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내친구
엄영아
남자 가수가 간절하게 노래를 부른다.
"가지 마오, 가지를 마오. ......"
몇년 전 5월에 세상을 떠난 친구가 생각난다.
내친구 지혜를 보고 윤우는 첫눈에 반해 군대를 다녀온 후 곧 결혼했다. 각자 전문가의 길에서 인정받는 잉꼬부부였다. 지혜는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20년 넘게 봉사기관에서 최선을 다해 헌신하며 존경도 받았다.
평탄하게 살아가던 어느 날, 지혜는 몸이 이상함을 느꼈다. 의사의 초기 진단은 파킨슨 이였다. 처음 병을 발견했을 때만 해도 윤우는 지혜를 소개해준 친구에게 아내를 바꿔 달라고 하면 너무 오래 사용해서 리턴이 안된다고 농담하며 웃을 정도로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후 6년이란 시간은 녹녹지 않았다.
세월이 흐르면서 지혜는 자기 손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없게 되었다. 도우미가 집으로 와서 모든 일을 도왔다. 가끔 그녀를 방문하면 남편의 밥을 자기 손으로 해주지 못해 무척 미안하다고 말하곤 했다. 남편이 좋아하는 고추장찌개를 끓여주고 싶고 좋아하는 단술(식혜)도 만들어 주고 싶다면서 쓸쓸하게 미소를 지었다.
요즘 겪은 일이라며 얼마 전 방문 했을 때 나에게 즐거운 마음으로 지혜가 해준 이야기다.
남편 윤우가 늦은 오후, 지혜를 휠체어에 태워 베트남 식당으로 갔다. 아내가 먹고 싶다고 하면 지체하지 않고 사주었다. 그날은 식당 창가에 자리를 잡고 베트남 국수 두 그릇을 주문했다. 남편이 국수를 먹이면서 아내의 입가를 닦아주는 모습을 등 뒤에서 누군가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을 그들은 전혀 몰랐다. 웨이터가 다가와 “뒤쪽에 계신 손님이 두 분께 전해달라고 쪽지를 주셨습니다.” 부부가 돌아보니 저만치 창가에 혼자 앉아 있는 50대쯤으로 보이는 남자다. 쪽지엔 “아름다운 부부십니다. 영원히 행복하십시오”라고 적혀있었다. 짧은 쪽지지만 큰 울림이 들렸다. 식사가 거의 끝나갈 즈음 웨이터가 부부 쪽으로 다시 왔다. "두 분의 음식값을 뒤쪽에 계신 분께서 지불하셨습니다". 놀란 지혜 남편이 뒤를 돌아보며 그를 향해 “마음이 어떻게 이토록 풍성하신지요! 감사합니다.” 하니 그가 벌떡 일어나더니 "아닙니다. 보기가 좋습니다." 오히려 쑥스럽다는 듯 인사를 하고 식당을 떠났다. 숨겨져 있는 그의 속마음이 애드벌룬처럼 떠올랐다.
아내의 휠체어를 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석양은 홍시가 터진 듯한 색깔로 건너편 하늘을 장식했다. "스치는 사람에게도 정을 나누는 세상이 아름다워요"하며 지혜는 남편을 올려다보고 말했다. 샛바람이 두 부부의 미소 띈 얼굴을 어루만질 때 아내는 휠체어를 밀어주는 남편의 손을 살며시 쓰다듬었다.
점점 진행된 병으로 침대에서 누워 지내는 시간이 길어진 지혜. 윤우는 결단을 내려 집을 리노베이션(Renovation)하기로 결정했다. 침실 오른쪽 벽을 부수고 24시간 해, 달, 별을 볼 수 있게 통유리 문을 만들었다.
파란 하늘에 떠다니는 구름, 목련 꽃이 피고 자카란타가 지는 모습, 보슬비 장대비가 내리는 모습, 가을의 단풍 바람에 휘날리는 낙엽을 참상에 누운 채 볼 수 있게 해 주었다.
지혜는 병문안을 간 내게 "지금 이 순간이 행복해. 남편이 친절하게 도와주니까." 한다.누구나 가질 수 없는 이런 특권을 지혜가 누린 것은 남편으로서의 의리와 책임을 다한 윤우가 었기 때문이다. 그것뿐인가. 지혜가 간절히 사모하는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이리라.
그렇게 아름다운 사계절을 가슴에 품고 지혜는 우리 곁을 떠났다. 질병으로 인한 우울증을 겪으면서도 미소를 잃지 않았던 사랑했던 내 친구 지혜. 장례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나는 간절히 기도했다. 지혜는 우리의 곁을 떠났지만 부부의 책임을 감당한 그들 부부의 삶의 모습은 나에게 아름다운 동화로 남겨졌다.
(5/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