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사도여야 합니다(20240225) 조성현 목사
누가복음6:12-13
눅6:12 이 때에 예수께서 기도하시러 산으로 가사 밤이 새도록 하나님께 기도하시고
눅6:13 밝으매 그 제자들을 부르사 그 중에서 열둘을 택하여 사도라 칭하셨으니
오늘날 기독교대한성결교회 헌법에서는 ‘목사의 임무를 구약의 제사장과 선지자요, 신약의 사도이며 장로이며 집사이다.’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이는 교회가 구약의 성전이나 회당과 같은 역할을 하여야 하고 목사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자가 되어야 함을 말하는 의미일 것입니다. 이러한 목사의 개념이 무너지면 교회는 하나님께 예배드림의 의미를 상실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중세 종교개혁자들이 주장한 ‘만인제사장’을 살펴볼 때도 모두가 제사장이라는 개념은 모두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릴 수 있는 사람임에 대한 강조일 것입니다. 이것을 가지고 ‘교회에서 목사와 성도는 동일하다.’라고 해석하는 것은 특히 성결교단의 신념 속에서는 올바르지 않는 것입니다.
기독교대한성결교단은 성도들 중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시험 등을 거처 목사로 안수를 받는 사람들에게 예배에 관한 권한을 부여합니다. 즉 모든 성도에게 예배의 권한을 부여하지 않고 목사로 한정하여 예배권을 부여함으로서 구약과 신약의 권환을 완성하는 것입니다. 물론 다른 교단의 해석이 다른지는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이런 말을 하고 있는 이유는 오늘날 목사에게 부여된 권한은 구약 하나님의 율법과 오늘 본문의 예수님의 말씀과 연결이 됨을 강조하기 위해서입니다. 오늘 저는 예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신 말씀을 통하여 사도의 범위를 확대하여 제자의 권한, 즉 예수님의 제자가 행하여야 하는 일들을 살펴봄으로서 목사의 권한을 넘어 교회에서 예수님을 믿고 있는 예수님의 제자로서 살아야 할 삶의 목표를 살펴보는 시간을 가지려 합니다. 말씀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음성을 듣길 축원드립니다. |
1. 우리는 택함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누가복음6:12-13 눅6:12 이 때에 예수께서 기도하시러 산으로 가사 밤이 새도록 하나님께 기도하시고 눅6:13 밝으매 그 제자들을 부르사 그 중에서 열둘을 택하여 사도라 칭하셨으니
오늘 예수님은 제자들 중에 12명의 사도를 책하시기 위하여 무엇을 먼저 행하였는지를 우리에게 보이십니다.
예수님도 기도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사복음서가 우리에게 보여준 예수님의 모습은 하나님과의 대화입니다. 하나님과의 대화, 즉 기도를 통하여 예수님은 우리가 무엇을 하든 먼저 하나님과 대화를 하여야 함을 강조하신 것입니다.
오늘 저는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의 뜻을 생각합니다. 예수님을 따르던 사람들.. 그들은 이스라엘 입장에서 ‘돈, 명예, 권력’의 대상들과는 대부분 거리가 멀었던 사람들입니다. 그런 그들은 예수님께서 무엇 때문에 선택하셨겠습니까?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선택이었습니다. 이는 우리의 조건이 아니라 하나님의 조건이기에 사실 ‘돈, 명예, 권력’이라는 단어는 아무런 조건이 되지 않음을 알려 주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것은 지금 이 순간 우리를 하나님께서 선택하셔서 지금 하나님 앞에 모이게 하셨고 예배드릴 수 있는 시간을 허락하셨음임을 기억할 수 있길 바랍니다. |
2. 예수님께서 보이신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눅6:17-19 눅6:17 예수께서 그들과 함께 내려오사 평지에 서시니 그 제자의 많은 무리와 예수의 말씀도 듣고 병 고침을 받으려고 유대 사방과 예루살렘과 두로와 시돈의 해안으로부터 온 많은 백성도 있더라 눅6:18 더러운 귀신에게 고난 받는 자들도 고침을 받은지라 눅6:19 온 무리가 예수를 만지려고 힘쓰니 이는 능력이 예수께로부터 나와서 모든 사람을 낫게 함이러라
예수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무엇을 보이셨습니까? 첫째,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 하신 것을 보이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는 하나님을 증거 하기 위함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우리의 삶에서 하나님을 증거 할 수 있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둘째, 예수님은 치유를 행하셨습니다. 치유는 병을 고치는 행위를 말합니다. 더 나아가 귀신에게 고난을 당하는 사람들도 고쳐주셨습니다. 이 의미가 무엇입니까? 교회는 성령님의 사역이 있는 곳입니다. 예배만 드리는 곳을 넘어 능력 행함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셋째, 사람들이 인정하였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19절 말씀을 통하여 알 수 있듯 예수님을 만지려 했습니다. 이는 구약 선지자들에서도 찾을 수 있고 신약의 바울과 사도들에게서도 찾을 수 있는 것들입니다. 무엇 때문에 그들이 예수님을 만지려 했습니까? 그것은 그들이 예수님을 하나님, 혹은 선지자로 인정하였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보이신 예수님을 통해 우리도 예수님의 제자로서 무엇을 행하여야 하는가에 답을 내놓아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 위해서는 예수님이 행하신 일을 기억할 뿐만 아니라 그것을 행하여야 함도 기억할 수 있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
3. 예수님이 우리에게 무엇을 원하고 계신지를 기억해야 합니다.
눅6:20-23 눅6:20 예수께서 눈을 들어 제자들을 보시고 이르시되 너희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것임이요 눅6:21 지금 주린 자는 복이 있나니 너희가 배부름을 얻을 것임이요 지금 우는 자는 복이 있나니 너희가 웃을 것임이요 눅6:22 인자로 말미암아 사람들이 너희를 미워하며 멀리하고 욕하고 너희 이름을 악하다 하여 버릴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도다 눅6:23 그 날에 기뻐하고 뛰놀라 하늘에서 너희 상이 큼이라 그들의 조상들이 선지자들에게 이와 같이 하였느니라
예수님이 우리에게 무엇을 하길 원하십니까? 첫째, 20절을 보면 가난하여라 말씀하십니다. 신학적으로 가난은 ‘깨끗하다.’를 의미하는 단어입니다. 마태복음 5장 3절에서 ‘심령이 가난한 자’라는 표현을 통하여 그 이미가 무엇인지를 알 수 있는 내용입니다. 둘째, 21절에서는 주린 자와 우는 자가 되어야 함을 말씀하십니다. 같은 의미일 것입니다. 이는 부족한 것을 알고 있는 자가 그 부족함을 채울 수 있는 복을 얻을 수 있음에 대한 말씀일 것입니다. 이는 무엇 때문에 우리가 회개의 삶을 살아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셋째, 22절과 23절의 말씀을 보면 예수님 때문에 핍박을 받아야 함을 강조합니다. 무엇 때문입니까? 예수님은 구약의 선지자들을 예로 들면서 그들이 하나님의 생각과 비전 메시야의 선포의 삶을 살았고 그들도 이것들 때문에 핍박을 받았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러한 핍박은 오히려 천국의 상금임을 선포하고 계심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그것이 예수님의 제자의 삶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직분의 역할의 문제가 아니라 예수님의 말씀임을 다시 기억할 수 있길 바랍니다. |
4. 우리가 주의해야 하는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눅6:24-26 눅6:24 그러나 화 있을진저 너희 부요한 자여 너희는 너희의 위로를 이미 받았도다 눅6:25 화 있을진저 너희 지금 배부른 자여 너희는 주리리로다 화 있을진저 너희 지금 웃는 자여 너희가 애통하며 울리로다 눅6:26 모든 사람이 너희를 칭찬하면 화가 있도다 그들의 조상들이 거짓 선지자들에게 이와 같이 하였느니라
예수님의 경고는 무겁습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무엇을 경고하셨는지 말씀을 통해 살펴보는 시간을 갖고자 합니다. 첫째, 24절을 보면 ‘부요한 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20절에 등장하는 ‘가난한 자’와 반대가 되는 의미임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심령이 부한 자’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을 버린 자’의 의미이며, ‘거짓된 사람’을 의미함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둘째, 25절의 ‘배부른 자’와 ‘웃는 자’의 경고를 기억해야 합니다. 이는 21절 말씀과 반대되는 개념이기도 한데, 오늘날의 개념으로 해석하자면 ‘자신을 바라보지 못하는 신앙인’으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마음의 중심에 하나님을 모셔야 한다고 배웠지만, 이들은 ‘자기 자신’을 마음에 중심에 있게 하면서도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셋째, 26절의 ‘모든 사람이 너희를 칭찬하면’을 주의 깊게 생각하여야 합니다. 이 말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예수님과 사도들을 통하여 사람들은 하나님을 칭송합니다. 이것은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는 긍정성입니다. 그러나 오늘 26절의 모든 사람들이 칭찬을 하면의 의미는 ‘교만’과 관련이 되는 말씀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다음과 같은 말을 합니다. “내가 했다.”, “나 아니면 안 된다.‘라고 말입니다. 하나님이 중심이 아닌 자신이 중심이 되는 것을 오늘 예수님은 우리에게 피해야 할 일들임을 경고하고 계신 것입니다. |
5. 우리는 행하여야 합니다.
눅6:36 눅6:36 너희 아버지의 자비로우심 같이 너희도 자비로운 자가 되라
예수님은 오늘 사도들과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에게 묻습니다.
“제자의 길을 걷는다는 것의 의미가 무엇이라 생각하느냐?”
세상의 사람들, 즉 하나님을 모르고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이 행하는 것들과 같이 우리가 행하는 것.. 그것을 우리는 이런 말로 해석을 합니다.
“다른 사람 모두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예수님은 그러한 행동이나 생각이 다른 사람들이 모두 할지라도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의 제자가 된 사람들은 그래서는 안 됨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겠습니다.
눅6:27 그러나 너희 듣는 자에게 내가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미워하는 자를 선대하며 눅6:28 너희를 저주하는 자를 위하여 축복하며 너희를 모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눅6:33 너희가 만일 선대하는 자만을 선대하면 칭찬 받을 것이 무엇이냐 죄인들도 이렇게 하느니라 눅6:34 너희가 받기를 바라고 사람들에게 꾸어 주면 칭찬 받을 것이 무엇이냐 죄인들도 그만큼 받고자 하여 죄인에게 꾸어 주느니라
눅6:37 비판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비판을 받지 않을 것이요 정죄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정죄를 받지 않을 것이요 용서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용서를 받을 것이요
예수님의 말씀은 어렵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시대가 변해도 우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이 우리에게 이렇게 하라 말씀하셨음을 기억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예배드릴 수 있는 우리.. 그것은 내가 누구라는 의식이나 위치가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제사장과 선지자가 어떤 삶을 살았고 사도와 제자가 어떤 삶을 살았고 초대교회 교회의 장로와 집사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를 기억하고 그들과 같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여는 의지가 있어야 될 것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선택받은 사람들이 행하여야 할 의무이자 권리임을 기억할 수 있는 귀한 시간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
기도)
사랑의 하나님 감사합니다.
오늘 이곳에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의 사랑에 먼저 감사합니다. 연약하고 부족하지만 우리를 선택한 것이 하나님의 구원의 생각이심을 우리는 믿고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의 삶에서 예수님의 제자의 도리가 다시 기억될 수 있는 귀한 시간이 될 수 있길 원합니다. 내가 중심이 아닌 하나님이 중심이 되는 삶을 살게 하시고 하나님의 생각과 비전을 선포할 수 있도록 성령님께서 인도하여 주옵소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말씀을 통해 깨달은 하나님의 음성)
제자의 삶이란: 교회의 변질은 하나님이 사라지고 율법이 나타나고 내가 중심이 되는 것일 것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의 당부와 경고는 마음에 어려움으로 다가옵니다. 무엇을 바라보아야 합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는 삶. 그것이 우리의 기도임을 기억하게 하시고 무엇보다 개혁의 중심은 바로 나임을 기억하게 하여 주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