須菩提가 白佛言하사대 世尊하 佛이 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는 爲無所得耶니이다 佛言하사대 如是如是하다 須菩提야 我於阿耨多羅三藐三菩提에 乃至無有少法可得일새 是名阿耨多羅三藐三菩提니라 수보리가 부처님께 사뢰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으심은 얻은 바 없음이 되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되 “그렇다. 그렇다. 수보리야, 내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내지 작은 법이라도가히 얻음이 없으므로 이를 아뇩다라삼먁삼보리라 이름하느니라.”
說誼 上言生不生하시고 此言佛無得하시니 蓋菩提는 生佛平等之本有라 於中에 不應分別是凡是聖과 有得無得이니라
설의 위에서는 중생과 중생 아님을 말씀하시고 여기에선 부처님이 얻음 없음을 말씀하시니 대개 菩提란 중생과 부처가 평등하게 본래 가지고 있는 것이라서 그 가운데에서는 응당 범부와 성인 有得과 無得을 분별하지 않음이니라.
圭峰 以無法爲正覺者는 偈에 云彼處에 無少法일새 知菩提無上이라하며 論에 云彼菩提處는 無有一法可證일새 名爲阿耨菩提라하다
규봉 無法으로써 정각을 삼는다는 것은 偈에 이르되 저곳에선 작은 법도 없음이 無上의 菩提인 줄 안다 하며 논에 이르되 저 보리의 곳에는 한 법도 가히 증득함이 없으므로 이름을 아뇩보리라 하다.
六祖 須菩提가 言하사대 所得心盡이 卽是菩提라할새 佛言하시니 如是如是하다 我於菩提에 實無希求心이며 亦無所得心이니 以如是故로 得名爲阿耨多羅三藐三菩提也라하시니라
육조 수보리가 말하되 소득심이 다 없어짐을 곧 보리라 하니 부처님이 말씀하시되 "그렇다. 그렇다. 내가 菩提에 대하여 실로 希求心이 없었으며 또한 소득도 없었음이니 이같은 까닭으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라는 이름을 얻을 수 있었다”고 하시니라.
冶父 兎角杖龜毛拂이로다
說誼 古人이 道호대 四十九年積累功이여 龜毛兎角이 滿虛空이라 一冬臘雪이 垂垂下하야 落在烘爐烈焰中이라하시니 則許多年을 露胸跣足하고 拖泥帶水하사 拔濟沈淪하신 如是功能이 如夢相似하야 無一毫許可與相許로다
雖然如是나 畢竟作麽生道오 拈起兎角杖하야 拈開一路涅槃門이요 竪起龜毛拂하야 拂盡三千空假中이로다
야부 토끼뿔로 만든 지팡이요 거북털로 만든 拂子(털이개)로다.
설의 옛사람이 이르되 四十九년간 많은 功을 쌓음이여. 거북털과 토끼뿔이 허공에 가득함이라. 한겨울 섣달 눈이 계속 내려서 붉은 화로의 불꽃 속으로 떨어진다 하시니라.
곧 허다한 세월을 가슴 드러내고 맨발로 진흙을 묻히고 물에 젖으며 고해에 빠져 있는 중생을 건져 제도하신 이와 같은 功能이 꿈과 같이 相似하여 한터럭 만큼도 가히 더불어 서로 허락할 게 없도다.
비록 이 같으나 필경 어떻게 말할 것인가. 토기뿔 지팡이를 잡아 일으켜서 한길의 열반문을 열어주고 거북털의 털이개를 일으켜 세워서 三千大千世界의 空, 假, 中을 다 털어 없애버리도다.
傅大士 諸佛智明覺이여 覺性本無涯라 佛因有何得고 所得爲無耶로다 妙性難量比라 得理則無差어늘 執迷不悟者는 路錯幾河沙오
부대사 諸佛의 지혜가 밝게 깨달음이여 覺의 성품은 본래 끝이 없음이라. 부처님은 무엇으로 인하여 얻음이 있는가. 얻을 바가 없음으로써이니라. 묘한 성품은 헤아리기 어려워서 이치를 얻은즉 차별이 없거늘 미혹에 집착하여 깨닫지 못한 이들은 길을 잘못듦이 얼마나 많았던가.
冶父 求人이 不如求自己니라
說誼 求自는 一作自求라 旣是平等인댄 何以遠推諸聖이며 旣是本有인댄 何須向外馳求리오 若能反求諸已하야 驀然觸着鼻孔하면 坐斷報化의 佛頭去在리니 所以로 求人이 不如求自己니라
야부 남에게 구하는 것은 자기에게 구하는것만 같지 못하느니라.
설의 求自는 自求라고도 한다. 이미 평등하다고 한다면 어찌 멀리 성인들에게 미루어 구할 것이며 이미 본래 지니고 있음인댄 어찌 모름지기 밖을 향해서 급하게 구할 것인가.
만약 자기에게 돌이켜 구하여서 문득 콧구멍(근본)을 만지면 報身 化身의 부처머리를 앉아서 끊어가리니, 그러므로 남에게 구하는 것이 자기에게 구하는 것만 같지 못하느니라.
冶父 滴水成氷이 信有之나 緣楊芳草色依依라 秋月春花無限意여 不妨閑聽鷓鴣啼로다
說誼 此事는 寒威威冷湫湫라 滴水滴凍에 江河絶流하야 纖塵不立하고 寸草不生이로다 雖然如是나 寒暄이 不常이라 日煖風和에 山川이 競秀하야 玄黃을 可判이며 黑白이 分明이로다 伊麽則秋月春花無限事가 各各自有無限意하야 事事가 一一天眞이며 着着에 可以明宗이니 可以向翠竹黃花邊하야 明得此事며 可以向鶯吟燕語邊하야 明得此事라 以至一見一聞이 一一皆是發機的時節이요 一色一香이 一一開我活眼的物事니 須信道어다 山僧이 未陞座에 風鐸이 已搖舌이니라
야부 방울물이 얼음이 됨은 진실로 있으나 緣楊과 芳草의 색은 무성하도다. 秋月과 春花의 無限한 뜻이여, 자고의 울음을 한가히 듣는데 방해롭지 않도다.
설의 이 일은 차갑기가 威威하고 냉하기는 湫湫한지라.(지극함을 표현) 방울물이 얼어서 강물이 흐르지 못하고 가는 티끌도 서지 못하며 작은 풀도 나지 않음이로다.
비록 이 같으나 차고 더움은 항상하지 않음이라. 날이 따뜻하고 바람이 온화하매 산천이 빼어남을 다투니 검고 누런 것을 판단할 수 있으며 흑백이 분명하도다.
이러한즉 가을달과 봄꽃의 무한한 일들은 각각 스스로 무한한 뜻을 갖고 있어서 일과 일이 낱낱이 천진하여 만나는 것마다 가히 宗旨를 밝히도다.
푸른 대나무와 노란 꽃잎 끝을 향해서 이 일을 밝힐 것이며 꾀꼬리 울음과 제비의 지저귐을 향하여 이 일을 밝힐지니라.
하나를 보고 하나를 듣는 것들이 낱낱이 다 機를 일으켜 세우는 시절이요, 하나의 사물 하나의 향기가 낱낱이 다 나의 살아 있는 눈을 뜨게 하는 것이니 부디 믿을 지어다.
山僧이 아직 법상에 오르기도 전에 풍경소리가 법을 이미 다 설하였느니라,
宗鏡 法無可得이여 是名阿耨菩提요 道無可傳이여 直指涅槃正眼이로다 只如得而不得이요 傳而不傳이니 畢竟是何宗旨오 三賢도 尙未明斯旨라 十聖인들 那能達此宗이리오 從來無說亦無傳하니 纔涉思惟便隔關이라 語黙離微를 俱掃盡하니 寥寥獨坐古靈山이로다
說誼 此宗은 本無生하니 生心卽差違라 有心無心을 俱蕩盡하니 空空唯有一靈臺로다
종경 법 가히 얻을 것이 없음이여, 그 이름이 아뇩보리이고, 道 가히 전할 것이 없음이여, 바로 열반 正眼을 가리켰도다.
다만 그것을 얻되 얻지 못함이요, 전하되 전하지 못함이니 필경에 무슨 宗旨인가.
三賢도 오히려 이 뜻을 밝히지 못했는데 十聖인들 어찌 능히 이 宗을 통달하리오.
본래 설함도 없고 전할 것도 없으니 막 사유하려 하면 곧 관문을 막는지라. 語와 默 離(無)와 微(有)를 함께 다 쓸어버리고 고요히 옛 영축산에 홀로 앉음이로다.
설의 이 宗은 본래 나지 않음이니 마음을 내면 곧 어긋나도다. 有心과 無心을 다 없애니 空하고 공하여 오직 靈臺에 있을 뿐이로다.
무비 일체 법은 본래로 텅 비어 맑고 깨끗하다. 깨달음은 달리 얻을 수 없으며 얻었다고 할 수도 없다.
부처님은 그 어떤 작은 법도 얻은 것이 없노라고 하신다. 그리하여 이름을 아뇩다라삼먁삼보리라고 하신 것이다.
고인의 말씀에 道를 남에게 말할 수 있다면 모든 사람이 다 그 형제에게 말하지 않는 이 없을 것이며, 도를 남에게 줄 수 있다면 그 자손에게 주지 않을 사람이 없을 것이다.
또 어떤 이가 말하길 법을 가히 얻을 수 있다면 그것은 법에 속박된 것이고 법은 가히 얻을 것이 없어야 바야흐로 이름을 해탈이라 한다고 하였다.
사람사람이 다 아뇩보리이거늘 어찌 菩提로써 보리를 얻겠는가.
圭峰 二는 以平等爲正覺이라
규봉 ㉵二. 平等으로써 正覺을 삼음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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