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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명기 14장
제 14 장 먹을 것과 못 먹을 것
(대 지)
一. 몸을 베지 말고 눈썹 사이의 털을 밀지 말 것(1-2)
二. 성도가 먹을 짐승과 먹지 못할 짐승(3-8)
三. 물고기 중에 먹을 것과 먹지 못할 것(9-10)
四. 정한 새와 부정한 새(11-20)
五. 스스로 죽은 것은 먹지 말라(21)
六. 십일조(22-29)
(본문 강해)
一. 몸을 베지 말고 눈썹 사이의 털을 밀지 말 것(1-2)
. 14:1-2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자녀니 죽은 자를 위하여자기 몸을 베지 말며 눈썹 사이 이마 위의 털을 밀지 말라 너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성민이라 여호와께서 지상 만민 중에서 너를 택하여 자기의 기업의 백성을 삼으셨느니라
가나안 족속들은 죽은 자들을 위한 슬픔의 표시로 자기 몸을 베어 피를 흘리고 눈썹 사이 이마 위의 털을 밀었다고 한다. 죽은 자를 위하여 지나친 슬픔의 표시로 그렇게 한 것이다. 그러나 성도는 죽은 자를 위하여 지나치게 슬퍼하거나 피를 흘리거나 몸을 훼상(毁傷)하면 안 된다. 하나님께서 그 같은 행위를 금하셨다. 죽은 사람이 큰 것이 아니고 살려 나가는 일이 큰 것이다. 예수께서도 "죽은 자들로 저희 죽은 자를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좇으라"고 하였다(마 8:22). 죽은 사람 장사하는 일 때문에 하나님 나라의 일에 지장이 있으면 안 된다. 사람이 죽으면 믿은 사람은 그 영이 즉시 천당에 가고 믿지 않은 사람은 그 영이 즉시 지옥에 간다. 그것을 사람이 변동시킬 수 없다. 그러므로 죽은 사람을 위해서 슬퍼하는 일은 헛된 일이다. 죽은 자를 위해 너무 슬퍼하는 것은 하나님께 합당치 않고 믿음이 아니다. 성도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과 생명을 살려 나가는 일을 해 나가야한다. 사람이 죽으면 이 세상에서는 끝난 것이다
죽은 사람을 위해서 슬퍼하지 말라고 한 이유는, 첫째, 성도는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이다(1절). 하나님 아버지께서 데려 갈 사람을 데려갔는데,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왜 그리 슬퍼하는가? 둘째, 성도는 거룩한 백성이기 때문이다(2절上). 성도는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인데, 하나님이 없는 이방 사람처럼 하면 되겠는가? 셋째, 성도는 하나님께서 창세 전에 지상 만민 중에서 택하신 하나님의 백성이기 때문이다(2절中). 넷째, 성도는 하나님께서 자기 기업의 백성으로 삼았기 때문이다(2절下). 하나님을 위하여 택함 받은 백성은 하나님을 위하여 살아야 된다. 성도의 몸은 자기 것이 아니고 그리스도의 피로 값 주고 산 것이므로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한다(고전 6:19-20). 그러므로 성도는 하나님과 그 나라를 위해서 살며, 생명을 살려 나가는 일에 충성하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에 충성을 다 해야 한다.
二. 성도가 먹을 짐승과 먹지 못할 짐승(3-8)
. 14:3-6 너는 가증한 물건은 무엇이든지 먹지 말라 너희의 먹을만한 짐승은 이러하니 곧 소와 양과 염소와 사슴과 노루와 불그스럼한 사슴과 산 염소와 볼기 흰 노루와 뿔 긴 사슴과 산양들 무릇 짐승 중에 굽이 갈라져 쪽발도 되고 새김질도 하는 것은 너희가 먹을 것이니라
성도가 먹을 만한 짐승은 굽이 갈라져 쪽발도 되고 새김질하는 짐승이어야 한다. 이 두 가지 중 한편만 해당된 것은 먹지 못한다. 이것은 구약의 제도이며 신약 시대에는 그 의식은 해제되었으나(골2:14-17), 그 의식에 내포되어 있는 진리는 지켜야 한다(마5:17-18). 그 진리는 영원 불변의 진리이고 천지가 없어질지언정 없어지지 않는다. 구약의 모든 의문과 증서는 예수님께서 십자가로써 도말하였으나 그 가운데 포함되어 있는 진리는 영원히 지켜야 한다. 쪽발도 되고 새김질하는 짐승을 먹으라는 것은 성도가 하나님의 말씀을 새김질하고 구별된 생활을 하라는 것이다.
① 쪽발이 두 쪽으로 갈라진 것처럼 성도는 둘로 갈라놓으라는 것이다. 인본주의와 신본 주의를 갈라놓아야 된다. 육과 영을 갈라놓아야 된다. 땅의 운동과 하늘의 운동을 갈라놓아야 된다. 마귀 역사와 하나님의 역사를 갈라놓아야 된다. 비진리와 진리를 갈라놓아야 된다. 그리하여 잘못된 것을 떠나고 옳은데 서야 된다. 이것이 쪽발 생활이다.
② 새김질하는 생활은 성경 말씀을 묵상하며 되새기는 생활이다. 배운바 말씀을 붙들고 회개할 바를 회개하고 바로 설 바를 바로서야 한다. 또 그 말씀을 가지고 만들어지지 못한 것을 회개하고 그대로 행할 힘을 달라고 기도하며 그대로 만들어지기를 힘써야 한다. 이 새김질하는 생활을 많이 하는 사람에게 그 말씀이 생명이 되고 잘 자라난다. 교역자는 한 번 가르치고 지나가고 교인들은 한 번 듣기만 하고 지나가면 안 된다. 새김질을 하면 소화가 잘되고 그 음식이 자기에게 필요한 영양이 되는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새김질하는 생활을 해야만 그 말씀이 자기의 생명의 양식이 된다. 새김질을 안 하면 음식을 먹고 설사해 내버리는 것과 같다.
. 14:7 다만 새김질을 하거나 굽이 갈라진 짐승 중에도 너희가 먹지 못할 것은 이것이니 곧 약대와 토끼와 사반 그것들은 새김질은 하나 굽이 갈라지지 아니하였으니 너희에게 부정하고
약대, 토끼, 사반은 새김질을 하나 굽이 갈라지지 않았으므로 먹지 못한다. 토끼는 새김질을 못하는 동물이지만 늘 입을 오물오물하면서 새김질하는 모양을 하고 있기 때문에 새김질하는 것 가운데 포함시킨 것이다.
. 14:8 돼지는 굽은 갈라졌으나 새김질을 못하므로 너희에게 부정하니 너희는 이런 것의 고기를 먹지 말 것이며 그 사체도 만지지 말 것이니라
굽은 갈라졌어도 새김질 못 하는 짐승은 먹지 못한다. 돼지는 쪽발이로되 새김질을 못하므로 먹지 말라는 것이다.
사체(死體)도 만지지 말 것이니라 이것은 죽은 신앙으로 생활하는 사람과 신앙적 교제를 하지 말라는 것이다. 새김질 않는 성도, 구별된 생활하지 않는 성도는 신앙이 죽게 된다. 죽은 믿음 가진 사람들과 타협하면 안 된다.
三. 물고기 중에 먹을 것과 먹지 못할 것(9-10)
. 14:9-10 물에 있는 어족 중에 이런 것은 너희가 먹을 것이니 무릇 지느러미와 비늘 있는 것은 너희가 먹을 것이요 무릇 지느러미와 비늘이 없는 것은 너희가 먹지 말지니 이는 너희에게 부정하니라
물고기 가운데는 지느러미와 비늘 있는 것은 먹되 지느러미와 비늘 없는 것은 먹지 말라고 하였다. 지느러미 있는 고기를 먹으라는 것은 성도는 방향을 바로 정하고 달음박질하는 생활을 하라는 것이다. 지느러미는 물고기가 방향을 조정하고 전진하는데 사용한다. 성도는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고 마귀의 화전(火箭)을 늘 막으면서 항상 갈 길을 바로 정하고 힘써 전진하는 생활을 해야 한다. 비늘 있는 고기를 먹으라고 한 신령한 뜻은 성도는 전신감주를 입으라는 것이다. 물고기에 있어서 비늘은 갑옷이다. 에베소서 6:11에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고 하였다.
四. 정한 새와 부정한 새(11-20)
. 14:11-18 무릇 정한 새는 너희가 먹으려니와 이런 것은 먹지 못할지니 곧 독수리와 솔개와 어응과 매와 새매와 매의 종류와 까마귀 종류와 타조와 다호마스와 갈매기와 새매 종류와 올빼미와 부엉이와 따오기와 당아와 올응과 노자와 학과 황새 종류와 대승과 박쥐며
성도가 먹을 수 있는 새는 정(淨)한 새이다. 부정(不淨)한 새는 먹으면 안 된다. 본문에 나와 있는 새들은 부정한 새들로서 성도가 먹으면 안 된다(신약 시대는 먹어도 되나 거기에 내포된 진리는 지켜야 된다). 이 새들은 남을 잡아먹고 사는 새들과 시체를 먹고사는 새들과 밤에 다니는 새들이다. 여기에 대한 신령한 뜻은 성도는 남을 해하지 말며, 어두운 곳에 다니지 말고 빛 가운데로 다니며 공명 정대(公明正大)한 언행만 하라는 것이다. 수근 수근하고 비방하고 원망하고 사사건건(事事件件) 트집이나 잡고 남을 해하는 신자는 하나님께 합당치 않다. 또 신앙이 죽은 행실을 멀리 하라는 것이다.
. 14:19-20 또 무릇 날기도 하고 기어다니기도 하는 것은 너희에게 부정하니 너희는 먹지 말 것이나 무릇 정한 새는 너희가 먹을지니라
날개가 있고 기어다니는 짐승은 부정하니 먹지 말라는 것이다. 신령한 뜻은 성도는 저 높은 곳을 향하여 올라가는 생활을 하며, 날아가는 것처럼 하나님의 명령을 신속히 순종하여야 한다는 뜻이다. 무릇 정한 새는 너희가 먹을지니라 성도는 정한 생활을 하라는 것이다.
五. 스스로 죽은 것은 먹지 말라(21)
. 14:21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성민이라 무릇 스스로 죽은 것은 먹지 말 것이니 그것을 성중에 우거하는 객에게 주어 먹게 하거나 이방인에게 팔아도 가하니라 너는 염소 새끼를 그 어미의 젖에 삶지 말지니라
스스로 죽은 짐승은 성도가 먹지 않아야 된다. 이것은 영혼이 죽은 자나 신앙이 죽은 자와 타협하지 말라는 것이다. 염소 새끼를 그 어미의 젖에 삶지 말지니라 짐승을 잡아먹기는 하되 잔인하게 잡아먹지 말라는 것이다. 새를 잡을 때도 어미새와 그 알을 함께 취하지 말라고 했다(22:6-7). 짐승을 잡아먹을지라도 무자비하게 하지 말고 소망을 아주 끊어 버리지 말라는 것이다. 매를 때릴 때에도 40대를 넘기지 말고 긍휼과 자비가 있어야 된다(25:3; 고후 11:24).
六. 십일조(22-29)
. 14:22-27 너는 마땅히 매년에 토지 소산의 십일조를 드릴 것이며 네 하나님 여호와 앞 곧 여호와께서 그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에서 네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의 십일조를 먹으며 또 네 우양의 처음 난 것을 먹고 네 하나님 여호와 경외하기를 항상 배울 것이니라 그러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이 네게서 너무 멀고 행로가 어려워서 그 풍부히 주신 것을 가지고 갈 수 없거든 그것을 돈으로 바꾸어 그 돈을 싸서 가지고 네 하나님 여호와의 택하신 곳으로 가서 무릇 네 마음에 좋아하는 것을 그 돈으로 사되 우양이나 포도주나 독주 등 무릇 네 마음에 원하는 것을 구하고 거기 네 하나님 여호와의 앞에서 너와 네 권속이 함께 먹고 즐거워할 것이며 네 성읍에 거하는 레위인은 너의 중에 분깃이나 기업이 없는 자니 또한 저버리지 말지니라
레위인을 위하여 하나님께 바치는 십일조(제1 십일조)가 있다. 민수기 18:21-24에 "내가 이스라엘의 십일조를 레위 자손에게 기업으로 다 주어서 그들의 하는 일 곧 회막에서 하는 일을 갚나니 이 후로는 이스라엘 자손이 회막에 가까이 말 것이라 죄를 당하여 죽을까 하노라 오직 레위인은 회막에서 봉사하며 자기들의 죄를 담당할 것이요 이스라엘 자손 중에는 기업이 없을 것이니 이는 너희의 대대에 영원한 율례라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거제로 드리는 십일조를 레위인에게 기업으로 준 고로 내가 그들에 대하여 말하기를 이스라엘 자손 중에 기업이 없을 것이라 하였노라"고 하였다. 레위인은 세상에 기업이 없고 하나님의 성전에서 봉사하는 일에 전무하기 때문에 레위인에게 십일조를 주라고 한 것이다. 레위인은 그 십일조를 받아 가지고 그 받은 것 중에서 다시 십일조를 구별하여 대제사장에게 주고 대제사장도 그 받은 중에서 또 십일조를 구별하여 하나님의 성전 곳간에 들여야 한다(민 18:26-32). 그러므로 교인들은 십일조를 교회에 바치고 제직회에서는 십일조와 기타 연보 중에서 교역자 사례금을 정하여 드려야 한다.
그런데 본절에서 말한 십일조는 제2의 십일조로서 두 번째 구별한 십일조이다. 즉 십일조를 두 번 구별한 것이다. 이 제2의 십일조는 용도가 다르다. 그것을 가지고 하나님의 택하신 곳에 가서 온 가족들과 종들이 함께 하나님 앞에서 먹는다. 그 택하신 곳이 멀어서 가지고 가기 힘들면 그것을 팔아서 돈으로 가지고가서 우양이나 포도주나 독주 등 무릇 마음에 원하는 것을 사서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모든 권속이 함께 먹고 즐거워하라는 것이다(12:11-12). 그때에도 레위인을 생각하라는 것이다. 제2의 십일조는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고 가족 축하 잔치용 십일조이다.
. 14:28-29 매 삼 년 끝에 그 해 소산의 십분 일을 다 내어 네 성읍에 저축하여 너의 중에 분깃이나 기업이 없는 레위인과 네 성중에 우거하는 객과 및 고아와 과부들로 와서 먹어 배부르게 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의 손으로 하는 범사에 네게 복을 주시리라
여기는 매 3년 끝에 또 십일조(제3 십일조)를 드려서 빈민구제용(救濟用)으로 사용하라고 하였다. 십일조의 종류가 전부 세 가지이다. ① 제1 십일조 : 레위인을 위하여 하나님께 바치는 것(민 18:21-24), ② 제2 십일조 : 십일조를 바치고 남은 데서 또 십일조를 떼서 가족 축하 잔치 용으로 혹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사용하는 것(22-27절), ③ 제3 십일조 : 매 삼년 끝에 드리는 십일조이다(28-29절; 26:12). 이 해는 제2 십일조는 떼지 않고 제3 십일조로 대신한다. 그러므로 제3년에도 제1, 2년과 마찬가지로 십일조를 두 번만 떼면 된다. 제3 십일조는 분깃이나 기업이 없는 레위인과 성중에 우거하는 객과 고아와 과부들로 와서 먹어 배부르게 하는 것이다. 그리하면 하나님 여호와께서 손으로 하는 범사에 복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가난한 사람을 도와주는 것을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갚아 주신다. 잠언11:24-25에 "흩어 구제하여도 더욱 부하게 되는 일이 있나니 과도히 아껴도 가난하게 될 뿐이니라 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하여질 것이요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윤택하여지리라"고 하였다.
구약 시대에는 십일조를 드렸어도 신약 시대에는 안 드려도 된다고 주장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마태복음 23:23에 "화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바 의와 인과 신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고 하였다. '이 것도 행하고'는 의와 인과 신도 행하라는 것이고, '저것도 버리지 말라'는 것은 십일조 드리는 것도 버리지 말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