 받는 요령, 홈페이지 관리요령과 전자상거래의 장단점을 명쾌하게 설명해주었습니다.
특히 주부의 인터넷 이용률이 33%라는 수치까지 내세우는 것을 들으면서, 저는 생각했습니다.
이 분은 농업인이 아니다, 전문 꾼이다.
저 사람 정도는 돼야 농업으로 성공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더욱 가슴에 와 닿는 것은 “저는 저를 비롯한 저의 가족이 잘 먹고 잘살기 위해서 농사를 짓습니다.
농산물 제값을 못 받는 것은 유통이 문제다.
그 방법은 직거래비법!” 그래서 전자상거래를 생각하신 거라고 했습니다.
“그 의 문턱을 낮춰라. 일에 대한 프로 정신이 소비자를 끌어 모은다.
소비자는 물품을 받았을 때 이미 80%이상 평가 된다.
농어촌 체험학습 프로그램을 자체 개발하라.” 등등 지금도 저의 귀와 가슴에 생생하게 남아 있는
그 분의 강의 내용들이었습니다.
은평농원의 이종노 대표는 허브에 대한 전문 농업인이었습니다.
단지 꽃을 파는 화훼농사를 짓는 것이 아니라, 허브에 대한 전문적인 정보를 홈페이지를 통해
고객과 직접 공유를 하며, 향기 산업으로 발전시키고 있었습니다.
얼마 전에 농림식품부장관을 엮임 하셨던 정운천님의 강의는 농업이이라기 보다
유통인 내지는 사업인의 강의였습니다.
참다래나 고구마를 유통의 규모화로 성공한 케이스였습니다.
한 분 한 분 주옥같은 강의를 들을 때마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제가 일할 방향을 정리하기 시작했습니다.
성공사례를 들으면서 나름대로 분석하기도 했습니다.
농사일에 전문가가 되지 않으면 성공할 수 없겠구나!
흔한 얘기로 “회사 망하면 시골가서 농사나 짓지?”
이런 생각으로 농사를 한다면 농사짓는 일, 역시 망하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떤 날은 정부 지원금을 받아내는 요령(?)을 강의하는 날,
지적재산권에 관한 강의, 세제에 관한 강의들도 마련되어 농업으로 창업을 하는
나 같은 사람들에게는 꼭 맞는 교육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 중에서 친환경농업이 정부의 미래 농업정책임을 밝혀주는 강의도 있었고,
창업을 하는 농업인은 친환경농업으로 가야한다는 것이 강의실에서는 대세였습니다.
친환경농업이란 화학농약과 화학비료를 사용하지 않고
재배하는 농업이라는 것을 그 때 알았습니다.
교육 장소에 전시한 쌀겨제조기를 보고 쌀겨의 영양가치 대해서도 알게 되었고요.
지렁이를 이용한 폐기물활용에 대한 정보를 통하여 지렁이가 토양을 이롭게 하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또한 음식물쓰레기로 퇴비를 만드는 기계업체들도 알게 되었답니다.
농촌경제연구원에서 1년6개월간 이론교육 수료, 인천대학에서 정보화리더스교육 수료,
중소기업청에서 실시하는 벤처창업교실을 수료, 자연농업학교(충북 괴산)에서 1
43기 기본연찬을 수료하고, 현재까지도 농림부, 농촌진흥청, 농업기술센타에서 실시하는
농업관련 교육을 가능한 빠짐없이 받으려고 노력하였습니다.
3. 자연농업
2002년 8월5일 충북 괴산에 있는 자연농업연구소에서 5박6일 동안
자연농업에 대하여 강의를 받았습니다.
연찬회를 소개하면서 “본 회는 어떠한 기술을 가르치는 곳이 아닙니다.
농업을 하는 데 있어 철학적인 진리와 현실적인 방법을 탐구하고 서로의 이상을 합치시켜
진리를 실천하는 사회활동체입니다” 라는 내용을 시작으로, 자연의 이치와 인간세계의 이치를
대비시켜 욕심과 사리사욕의 인간세상을 자연으로 돌아오게 하여
이상사회 건설을 목적으로 한다는 내용의 강의가 시작되고,
자연농업의 원리는 한마디로 ‘自他不二一體(자타불이일체)의 원리’였습니다.
이것은 너와 나, 자연과 인간을 하나로 보는 원리로써, 구체적인 실천 4대원칙은 불경기(不耕起),
무화학비료,무화학농약, 무제초이었습니다.
‘인간이 갈아주지 않아도 미생물이나 소동물에 의하여 자연히 경운되어져 있다.
자연농업은 인위도 인지도 가하지 않은 자연 그대로에 묻혀 들어가
자연과 함께 싱싱하게 살아가고자 하는 농업으로 어디까지나 자연이 주체이고
자연이 알을 만들고 인간은 이것에 봉사하는 위치라고 합니다.
식물에 농약을 뿌려대는 것은 바로 나에게 농약을 뿌려대는 일이라는
강의에 몰입하게 되었습니다.
벼의 생리생태와 인간의 생리생태를 동일시하며 식사를 하루에 두 끼씩만 먹게 하는
특별한 체험을 하였습니다.
마지막으로 자연농법은 땅을 살리는 농법이라면서 다섯 가지 기본자재에 대한
원리와 만드는 방법의 강의였는데, 천혜녹즙, 한방영양제, 유산균, 토착미생물,
과실효소와 생선아미노산, 천연칼슘, 현미식초에 대하여 강의를 들었습니다.
비료의 3효소에 대한 역할을 제대로 알지 못했었는데,
그 대체영양제를 실제로 만들어 사용할 수 있다는
강의 내용에 5박6일은 강의내용 하나하나 놓치지 않으려고 몰입했었습니다.
그 이후로 농사뿐만 아니라 어떤 일을 하더라도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생기게 된 연유이기도 합니다.
실제로 자연농업을 실천하는 농가들을 찾아가 보기로 하고,
자연농업회원중인 한 분이 실천하고 있는 경기도에 소재하는 원삼농협을 찾아갔습니다.
오리농법을 위한 오리 입식방사의 행사에 서울을 비롯하여
전국 각지에서 소비자들을 초대하여 자연농법을 시행하는 것을 보여주고,
농가에서 만든 천혜녹즙, 한방영양제를 선뵈기도 하였습니다.
오리농법의 쌀이 그렇게 인기가 많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홍성의 풀무농업학교를 통해 알게 된 홍동에서 오리농법을 실시하고 있는 작목반을 찾았습니다.
지금은 전국적으로 유명인이 되신 주형로님께서 회장을 맡고 계셨습니다.
구체적으로 오리를 구입과정, 그물망을 설치하는 방법, 모이를 주는 방법 등등
구체적으로 오리농법의 실천방법을 3시간여 동안 개인교습(?)을 받았습니다.
그 때 주형로님이 당부하기를 “꼭 성공하십시오! 4년제 대학 나온 분들이
귀농해서 성공해야 귀농인이 많아집니다.
‘할 것 없으면 농사나 짓지’라고 하는 일반 인식을 깨뜨려야 합니다.”
원삼농협이나 홍동농협은 오리농법쌀을 전량 수매를 하고 있고,
농협 주도로 움직이고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서산기술센타의 친환경농업연구회에 가입하여 친환경농업, 자연농업,
유기농업의 정보를 수집하고 현장을 찾아다니며 배웠습니다.
4. 2002년 시골마을 입주
농업과 관련하여 어느 정도 지식이 쌓아졌다고 판단되어 사업계획서를 만들어보았습니다.
사업계획서의 큰 그림은 (생산-가공-판매-유통형성-관광레져)
내가 보기에도 그럴 듯하게 보였습니다.
2002.11. 충남 서산에 농토 4600평을 구입하고,
조립식으로 40평 규모의 조립식 집을 지었습니다.
우리 동네는 80여 가구인데 모두 농업을 하시며 80%가 60대였습니다.
입주식에 이장님을 비롯하여 동네 어른들을 모시고 식사대접을 했습니다.
그 이후 마을 행사에는 꼭 참여하여 인사를 나눠 눈도장을 꼭 찍었습니다.
그러나 가까운 친인척, 동네 어른들의 자연농업에 대한 오해였습니다.
‘공부만 하던 네가 농사를 한 번도 지어보지 않은 놈이 어떻게 자연농업을 한다는 거냐?
농약이 없이 어떻게 농사가 가능하냐?’라는 주위의 냉대와 질시는 나를 힘들게 하였습니다.
평생을 관행농법으로 농사지은 동네 어른들에게는 바뀔 수 없는
고정관념이 나를 외롭게 만들었습니다.
그래도 내가 성공하면 따라 주겠지(?)하는 생각을 갖고 배운 대로 연구하고 실천하였습니다.
자연농법을 실천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으로 특허출원을 하게 되었습니다(2002년)
자연농업학교에서 배운 토착미생물을 이용한 자연순환농법은 무항생제 사료제조,
농산부산물 퇴비제조, 산야초 발효액영양제 제조라는 특허를 얻는 결과가 되었습니다.
특허를 내려고 한 것은 개인적인 재산이지만 농산물 품질의 표준화를 위한 장기적인 생각에서
출원을 했던 것입니다.
여기에 기능성 쌀인 발아현미 제조 방법까지 특허를 얻었습니다.
나의 농사뿐만 아니라 주위 농사짓는 분들과 함께하기 위해서는
농산물의 품질이 균등해야 될 거라는 생각에서 출원하였습니다.
예를 들어 같은 품종의 쌀이라 해도 재배자의 생각, 토양의 성질, 퇴비의 질, 영양제,
수질 등에 따라 맛과 영양이 다를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두 번째 시련은 생산된 쌀, 마늘, 생강을 자연농법의 상품으로 판매를 할 수 없는 것에
주위 친척 분들에게 냉대를 받는 요인이 되었습니다.
현미를 도정해서 서울 인천에 가지고 갔지만 무농약쌀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었고,
또한 마늘, 생강은 현지 상인들에게 판매를 하지 않으면 판로가 없는 것이 막막하였습니다.
내가 스스로 판로를 개척하지 않으면 내 사업계획은 물거품이 된다는 절박감이
가슴을 억눌렀습니다.
선진 농업견학을 가서 본 곳들은 대부분 친환경농산물도 농협과 협력하여
판매가 이루어지고 있었지만, 내가 사는 곳은 친환경농업과는 거리가 먼 동네였습니다.
일부 몇몇 농가들이 친환경인증을 받고 있었지만 판로는 여전히 대책이 없는 상태였습니다.
2003년도에 생산한 자연농법의 농산물은 그렇게 일반 상인들한테 넘겼습니다.
아주 싼값에... 그 때 마침 농촌진흥청 지원사업으로 홈페이지를 개설하게 되었습니다.
5. 100% 직거래판매 개척
홈페이지를 만들어 판매를 하는데, 6개월간은 한 달에 10건도 못 팔았습니다.
홈페이지를 알려야하는 방법을 다시 생각해 보았습니다.
나름대로 생각한 것이 그 당시 경매 사이트 중 최고 인기가 있는 ‘옥션’을 비롯하여
오픈 경매사이트를 활용하는 방법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1000만 명 이상 가입하고 있는 옥션회원들을 끌어들여 저의 상품을 홍보하겠다는 계획을 갖고
옥션을 찾아갔습니다.
컴퓨터 전문가는 아니지만, 저의 상품에 대한 전문가는 바로 나이기 때문에
저의 상품에 대한 정보, 자랑거리들을 많이 올렸습니다.
물품사진을 찍어서 포토샵으로 예쁘게 단장하는 것에서부터 구매자의 응대방법,
구매자의 구매패턴, 구매시간 등등 마케팅의 실질적인 경험자들의 강의를 들으면서,
경매 사이트에서의 승부는 6개월 안에 승부가 난다는 얘기며 ,
전체 판매자의 5%만이 성공하고 있다는 옥션운영자의 얘기를 들었습니다.
전자상거래를 쉽게 볼 문제가 아님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전자상거래를 쉽게 생각한 저를 다시 컴퓨터 공부를 하게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컴퓨터 전문가로부터 ‘포토샵’개인지도를 받으며 옥션에서
식품으로 가장 많이 팔리고 있는‘한밭식품 미숫가루’를 벤치마킹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면서 가격비교에서 낮은 품목과 품질에서 우수한 품목으로 두 가지로 판매를 하면서
소비자의 심리를 파악하였습니다.
저에게도 하루에 3~5명의 고객들이 들어와 낮은 가격은 낮은 대로
좋은 품질은 그런 대로 구매를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저의 상품에는 저의 가족이야기, 농사를 짓는 모습, 제품의 성분이
우리 몸에 미치는 영향, 건강정보 올렸습니다.
어느 정도 옥션의 생리를 알게 된 뒤에 쌀을 본격 시판하였습니다.
옥션에서 최고의 파워셀러가 되고 한 달 매출이 평균 3~4천만 원에서 실적이 쌓이게 되면서
차별화된 쌀을 개발하게 되었습니다.
쌀의 영양성분은 95% 이상이 쌀눈에 있는데, 시중의 백미는 쌀눈이 거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어
‘쌀눈이 붙어 있는 백미’를 개발하였습니다.
인기판매자의 역할은 건강을 생각하는 제품을 개발하는 것도 소비자에 대한 보답이요.
책임이라 생각되었습니다.
도정기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지만 가정용 도정기 중고기계 10대를 구입하여 분해하고
용접하고 조립하여 ‘씨눈달린 백미’를 도정하는 새로운 기계를 만들어 냈습니다.
소비자를 위해서, 또한 저희 가족에게는 큰 보람이었습니다.
부가가치를 창출했을 뿐만 아니라 쌀에 대한 가치를 새롭게 인식시켰지요.
이제는 저의 농산물을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서산 김정규’를 파는 것이 되었습니다.
김정규의 사진이 바로 신뢰의 증명이 된 셈이지요.
6. 영농조합법인 설립
1차농산물 < 2차가공식품 < 3차서비스 산업으로 갈수록 부가가치가 높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입니다.
우리 농산물, 가공생산품, 서비스까지 이루어진다면 성공할 수 있을 거라는 짐작을
우리 농민들은 다들 해봄 직합니다.
최소의 비용으로 가공시설을 갖추기 위해 인터넷 중고시장을 뒤지고 검색하여
부산에서 분쇄기,칠곡에서 제환기, 서울에서 중탕기…….
직접 발품을 팔며 찾아가서 기계의 운용방법들을 익히고 실제로 운영하는
식품공장에 견학을 하여 기술을 익히고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설비를 준비하는 과정이 대략 1년 6개월 정도의 기간이 걸렸습니다.
농업은 혼자만의 사업이 아니라 공동체를 꾸려가는 과정인 것이지요.
친환경농업을 추구하는 5명이 2005.8.11 철새노는갯마을영농조합법인을 설립하고,
2007.12.24 김정규자연건강영농조합법인으로 변경하였습니다.
생산량이 많은 스페인산이나 중국산 품종을 대신하여 수확량이 떨어지더라도
기능성이 뛰어난 서산토종6쪽마늘을 친환경농법으로 재배하고, 가공, 판매하여
소득창출을 꾀하고 있습니다.
품질이 좋은 것은 1차 상품으로, 나머지는 홍마늘꿀엑기스, 홍마늘꿀환,
구운마늘환 등의 원료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또한 농산물의 판매량이 늘어감에 따라 친환경인증 농산물을 공급하는
농업인의 참여가 늘어가고 있습니다.
이제는 제조 가공을 넘어 판매마케팅에 주력해야할 시점에 다다랐습니다.
만나는 사람마다 저의 제품을 홍보하고 판매 마케팅 교육에 열심히 참여하여
배우며 실천하고 있습니다
홈페이지주소 www.6262nong.com 이나 또는 주소 창에 ‘62농마을’을 치고 들어오면
김정규자연건강을 만날 수 있습니다.
7. 미래는 준비하는 자의 것
2007년 이른 봄, 신성대학교 전통약재개발과 첫 강의실에
나이 든 학생들이 눈에 띄게 많았습니다.
한의학개론, 본초학, 약용식물학 …….등의 책들이 보이고, 그 중에 꽁지머리,
귀걸이를 한 학생도 끼어 있었습니다.
40대 후반의 나이를 잊고 20대의 열정으로 한의학 오행론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89년 인천대학을 졸업하고 17년 만에 07학번 두 번째 대학생활이 시작된 것이지요.
농업을 통하여 부를 창조하고 건강식품사업으로
도약을 위해서는 저의 지식에 한계를 느꼈습니다.
귀농을 위해서 농사와 관련하여 준비를 했지만, 실제로 농사를 지으며
새롭게 나타나는 문제점을 뛰어넘기에는 도전해야할 부분이 너무나 많았습니다.
농산물의 브랜드화는 건강식품의 특화를 의미하는 것이라 깨닫게 되었답니다.
건강식품을 위해서는 본초지식, 한의학, 섭생의 원리…….
혼자 공부하고 연구하기에는 시간이 많이 요구되어 대학에 다시 도전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전통약재개발과의 교과 내용은 한의학개론,한약재배배방법,본초학,생약학,독성학,
기능석식품 실습…….등 나에게 앞으로 하고 싶은 과목들이었습니다.
교수님들의 지식, 학생들의 발랄한 현실감각. 실용학문이 바로 이런 거구나!
새로운 사업아이템들이 무럭무럭 튀어 나오고,
함께 사업구상을 상상하는 시간도 갖게 되었습니다.
‘미래는 준비하는 자의 것이다’라는 말을 새삼 느끼게 있답니다.
도전은 희망의 씨앗이 아닌가요? 내가 농업에 종사하게 된 동기는 바로 이렇습니다.
신성대학 전통약재개발과에 진학하여 공부를 하며 잠시 나를 돌아보고 있습니다.
한약재를 탕제하고 기능성식품을 제조 실습을 하며 지식을 쌓고 있습니다.
한약이 특정한 질병을 치료한다면, 한약재를 식품으로 전환하여 누구나 먹을 수 있도록 하여
질병으로부터 예방을 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자연농법으로 재배한 농산물, 첨가물 없는 가공식품, 자연과 더불어 쉴 수 있는
공간을 아픈 사람들에게 주어진다면 많은 도움이 될 거라는 생각도 해봅니다.
나의 역할이 한 사람 두 사람 입으로 전파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때가 곧 돌아 올 거라는 확신을 가져봅니다.
오늘도 열심히 공부를 합니다.
동의보감, 방약합편...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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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건강할때 무엇이든 열심히 해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