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명을 막을 방패는 없다.
학식 깊은 브라민(인도 지배 계급)이 있었다. 어느 밤 그와 그의 가족이 깊은 잠에 빠져 있을 때, 독사 한 마리가 가족이 잠든 방에 들어와서 그의 아내, 딸 그리고 아들을 차례로 물어 죽였다.
뭔가 이상함을 느낀 브라민은 잠에서 깨어나 뱀이 방을 기어 나가는 것을 보게 되었다. 그는 바로 아내와 자식들이 무사한지 살폈는데, 그들 모두는 뱀의 독으로 이미 몸이 싸늘하게 식어 있었다. 아끼고 사랑하는 이들이 모두 죽어 있는 것을 발견한 브라민은 큰 충격에 빠졌다.
브라민은 눈물을 흘리며 악에 바쳐 원수의 뱀을 잡아 죽이려고 막대기를 들고 그 뒤를 쫓았다. 뱀을 쫓아 얼마 가지 않아서 그는 어느 개울 근처에 도달하였다.
그때 갑자기 뱀이 두 마리의 황소로 변해 서로 싸우기 시작했다. 오래지 않아 싸우던 소들은 모두 죽고 그 즉시 그 자리에는 매우 아름다운 젊은 처녀가 나타났다. 이와 동시에 두 사내가 그 자리에 나타나서 그 처녀를 차지하려고 서로 싸우기 시작했다. 한참을 싸우던 끝에 둘은 결국 서로를 칼로 찌르고 죽어 버렸다. 두 사내가 죽자 처녀는 걸음을 재촉해 그녀가 갈 길을 걸어갔다.
순식간에 벌어진 이 모든 일에 브라민은 너무 놀라 말을 못하다가 마침내 처녀를 따라가기 시작했다. 브라민이 처녀에 가까이 다가가자 처녀는 브라민을 향해 돌아서서 말했다. “무엇을 원하세요? 따라오지 마세요!” 브라민이 말했다. “어떻게 처음에는 뱀이었다가 다시 두 마리의 싸우는 황소로 변하고, 그리고 어떻게 지금은 아리따운 처녀가 되었는지 설명해 주지 않는 다면 너를 떠날 수 없다. 너의 정체가 무엇인지 말하라.”
처음에 처녀는 그 질문을 회피하려 했으나 브라민이 쉽게 포기할 것 같지 않았다. 그의 단호한 태도에 처녀는 마침내 마지 못해 대답했다. “저는 숙명입니다.” 브라민이 소리쳤다. “숙명이라고! 이 모든 일은 다 뭐지? 어떻게 이 살인 광란에 끼어들게 된거지?”
처녀는 대답했다. “저 자신은 아무 것도 하는 일이 없답니다. 그 누구도 다른 사람을 해치고 또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없다는 사실을 아시기 바랍니다. 사람이 어떤 인생을 살아야만 하고 또 어떻게 죽어야만 하는지는 모두 자신이 저지른 자신의 과거 행동에 의해 결정될 뿐입니다.”
브라민이 말했다. “그게 사실이라면 내가 어떻게 죽겠는지 말 할 수 있소?” 처녀는 대답했다. “물론이지요. 당신은 물에 빠져 죽게 됩니다.”
브라민은 처음에는 매우 초조해 했으나 곧 숙명에 대항해 싸우기로 결심을 했다. 그는 여생을 물이 아예 없어 물에 빠져 죽는 게 불가능한 높은 산마루에서 살기로 결정했다. 이렇게 생각하면서 그는 산을 행해 떠났다.
산 속을 헤매던 브라민은 어느 날 궁전 같은 저택을 발견하고, 자기가 그 곳에서 지낼 수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그 저택을 향해 걸어갔다. 그 때 때마침 그 집 주인은 대문 옆에 서 있었다. 주인은 브라민을 친절히 맞아주고 말을 걸어왔다. 대화를 해보고 브라민이 매우 학식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된 주인은 브라민에게 그의 집에 머물면서 자기 아들들의 교사가 되어 줄 것을 부탁했다. 그 중에서 막내아들이 브라민을 몹시 따랐는데, 그날부터 브라민은 그 집에서 한 가족처럼 살았다.
세월이 흘렀다. 막내아들은 브라민을 몹시도 따라서 단 하루도 브라민으로부터 떨어져 있지 못할 지경까지 되었다.
몇 달 후, 그 가족은 어느 매우 상서로운 날 강가(갠지스)에서 미역을 감고 기도하기 위해 바라나시에 가게 되었다.
집 주인은 브라민에게 같이 가 줄 것을 부탁했다. 브라민은 그날 밤 그에게 일어났던 모든 사건들을 주인에게 말하고 동행을 거절했다. 그의 말을 듣고 주인은 말했다. “오, 그게 문제라면 걱정할 것 없습니다. 막내가 당신 없이는 어디에도 가려하지 않으니 그 애를 위해서 우리와 같이 강가(갠지스)에 가주기만 해주시오. 강물에는 들어가지 않아도 좋소.” 브라민은 가겠다고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상서로운 날, 그 집 막내는 브라민 역시 그와 함께 강물에 몸을 담고고 미역을 감아야 한다고 생떼를 썼다. 이에 주인은 특별 조치를 취했다. 그는 강가(갠지스)의 가장 자리에 담을 둘러쳤다. 브라민은 막내와 함께 담이 둘러쳐진 강가에 단 한번만 몸을 담근 후 그 즉시 강에서 나오도록 이야기가 되었다. 상서로운 순간이 가까워지자 수천의 남녀들이 강가에 걸어 들어가기 시작했다.
브라민 역시 막내와 함께 담으로 둘러쳐진 강가로 걸어 들어갔다. 그들이 물속에 들어서자마자 막내아들이 돌연 악어로 변했다. 악어로 변한 막내아들은 눈을 반짝거리며 브라민의 다리를 물어 깊은 물속으로 끌고 들어가며 이렇게 말했다. “브라민이여, 저는 숙명입니다. 저는 이런 식으로 일한답니다. 그 누구도 자기 과거 행위의 결과인 숙명에 대항할 수 없습니다. 당신을 이곳까지 끌고 와 물에 빠져 죽게 한 것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다름 아닌 당신의 지난 행동입니다.”
성녀 아난다마이 마의 이야기 책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