元曉
大乘起信論疏記會本
큰 믿음을 일으키는 글
원순 스님 역
소-0-4
次釋題名。
言大乘者。大 是當法之名。廣苞爲義 乘 是寄喩之稱。運載爲功。總說雖然。於中 分別者 則有二門。先依經說。後依論明。
依經說者。如虛空藏經言。大乘者。謂無量無邊無崖故。普遍一切。喩如虛空。廣大容受一切衆生故。不與聲聞辟支佛共故。名爲大乘。
復次乘者。以正住四攝法 爲輪。以善淨十善業 爲輻。以淨功德資糧 爲轂。以堅固淳至專意 爲輨轄釘鑷。以善成就諸禪解脫 爲轅。以四無量 爲善調。以善知識 爲御者。以知時非時 爲發動。以無常苦空無我之音 爲驅策。以七覺寶繩 爲靳靷。以淨五眼 爲索帶。以弘普端直大悲 爲旒幢。以四正勤 爲軔(軫也枝本輪也)以四念處 爲平直。以四神足 爲速進。以勝五力 爲鑒陣。以八聖道 爲直進。於一切衆生 無障礙慧明 爲軒。以無住六波羅密 迴向薩般若。以無礙四諦 度到彼岸。是爲大乘。
解云。上來 以二十句 擧喩 況法以顯乘義。
다음은『대승기신론』이라는 제목을 풀이한다.
‘대승’두 글자에서 대(大)는 법 그 자체를 드러내는 이름이니 널리 감싼다는 뜻이고, 승(乘)은 비유에 붙인 명칭이니 실어 나르는 것을 일로 삼는 것이다. 전체 내용은 그렇더라도 이를 나누어 보면 두 가지 방법이 있다. 먼저 경에 기대고 나중에 논에 기대어 말하는 것이다.
“경에 기대어 말한다.”는 것은『허공장경』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 내용과 같다.
대승이란 헤아릴 수도 없고 그 끝도 없기에 두루 빠짐없이 모든 곳에 그 영향이 미치는 것을 말한다. 마치 모든 중생을 허공이 받아들이는 것과 같아서 성문·벽지불과는 내용이 같지 않기에 대승이라고 한다.
실어 나르는 것을 일로 삼는 수레 승(乘)을 이루고 있는 것을 보면, 남에게 베풀고 따뜻한 말을 하며 같은 처지의 입장에서 도와주는 네 가지 법을 바르게 쓰는 것이 바퀴가 되고, 열 가지 좋은 행동이 바퀴의 살이 되며, 수행을 도와주는 깨끗한 공덕이 속 바퀴가 되고, 굳고 순수하며 한결같은 뜻이 수레의 굴대를 빠지지 않게 꽂는 빗장과 바퀴통의 구멍에 끼는 철관이 되며, 모든 선정과 해탈을 잘 이룩하는 것이 수레의 앞 양쪽에 대고 말이나 소의 등에다 매는 긴 막대기인 끌채가 되며,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랑·연민·기쁨·평등의 마음이 말을 잘 다스리는 기술이 되며, 선지식이 수레를 모든 사람이 되며, 때와 때 아님을 잘 아는 것이 출발하는 때가 되며, 무상·고·공·무아의 소리가 말을 모는 채찍이 되며, 일곱 가지 깨달음의 보배로운 끈이 마소의 가슴에 거는 가슴걸이가 되며, 깨끗하고 맑은 다섯 가지 눈이 말을 모는 끈이 되며, 불법을 널리 알리는 단아하고 정직하며 자비로운 큰마음이 깃발과 깃대가 되며, 부지런히 수행하는 네 가지 법이 수레바퀴를 버티게 하는 쐐기나무가 되며, 네 군데를 주시하는 수행법이 바르고 평탄한 길이 되며, 네 가지 선정이 앞으로 나아가는 빠른 발이 되며, 뛰어난 다섯 가지 힘이 나아갈 앞길의 상황을 살피는 것이 되며, 여덟 가지 성스런 길이 곧바로 나아갈 길이 되며, 모든 중생에게 장애 없는 지혜의 밝음이 수레가 되며, 집착이 없는 육바라밀로‘모든 것을 아는 지혜’에 회향하며, 걸림이 없는 사제(四諦)로 괴로움의 바다를 건너 극락정토에 다다르는 것이 된다. 이것이 큰 수레가 되는 대승(大乘)이다.
이는 스무 가지의 비유를 가지고 법에 견주어 수레의 역할을 하는 승(乘)의 뜻을 나타낸 것이다.
又 下文 云。此乘 諸佛所受。聲聞辟支佛所觀。一切菩薩所乘。釋梵護世所應敬禮。一切衆生所應供養。一切智者所應讚歎。一切世間所應歸趣。一切諸魔不能破壞。一切外道不能測量。一切世間 不能與競。解云。上來 以十句 對人 顯大乘也。
또 『허공장경』 다음 글에서 아래와 같이 말하였다.
이 수레의 역할을 하는 승(乘)은 모든 부처님이 받아들인 곳이며, 성문과 벽지불이 관(觀)하는 곳이며, 모든 보살들이 지향하는 곳이며, 제석천과 범천과 세간의 불법을 옹호하는 신장들이 공경하고 받드는 곳이며, 모든 중생들이 공양하는 곳이며, 모든 지혜로운 이들이 찬탄하는 곳이며, 모든 세간의 중생들이 귀의할 곳이며, 모든 마구니들이 파괴할 수 없는 곳이며, 모든 외도들이 짐작할 수 없는 곳이며, 세간의 모든 중생들이 서로 다툴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이는 열 마디의 글로 사람들과 짝을 맞추어 대승의 뜻을 드러낸 것이다.
依論明者 有七有三。三種大義。下文當說。言七種者。有二種七。
一者 如對法論 云。由與七種大性相應。故名大乘。何等爲七。一境大性。以菩薩道 緣百千等 無量諸經 廣大敎法 爲境界故。二行大性。正行一切 自利利他 廣大行故。三智大性。了知廣大補特伽羅法無我故。四精進大性。於三大劫阿僧祇耶 方便勤修無量難行行故。五方便善巧大性。不住生死及涅槃故。六證得大性。得如來諸力 無畏不共佛法等 無量無數 大功德故。七業大性。窮生死際 示現一切成菩提等 建立廣大諸佛事故(此中前五是因後二是果也)
“논에 기대어 말한다.”는 것에는 일곱 가지와 세 종류로 나눈 것이 있다. 세 종류로 밝힌 대(大)의 뜻은 나중에 본문에서 말할 것이다.
일곱 가지로 말한 내용에도 두 갈래가 있다. 첫 번째 갈래는『대법론』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 내용이다. 일곱 가지 크다는 특성과 맞아떨어지기에 대승이라고 하니 그 일곱이 어떤 것들인가.
첫째는‘맞서는 경계가 크다는 특성’이니, 보살도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경의 모든 교법을 인연하여 경계로 삼기 때문이다.
둘째는‘실천하는 행이 크다는 특성’이니, 나와 남을 이롭게 하는 크고 많은 모든 일을 바르게 행하기 때문이다.
셋째는‘지혜가 크다는 특성’이니, 크고 많은 보특가라의 법이 무아라는 것을 깨닫기 때문이다.
넷째는‘수행을 꾸준히 해나가는 힘이 크다는 특성’이니, 숫자로 나타낼 수 없는 엄청난 세월 동안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실천하기 어려운 행을 부지런히 방편으로 닦기 때문이다.
다섯째는‘잘 적용하는 방편의 힘이 크다는 특성’이니, 삶과 죽음과 열반에 머무르지 않기 때문이다.
여섯째는‘깨달아 얻는 힘이 크다는 특성’이니, 여래의 모든 힘과 법에 대한 두려움이 없는 모습과 중생들이 갖지 못한 법과 같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공덕을 얻기 때문이다.
일곱째는‘업이 크다는 특성’이니, 중생의 삶과 죽음이 다하도록 온갖 중생의 모습으로 나타나 깨달음을 이루어 크고 많은 부처님의 일을 다 해내기 때문이다. [이 가운데 앞의 다섯 가지는 원인이 될 자리에 있고, 뒤의 두 가지는 결과로서 나타난다.]
二者 顯揚論 云。大乘性者。謂菩薩乘 與七大性。共相應故。說名大乘。云何爲七。一法大性。謂十二分敎中 菩薩藏所攝 方便廣大之敎。二發心大性。謂已發無上正等覺心。三勝解大性。謂於前所說 法大性境 起勝信解。四意樂大性。謂已超過勝解行地。入淨勝意樂地。五資糧大性。成就福智二種大資糧故。能證無上正等菩提。六時大性。謂三大劫阿僧企耶時 能證無上正等菩提。七成滿大性。謂卽無上正等菩提自體 所成滿菩提自體。比餘成滿自體 尙無與等。何況超勝。瑜伽。地持。皆同此說。
두 번째 갈래는『현양론(顯揚論)』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 내용이다. 대승의 성품이란 보살의 수행이 일곱 가지 크다는 특성과 맞아 떨어진 것을 말하며 이 뜻으로 대승을 말한다. 일곱 가지 크다는 특성이란 어떤 것들인가.
첫째는‘법이 크다는 특성[法大性]’이니, 십이분교(十二分敎)가운데 보살장(菩薩藏)에 들어 있는 크고 많은 방편의 가르침을 말한다.
둘째는‘발심이 크다는 특성[發心大性]’이니, 이미 최고의 깨달음을 내는 것을 말한다.
셋째는‘아는 것이 뛰어나게 크다는 특성[勝解大性]’이니, 앞에서 말한‘법이 크다는 특성’의 경계에서 뛰어난 믿음과 이해를 일으킨 것을 말한다.
넷째는‘즐거움이 크다는 특성[意樂大性]’이니, 이미‘아는 것이 뛰어나게 큰 경계를 넘어’깨끗하고 맑은 즐거움이 뛰어나게 큰 경계에 들어간 것을 말한다.
다섯째는‘공부에 도움이 크다는 특성[資糧大性]’이니, 공부에 도움을 주는 큰 복덕과 지혜를 이룩하였기 때문에 최고의 깨달음을 증득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한다.
여섯째‘때가 크게 잘 맞는 특성[時大性]’이니, 숫자로 나타낼 수 없는 엄청난 세월 속에서 최고의 깨달음을 증득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한다.
일곱째는‘공부가 오롯하게 이루어져 크다는 특성[成滿大性]’이니, 곧 최고의 깨달음 자체에서 오롯하게 이룬 깨달음 자체를 말한다. 이 깨달음은 다른 깨달음을 이룩한 것에 비교해 보아도 그 수준이 더 나은데 하물며 어떤 깨달음이 이보다 더 뛰어날 수 있겠는가.
『유가지사론』과『보살지지론』에서 말한 내용도 모두 이 말과 같다.
瑜伽論 云。此中 若法大性。乃至 若時大性。如是六種。皆是圓證大性之因。圓證大性。是前六種大性之果。
解云。如是二種 七種大性。其數雖同。建立意別。建立之意。尋之可知。釋大乘竟。
유가론에서는“이 가운데‘법이 크다는 특성’에서‘때가 크게 잘 맞는 특성’까지 여섯 가지는 모두‘크게 오롯하게 깨달은 성품’의 원인이 되는 자리이고, 일곱 번째‘크게 오롯하게 깨달은 성품’은 앞에 말한 여섯 가지 크다는 특성의 결과로 나타난 자리이다.”라고 하였다.
이에 풀이하여 보면 두 갈래 일곱 가지 크다는 특성의 숫자가 같더라도 내세운 뜻은 다르다. 내세운 뜻은 그 내용을 찾아보면 알 수 있으니, 대승의 뜻을 풀이하는 것을 여기서 마친다.
言起信者。依此論文。起衆生信。故言起信。信以決定 謂爾之辭。所謂 信理實有。信修可得。信修得時 有無窮德。此中 信實有者。是信體大。信一切法不可得故。卽信實有平等法界。信可得者。是信相大。具性功德 熏衆生故。卽信相熏 必得歸原。信有無窮功德用者。是信用大。無所不爲故。若人能起 此三信者。能入佛法。生諸功德。出諸魔境。至無上道。
‘기신(起信)’이란 표현은 이 논으로 말미암아 중생들이 믿음을 일으키므로 쓰게 된 말이다.‘신(信)’은 마음에 이미 결정 되었기에‘무엇 무엇이야말로 그렇다’고 말할 때 쓰는 표현이다. 다시 말하자면 이치가 실제 있다는 것을 믿고, 이를 닦아서 얻을 수 있다는 것을 믿으며, 닦아서 얻을 때 여기에 공덕의 쓰임이 끝이 없다는 사실을 믿는 것이다. 이 가운데‘이치가 실제 있다는 것을 믿는다.’는 것은 체대(體大)를 믿는 것이다. 체대에서 보면 모든 법이 공(空)이어서 얻을 수 없다는 사실을 믿기 때문에 정말 평등한 법계가 있음을 믿는 것이다.‘닦아서 얻을 수 있다는 것을 믿는다.’는 것은 상대(相大)를 믿는 것이다. 상대에서 보면 상대의 활동은 중생의 성품에 온갖 공덕이 다 갖추어져 중생을 좋은 쪽으로 데리고 가기 때문에 이것은 반드시 마음의 근원에 돌아가게 한다는 사실을 믿는 것이다.‘공덕의 쓰임이 끝이 없다는 것을 믿는다,’는 것은 용대(用大)를 믿는 것이다. 용대는 어떤 곳에서도 활동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이 세 가지 믿음을 일으킬 수 있다면 부처님의 법에 들어가 모든 공덕을 드러내고 모든 마구니의 경계를 벗어나 무상도(無上道)에 도달할 수 있다.
如經偈云。信爲道元功德母。增長一切諸善根。除滅一切諸疑惑。示現開發無上道。信能超出衆魔境。示現無上解脫道。一切功德 不壞種。出生無上菩提樹。信有如是無量功德。依論得發心。故言起信。
所言論者。建立決了 可軌文言。判說甚深法相道理。依決判義。名之爲論。
總而言之。大乘 是論之宗體。起信 是論之勝能。體用合擧。以標題目。故言大乘起信論也。
이를『화엄경』게송에서는 다음과 같이 노래하였다.
믿음이란 도의 근본이요 공덕의 어머니
모든 선근을 늘리고 온갖 의혹을 떨치며
최상의 도를 드러내어 보여 준다네.
믿음은 마귀의 손아귀를 벗어나게 하고
더 없는 해탈의 길을 보여 주나니
모든 공덕이 무너지지 않는 씨로써
최고의 깨달음을 가져다주네.
믿음에는 이처럼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공덕이 있다. 이 논으로 이와 같은 믿음을 낼 수 있기에 이 논의 이름을 큰 믿음을 일으키는 뜻으로서‘기신(起信)’이라고 한다.
‘논(論)’이란 모범이 될 만한 글을 내세워‘만물이 가진 모습’의 매우 깊은 도리를 판단하고 말하는 것이다. 이 뜻에 따라 논이라고 이름 붙였다.
전체를 마무리 지어 말하면‘대승’은 논의 핵심 내용이고 큰 믿음을 일으키는‘기신’은 논의 뛰어난 공능이다. 이 논의 제목을‘큰 믿음을 일으키는 글’로서「대승기신론」이라고 한 것은 논의 내용과 그 쓰임을 함께 드러내기 때문이다.
大乘起信論疏記會本-2. 釋題名 : 네이버 블로그 (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