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1976년도 봄에 KBS공주중계소에서 근무하고 있을 때 내 아버님께서
나를 만나러 오셨다. 불과 몇 달 전인 연말에 중계소 개소식을 하고 업무를
시작한 신설 중계소이고, 야산을 정리하여 건물을 짓고 송신안테나를 세운
시설이다 보니, 내부적으로 여기저기 환경 정리 작업 할 일이 많이 있었다.
마침 함께 근무한 4명의 직원 (모두 방송기술직 직원)들 중에서, 중계소장
한분을 제외하고 나를 포함한 3인의 직원들이 모두 고교 동기동창생이었다.
우연의 일치이긴 하였지만 참 특별한 만남이었다.
당시에 우리 세 사람은 너나 할 것 없이 서로가 의기투합하며, 열심히 근무
하였다. 그러면서, 방송을 송신하는 일 뿐만 아니라 중계소 경내 환경 정리
작업에도 힘을 기울였다, 세 사람이 3교대로 근무하지만 자기 근무시간이
아니더라도, 사무실에 나와서 환경 정리 작업들을 부지런히 하였다.
여러 폐 자재들을 치우고, 미흡한 부지의 정지 작업도 하면서 발생한 토사
들을 리어카에 싣고 옮기다 보니 적지 않게 힘이 들었다. 그래도 서로 불평
하지 않고 웃어가며 일을 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한창 일을 하는 중에 아버님께서 중계소까지 찾아오신 것
이었다. 나는 반갑기도 하고, 아버님의 갑작스런 방문에 좀 당황도 하였다.
작업복 차림의 내 몰골을 보시더니 아버님의 기분이 편안치가 않으셨던지,
중계소장께 한 마디 항의성 인사를 하신다.
"아니, 방송국에서는 어째서 이렇게 직원들에게 일을 많이 시킨답니까?" 라고
하시며 언짢아 하셨다. 물론, 당시의 중계소장께서 억지로나, 혹은 무리하게
일을 시킨 것은 아니지만, 모처럼 이 광경을 보신 아버님께서는 아들인 내가
무척 안타까워 보이셨던 것 같았다.
이에 나는 서둘러 아버님을 모시고 중계소 밖으로 나와 가족들 안부와 함께
아버님의 평안하심을 여쭙고, 소찬이나마 모시고서 함께 시간을 보내다 귀가
하시는 아버님을 전송해 드렸다.
<註>
나는 아버님의 방문과 당시의 상황을 기억하지 못하고, 오랫동안 살아왔다.
그러던 중에, 지난 2025년 2월 5일 경기도 광주에 소재한 ICT폴리텍 대학에서
직무 연수를 받고 있던 친구들을 만나 당시의 정황을 전해 들었다.
당시에 나와 함께 근무했던 두 친구들을 일부러 만나러 간 나는 이 친구들에게
모처럼 저녁 식사를 대접하며 아득한 추억으로 묻혀있는 이야기들을 나누면서
깊은 감회에 젖어 보았다.
그러면서, 새삼 아버님과 관련된 이야기를 발굴하게 되었으니 이래 저래 친구
들과의 재회가 반갑고도 감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