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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카드뮴에 의한 이따이이따이병
-발병
1910년대 후반부터 일본 토야마현 주민들은 허리, 팔, 다리의 뼈마디가 아프다며 병원을 찾기 시작했다. 50년이 지나도록 어느 의사도 '원인불명' 이라는 말 외에는 시원한 답을 주지 못했다. 1968년 드디어 일본 정부는 '카드뮴에 의해 뼈 속 칼슘분이 녹아 신장장애와 골연화증이 일어난 것'이라고 공식발표했다.
- 원인
1968년 5월8일에 일본 후생성이 공해병으로 인정한 이 병은 1945년 일본의 도야마현 (부산현) 진쯔으천(신통천) 상류지역에 위치한 미쓰이금속 주식회사 광업소에서 선광,정련공정에서 배출된(버려진) 폐광석에 함유된 카드뮴(Cd)이 고원천을 통하여 신통천에 흘러 내려와 농작물 ,어패류,상수원을 오염시켜 이따이이따이병을 발생시켰다고 공식발표 했다. 증상은 카드뮴이 체내에 흡입되어서 신장의 기능이 나빠지고, 인체에 필요한 칼슘(Ca)과 인(P)을 체외로 배출하여 전신에 통증을 호소해 이따이이따이병(아프다 아프다) 이라 명명했다. 골연화증과 같은 병적인 골절이 수반됐으며 심한 경우는 얼굴에 경련이 일으키면서 사망하였다.
- 1982년 3월까지 70명 사망
2. 미나마따 병
1953년 일본 구마모또현 미나마타시의 지역 주민에게서 신경마비 증세가 나타나 조사한 결과 이 병이 메틸수은에 의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 유독물질은 신일본 질소공장이 메틸수은 화합물이 공장폐수에 포함되어 배출됨으로서 미나마타만 내의 어패류를 오염시키고 메틸수은이 체내에 농축된 어패류를 지역주민이 섭취하여 일어난 것으로 공식발표된 것으로 1982년 3월말 사망자 437명 발생된 사건
1964~1965년에는, 일본 니가타현[新潟縣] 아가노강[阿賀野川] 하류 연안에서도 제 2의 미나마타병이 발생하여 똑같은 희생자가 발생하였다. 이는 상류 60 km에 있는 공장에서 배출되는 메틸수은에 의한 것이었다. 그리고 종래에 단순한 뇌성소아마비로만 생각되던 어린이의 질환 중에서, 사실은 그것이 ‘태아성 미나마타병’이었다는 환자가 발견되었고, 증세가 잠복하여 표면에 나타나 있지 않은 ‘불현성 미나마타병’의 존재가 확인되어 다시 한번 세상을 놀라게 하였다. 이 병은 또 이른바 ‘미나마타 재판’이라 하여 공해병을 발생시킨 공장에 대한 공해병 환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도 많은 문제를 제기하였다.
중독증상은 손의 지각이상, 언어장애, 보행곤란 등이다.
3. PCB 오염
1968년 10월 이론 키큐슈시 카네미 창고주식회사에서 만든 PCB(Polychlorinated biphenyls)가 2,000~3,000ppm 오염된 식용유를 먹고 후쿠오카현을 중심으로 16부현의 913명이 중독증상을 일으킨 사고.
PCB오염의 중독증상은 피부염, 피부 조직의 비정상적인 색소 형성, 안구의 비정상적인 결막 손상, 눈꺼풀이 부풀어오르는증상 등으로 나타난다. PCB 성분이 발암성이라는 사실은 점차 확실해지고 있다. 간 작용, 내분비선, 면역, 신경장애를 일으켜서 성인의 생식 조직과 어린이들의 성장을 지연시킨다.
4. 낙동강 페놀 오염
두번에 걸쳐 일어난 낙동강 페놀오염 사건은 우리나라 대표적인 수질오염사건으로
1991년 3월 16일 구미공단 두산전자에서 페놀원액이 파손된 파이프를 통해 낙동강으로 유입되었으며 정수장에서는 페놀원액의 유입사실을 모르고 엽소투입량을 늘려 염소와 페놀이 반응하여 클로로페놀을 생성하여 악취가 심하게 발생하여 이 물을 마신 주민들은 두통과 구토 증세를 보였다.
2차 페놀오염은 두산전자가 다시 조업을 시작한지 5일만인 4월22일 발생하였다.
부실보수공사로 인해 페놀탱크 파이프 이음새 부분이 파열되어 페놀원액 1.3톤 가량이 낙동강으로 유입되어 대구, 부산지역에 식수공급이 중단되었다. 이 사고에 대해 피해보상을 요구한 신고건수는 1,958건에 액수는 24억 5천만원에 이르렀다. 이 중에는 임산부 8명이 자연유산, 임신중절 등으로 인한 정신적, 신체적 피해보상을 요구하기도 하였다.
중독 증상은 신경마비 이다.
5. 체르노빌 방사능 오염
1986년 4월 26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에서 가동중지 터빈을 시험하던 근무자가 안전수칙을 지키지 않아 원자로가 폭발하고 10일간 방사능물질이 유출되었다. 유출된 방사능물질은 암과 백혈병, 사산 및 기형아 발생을 유발하는 물질로서 사고지점으로부터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곳까지 이동함으로써 폴란드 국경을 거쳐 핀란드 남부, 노르웨이, 스웨덴에서도 검출되었다.
반감기가 30년인 세슘137 방사능이 누출되는 사고로 인해 3만명이 사망하고 어린이 61만명을 포함해 232만여명이 방사성에 노출되고 토양등 환경을 오염 시켰다.
핵 분열산물인 방사성물질에 의해 대기, 지표, 하천 등의 오염은 축산물, 수산물, 채소류 등 전반적의 식품안전성에 큰 문제가 되었다.
6. 태안 앞바다 원유 유출사고
12월 7일 오전 7시께 충남 태안군 만리포 북서방 5마일 해상에 정박 중인 15만t급 유조선 '허베이 스피리트호'를 삼성중공업 소속 해상크레인이 충돌했다. 이 사고로 1995년 여수에서 발생한 '씨프린스호' 원유유출 사고 당시 유출된 원유보다 2.5배나 많은 1만2547㎘가 바다로 흘러들었다. 서산 가로림만에서 태안 안면도까지 167㎞의 해안선이 기름에 오염됐으며 굴·바지락·김 양식장 5000여㏊,15개 해수욕장 59개 섬이 직접적인 피해를 입었다. 정부는 사고 직후 태안과 보령, 서천 등 인근 6개 시·군을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했다. 자원봉사자 수는 하루 평균 1만 여명, 2008.2.21.에 연인원 100만 명을 돌파, 방제작업을 벌였지만 이 지역 해양 생태계가 완전 복구되기까지 최소 10년 이상이 걸릴 것이라는 전망이다.
피해 규모를 국제유류오염보상기금(IOPC)은 3520억~4240억원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전문가들은 피해규모를 최대 3조원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다.
7. 런던 스모그 (대기오염사례)
1952년 12월 4일, 영국 런던의 날씨가 갑자기 추워지기 시작하였다. 흔히 초겨울 날씨가 그러하듯이 바람은 없고 기온역전 현상이 나타났으며 하늘은 구름으로 가려지고 안개가 짙게 지면을 덮었다. 구름과 안개로 인하여 태양 빛이 차단되어 낮에도 앞을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어두웠으며, 습도는 80%가 넘는 수준이었다.
기온은 급속히 떨어져 정오에 -1℃를 나타냄에 따라 도시 전역에서 연료 사용이 급속히 증가하였다. 당시 영국은 가정이나 산업체 등 모든 지역에서 자국에서 많이 생산되는 석탄을 연료로 사용하고 있었다. 석탄 사용으로 나오는 연기가 정제되지 않은 채 대기 중으로 배출되었고, 때마침 나타난 무풍현상과 기온역전으로 인하여 대기로 확산되지 못하고 지면에 정체하게 되었다.
배출된 연기와 짙은 안개가 합쳐져 스모그를 형성하였고, 특히 연기속에 있던 아황산가스는 황산안개로 변하였다. 그리고 이것은 런던 시민의 호흡기에 치명적인 영향을 주게 되었다. 이러한 현상은 12월 10일까지 1주일간 지속되었으며, 런던 시민은 호흡장애와 질식 등으로 사건 발생 후 첫 3주 동안에 4천여명이 사망하였다. 그 후, 만성 폐질환으로 8천명이 추가로 사망하여 총 1만 2천여명이 1주일 동안의 심한 대기오염 현상으로 인하여 생명을 잃었다. 이 사건이 일어난 1주일 동안 시민들은 런던을 떠나 다른 곳으로 피신하는 것 외에는 아무런 대책을 세울 수 없었으며, 기상변화에 의해 대기가 회복되기를 기다리는 것 이외에는 달리 방책이 없었다.
역사상 영국 런던은 안개와 석탄으로 인한 대기오염 피해 사례가 처음으로 보고된 곳이다.
8. 청색증
청색증(靑色症)은 질산성 질소가 많이 들어 있는 물이나 음식을 먹었을 때 생겨나는 병으로서 청색아증, 메트헤모글로 빈혈증, 블루 베이비병이라는 병명으로도 불리우고 있다. 물 속에 녹아 있는 질산성 질소가 체내에 흡수되면 혈액에 존재하는 헤모글로빈과 반응하여 헤모글로빈이 메트헤모글로빈으로 변화하게 된다. 따라서 헤모글로빈과 산소와의 결합력이 떨어져 입술, 손끝 및 파부가 파란색으로 변하는 증상을 나타내므로 청색증이란 이름이 붙여진 것이다.
이 병은 보통의 성인에게는 발병률이 매우 낮지만, 젖먹이 유아(乳兒)나 어린이게는 발병율이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체코슬로바키아에서는 1953년 1960년 사이에 115명의 어린이가 청색증에 걸려 이 중에서 8%의 어린이가 사망하였다. 사망한 어린들은 70-250mg/ℓ의 아주 높은 질산성 산소가 함유된 물에 우유를 타서 먹은 것으로 밝혀졌다.
우리 나라에서는 현재까지 이 병에 걸린 환자에 대한 공식적인 보고는 없지만 1993년 6월 청색증 증세를 보이는 환자에 대한 공식적인 보고는 없지만 1993년 6월 청색증 증세를 보이는 환자에 관한 내용이 신문에 보도된 사례는 있다(한겨례 신문, 1993. 6. 19). 신문보도에 의하면, 태어난지 10일된 갓난아이가 질산염이 275mg/ℓ(질산성 질소로는 62mg/ℓ)가 들어 있는 지하수에 우유를 타서 먹은 결과 청색증 증세를 보였다고 한다.
9. 온산병
10. 시화호 사건
시화호 개발사업은 1987년 6월 '국토확장과 해안지역의 물자원확보'라는 계획아래 화옹지구 개발사업의 일환으로 착수되었다. 경기도 안산-반월지구인근의 시화지구는 방조제건설로 내만 지역이 외해와 격리됨에 따라 56.5평방킬로미터에 달하는 호수가 형성되었다. 1994년 1월 시화호 물막이 공사가 완료하면서 더욱 오염이 심각해 졌고, 시화호를 건설할 당시에 계획했던 정화시설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수질오염이 심해지자 수질개선이라는 관점에서 오염된 시화호수를 해양으로 방류하기에 이르렀다.
결국 1996년 4월말경 무단방류하려던 것이 매스컴에 의해 보도되면서 시화호 사건이 사회문제로 확대되었다.
11. 매향리 공군 사격장 소음피해 (1998년 2월 28일)
경기도 화성군 우정면 매향리 '쿠니 사격장 미공군 폭음 피해 주민대책위원회'는 1998년 2월 28일 국가를 상대로 미군사격장에서 발생하는 폭음피해에 따른 주민 15명의 정신적 피해 보상으로 주민 1인당 100만원씩 1500만원의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서울민사지방법원에 제기하였다. 동 주민대책위원회는 1995년 6월말에도 수원지검에 피해배상을 청구한 바 있는데, 수원지검 국가배상심의위원회는 1995년 8월 5일 미국공군 쿠니사격장에서 발생한 주민피해에 대해 3억 5천만원의 배상금을 결정한 바 있다.
12. 러브운하사건(19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