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애굽기 20장
제 20 장 계 명
(대 지)
一. 구원의 하나님(1-2)
二. 십계명(3-17)
三. 백성이 두려워함(18-21)
四. 하나님 섬기는 법(22-26)
(본문 강해)
一. 구원의 하나님(1-2)
. 20:1-2 하나님이 이 모든 말씀으로 일러 가라사대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너의 하나님 여호와로라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시내산에 강림하셔서 모세에게 십계명을 주시기 전에 먼저 서론적으로 하신 말씀이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먼저 구원해 주셨으므로 그 은혜를 감사하여 십계명을 지키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십계명은 행위 계약이 아니고 은혜 계약의 기초이다. 십계명을 주신 목적은 죄를 깨닫게 하여 앞으로 오실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데 있다. 그리고 구원받은 성도가 십계명을 지킴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구원을 이루어 나가며 하나님을 닮아 가게 하려는 것이다.
二. 십계명(3-17)
. 20:3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
첫째 계명이다. 하나님은 한 분뿐이신 유일하고 참된 신이시다. 그분 외에 신으로 여기고 섬기는 모든 것은 다 우상이다. 또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은 다 마귀이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 따라서 하나님과 마귀를 겸하여 섬기지 못하는 것이다.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두는 것은 하나님의 진노를 쌓는 일이다. 우리는 유일신이신 하나님만 믿고 섬기고 순종하여 하나님의 인도와 주장을 받아서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돌려 드리고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사는 참되고 충성된 성도가 될 때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가 있다.
. 20:4-5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비로부터 아들에게로 삼 사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이것은 둘째 계명인데 우상을 만들거나 섬기거나 절하지 말라는 것이다. 우상은 사람의 마음에서 섬기고자 하는 대상을 감각적으로 표현하여 형상을 만들어 놓고 섬기는 것이다. 우상을 만들지도 말고, 그것들을 섬기지도 말고, 그것에게 절하지도 말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우상을 만드는 사람이 신이라고 생각하지 아니하고 만들어서 판 것도 죄이다. 또 그 우상이 복 준다고 해서 복 달라고 빌고 섬기는 것도 죄이다. 그리고 속으로는 우상을 부인하면서도 할 수 없이 절하는 것도 우상에게 굴복하는 죄가 된다.
하나님은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의 질투는 미워하고 시기하는 데서 나온 것이 아니요, 사랑에서 나온 것이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사랑하는 자녀가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섬김으로 마귀에게 종노릇하는 것을 차마 보지 못하는 데서 질투가 일어나는 것이다. 이는 사랑을 받고자 하는 데서 오는 질투가 아니요, 사랑을 주고자 하는 데서 오는 질투이기 때문에 거룩한 질투이다. 그러나 사람들의 질투는 다 악한 것이다.
우상은 하나님께서 미워하시고 가증히 여기는 것인데 이를 만들고. 절하고. 섬기게 되면 하나님을 미워하는 큰 죄가 된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삼 사대까지 이르게 하겠다고 하셨다. 삼 사대까지 형벌을 받는다는 뜻은 아버지의 죄 값으로 자손 삼 사대까지 벌을 받는 것이 아니라, 그 죄의 영향력이 삼 사대까지 내려가게 된다는 것이다. 또 자녀가 아버지의 죄를 본받아서 자기도 죄를 범하게 되므로 그 죄 값을 받게 되어 벌받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버지가 죄를 많이 지었어도 그 자녀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여 믿는 일을 잘하면 하나님의 축복을 받게 된다. 히스기야왕의 부왕(父王)인 아하스왕은 악하고 죄를 많이 지은 왕이었지만 히스기야왕은 하나님을 잘 섬기는 선한 왕이었으므로 복을 받았다.
. 20:6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이는 조상의 믿음이 자손 대대로 계승되어 그 믿음으로 후손이 복을 받는다는 뜻이다. 조상이 믿음을 잘 지킨 영향이 수 천 대까지 내려가고, 또 그 자손이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믿음을 지키므로 복을 받게 되는 것이다. 아브라함의 신앙을 이삭이 본 받아 복을 받았고, 이삭의 신앙을 야곱이 본받아 복 받았으며, 신앙의 계대가 이어져서 이스라엘 백성이 복을 받았다. 디모데후서3:14 하반절에 바울이 디모데에게 "네가 뉘게서 배운 것을 알며"라고 하였다. 바울의 신앙이 디모데에게 계승되어 내려갔고 ,디모데의 신앙이 그 후대에 이어져 내려갔다. 영국의 청교도들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여 믿음을 지키기 위해 고국 산천을 떠나서 아메리카 대륙으로 건너갔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많은 축복을 해주셨다. 또 그 후손들이 청교도의 신앙을 본받아서 하나님께 복을 받았다. 그것이 오늘의 미국이다. 여호와께서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계명을 지키면 수 천대까지 은혜를 베풀어주신다고 하셨으므로 말씀대로 예수를 믿으면 수 천대 후 자손에게 좋은 영향이 미 쳐서 자신만 복을 받는 것이 아니고 수 천대까지 그 후손이 복을 받게 된다.
오늘날의 우상은 실제로 무슨 형상을 만들어서 그것을 섬기고 절하지 않는다고 하여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고 더 지배받는 모든 것이 다 우상이 된다. 자기나 돈이나 자녀나 직장이나 단체나 국가를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고, 하나님의 지배보다 그것들의 지배를 더 받게 되면 그 모든 것이 다 우상이 된다. 또 이것들 때문에 말씀을 양보하면 그것이 우상에게 절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는 모든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만 사랑하고 하나님의 말씀만 순종하고 하나님의 인도와 주장을 받아 나갈 때에, 하나님께서 순종하는 자에게 은혜를 천대까지 내리시겠다고 하신 약속의 말씀대로 자신뿐만 아니라 그 신앙을 계승한 모든 후손에게 복을 내려 주실 것이다.
. 20:7 너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나 여호와는 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자를 죄 없다 하지 아니하리라
이는 셋째 계명이다. 망령되이라는 말은 "헛되이"라는 뜻이 있다. 잠언21:24에는 무례하고 교만한 것이라고 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이름을 헛되이 부르는 것이 망령되이 일컫는 것이다. 박 윤선 목사는 하나님의 이름을 헛되이 부르는 것은 첫째, 믿음이 없는 형식적인 기도, 둘째, 자기 자신을 높이고 교인들에게 인기를 끌고자 하는 설교, 셋째, 하나님을 위한다고 하면서 직업적으로 나가는 교역자, 넷째, 형식적인 예배 행위, 다섯째, 거룩한 종교적 서약을 지키지 않는 것 등이라고 하였다.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죄 가운데 빠지지 않도록 삼가 조심하여야겠다. 성경 말씀을 듣고도 행하지 않는 것은 성령을 거역한 죄와 하나님을 망령되이 일컫는 죄가 된다. 또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여야 될 줄을 알면서도 전하지 않는 것은 다 하나님의 이름을 헛되이 부르는 죄가 된다.
. 20:8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
이는 넷째 계명이다. 구약시대의 안식일은 토요일이었는데, 신약 시대에는 주일이 안식일이다. 왜냐하면 히브리서7:18에 "전엣 계명이 연약하며 무익하므로 폐하고"라고 하였고, 골로새서2:17에는 "이것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고 하셨다. 구약 시대의 안식일은 그림자로서 준 것이요, 실체는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는 안식일의 주인이시며 안식을 주시는 분이시다. 예수께서 주일날 부활하여 제자들에게 안식을 주셨다. 요한복음20:19에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라고 하셨다. 그러므로 오늘날은 주일을 지키는 것이 옳다. 또 히브리서4:4에 "제 칠일" 안식일을 말하다가 7절에는 다시 어느 날을 정했다고 한 것은 구약 시대의 안식일을 계속 지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다시 다른 날을 정하여 주시겠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신약시대에는 주일을 지키는 것이 참된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다. 주일은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여 안식을 주신 날이고, 또 성부께서 계시를 주신 날이며(계1:10), 또 성령께서 강림하신 날이다(오순절은 예수님 부활하신 후 일곱 번째 주일이다)(행2:1). 주일날에 성부, 성자, 성령, 삼위 일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안식과 복을 주신 날이기 때문에 주일을 지켜야 옳다. 주일을 지키되 안식일을 지키는 정신으로 철저히 지켜야 한다.
. 20:9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엿새 동안은 힘써 모든 일을 해야 한다. 엿새 동안에 힘써 모든 일을 하고 안식일은 쉬라는 것이 하나님의 명령이다. 엿새 동안 힘써서 일하지 않는 것은 이 계명을 범하는 것이다. 데살로니가후서3:10에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고 하였다.
. 20:10 제 칠일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육축이나 네 문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
안식일을 지킬 때 본인뿐 아니라 아들이나 딸, 남종이나 여종, 육축이나 문안에 거하는 객(客)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주일에 자신은 일하지 않더라도 대신 일꾼들을 시켜서 일하는 것도 죄이고, 또 매매하는 것도 죄이다. 요즈음 예배당을 건축하는데 주일날도 일꾼에게 일을 시키는 교회가 있는데 그것도 죄이다. 주일날 예배 행위를 위한 일 외에 남는 시간에 다른 일을 하거나 원 거리를 출타하는 것은 죄가 된다.
. 20:11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제 칠일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
이 날은 하나님께서 쉬셨고 복되게 하셨으며 거룩하게 하셨으므로 거룩히 지켜야 한다. 이사야58:13-14에 "만일 안식일에 네 발을 금하여 내 성일에 오락을 행치 아니하고 안식일을 일컬어 즐거운 날이라 여호와의 성일을 존귀한 날이라 하여 이를 존귀히 여기고 네 길로 행치 아니하며 네 오락을 구치 아니하며 사사로운 말을 하지 아니하면 네가 여호와의 안에서 즐거움을 얻을 것이라 내가 너를 땅의 높은 곳에 올리고 네 조상 야곱의 업으로 기르리라 여호와의 입의 말이니라"고 하였다.
"네 길로 행치 말라"는 것은 자기 개인적인 일을 보러 다니지 말라는 뜻이다. 주일에 누구를 만나기 위하여 예배당에 간다든지, 또 주일날 무슨 일을 하자고 서로 의논하고 약속한다든지, 또는 내일 일할 것을 준비하는 것 등은 다 옳지 않다. 그 이유는 육신과 세상일에 정신이 팔려 있어서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온전한 예배가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또 주일에 사고 파는 행위나 외상 거래를 하는 것도 죄이다. 그러므로 안식일(주일)을 거룩히 지키는 신앙을 가져야겠다. 이 날은 주의 날이요, 하나님만 위하는 날이다. 하나님에서 이 날에 직접 복을 주시고 안식을 주시기로 약속하신 날이다. 그러므로 엿새 동안은 힘써 자기 일을 부지런히 하고, 주일날은 거룩하게 구별하여서 하나님께 온전히 바쳐 드려야 한다. 그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표이다.
성도는 주일을 지키는 것부터 바로 해야 하나님을 바로 섬길 수 있다. 그러므로 성도는 생명을 내어놓고 주일을 거룩히 지켜야 한다. 주일날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는 성도들에게 영적 안식을 주시고 하나님의 말씀을 주신다. 이 날에 우리가 기도를 많이 하고 영적인 참된 안식을 받아야 한다. 기도를 많이 하고 신령한 가운데 들어가서 하나님이 주시는 영적 안식을 받아 우리 영이 안식할 수 있는 그러한 사람이 되어야겠다.
또 주일은 장차 올 안식을 가르쳐 주는 날이다. 장차 우리에게 천년 왕국이 오고, 영원한 무궁 세계가 온다. 그러므로 주일은 하나님과 영원토록 같이 사는 그 안식을 가르쳐 주는 날이요, 우리들이 교회에 모여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면서 그 안식을 맛보며 참예하는 날이다. 우리가 주일에 하나님의 안식을 맛보고, 하나님의 영적 안식에 참예하여 하나님께서 주시는 영적 즐거움을 얻어서 이 날을 즐거워하고 거룩하고 존귀하게 여겨서 지켜 나가면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큰 복을 내리신다.
또 엿새 동안 일하고 이레 되는 날에 쉼으로써 육신적으로도 건강이 유지된다. 인체 구조상 낮에 일하고, 밤에 쉬는 것으로는 휴식이 모자란다고 한다. 그러므로 주일날 하루 쉼으로써 모자라는 휴식이 보충이 되어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
이 날은 또 영적인 양식과 힘을 공급받는 날이다. 주일날 신령한 안식에 참예하여 영적 양식과 힘을 공급받아 그 힘을 가지고 한 주간 동안 세상과 죄와 싸워 나가며 말씀을 실현해 나가야 한다. 이것이 복 받는 길이다. 주일 예배 시간에 은혜를 받지 못하고 돌아가는 것은 자동차에 기름을 넣지 않고 가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 20:12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다섯째 계명인데, 이것은 인륜에 대한 첫째 계명이다. 그러므로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인륜 도덕 중 제일 먼저 해야 될 일이다. 순종하는 것은 주 안에서 하라는 조건이 있지만 공경하는 것은 조건이 없다(엡6:1-2 참조). 이는 부모를 순종하되 성경 말씀에 어긋나는 것은 순종하지 말고,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무조건적으로 공경하라는 것이다. 부모가 부족하고 흠이 있다든지 또는 악하거나 자기에게 잘못 해 주었다고 할지라도 무조건 공경해야 한다. 공경하지 않으면 죄이다.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중간에 실패하지 않고 잘된다는 말이다. 에베소서6:3에는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고 하였다. 이 말도 역시 가다가 실족하지 않고 잘된다는 말씀이다. 부모는 자녀들보다 경험이 많으므로 자녀들이 잘못 나가는 것을 보고 바로 가르쳐서 바로 인도해 줄 수 있다. 그러므로 순종을 잘하면 잘못 된 길로 걸어가지 않고 실패하지 않고 잘된다. 이것이 장수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순종하지 않고 잘못된 길로 계속 나가는 사람은 가다가 거꾸러진다. 그러므로 생명이 단축된다. 젊은 사람들이 제 마음대로 하겠다는 생각이 속에 가득하여 부모나 선생의 말을 잘 듣지 않다가 얼마 가지 않아 함정에 빠지고 올무와 덫에 걸려서 많은 어려움을 당하게 되고 실패를 당한다. 그러므로 자기를 사랑으로 인도하는 부모나 윗사람의 말을 잘 듣고 순종하는 자가 되어야겠다.
요즈음 부모 공경을 잘하지 않는 시대가 되었다. 물질적으로 유여한 선진국일수록 더 심하다. 이는 말세가 된 징조이다. 사람들이 다 자기를 사랑하고, 돈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고, 부모를 거역하는 시대가 되었다. 미국 같은 선진국에서는 늙은 부모를 모시지 않고 양로원에 보내고는 돌아보지도 않는 자녀가 많고, 효자라야 겨우 한 달에 한 두 번 와 보는 정도이며, 부모가 죽은 후에 와 보지도 않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또 죽으면 국가에서 장례를 다 치러 주므로 노인들은 양로원에서 죽는 날만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악하고 패역한 시대가 되어 인륜 도덕이 다 땅에 떨어졌다. 이와 같이 부모의 은혜를 배반하는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은혜는 배반하지 않겠는가! 또한 하나님의 은혜를 배반하는 사람은 반드시 사람의 은혜도 배반하게 된다. 또한 심은 대로 거둔다는 성경 말씀대로 부모를 공경하지 않는 자는 나중에 자기 자식에게 버린 바 되어 양로원에 가서 있다가 쓸쓸하게 이 세상을 이별하게 될 것이다.
. 20:13 살인하지 말지니라
제 육 계명이다. 사람을 죽이지 말라는 것이 하나님의 명령이다. 마태복음5:21-22에 예수께서 살인에 대한 이 계명의 근본 정신을 가르쳐 주셨다. ①형제를 미워하는 것이 살인이고, ②'라가'라 하고 욕하는 것이 살인이고, ③미련한 놈(하나님을 모르는 놈)이라 하여 형제를 악평하는 것이 살인이라고 하셨다. 그러므로 마음으로 미워하고, 말로 다른 사람을 악평하고 비방하는 것은 살인죄이다. 우리는 이 죄에 빠져들지 않도록 해야 한다. 좀더 나아가 성도는 모든 사람을 사랑해야 한다. 사람을 사랑하되 죄까지 사랑해도 안되고, 반대로 죄를 범해도 안 된다. 아무리 악한 사람이 있다고 할지라도 그 사람이 하나님 앞에 심판 받을 것을 생각하여 불쌍히 여기고 사랑하여 그 사람이 회개하고 바로 서기를 위하여 기도해 주어야 한다. 하나님의 뜻은 사람을 살리는데 있다. 그러므로 사람을 미워하여 죽이는데 서지 말고 사랑하여 살리는데 서야 한다.
. 20:14 간음하지 말지니라
제 칠 계명이다. 마태복음5:27-28에 이 계명의 근본 정신을 예수께서 가르쳐 주셨다. 간음에는 세 가지 종류가 있다. ①영적 간음이다. 음욕을 품는 자가 이미 간음했다는 뜻은 음욕을 품기 전에 벌써 간음했다는 것인데, 그것은 마음이 하나님에게서 떠난 상태를 가리키는 것이다. 이것이 영적 간음이다. ②여인을 보고 마음에 음욕을 품는 것도 간음이다. 이것은 심적 간음이다. ③ 실제적 간음이다. 간음하는 것은 사람 앞에나 하나님 앞에 부끄러운 일이고, 또 결과는 멸망이다. 우리가 전에는 음란과 방탕 가운데 살았으나(골3:7)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피로 값 주고 사셔서 우리를 하나님의 성전으로 삼으셨다(고전6:19). 하나님은 우리 몸을 음란을 위하여 만든 것이 아니고 주를 위하여 만드셨다(고전6:13). 그러므로 거룩한 성전이 되어 하나님 앞에 바로 사용하여야 한다. 결혼하기 전에 갖는 이성 관계도 간음이다. 하나님께서 한 남자와 한 여자를 짝지어 주신 것은 경건한 자녀를 얻기 위함이라고 하셨다(말2:15). 그러므로 정당하게 합법적으로 결혼하여 부부 생활을 해야 된다. 또는 독신으로 살며 정절을 지켜 나가는 것도 아름다운 것이다.
. 20:15 도적질하지 말지니라
이는 제 팔 계명이다. 도적질은 자기 물건이 아닌 물건을 자기 것으로 만들어 놓는 것이다. 또 하나님께 십일조를 드리지 않는 것이 도적질이라고 하였다(말3:8). 또 불의하게 얻은 모든 것은 다 도적질한 것이다.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일을 하여 몇 백억, 몇 천억을 벌어도 좋다. 그러나 정당하지 않은 사업, 즉 믿음 지키지 아니하고, 성경 말씀을 어기고, 양심을 안 쓰고, 속이고, 하나님의 뜻을 어기면서 얻은 것은 다 도적질한 것이다. 도적질하지 말고 하나님이 주시는 것만 가지고 정당하게 살아야 한다. 또 물질뿐만 아니라 명예, 권세를 정당하게 얻지 아니하고 남의 권세를 빼앗고, 권리를 빼앗으면 이것도 도적질이다.
십일조 이외에도 하나님의 것을 자기 것으로 삼으면 다 도적질한 것이다. 시편24:1에 "땅과 거기 충만한 것과 세계와 그 중에 거하는 자가 다 여호와의 것이로다"라고 하였다. 물질에 대한 정당한 위치, 사람에 대한 정당한 위치를 어기고 취하는 것과 하나님이 주시는 것 이외에 욕심으로 취하는 것도 다 도적질이다.
. 20:16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지니라
이는 제 구 계명이다. 찬송가에 적힌 십계명 중에는 "이웃을 해 하려고 거짓 증거하지 말지니라"고 하여 "해하려고"라는 말이 더 들어가 있다. 성경 본문에는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지니라"고 했는데 왜 "해하려"를 더 넣었을까? 해석상으로 볼 때는 "해하려고"라는 말이 들어가야 맞다. "이웃에 대하여"라는 말은 "이웃을 위하여"라는 뜻이 내포되어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 말은 법정에서 거짓 증거하지 말라는 뜻이 있다. 출애굽기23:1 하반절에 "악인과 연합하여 모함하는 증인이 되지 말라"고 하셨다 다른 사람에게 가식, 아첨, 과대 선전, 사실에다 거짓을 더하여 타인을 모함하는 것 등은 다 거짓 증거에 속한다. 거짓은 마귀에게 속한 것이다. 요한복음8:44에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저가 거짓말장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니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거짓 증거 하는 자는 마귀의 자식이다. 성도는 양심을 쓰고 말에나 심리로나 행위로나 항상 진실하여야 된다.
. 20:17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지니라 네 이웃의 아내나 그의 남종이나 그의 여종이나 그의 소나 그의 나귀나 무릇 네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 말지니라
이는 제 십계명이다. 탐심은 모든 죄의 근원이 된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삼가 탐심을 물리치라고 하셨다(눅12:15). 탐심을 가지면 마음이 어두워지고 은혜에서 떨어진다. 남의 재물에 대한 탐심이나 남의 아내에 대한 탐심, 남의 종이나 우양에 대한 탐심을 가지면 하나님의 은혜와 권고의 자리에서 떠나게 된다. 그러므로 성도는 자기 속에 있는 탐심과 더불어 항상 싸워서 이겨야 된다. 이것을 잘 이기는 자가 구원을 잘 이루어 나가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릴 수가 있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다.
탐심의 구덩이는 한정 없이 깊다. 탐심을 품고 다니면 점점 더 깊이 구렁텅이에 빠져 들어가 마침내는 자기가 망하고 만다. 디모데전서6:6-8에 성도는 스스로 족한 줄 알라고 하였다. 아무리 좋은 것이 있어도 탐심을 품지 말고 스스로 자족을 배워 현재 자기에게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고 믿음으로 살며 감사하는 생활을 해야 된다. 그러면 천국이 그 속에 임한다.
또한 모든 것을 자기의 분수에 넘치게 하려고 하지 말고, 또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주신 그 이상의 것을 취하려고 하지 않아야 된다. 시편131:1에 "여호와여 내 마음이 교만치 아니하고 내 눈이 높지 아니하오며 내가 큰 일과 미치지 못할 기이한 일을 힘쓰지 아니하나이다" 라고 하였다.
三. 백성이 두려워함(18-21)
. 20:18 뭇 백성이 우뢰와 번개와 나팔 소리와 산의 연기를 본지라 그들이 볼 때에 떨며 멀리 서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멀리 떨어져서 하나님께서 강림하시므로 나타난 우뢰, 번개, 나팔 소리. 산의 연기를 보고 벌벌 떨었다. 죽을까봐 두려운 마음이 들어온 것이다. 하나님은 이렇게 엄위(嚴威) 하신 하나님이시다.
. 20:19 모세에게 이르되 당신이 우리에게 말씀하소서 우리가 들으리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지 말게 하소서 우리가 죽을까 하나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말씀을 직접 듣는 것을 감당할 수가 없어서 모세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해 달라고 요청하였다. 요즈음도 번개가 치고 우뢰 소리가 날 때에는 당장 벼락이 떨어져 죽지 않겠나 하는 불안과 공포가 생긴다. 그런데 그 당시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나팔 소리가 크게 나고 음성도 들리고 구름이 가득하고 우뢰 소리로 산이 진동하고 번개 불이 나오므로 더욱 두려움이 컸을 것이다. 그리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이 너무 무서워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직접 말씀하시면 우리는 다 죽게 되었으니 당신이 중보자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에게 전해 달라고 간청한 것이다.
그들이 그렇게 두려워하게 된 것은 하나님과 직접 대면하면 자기들의 죄가 다 드러나서 당장에 하나님께로부터 벌을 받아 죽을까 하여서였으며, 또 비천한 인간이 지극히 거룩하시고 엄위하신 하나님을 대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참으로 본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지 않을 수가 없다. 누가복음5:8에 베드로가 예수님을 발견하고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하고 신앙 고백을 하였고, 또 요한계시록1:17에 사도 요한도 밧모섬에서 예수님을 발견할 때에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러져 죽은 자같이 되었고, 이사야6:5에 이사야는 성전에서 기도하다가 하나님을 뵙고는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라고 말하였다.
. 20:20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두려워 말라 하나님이 강림하심은 너희를 시험하고 너희로 경외하여 범죄치 않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께서 강림하신 목적은 이스라엘 백성을 죽이려 하심이 아니고, 이스라엘 백성을 시험하고, 하나님을 경외케 하여 마침내 복 주려 하신 것이다. 너희를 시험하고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그들의 죄와 되지 못한 면을 전부 다 드러내어 회개케 하고 하나님 앞에 합당한 것은 인정해 주는 것이다. 고린도전서3:13에 하나님께서 불로 시험한다고 하셨다. 불로 시험할 때에 가짜와 진짜가 다 드러나고 거짓과 외식으로 꾸민 것도 드러나고 진실도 드러난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시험하여 있는 그대로 드러내신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그들을 시험한다는 뜻이다. 하나님께서 강림하시어서 시험하신다는 것은 하나님을 얼마나 잘 아는지, 하나님을 어떠한 하나님으로 믿는지, 또 말씀대로 순종을 했는지, 영혼이 잘 만들어 졌는지, 얼마나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지를 시험해 보시는 것이다.
너희로 경외하여 하나님께서 어떠한 하나님이신 것을 이스라엘 백성이 알고 하나님을 두려움으로 좀더 잘 공경하도록 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나타나신 것이다. 그리하여 이스라엘 백성으로 범죄치 않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는 하나님은 높으시고 능력이 많으시고 천지에 충만하시고 위대하시고 엄위하신 하나님이시므로 무슨 형상을 보고 사람이 만든 헛된 우상을 섬겨 범죄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하나님을 가까이 할수록 죄에서 멀리 떠나게 된다.
. 20:21 백성은 멀리 섰고 모세는 하나님의 계신 암흑으로 가까이 가니라
모세가 하나님이 계신 암흑으로 가까이 갔다. 그때에 시내산에는 흑운(黑雲)과 연기가 가득하게 있었고, 그 가운데 하나님께서 강림하여 계셨다. 그리하여 모세가 하나님께 가까이 나가기 위하여 암흑을 향해서 나간 것이다. 이와 같이 모세가 백성을 대표하여 하나님을 가까이 찾아 나아가서 중보의 역할을 하였다. 그러나 다른 사람은 그곳으로 가까이 나갈 수가 없다. 만일 나가면 죽는다. 모세와 아론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사람이요, 또 산으로 올라오라고 명령받은 사람이기 때문에 하나님께 가까이 갈 수 있었다(19:23-24).
四. 하나님 섬기는 법(22-26)
. 20:22-23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라 내가 하늘에서부터 너희에게 말하는 것을 너희가 친히 보았으니 너희는 나를 비겨서 은으로 신상이나 금으로 신상을 너희를 위하여 만들지 말고
하나님의 형상을 본떠서 하나님과 같이 만드느라고 우상을 만들지 말라고 하셨다. 비겨서 하나님은 이런 하나님일 것이다 하여 비슷하게 어떤 형상을 만들지 말라는 것이다. 은으로 신상이나 금으로 신상을 너희를 위하여 만들지 말고 왜 은과 금만 말씀하셨을까? 이는 아무리 은이나 금이 보배라고 하지만 그것으로 하나님을 대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아무리 아름답게 여기고 고귀하게 여기고 보배롭게 여기는 것이라고 할지라도 하나님을 대신할 수가 없다. 시내산에 나타나신 위대하시고 천지에 충만하시고 엄위하시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본 자는 은이나 금 같은 것으로 우상을 만들 수 없다.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을 보았으니 하나님을 바로 알고 우상을 만들지 말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고 그 명령대로 나가야 된다는 것이다. 하나님을 분명히 보고 알고 하나님의 계명을 받은 자들이 우상을 만들고 섬기면 반드시 하나님의 징계와 심판이 내려올 것이다.
. 20:24 내게 토단을 쌓고 그 위에 너의 양과 소로 너의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라 내가 무릇 내 이름을 기념하게 하는 곳에서 네게 강림하여 복을 주리라
하나님께 제단을 쌓고 제사를 드릴 때에 토단을 쌓고 제사를 드리라고 하셨다. 왜 토단을 쌓으라고 하셨을까? 흙은 하나님이 만드신 극히 기초적인 자연적 물질이다. 이것은 하나님을 섬길 때에 꾸미거나 아름다운 모양을 내지 말고 자연 그대로 순수하게 하나님을 섬기라는 것이다. 번제는 하나님께 대하여 죄를 회개하면서 속죄 받기 위해서 드리는 제사이며 화목제는 하나님과 사람을 화목하고 또 사람과 사람끼리 화목하는 제사이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건져 주시고 십계명을 주신 것은 하나님과 화목하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 화목 시키려는데 그 목적이 있다. 번제와 화목제의 제물은 앞으로 오실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오늘날 성도들도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모시고 하나님과 막힌 데가 없이 회개하고 하나님과 더불어 화평한 생활을 하고, 화목제를 드리는 그런 신앙을 가져야 한다. 사람과 막힌 것은 그리스도를 중심해서 다 풀고 화목해야 한다. 사람과 화목하지 아니하고 막힌 것은 하나님과 막힌 것이 된다. 그러므로 화목하지 않는 것은 죄이며 하나님 앞에 합당하지 않다. 언제나 그리스도를 중심해서 화목 하는 그런 신앙을 가져야겠다. 내 이름을 기념하게 하는 곳에서 네게 강림하여 복을 주리라 제단을 쌓는 곳도 하나님의 이름을 기념하게 하는 곳이요, 하나님의 성막을 지어서 제사 드리는 곳도 하나님의 이름을 기념하게 하는 곳이며, 그 다음에 솔로몬의 성전이 하나님의 이름을 기념하게 하는 곳이요, 또 신약 교회도 하나님의 이름을 기념하게 하는 곳이다. 그러므로 구약 시대에는 제단 쌓는 곳, 성막, 솔로몬 성전, 스룹바벨 성전을 중심하여 하나님을 섬기는 그 곳에 하나님이 강림하셔서 복을 주셨고, 신약 시대에는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 드리는 자, 영적인 신령한 세계에서 하나님을 찾고, 또 진리 가운데서 하나님과 사귀며 교통하는 그 곳에 하나님께서 강림하셔서 복을 주신다는 것이다.
. 20:25 네가 내게 돌로 단을 쌓거든 다듬은 돌로 쌓지 말라 네가 정으로 그것을 쪼면 부정하게 함이니라
돌로 하나님께 단을 쌓을 때에는 다듬은 돌로 단을 쌓지 말고 자연석을 가져다가 단을 쌓으라고 하셨다. 자연적인 돌을 그대로 쌓아 단을 만들어서, 정으로 모양 있게 쪼아 만들어서 인간의 가공을 쓰지 말고, 하나님께서 만들어 놓은 순수한 그대로 하나님을 섬기라는 것이다. 우리도 하나님을 섬길 때에 순수하게 있는 그대로 하나님을 섬겨야 한다. 인간이 아름답게 꾸미거나 장식을 하지 않고 생긴 그대로 순수하게 하나님 앞에 제단을 쌓고 제사를 드리는 것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신다. 하나님을 섬기는데 일심 정력을 기울이고,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하여 하나님을 섬기되, 꾸미지 말고, 인본주의를 쓰지 말고, 수단으로 하지 말고, 아름답게 보이려고 하지 말고, 순수하게 생긴 대로 하나님을 섬겨야 한다. 기도하는 것도 꾸며서 하지 말고, 설교하는 것도 꾸며서 하지 말고, 사람과 대화하는 식으로 말씀을 가르쳐야 한다.
. 20:26 너는 층계로 내 단에 오르지 말라 네 하체가 그 위에서 드러날까 함이니라
제단을 층계로 만들어 올라가지 말라고 하셨다. 하나님을 섬길 때에는 거룩하게 섬기라는 뜻이 나타나 있다. 그 이유는 층계를 오를 때에 하체가 드러날까 봐 금한 것이다. 하체가 드러난다는 것은 인간의 정욕과 수치가 드러나는 것을 가리킨다. 성도는 육신의 정욕이나 안목의 정욕이나 이생의 자랑을 멀리 떠나서 자기를 거룩하게 하여 하나님을 섬겨야 한다는 것을 보여 준 것이다. 예수 믿는 생활은 거룩한 생활이다(요일2:15). 하나님을 섬기는데 인정이 들어온다든지 욕심이 들어오는 것은 다 하나님을 섬기는데 합당치 않다. 하나님을 섬기는데 인정을 따라간다던가 교회 나오는데 인정을 따라가는 데서 멀리 떠나서 거룩하게 하나님을 섬겨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