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장에 처음 나오는 것은 ‘안팎으로 글이 적힌 두루마리 하나가 들려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두루마리는 일곱 번 봉인된 것이었습니다.’ 1절. 에제 2,9-10. 이 두루마리는 묵시록 전체에서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재앙의 시작을 의미한다. 이 두루마리는 하느님의 오른손에 들려 있다고 표현합니다. 오른손은 고대 사회에서 행운을 나타내는 상징으로 사용되었고, 구약성경에서는 하느님의 도움과 구원을 가져다주는 도구로 표현된다(이 사 41,10; 시편 138,7). 구원을 주시는 그 손에 있는 두루마리는 즉 책은 묵시문학에서 중요한 요소를 차지하는데 여러 종류의 책이 있다.
다니엘서 7장 9절과 10절을 보면 ‘내 가 보고 있는데 마침내 옥좌들이 놓이고 연로하신 분께서 자리에 앉으셨다. 그분의 옷은 눈처럼 희고 머리카락은 깨끗한 양털 같았다. 그분의 옥좌는 불꽃같고 옥좌의 바퀴들은 타오르는 불같았다. 10불길이 강물처럼 뿜어 나왔다. 그분 앞에서 터져 나왔다. 그분을 시중드는 이가 백만이요 그분을 모시고 선 이가 억만이었다. 법정이 열리고 책들이 펴졌다.’
책들은 ‘심판을 위한 책들’이다. 심판을 위한 책들 중에 대표적인 것이 ‘생명의 책’ 과 ‘업적의 책’이다. 생명의 책에는 선택된 사람들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 루카 10,20, 필립 4,3; 히브 12,23절 참조.
먼저 ‘업적의 책’은 천사들이 사람들의 행동을 기록한 책이다. 그 책은 심판 날에 주님 대전에 제출될 것이다. 이 두루마리에 글이 안팎으로 적혔다는 표현은 그 당시 고문서나 계약서 또는 유언장에서 흔히 안팎으로 쓰던 관습이다. 봉인되었다는 이미지에는 그 책에는 지켜져야 할 비밀과 보증에 관한 것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 책은 오른손에 쥐어져 있다. 이 말은 하느님의 뜻을 담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봉인되어 있다.
프랑스 성경 주석 학자들은 이 봉인된 두루마리에는 하느님의 구원 계획이 적혀 있는 것이라고 해석하며 그 구원의 중재자가 그리스도이시기에 그리스도께서 봉인을 떼실 수 있는 유일한 분이라고 해석한다.
다른 학자들은 봉인된 두루마리를 율법 두루마리로 해석한다. 즉 봉인된 책을 구약성경이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이런 내용을 바탕으로 본다면, 봉인된 두루마리는 생명의 책이고, 그 책은 생명의 주인이신 하느님께 있으며, 그 책은 구원 역사에 대한 성경의 말씀이며, 그리스도께서 성경의 말씀을 성취하심으로써 그 봉인을 떼실 자격이 있다고 정리할 수 있다. 그렇다면 예수님 자신이 그 책의 내용 자체인 것이다.
어린양 5장에서 중심이 되는 것은 어린 양에 대한 묘사이다. 5,6. ‘뿔이 일곱’이라는 표현은, 구약 성경에서 뿔은 ‘권세’, ‘권한’을 상징한다. 민수 23,22; 신명 33,17; 1열왕 22,11절 참조. 그리고 ‘일곱’이라는 완전성, 충만함을 상징하기에 예수 그리스도 완전한 권한을 가지고 계시다. 라는 표현이다.
‘일곱 눈’에서 모든 것을 볼 수 있다는 하느님의 전지전능함을 표현한다. 그런데 여기서 가장 중요한 표현은 ‘살해된 것처럼 보이는 어린 양’이다. 이 표현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상 죽음을 의미한다. 살해된 것처럼 보인다는 표현을 통해 십자가에 못 박히신 분과 부활하신 분이 동일한 분이며 구원의 원천이 바로 그분이시라는 것을 나타낸다.
요한은 그 당시 육화란 있을 수 없다고 주장한 영지주의에 맞서서, 예수님은 육을 취하셔서 세상에 오셨으며, 십자가의 희생 제사를 통하여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셨고, 그리스도에 의해서 구원이 주어진다는 요한 신학의 중심 사상이 이 안에 들어 있는 것이다.
이 어린 양께 스물네 원로와 네 생물은 찬양의 ‘새 노래’를 부른다. 5,9절. 이 표현은 이사야서 42,10절에서 찾을 수 있다.
‘주님께 노래하여라, 새로운 노래를. 땅 끝에 서 그분께 찬양을 드려라. 바다와 그를 채운 것들, 섬들과 그 주민들은 소리를 높여라.’
이 하느님의 업적을 찬양하는 노래를 이사야서는 ‘새로운 노래’라고 표현한다. 이런 내용과 함께 묵시록의 ‘새 노래’는 그리스도를 통해 완성될 구원의 역사, 종말을 통해 오게 될 새로운 시작을 나타낸다. 9절에 ‘모든 종족과 언어와 백성과 민족’은 다니엘서에 나오는 표현이다(다니 3,4.7; 5,19;7,14).
묵시록에서 이 표현이 자주 사용되는데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은 어떤 경계도 없이 모든 인류를 위한 것이라는 표현이다.
‘속량’이라는 단어가 등장합니다.
히브리어로 가알, לאג 그리스어로 뤼트로오, λυτρόω 라고 한다. 속량이라는 말은 전쟁 포로들을 풀어주는 것과 관련된 용어로써, 전쟁에서 잡혀간 포로들은 보통 노예가 되는데 이 노예들은 본국에서 가지고 있던 원래 지위가 박탈이 됩니다. 그런데 일정한 값을 지불하면 전쟁 포로에서 돌아와 원래 지위를 찾을 수 있었다. 속량은 전쟁 포로들을 자유인으로 해방시키기 위한 ‘값을 치르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신약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원을 속량으로 표현하는 것은, 예수님께서 당신의 피로 ‘값을 치러’ 우리를 죄에서 해방시켰다는 의미를 강조하는 것이다.
4-5장을 정리하면, 하느님께서 당신 손에 있는 생명의 말씀을 담은 책을 어린 양으로 표현되는 그리스도께 주시며 그리스도는 당신을 통한 구원의 기쁜 소식을 전합니다. 또한 앞으로 오게 될 심판과 징벌이 현재 고통 받고 있는 신앙인들의 기도와 원의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며 신앙인을 박해하는 세력은 심판의 대상이 될 것이라는 내용이다. 그리고 어린 양으로 상징되는 그리스도의 승리는 이미 그분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서 드러났고 신앙인의 공동체 안에서 그 생명이 시작되었기에 현재 박해 상황에 있는 신앙인들이 하느님과 예수 그리스도의 신실하심을 믿음으로써 어려움을 극복하도록 위로와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