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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 안팎의 많은 사람들이 한국의 보신탕 문화를 비판한다. 보신탕 식용에 대한 찬반 여부를 떠나 보신탕이 우리 전통 복날 음식이었으며, 지금도 먹는 사람이 적지 않다는 사실 자체는 부정할 수 없다. 그러니 한국에 왜 보신탕 문화가 발달했는지 이유라도 알아두자. 비난을 받아도 이유는 알아야 할 것 아닌가?
복날 보신탕을 먹는 이유는 다양한 문화와 민속이 얽혀 있어 단순하게 말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특별히 복날, 개고기를 먹던 풍속은 춘추시대의 진나라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우리 풍속서인 《동국세시기》에는 사마천의 《사기》를 인용해 진나라 덕공(德公) 2년, 복날이 되면 제사를 지내는 사당을 짓고 개를 죽임으로써 벌레로 인한 피해[蟲災]를 막았다고 적혀 있다. 복날 보신탕의 기원을 진나라 덕공 2년으로 본 것인데 정확하게 기원전 676년이다.
《동국세시기》가 인용한 《사기》에는 복날 개를 잡았다는 기록이 두 군데나 보인다. 하나는 진나라 역사를 적은 〈본기〉에 덕공 2년, “초복에 개고기를 잡아 벌레를 막는다[禦蠱]”는 기록이 있다. 여기서 주의해서 볼 부분이 《동국세시기》에는 개고기를 잡는 것은 벌레로 인한 피해를 막기 위함이라며 곤충을 뜻하는 벌레 충(蟲) 자를 썼지만 원본인 《사기》에는 벌레 고(蠱)라고 쓰여 있다는 점이다.
같은 벌레지만 《사기》에서 말하는 벌레는 곤충이 아니라 배 속에 있는 벌레다. 그러니까 해충에 의한 피해 예방이 아니라 기생충이나 세균에 의한 전염병을 예방하기 위해 개고기를 먹었다는 뜻이다.
또 다른 기록은 《사기》의 〈십이제후연표〉에 나온다. 덕공 2년에 “처음으로 복날 제사를 지내는 사당을 짓고 개고기를 찢어 성문 네 곳에 걸었다”고 기록했다. 전염병인 역질(疫疾)을 막으려고 개고기를 걸어 나쁜 기운이 성안으로 침입하는 것을 막았던 것이다. 6세기 《형초세시기》에서도 복날 뜨거운 국을 먹는 것은 나쁜 기운을 피하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그러니 전염병이 돌기 쉬운 여름날, 뜨거운 국과 고기로 영양도 보충하고 전염병도 예방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쇠고기나 돼지고기, 닭고기, 양고기 등 수많은 고기를 제치고 굳이 개고기를 복날 음식으로 삼은 까닭은 무엇일까?
주술적으로 전염병을 예방하려는 목적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개고기는 불[火]의 기운이 있어 복날의 음기인 금(金)의 기운을 물리친다는 화극금(火克金)의 오행 원리로도 설명한다.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고대에는 개고기가 좋은 식품이었기 때문이다. 춘추전국시대 왕과 귀족의 어록을 모아 놓은 《국어(國語)》라는 책을 보면 알 수 있다.
월나라 왕인 구천이 오나라에 복수하려고 와신상담, 군사력을 키우면서 병력을 늘리려고 백성들에게 출산을 장려했다. 여자 열일곱, 남자 스무 살이 되도록 결혼을 하지 않으면 부모에게 죄를 물었다. 또 남자아이를 낳으면 술 두 병에 개고기를 출산 장려금으로 지급했고 여자아이를 낳으면 술 두 병에 돼지고기를 지급했다. 돼지고기보다 개고기를 더 귀하게 여겼다는 증거다.
주나라 때 예법을 적은 《주례》에도 개고기가 말, 소, 양, 돼지, 닭과 함께 제왕이 먹는 여섯 가지 고기 중의 하나로 포함돼 있다. 고대 중국에서는 개가 고급 식용 가축이었던 것이다. 그러니 당시 사람들이 귀한 보신탕을 복날 음식으로 삼은 것이다.
이렇듯 보신탕은 고대 중국에선 매우 귀한 음식이었지만 작금의 중국인들은 대부분 개고기를 먹지 않는다. 일본이나 다른 동남아 국가도 보신탕을 먹지 않는다. 아시아에서 보신탕 먹는 나라는 한국과 베트남뿐이다.
여기에도 이유가 있다. 일본 사람들은 7세기부터 19세기까지 아예 육식을 하지 않았다. 육식 금지령 때문에 개고기는 물론, 쇠고기나 돼지고기도 먹지 않았다. 19세기 말부터 다시 고기를 먹기 시작했는데 뒤늦게 보신탕을 먹을 이유가 없었다.
옛날에는 개고기를 먹었던 중국에서 보신탕이 사라진 것도 이유가 있다. 중국 고문헌에서 보신탕이 사라진 것은 6세기 무렵이다. 가장 오래된 농업서인 《제민요술》에도 개고기는 보이지 않는다. 주요 가축 목록에도 개가 빠지고 대신 낙타와 오리가 들어가 있다.
중국에서 6세기는 남북조시대로 북방 유목 민족이 세력을 떨친 시기다. 유목 민족과 수렵 민족에게 개는 목축과 사냥에 필수적이기 때문에 개를 먹지 않았다. 그것이 바로 중국에서 보신탕이 사라진 이유다. 남북조시대와 원나라, 청나라를 포함한 북방 유목 민족 지배의 영향이 크다는 것이다.
반면 한국이나 베트남은 농경문화에다 전통적으로 보신탕을 제물로 쓴 유교를 숭상했다. 굳이 보신탕을 기피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한국과 베트남에 보신탕 문화가 살아 있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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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으로읽는한국생활사
글 윤덕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