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토장정 17 (2011.02.19)
16.3km (321.7km)
(충남 태안군 근흥면 안기리 - 남면 진산리 - 몽산포 해수욕장)
설 명절과 일본 출장으로 2월의 장정은 3번째 토요일 시작했다.
아침 일찍 모두 모여 서해안 고속도로를 이용해 서산 휴게소에서 명물 어리굴젓 백반으로 아침의 공복을 채우고
안기리에 도착하여 바로 출발이다.
바닷가로 바로 내려가 안기리 바닷가에 안겨본다.
신진도로 팔을 버리고 다른 한 팔은 몽산포 쪽으로 벌려서 갯벌을 안고 있는 안기리의 가장 안쪽 가슴팍으로 걸음을 옮긴다.
오늘은 바닷물이 가장 멀리 빠져 나간다는 사리인데 그 사리 중에서도 일 년 중 제일 멀리 나가는 날이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갯벌의 끝이 보이지도 않는다. 물이 멀리 나가니 바닷가 길도 많이 나와서 걷기가 편안하다.
돌로 석축을 쌓고 콘크리트로 둑길을 내놓았는데 걷기가 재미난다.
멀리 잘 보이지도 않는 갯벌에는 많은 사람들이 한 해에 한번이나 또는 두 번 정도 얼굴을 내보이는
자연산 홍합을 줍기 위해 쉼 없이 꼬물꼬물이다.
지난달 꽁꽁 얼어있던 갯벌의 수로도 졸졸 물소리를 내며 흐르고 바람은 차지만 햇볕은 따뜻하고
갯가 벗어놓은 신발들이 분주한 것이 봄이 오고 있음을 느낀다.
그렇게 안기리의 가슴에 도착하고 바닷길은 바로 진산리로 이어진다.
친구 S와 D는 이곳에서 차를 타고 특별임무를 수행하러 길을 떠나고 지원을 맡고 있던 친구 I가 차에서 내려 합류한다.
진산리 소나무 숲길 속 켜켜이 쌓여있는 솔잎 낙엽을 부드럽게 밟고 지나오니
아기자기 예쁘게 지어 놓은 펜션들이 서로 뽐내며 자리를 잡고 있다.
항상 받는 환영이라 이제는 좀 둔감하지만 동네 개들이 마을을 벗어 날 때까지 모두 환호를 보낸다.
다시 바닷가 길로 접어 잠시 걷다가 갯바위를 만나고 벌써 시장기가 슬슬 돌다보니 갯바위는 피하고 옆으로 난 길로 돌아간다.
야트막한 고갯길 아래에는 A4 용지 크기가 될까하는 간판에 “매점”이라 쓰여 있어 얼른 들어가
막걸리 한 통을 청하니 아직 영업을 안 한다고 한다. 그 소리에 모두 큰 실망을 하고 실망만큼 큰 허기를 느낀다.
마을을 이리 돌고 저리 살펴도 가게는 보이지 않고 덜커덩 세워놓은 “구제역 방역중. 외부인 출입금지” 푯말이 보인다.
순간 허기는 달아나고 걱정의 한 숨이 나온다.
장정을 하며 “우리도 구제역의 전달자가 될 수 있겠구나”라고 생각을 하며 이 푯말만 보면 긴장이 되고 한 숨이 나온다.
유난히 추웠던 올 겨울에 300만 마리가 넘는 소와 돼지를 느닷없이 땅에 묻었다.
그리고 조류독감으로 500만 마리의 생명이 역시 살처분 됐다.
인간에게 꼭 필요한 영양소를 공급하는 가축들이 인간의 욕심으로 죽어간 것 같아 마음이 계속 답답하다.
빨리 봄이 오고 날씨가 따뜻해져서 구제역과 조류독감 이야기가 나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직도 무사히 축사에 살아남아 곁눈질로 우리를 바라보는 소와 “이제는 지쳤어요.” 하며
고개만 돌려 우리를 바라보는 흰둥이 두 마리가 또 가슴을 아프게 한다.
잠시 걸어가니 엄청난 규모의 건축현장이 나온다. 유러피언 테마리조트 건설현장이다.
태안군 남면 몽산리에 150,000㎡(45,000평) 넓은 땅에 대규모 리조트 공사를 삼부토건에서 시공하고 있다.
몇 년 후면 이곳의 모습도 지금의 모습과는 너무 달라 질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달라지지 말기를 기대해 본다.
이정도 규모의 리조트면 고용인원도 많을 것이고 지금 이곳에 살고 있는 이 사람들이
그곳을 터전으로 또 살아갈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공사 현장이 끝날 무렵 바닷가 텃밭에서 봄을 준비하고 나오시는 할머니를 만났다.
나 : 어르신 말씀 좀 여쭐게요.
할머니 : (손에는 대나무로 짠 듯한 바구니와 호미를 들고 있다. 쳐다 볼 뿐 말씀이 없다)
나 : (다시) 말씀 좀 여쭐게요.
할머니 : 그래. (잠시) 뭐 유?
나 : (바닷가 갯바위를 가리키며) 이리로 가면 몽산포로 가나요?
할머니 : 몽산포유?
나 : 네
할머니 : (표정이 좀 밝아지며) 차 없시유?
나 : 네 저희가 걸어가는 중이거든요.
할머니 : (표정이 꼭 “우리 아들은 차 있는데...” 같다) 그리유
나 : 길이 있기는 있나요?
할머니 : 길도 없는 디. 워디로 가유. 물 들어오는 디
나 : 아니 그래도 걸어 갈 수는 있지 않나요.
할머니 : 그럼 가봐유. 저기께로 넘어가면 산으로 올라가는 길 있은께.
나 : 그래요. 감사합니다.
할머니 : (시답은 듯 대답도 없이 바다가로 총총 내려가신다)
벌써 가벼운 점심식사를 마치시고 텃밭을 지나 갯벌밭으로 가시는 중인가 보다.
멀어져 가는 할머니의 모습에 자꾸 픽픽 바람 빠지는 웃음이 나온다. 봄이 벌써 왔구나.
갯바위를 지나 잠시 가니 할머니 말씀데로 산으로 길이 있고 산을 올라 오니 도로가 나온다.
그냥 이 도로만 따라 가면 몽산포가 나온다. 이제는 담배도 떨어지고 물도 바닥나고 시간는 오후 2시를 지나고 있다.
이때 반가운 전화가 왔다. 특수임무를 마치고 복귀중이라는 친구들의 전화였다.
사실 친구 S와 D는 전국 보트 동아리의 회원이다. 게다가 S는 그 모임에 부시샵을 맡고 있는데 두 친구의 특수임무는 해적질(?)이었다. 표현이 좀 그렇지만 그 동아리에서 쓰고 있는 표현이니 그대로 해적질이라고 쓴다.
그 해적질이란 무엇이냐 하면 동아리 회원들이 보트를 타고 바다에 나가 무엇이든 그 때에 나오는 것을 잡아오면
포구에서 기다리다가 얻어오는 것을 말한다.
체면상 안 줄 수도 없을 모양이고 “그냥 조금만 주세요” 하는 소리에 잡아온 자기 몫을 뚝 띄어 주는가 보다.
오늘의 수확은 일년에 한 번이나 두 번 물 밖으로 모습을 보인다는 자연산 홍합이다.
“세 포대나 되니까. 삶아 먹고 가자.”라는 당당한 목소리가 전화에서 쩌렁쩌렁 울린다.
“그래 몽산포 해수욕장으로 가고 있는 중이니 거기로 와라” 우리도 걸음이 바빠진다.
몽산포항과 해수욕장의 갈림길인 몽산2리 회관을 막 지나치니 친구들이 상기된 얼굴로 차에서 내린다.
해적질이 뭐가 그리 자랑스러운지.....
다시 모두 차에 올라타고 몽산포 해수욕장으로 가서 바닷가 민박을 잡고 홍합을 꺼내 깨끗이 닦고
미리 준비해간 찜기에 물을 데우고 올려놓고 눈치 빠른 S는 소주도 몇 병, 맥주도 몇 병을 꺼내놓는다.
찜기에서는 슬슬 김이 오르고 지금까지 홍합이라고 굳게 믿었던 진주 담치와는 달라도 너무 다른
자연산 홍합이 “이제 뜨거워서 도저히 못 살겠네”하면 입을 쩍 벌리며 꽉 찬 속살을 내보인다.
맛있다. 삶지 않고 찌니 육즙이 빠져나가지 않아서인지 정말 맛있다.
아니 삶아도 일 년만에 뭍에 오른 혼합은 너무 맛있어서 누구도 한 마디 말이 없고 너무 조용해진다.
순식간에 한 포대를 다 먹어버리고 나니 비로소 술을 찾는다.
이제는 장정은 안중에도 없다. 그렇게 달고 담백한 홍합을 3시간 정도를 먹었나 보다.
정말 자랑스러운 해적질 만세.
정신을 차리고 조금만 더 걷자고 말 해봐도 이미 파장 분위기.
하지만 지난 번 장정부터 시작한 의사결정 방법인 “나이롱 뽕”을 시작하여 나와 D가 조금 장정을 더 하기로 하고
민박집 근처까지 걸어와 오늘의 장정을 마쳤다.
그리고 저녁도 홍합, 홍합라면으로 하고
우리 일토장정의 회장으로 친구 S, 총무로 I, 부회장은 후배J가, 감사는 D, 회계는 내가 맡기로
역시 “나이롱 뽕”으로 정하고 파도소리를 들으며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첫댓글 ㅋㅋㅋ.........
홍합해적질이 뭘매나 뻘쭘한거인디 (남이 고생한것을 뺏어오는건디......).............ㅠ.ㅠ;;;
"해적질이 뭐가 그리 자랑스러운지....." 라니?........쩝!
맛나게 잘먹고 그러능거 아뉴..............ㅋㅋ
나머지는 모두 장물아비 구만??
ㅋㅋ 세상살아가는데 얼굴에 철판까는 일이 얼마나 도움되는데..ㅋㅋ
"정말 자랑스러운 해적질 만세" 란 말은 안보았는가?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