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쩜 인생책을 운명처럼 만날 수 있는 코로나 시대 희망과 위로의 작은 책방
2021.07.26
정책 주간지 <공감>에 실린 인터뷰 전문입니다. 링크가 안되거 일단 퍼왔습니다.
<숲속책방 천일야화> 백창화 작가 인터뷰
“코로나19가 끝나면 오랫동안 고립과 우울에 시달리던 사람들에게 다시 손잡아줄 따뜻한 공간이 필요할 거라고 믿어요. 어려운 상황에도 인간의 존엄을 지키고 무너지지 않게 해주는 것이 인문 정신이라는 걸 다시 알게 될 것이고 그 가치를 지켜나가는 공간으로서 작은 책방들의 불빛은 희망이 되리라 믿습니다. 다만 그때까지 살아남아 있다면요. 부디 살아남아 있기를, 그래서 어두운 골목길을 처진 어깨로 타박타박 집으로 향하는 사람들에게 다정한 위로가 되길 바랍니다.”
〈작은 책방, 책 쫌 팝니다〉(2015)로 책 좀 읽는다는 사람들에게 책방이라는 새로운 꿈을 심어줬던 백창화 작가가 최근 〈숲속책방 천일야화〉로 돌아왔다. 충북 괴산군 칠성면 사은리에 자리한 ‘숲속작은책방’을 바라보면 사람들은 동화 같은 모습 그 자체에 감탄한다. 한 발짝 들어가면 그 안에 자리한 책과 공간에 쌓인 이야기는 결코 만만치 않다. 평생 책을 가까이에 두고 살아온 저자는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공감할, 누구나 꿈꿔 보았을 길을 먼저 걸었다.
코로나19로 작은 책방들이 치명적인 충격을 받았다. 그는 “만나서도 안 되고 여럿이 모여서도 안 되는 감염병의 시대라니…. 가능하면 좁은 공간에서 만나고 눈을 맞추고 손을 맞잡는 인간적인 세상을 꿈꾸던 책방의 가치가 설 곳이 없어졌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코로나19가 끝나면 작은 책방들이 지친 영혼들에게 위로가 되어줄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아이 키우며 어린이 책에 눈 떠
백 작가는 아이를 키우며 어린이 책에 눈을 떠 2001년 가정문고를 열었다. 이후 경기 일산과 서울 마포 성미산에서 ‘숲속작은도서관’을 10년 동안 운영하며 작은도서관 활동가로 일했다. 도서관은 조용히 공부하는 곳이라는 인식이 강했기 때문에 어린 자녀를 데리고 공공도서관에 가면 편안히 이용하기 어려운 구조였다.
백 작가는 “민간에서 어린이와 엄마가 맘 편히 책을 보고 즐길 수 있는 편안한 책 놀이터 개념의 사립문고를 만들어 운영하는 사례가 많았다. 아이를 키우면서 거실을 공용 서재처럼 개방해 동네 어린이들에게 책을 읽어주기 시작했고 이게 작은도서관의 시초가 됐다”면서 “큰 규모의 공공도서관은 무겁고 엄숙하고 거리감이 느껴지는데 가정문고나 작은도서관은 아이들이 내 집처럼 편안하게 느끼며 책과 친해질 수 있는 점이 가장 큰 장점”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다 ‘책 마을’을 만들고픈 꿈을 꾸며 유럽 곳곳의 서점과 도서관과 책 마을을 여행했다. 유럽의 책 마을과 서점들을 돌아보고 온 경험이 한적한 시골 마을에서 책방을 열 수 있는 힘이 됐다. 그는 “가장 부러웠던 건 유럽 사회에 여전히 살아 있는 도서관과 서점, 독서문화에 대한 전통이었다. 우리는 왜 저런 전통이 단절됐을까 아쉬웠다. 그 이유 중 하나가 공공도서관과 지역문화 거점 공간으로서 서점의 역할이 부재했던 것이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중 도서관에 대한 이해와 저변 확대는 지방자치단체를 중심으로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었기에 할 수 있는 일을 해보자고 생각해 (충북 괴산에) 책방을 열었다. 도서관과 서점은 독서문화의 거점 공간이자 커뮤니티로서 가장 중요한 두 축”이라고 덧붙였다.
숲속작은도서관에서 작가는 정원을 가꾸며 책벗들과 함께 북클럽을 진행한다. 작가를 초청해 북토크를 한다. 인생의 순간순간 저자의 마음을 사로잡고 생각을 움직인 책과 사람 이야기가 이 책에 담겨 있다. 〈숲속책방 천일야화〉는 책방을 하며 가장 많이 받았던 질문, ‘책방 서가의 책은 어떻게 선별해놓았냐’는 질문에 대한 답이 담겨 있다. 한 권 한 권 사연 없는 책이 없고 그 사연을 풀어놓는 것은 결국 책을 사랑하고 함께한 삶의 순간을 털어놓는 일이다.
백 작가가 운영하는 책방 서가의 책은 어떻게 선별될까?
그는 “가장 중요한 선별 기준은 ‘책방지기 네 멋대로 해라’다. 열 개의 책방이 있으면 그 책방의 책들이 다 달랐으면 좋겠고 이런 특징들이 살아 있는 책방이 많을수록 우리 사회 다양성이 확보된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숲속작은책방의 경우 책방지기가 1980년대 이데올로기와 리얼리즘의 시대를 살아왔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인문·사회 작품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그는 “사회와 인간에 대해 탐구하고 비판하고 더 나은 세상을 모색하고자 하는 책을 많이 선택한다. 다음으로는 그럼에도 다정함과 위로를 잃지 않는, 읽으면 마음 따뜻해지는 책을 많이 선별해놓으려고 한다”
책방은 책을 권하며 꿈을 그리는 곳
작은 책방이기에 멀리서 사고픈 책 제목을 메모하고 찾아온 손님을 빈손으로 돌려보내는 일도 있다. 이는 작은 책방의 운명이자 때론 작은 책방의 발견이 될 수도 있다. 그는 “농담처럼 십만 권을 갖춘 책 창고를 만들고 싶다는 이야기도 나누곤 한다. 손님이 찾는 바로 그 책이 없는 대신 지금까지 독서를 통해 겪었던 경험과 전혀 다른 세상으로 인도하는 책을 운명처럼 만날 수 있는 곳”이라고 말했다. 백 작가는 이어 되물었다. “그게 바로 작은 책방의 신비한 매력이 아닐까요? 손님들에게 그렇다고 우겨보면서 찾는 책 대신 새로운 책을 추천해드려 들고 가도록 하는 게 영업 전략이랄까요.”(웃음)
그에게 책방은 책을 권하는 곳이며 꿈을 그리는 공간이다. 어떤 사람에게 책방은 새로운 시작이 그려지는 지도의 시발점이다. 가장 기억에 남는 손님을 한 명 소개해달라고 하자 어느 날 북스테이를 신청한 한 여성에 대해 이야기해줬다. 혼자서 아주 커다란 트렁크를 들고 온 사람이었다. 그는 육십 평생에 혼자 집을 떠나 여행한 게 처음이라고 했다.
“그 여정이 얼마나 두근대고 설레는지 며칠 잠을 못 잤다고 했어요. 승용차로 오면 두 시간이면 올 거리를 대중교통을 네 번이나 갈아타고 여섯 시간에 걸쳐 왔는데요. 하나도 힘들지 않고 모든 시간이 행복했다면서 환하게 웃으셨어요.”
백 작가는 이렇게 그를 기억했다.
“결혼 전까지 책을 좋아해 많이 봤는데 결혼한 후부터 자신을 위한 독서 시간을 전혀 갖지 못해 아쉬웠다고요. 늘 며느리, 아내, 엄마로만 살다가 예순이 돼서야 함께 살던 시어머니가 돌아가시면서 비로소 자기만의 삶을 찾기 시작했는데 그 첫걸음이 책방 북스테이라고 했어요. 1박 2일 여행 중에 왜 그리 커다란 가방을 들고 왔냐고 물었더니 다음 날 그 가방에 한풀이하듯 한가득 책을 채워 가셨어요. 소녀처럼 눈을 반짝이며 잃었던 꿈을 이야기하는 손님을 보며 여자의 일생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며 가슴 찡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에게 숲속작은책방은 ‘이곳을 거쳐 간 수많은 사람의 삶과 꿈, 이야기가 머무는 기억의 공간’이면서 ‘스토리텔링 뮤지엄’이다. 그 꿈이 쌓여 저절로 만들어진 공간의 힘이 있다고 작가는 힘주어 말했다. 그는 “그 꿈의 유효기간이 얼마일지 알 수 없지만 모든 것이 빠르게 변하는 세상 속에서 언제라도 찾아가고픈 마음의 고향 같은 곳으로 오래 남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내 인생의 책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시인은 이곳에 와서 문득 자신의 꿈을 그려 보았나 보다. 조용한 책방에서 사람들을 기다리는 삶, 조금은 외롭지만 충족스러운 시인의 삶. 가까운 미래의 어느 날, 어쩌면 우리는 그 고적한 시인의 책방을 찾아 길을 나서게 될지도 모르겠다는 상상을 한다. 한 사람의 꿈이 다른 누군가의 꿈으로, 나의 삶이 어느 낯선 타인의 삶으로, 이렇게 마음은 돌고 돌아 긴 인연의 끈으로 지구를 휘감고 그래서 세상은 아직 조금 더 살아볼 만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시인의 꿈이 다다른 시골 작은 책방’ 중에서, 67쪽)
백 작가는 ‘책벌레’다. 평생을 책과 동행하며 살았다. 어린 시절에는 만화 가게와 학교 도서관에서 가장 큰 행복과 위로를 얻었다.
“그래, 이게 책이지. 영화도 드라마도 감동적이고 좋지만 페이지를 넘기는 내 손과 끊임없이 다음 페이지를 상상해야 하는 뇌, 이 절대적인 집중과 몰입의 시간을 통해 얻어지는 기쁨에는 무언가 다른 게 있다. 제주 바닷길을 자동차로 즐기는 드라이브의 순간도 아름답지만, 바람과 햇볕을 정면으로 맞으며 해안길을 두 발로 걸어서 만나는 올레길 도보가 누군가에겐 삶을 흔들어 놓는 시간이 되듯 책이란 그런 것이다.”
(‘나는 오늘도 책의 길 위를 걷는다’ 중에서, 258쪽)
인생 책을 한 권 소개해달라고 하자 쉽게 답하지 못한다. 그는 “인생 책이라면 100권 정도는 꼽아야 하는데…”라면서 웃음을 지었다. 그러면서도 한 권을 말하라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라고 답했다. 백 작가는 “지금도 책의 내용을 다 이해하지 못하고 삶의 지침이 된 책은 아니지만 어린 시절 동화에 대한 판타지와 매혹을 알게 해준 첫 책”이라고 말했다.
박유리 기자
첫댓글 오늘 공감지 받았는데 실린 것 봤어요 :) 괜히 반갑더라구요 ㅎㅎㅎ
아...그러셨네요. 전 실물 잡지는 못봤습니다...ㅋ....
반가운 독자께는 전달이 잘 되었으니 좋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