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성수에 대한 말씀으로 계속 나누고 있는데, 오늘은 주일 성수에 대한 저의 신앙의 고백입니다. 목사로서 하나님 앞에 선 한 사람의 인격체로서, 주를 제가 주를 어떻게 고백하는지에 대한 기록을 한 8가지로 이렇게 담았어요.
첫번째로는 구약의 안식일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이후 주일로 변경되었고 우리가 지켜야 할 영원한 안식일이 되었다. 이게 제가 믿는 주일에 대한 고백이에요. 구약의 안식일은 폐지되었지만 안식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로 말미암아 주일로 변경이 되었고 이 주일은 우리가 영원히 지켜야 될 그리스도가 오실 날까지 지켜야 될 안식일이다. 이 사실을 제가 믿는다는 거예요.
두 번째로는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는 십계명의 정신도 그대로 주일에 계승되어야 하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고난과 죽음과 부활을 기념하라고 주일날 기념하라고 했죠. 그렇기 때문에 주일에는 이 정신도 함께 계승되어야 된다는 거예요. 십계명의 정신도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도 우리가 지키는 안식일을 통해서 계속 계승되어야 된다. 주일을 통해 계승되어야 된다. 이게 저의 주의 성서에 대한 고백이라는 겁니다.
세번째 주님은 아담과 하와의 범죄로 인해서 잃어버린 영원한 안식이 다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회복됨을 선포하는 날이다. 그런 동시에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인해서 온전하게 누리게 될 영원한 안식을 기다리고 소망하는 날이다. 그러니까 안식에 대해서 선포를 하고 그것을 영원한 안식을 기다리는 날이 주일인 거죠.
그러니까 우리가 안식을 지킴으로 말미암아 세상 사람들에 대해서 안식일이 있다. 영원한 안식이 있다는 걸 우리가 행동과 삶으로 가르치는 것이고, 동시에 이것은 영원한 안식을 기다리는 성도들의 소망이다. 이게 이제 안식주일에 대한 세번째 고백입니다.
네번째 고백은 기독교 초기 공동체의 주일 성수의 모습이나 한국기독교회 초기의 주일 성수의 모습이나 천교도의 주일 성수의 모습들이 우리에 의해서 계승되어야 된다. 계승되고 발전되죠. 그러니까 개혁주의니까 개혁주의는 발전이 돼야 되요. 계승만 되는 게 아니라 발전이 돼야 됩니다. 그래서 계승되고 발전되어야 한다. 주일과 안식일은 단절이 아니라 연속이고, 구약과 신약도 단절이 아니라 연속이고, 신앙의 역사의 과거와 현재도 단절이 아니라 연속이다. 그래서 주일은 우리가 이들의 선조들이 지켰던 그 주일의 정신과 삶은 무리를 통해서도 계속 계승되어야 하고 또 발전되어져 된다. 시대에 맞는 주일을 지키는 법들이 폐지되고 없어지고 더 편하게 고치라는 게 아니라 더 어떻게 시대에 맞게 하나님을 잘 예배할까를 고민해야 된다는 거예요.
다섯번째로는 주일은 주님의 날이기 때문에 온전히 주님을 위해서 쓰여져야 한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의 고백처럼 주님을 예배한 일에 교회를 섬기고 봉사한 일에 구제하며 공륜 사역하는 일에 함께 교제하는 일에 교회가 할애되어야 된다.
그러니까 교회는 이 주일은 이런 시간들에게 할애돼야 된다는 거죠. 이런 시간을 위해 쓰여져야 된다는 거예요. 예배와 봉사와 구제와 선교와 교재를 위해서 쓰여질 날이 주일이다.
여섯번째, 주일은 영원한 안식이 그리스도에게 있음을 영원한 안식이 교회 안에 있음을 믿지 않는 불신자들에게 알리는 날이다. 주일은 동시에 우리를 위한 날이기도 하지만 또 세상에게 선포하는 날이에요. 안식이 있다. 주님의 날이 있다. 그리스도가 있다. 영원한 삶이 있다는 것을 우리가 주의를 철저히 지킴으로 말미암아 세상에게 알리는 행동을 하는 겁니다. 그분의 안식을 통해 우리의 예배를 통해 우리의 모임을 통해서 하나님 나라에 영원한 안식이 있음을 우리가 전파하는 것, 이게 주의를 지켜야 지켜야 하는 의미인 겁니다.
일곱번째로 자꾸 많아지죠. 일곱번째는 주일을 지키는 것은 하나님 나라가 존재하고 하나님께서 세상을 통치하신다는 것을 세상에게 확고하게 알리는 날이다. 그러니까 우리의 삶은 일종의 경고와 알림 메시지와도 같은 거잖아요. 여러분 제 삶에는 메시지가 가득 담겨져 있어요. 제가 설교할 때만 메시지를 하는 게 아니라 제가 말할 때 행동할 때 어떤 사역을 할 때 제 삶의 메시지가 담겨 있어 성도들은 그 메시지를 보고 삶을 이제 판단하는 거 어떻게 살아야 될지를 보게 되는 거죠. 그러니까 제가 말로 하는 메시지, 제 행위로 하는 메시지를 보면서 주의를 어떻게 지켜야 할지 또 하나님이 어떻게 섬겨야 하는지를 성도들은 직접적으로 또 간접적으로 배우게 되는 겁니다.
주일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을 교육하는 날이에요. 세상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날이 있음을 안식이 있음을 하나님의 통치가 있음을 알리는 날이 결국 주일인 거죠. 우리가 주일날 모든 걸 멈추고 주님의 안식 속에 들어오는 것을 통해서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의 나라가 있음을 하나님의 통치가 있음을 우리가 누군가를 따르는 거잖아요. 그 따른다는 건 통치가 있다는 걸 알게 되는 거예요. 이걸 주일을 지킴을 통해서 우리가 세상에 알리게 되는 겁니다.
더 나아가서 주일을 주일처럼 지켜야 우리의 믿음이 견고해지고 교회는 든든히 서간다는 거예요.
왜 그럴까요? 안식일을 지킨다는 거, 주의를 지킨다는 거 주님의 말씀에 순종한다는 의미잖아요. 주님 말씀에 순종하니까 당연히 교회나 개인의 삶은 든든해져요. 그러니까 주의를 잘 지킬수록 교회와 개인의 삶은 든든해집니다.
또한 안식일을 지킨다는 것은 하나님의 체계에 하나님의 시스템에 우리가 순종한다는 의미예요. 하나님 믿는다는 것은 새로운 세상이 우리 내 앞에 등장하는 거잖아요. 그 새로운 세상을 내가 받아들이는 것, 그 시스템과 그 체제를 체계를 내가 받아들이는 것이 주일 성수를 통해 나타나는 거예요. 내가 주일을 잘 지키면서 주일을 성실히 지키면서 이 일이 세상 가운데 드러나게 되는 것입니다.
주일을 지킨다는 것 철저하게 하나님 나라에 순응한다 하겠다는 것과 같은 의미입니다. 그런 태도가 안식일을 지키는 것으로 증명이 된다는 거예요. 우리가 우리의 시간이 우리의 물질이 하나님의 것임을 인정하는 것 또한 주일 성수를 통해서 증명되어져 가는 거예요.
그러니까 주일 성수는 많은 것을 증명하는 어떤 표준과도 같은 바로미터 측정기와도 같아요. 한 성도와 교회가 주일을 어떻게 지키는지를 보면 그 사람의 신앙이 하나님 안에 있는 것인지 아닌지 하나님 안에 완전히 복종되어 있는지 아닌지를 판가름할 수 있는 것이 주일 성수인 겁니다.
여덟번째 주일은 성령의 날입니다. 주일은 회복하게 하시고 완성케 하시는 성령의 날이 곧 주일입니다. 주일을 지킴으로 성령을 통한 회복을 경험하게 되고 주일을 지킴으로 성령을 통한 하나님의 나라의 완성을 우리가 두 눈으로 보게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주일은 성령의 날, 그러니까 우리가 성령으로 예배하고 성령으로 봉사하고 성령으로 성도들과 함께해야 되는 날이 주일인 거예요. 주일을 철저히 지킬수록 인생은 자꾸 회복되어져 가요.
특별히 성령의 역사를 통해서 회복되어져 가는 거예요. 우리는 주일을 계명, 어떤 율법들 아니면 지켜야 될 서약 준칙 이런 것으로 생각하잖아요. 그것과는 다른 거예요. 여러분 세상의 약속이나 맹세도 지키면 누리는 게 달라져요. 이건 하나님과의 우리와의 맹세와 약속인 거잖아요. 주일은 주일 성수는 그렇기 때문에 이것을 지킨다는 것은 삶의 많은 영역에 있어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드러내는 한 방식이 되는 거예요. 내가 하나님께 순종하는지 내가 하나님 나라를 인정하고 있는지 하나님의 통치를 인정하고 있는지 성령의 일하심을 받아들이고 있는지를 주일 성수를 통해서 드러나게 됩니다.
이제 주일 성수에 대한 5주째 오후 예배가 마쳐집니다. 다음에 또 다른 타픽으로 여러분과 계속 교제를 할 텐데요. 어쨌든 주일은 우리가 힘써 지켜야 하는 날이라는 거예요. 시대가 바뀌어서 적용점이 좀 변했을 수도 있어요. 사회 체제가 옛날과는 농경 체제에서 산업 체제로 바뀌었고 지금은 산업 체제도 4차 산업 형태로 바뀌어지고 등등 많은 시대에 변화들이 있어요. AI가 등장하고 그렇지만 거기에 따른 조금의 해석들이 필요할지 모르지만 기본적인 주일에 대한 원칙들과 계명들은 우리가 꼭 어느 시대든 지켜져야 한다는 겁니다.
믿음의 선배들의 이 좋은 유산이 후배들에게 잘 물려지도록 우리는 그 역할을 해야 돼요. 여러분과 저는 그 중간에 있는 사람들인 거죠. 주 중간에 우리에 의해서 전달될 수도 있고 전달되지 않을 수도 있고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우리 다음 세대의 예배가 주일 성수가 판가름 나게 되는 거예요.
그런 의미에서 저도 제 삶도 여러분에게 메시지인 것처럼 여러분의 삶 또한 우리의 다음 세대들에게 메시지가 되는 거예요. 장로님들이 아무 말하지 않고 교회에 있어도 메시지가 담겨져 있어요. 권사님들이 교회에 있으면 메시지가 말과 몸을 통해서 전파가 돼요. 집사님들이 교회에 있으면 어떤 형태든 여러분이 담겨진 메시지가 전파돼요.
근데 우리는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파해야 될 사람이지 내 가치관을 전파하는 사람은 아니라는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주일 성수는 내가 내 가치관과 내 삶의 모든 능력을 주님의 통치 아래 뒀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행위가 곧 주일 성수가 되는 것입니다.
목장교회가 시대가 바뀌어도 이 주일 성수에 대한 확고한 자기 말씀의 틀에 우리를 잘 자리 잡아서 다음 세대가 본받을 만한 우리가 천교도의 주일 성수를 본받으려고 하잖아요. 한국 초대교회 우리 믿음의 어른들의 주일 성수를 본받으려고 하잖아요. 기독교 초기 역사에 주일 성수를 누가 본받으려고 그게 모델로 삼으려고 하잖아요. 왜 그렇게 가치 있게 그분이 사셨기 때문입니다. 그처럼 우리도 그런 삶을 살아서 우리의 다음 세대들이 본받을 만한 주일 성수에 대한 우리가 이해와 또 삶이 또 수고와 노력이 우리 가운데 있어야 합니다.
◈ Messenger’s Note:
“In his heart, a man plans his course, but the LORD determines his steps.” (Proverbs 16:9)
“Nevertheless, not my will but yours, be done.” (Luke 22: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