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도여, 그리움이여
민족의 섬 문화의 섬, 독도 탐방
우리나라 섬 3188개/내 평생 돌고 돈 섬/천 개중/ 독도가 제1호라면/두미도는 천 번째 섬/고독한 섬들의 문패/경상북도 울릉군 울릉읍 독도리 산1번지/우편번호 799-805/“여보세요, 여긴 한국 독도인데, 누구시죠?/꽥꽥 갈매기 소리(이생진 시인의 ‘여보세요-독도’에서)
포항에서 262km, 울진에서 216km 떨어져 피어있는 두송이 꽃, 괭이갈매기의 고향 독도, 그 섬에도 사람이 살고 있었다. 단순히 돌섬이 아닌 사람냄새가 나는 섬이었다. 우리와 같은 말을 하는 주민이 있었고 우리 경비대가 지키고 있는 우리 땅이었다. 독도는 더 이상 외로운 섬이 아니었다. 비록 멀리 떨어져 있지만 늘 우리의 가슴속에서 숨쉬고 있는 핏줄이었다.
지난 5월 22-25일, 한국시인협회 오세영 회장을 비롯한 34명의 시인, 사진작가들이 ‘민족의 섬 문화의 섬 울릉·독도 탐방행사’를 가졌다. 2005년도에 이은 두 번째 행사였다. 한국시인협회 독도지회에서 주최한 이 행사는 영토주권을 문화적으로 접근하고 주장하고자 하는 영토사랑행사였다.
독도를 찾아가는 시인들
5월 22일 저녁 7시, 덕수궁 대한문앞에는 한국을 대표하는 유명시인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한국시인협회 회장인 오세영 서울대교수를 비롯, 전임회장인 이근배 교수와 김종해 시인, 이생진 시인, 강은교 교수, 박주택 교수, 조창환 교수, 이화은 교수, 신협 교수, 장석주 교수, 심재휘 교수,노민석 교수,김소양 시인, 조영순 시인, 김종철 시인, 이명수 시인, 이자규 시인, 임영봉 시인, 최영규 시인, 최창규 시인, 김지헌 시인, 박상경 시인, 김두녀 시인, 김문중 시인, 김영남 시인, 김영자 시인, 김중식 시인, 편부경 시인 등의 얼굴이 보였다.
87년부터 독도에 호적을 가지고 있는 독도 선각자 송재욱 씨, 독도연구보존협회 이사로서 스스로 독도에 미친 사람이라고 부르는 한송본 씨도 참여하였다. 이밖에 사진작가 유연준과 신동아 기자 2명도 함께 했다. 이번 행사는 특히 독도주민이면서 독도를 너무 사랑하여 독도가 된 여인, 편부경 시인이 제반 일정 및 실무를 맡아주었다.
밤 늦게 포항에 도착, 여장을 푼 우리 일행은 5월 23일 오전 10시 포항여객선터미날에서 썬 플라워호에 탑승, 울릉도로 향했다. 석가탄신일 전후로 전국에 비가 내린다는 일기예보가 있었던 터라 모두가 불안해 했는데 다행히 이날은 날씨가 너무도 좋았다. 편부경 시인은 “바다를 밤새 다리미질 해 놓았다” 며, 장판같은 바다라고 좋아했다.
우리가 탄 썬플라워호는 승선인원이 920명이나 되는 큰 배였다. 우리 일행은 3층 우등석에 자리를 잡았다. 혹시나 하여 멀미약을 미리 먹었지만 날씨가 좋아 멀미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었다. 2 년전 행사 때는 높은 파도와 강풍으로 멀미천지가 되었었다고 한다. 포항에서 울릉도까지는 정상운행의 경우 3시간이 걸리는데 그때는 3시간을 갔는데도 울릉도까지 거리의 5분의 1도 채 못가고 회항하고 다음날에야 울릉도,독도에 갈 수 있었다고 한다. 얼마나 파도가 심했으면 그랬을까? 그것에 비하면 이번 여행은 운이 좋다는 생각 마져 들었다.
섬, 그리고 그리움
3층 객석이 꽤 넓었다. 각자 자리를 잡으니 선실이 조용했다. 말은 하지 않아도 모두들 마음은 이미 독도를 그리고 있을테지. 나 자신도 마치 이역만리 떨어져 있는 한번도 보지못한 자식을 찾아가는 심정이니까.
이생진 시인 옆으로 다가갔다. 이시인은 우리나라의 대표적 원로시인이요. 섬시인이시다. 우리나라 섬 3188개중 1000개 이상을 다녔으니 아마 전세계에서도 이생진 시인 만큼 섬을 여행하고 사랑한 시인도 없을 것이다. ‘그리운 바다 성산포’ 등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섬에 관한 시를 남긴 분이시다. 그래서 제주도 명예도민증도 받으셨다. 이시인의 시 ‘무명도’는 노래로도 작곡되어 애창되고 있다.
“선생님, 멀미 안하세요?” “난 배를 아무리 타도 멀미 안해요. 우리나라 섬중 1000개 이상을 다녔어도 멀미한 적이 한번도 없어요”. 대단하시다. 올해 연세가 79세이신데도 너무나 정정하시다. 이시인은 독도가 이번이 5번째란다. 19년전인 60세때 처음 독도에 발을 디뎠단다. 다섯 번이나 가봤는데도 다시 가고 싶은 곳이 독도란다. 우리의 피붙이라서 그런 건지.
“왜 그렇게 섬을 좋아하세요?” 우문이다. “저 산 너머, 모두들 행복이 있다 하기에...” 독일시인 칼 부쎄의 시를 들려주신다. 섬은 그리움이라고, 뭔가 있을 거라고, 그래서 섬을 좋아한다고 답하신다. 자신을 ‘물위에 뜬 섬’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이시인은 1951년 처음 제주도를 가 본 후 섬을 좋아하기 시작했으며, 섬을 자식만큼이나 사랑하는 시인이다. 이시인은 섬을 낙원이라고 말한다. “그러고 보면 나는 살아서 낙원을 다닌 셈이지요.” 라면서 맑은 미소를 지으신다. 올 해 안에 독도·울릉도에 관한 시만 모아 시집도 낼 계획이라고 한다.
독도개발하고 주민 늘려야
독도에는 현재 주민등록을 가진 사람이 세사람이다.
서도에 살고 있는 어민 김성도,김신열씨 부부와 편부경시인이다. 편부경시인은 그간 독도를 40여 차례 입도했다. 독도가 너무 좋아 지난 2003년 11월에는 아예 주민등록을 독도로 옮겼다. ‘독도우체국’, ‘영혼까지 독도에 산골하고’ 등 독도사랑을 글로 표현한 시집도 두 권이나 냈다. 독도에는 경비대 40여명도 거주하고 있으나 법상 주민은 아니다. “국제사회에서 영토로서의 의미가 있으려면 주민수를 늘려야 해요. 10가구 이상은 살 수 있도록 해야 해요”. 동도,서도간 거리는 150미터 내외, 얕은 부분은 사람키 정도밖에 안된단다. 이곳을 매립하거나 구름다리로 연결하여 진정한 섬마을로 만들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독도를 문화적으로 접근하여 문화예술의 섬으로 만드는 것도 편시인의 꿈이다. 편시인은 독도에 살기 위해 작심한 사람이다. 섬생활에 필요할 것 같아 몇 년 전 보트조종면허도 취득했고, 아마추어무선기사자격증도 땄다.
송재욱씨는 지금도 독도에 호적을 가진 사람이다. 1987년에 호적을 땄다. 독도호적 1호로 독도에 관한 한 선각자인 셈이다. “일본사람들이 엉뚱한 소리 자꾸 하니까 분개하여 독도로 호적을 옮겼지요.” 당시는 먼훗날을 위해서라도 근거를 남겨놔야겠다. 호적근거는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송재욱씨는 학창시절부터 영토에 관심을 가졌다. 현재는 서울에서 섬유회사를 경영하는데 고향인 전북 김제에 ‘동심원’이라는 5500평 규모의 공원을 조성, ‘조선영토회복기원비’도 세우고, 옹기, 문관석, 맷돌 등 전통문화유산들을 수집하여 진열해 놓았다. 국민들 마음을 합치고 청소년들에게 꿈을 주기 위해서라고 한다.
“독도다. 과거사다 문제 생길 때마다 일본에 큰소리치지만 근본적인 대책을 세우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도 달라지지 않았어요”. 한송본 독도보존연구협회 이사는 한일양국간 갈등과 관련해 목청만 높일게 아니라 전략적이고 체계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수년전부터 독도개발특별법의 제정을 요구하고 있는 독도전문가다. 독도를 개발해 어민이 상주하면서 조업을 할 수 있고 관광객이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을 때, 즉 독도에 대한 ‘실효적 지배’를 확실히 할 때만 독도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신비의 섬 독도, 그건 두 송이 아름다운 꽃이었다.
독도전문가들과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보니 을릉도 도동항에 도착했다. 3시간 소요.
24일에 비가 올 것이라는 일기예보가 있어 우리일행은 당일 바로 독도에 들어가기로 했다.
울릉도에서 왕복 4시간 뱃길, 87.4km의 거리이다. 도동항에서 점심식사 후 오후 2시 삼봉호를 탔다. 우리 일정이 5월 25일까지이니 울릉도는 독도를 다녀온 후 천천히 돌아볼 심산이다. 울릉도에서는 단순히 관광만 하는게 아니다. 울릉군수 접견, 울릉거주 예술인 초청 만찬 등과 함께 울릉중학교(이생진 시인), 울릉종합고등학교(오세영 시인), 울릉경찰서(강은교 시인)등에서 학생과 경찰공무원들을 대상으로 문학강연 및 시낭송 등을 통해 섬주민으로서의 영토사랑과 시심(詩心)을 일깨워줄 예정이다.
아직 바다는 잔잔하다. 배는 독도를 향해 은빛물결을 가른다. 지나온 울릉도가 참으로 아름다워 보인다.
이 조그만 국토, 지도를 보면 울릉도 바로 옆에 붙어 있는 작은 섬 독도. 그런데 막상 배를 타고 보니 멀고도 멀다. 사방을 둘러봐도 망망대해 뿐이다. 오랜 옛날 뗏목으로 이 바다를 항해해 우연히 독도를 발견했을 조상들을 생각해 본다.
그때 누군가 외친다. 와, 독도가 보인다. 정말 독도가 서서이 우리를 향해 다가온다. 점점 커지는 섬 독도, 마음이 설레이기까지 한다. 저 섬이 우리의 끝섬 독도란 말인가?
드디어 독도가 눈앞에 서 있다. 그건 단순히 돌섬이 아니었다. 물위에 핀 두송이 아름다운 꽃이었다. 수백만년의 비바람과 파도가 빚은 조각품이었다. 엄청나게 많은 괭이갈매기 무리가 우리를 반겨준다. 배를 둘러싸고 한바탕 춤사위를 벌린다.
동해 푸른 바다 멀리 홀로 떠 국토를 지키는 섬,
내 사랑하는 막내아우야.
배가 접안시설로 접근한다. 이제 곧 독도에 발을 디디게 되는구나. 마음이 설레인다. 바로 앞에는 경비대원 몇 명이 우리의 접안을 기다리고 있다. 그런데 갑자기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접안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아니 이정도의 파도에 접안이 안된다니.., 접안시설이 그렇게 좋지 못해 파도가 조금만 높아도 섬에 오를 수 없다는 것이다.
섬을 두 바퀴 돌면서 접안을 시도했다. 오늘은 도저히 안된단다. 선장의 말이니 받아드릴 수 밖에 없었다. 비록 접안은 못했어도 바로 눈앞에서 독도를 자세히 볼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감격스러웠다.
독도는 동도(암섬)와 서도(숫섬)를 중심으로 89개나 되는 부속섬으로 이루어진 군도로서, 마치 기암괴석의 수집장 같았다. 삼형제굴바위, 촛대바위, 독립문바위, 한반도바위, 코키리바위, 지네바위, 군함바위,부채바위 등 다양한 이름으로 각자의 몸매를 뽐내고 있었다.
동도의 높이는 98.6미터, 서도는 168.5미터로 그리 높지 않지만 바닷속에 숨겨진 크기는 울릉도의 두배 이상이라니 놀라웠다. 섬주변 수심이 무려 2천미터나 된다니 독도는 자그마한 바위섬이 아니라 높이 2천미터가 넘는 거대한 산의 꼭대기인 셈이다.
460만년전 바닷속 화산폭발로 용암이 터져 이루어진 섬, 제주도 120만년전, 울릉도가 250만년전에 생겼다니 사실은 독도가 이들 세섬중 제일 맏형이란다.
선장의 안내를 듣는 중 오세영 회장의 목소리가 들린다. 배위에서 시낭송회를 할 수 밖에 없다고...,모두들 체념하고 섬을 배경으로 갑판위에 서서 준비된 시화집을 꺼낸다.
비바람 몰아치고 태풍이 불 때 마다/안부가 걱정되었다./ 아둥 바둥 사는 고향, 비좁은 산천이 싫어서/일찍이 뛰쳐나가 대처에/뿌리를 내리는 삶./내 기특한 혈육아/(중략)/내 아직 살기에 여력이 없고/너 또한 지금까지 항상 그래왔듯/그 누구의 도움도 바라지 않았거니/내 어찌 너를 한시라도 잊을 수 있겠느냐./(중략)/네 사는 그곳을/어떤 이는 태양이 새 날을 빚고/어떤 이는 또 무지개가 새 빛을 품는다 하거니/태양과 무지개의 나라에서 어찌/눈보라 비바람이 잦아들지 않으리./동해 푸른 바다 멀리 홀로 떠 국토를 지키는 섬,/내 사랑하는 막내아우야.
오세영 시인은 가슴을 울리는 어조로 이렇게 읊었다. 파도소리, 바람소리가 화답하는 듯 했다. 우리는 이렇게 배위에서 독도를 노래했다. 아니, 홀로 객지에서 외로히 떠도는 자식을 부르는 마음으로 외쳤다. 몇 번이라도 다시 가보고 싶은 섬, 뭍에 올라 바위 곳곳을 어루만져주고 싶은 자식같은 섬, 독도는 그렇게 또 우리에게 그리움만 키워주었다. (글/임윤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