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도는 왜 오지 않는가.
사무엘 베케트의「고도를 기다리며」를 읽고
그들은 고도를 기다린다. 처음에는 고도가 궁금했다. 그것은 대관절 무엇인가. 그러나 나는 점차 그것을 기다리는 그들이 궁금해졌다. 왜 오지 않을 고도를 기다리는지. 심지어 그들은 이미 알고 있다. 고도가 오지 않을 것임을. 그럼에도 그들은 기다린다, 마치 습관처럼. 그러다 문득문득 잊어버리기도 한다, 그들이 무엇을 기다리고 있었는지조차.
내게 물었다. 너는 무엇을 기다리느냐고. 나는 잠시 생각했다. 내가 기다리는 게 있나. 하긴, 요즘은 간절히 기다리는 게 있다. 누군가의 파면을. 하지만 내가 그 질문을 받았을 때 나는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다. 나는 기다리는 게 없다고 답했다. 덧붙여 나는 기다림을 싫어한다고도 했다. 지금 다시 생각해봐도 나는 삶에서 기다리는 것이 없다. 나는 내 삶에서 더 이상 기대하는 것이 없나. 아마도, 그런 것 같다. 그래서 슬픈가. 아니, 꼭 그렇지는 않다.
돌이켜보면 기다렸던 적이 있었다. 무엇이었건. 기대라는 것이 있던 시간이 내게도 있었다. 더 나은 무언가를 향한, 혹은 사람을 향한, 혹은 자유를 향한. 그러나 기다림은 하염없는 시간의 흐름을 담보로 삼는다. 시간은 그냥 흘러가지 않는다. 기다림의 시간은 기다리는 것에 대한 갈망이 클수록, 그 기대가 높을수록 기다리는 이를 서서히 갉아먹는다. 그래서 그들은 그 기다림의 시간이 너무 하염없어 끊임없이 시간을 죽일 것들을 고안한다. 실없는 농담을 하며 부질없이 왔다갔다한다. 그래야 시간이 어느 사이 가고 없을 테니까. 기다림의 절실함을 잠시나마 잊게 할 테니까. 우리네 인생도 그러하리라. 삶은 살아내는 것이 아니라 그저 시간과 함께 소멸해가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어쩌면 애써 기다린 고도가 왔더라도 생각만큼 반갑거나 기쁘지 않을 수 있다. 기다렸던 게 알고 보니 고도가 아닐 수도 있고, 고도가 그들을 충족시켜줄 만한 것이 아닐 수도 있다. 그렇게 항상 기다림은 시간을 배신하고 미묘하게 엇나간다. 그래서 그들은 자꾸 잊는다. 고도가 무엇이었는지, 무엇이 고도였는지, 왜 기다리고 있는지, 아무것도 기억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그들은 기다린다. 그러나 그 기다림은 간절하지 않다. 습관이다. 기다림조차 삶의 한 조각이 되어 배고프면 밥을 먹고 졸리면 잠을 자듯 문득문득 떠오르면 그저 기다리는 것이다. 무언가를. 그것은 꼭 고도가 아니어도 좋을 것이다. 기다림이 없는 삶을 우리는 감당할 수 있을까. 배신당할지언정 기다림은 필연처럼 삶에 도사리고 있다. 그래서 때로 뭔지도 모른 채 기다리고 기다린다. 혹여 그것이 고도일까 하여. 그러나 그래서 나는 기다리지 않기로 했다. 고도는 애초에 없는 것이고, 있어도 내 것이 아닐 것이고, 기다릴 만큼 이제 시간도 많지 않은 까닭에.
그렇지만 고도를 기다리는 그들이 마침내는 고도를 만났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 고도가 그들이 바라 마지않던 바로 그 고도이면 좋겠다. 그래서 그들의 고달픈 기다림이 기쁨으로 귀결되면 더욱 좋겠다. 그렇다면, 정말 그렇게만 된다면, 나도 그들처럼 다시 고도를 기다려볼 수도 있지 않을까 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