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화순문학 연간집 동화
감나무가 본 기적
이성교
앞으로는 화순천과 지석천이 만나는 두물머리에 넓은 들판이 펼쳐져 있습니다. 뒤로는 무등산 줄기가 뻗어 내려 날개로 감싸 안아 주는 듯한 마을이 있습니다. 이 마을을‘대푸른마을’이라 불렀습니다.
마을 뒷동산에는 아주 특별한 아홉 개의 커다란 바위가 흩어져 있었습니다.사람들은 그 바위를 ‘봉황의 알’이라고 했습니다. 봉황이 두 날개로 알을 품고 있는 형상을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었습니다.
“얘야, 저 바위는 봉황이 품은 알이란다. 언젠가 저 알에서 봉황이 날아오르면 우리 마을에도 큰 인물이 나오고 기쁜 일이 생기게 될 것이란다.”
어렵고 힘든 삶이었지만 마을 사람들은 자식들에게 봉황알 바위의 전설을 들려주며 마음속에 꿈을 심어 주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평화롭던 대푸른마을에 난리가 났다는 소문이 돌았습니다. 북쪽에서 공산군들이 우리나라를 침략한 전쟁이 일어난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일본에 빼앗겼던 나라를 되찾고 새로운 나라를 만드는데 온 국민이 뜻을 모으고 있을 때였습니다. 6·25전쟁이라고 부르는 한국동란이 일어난 것입니다.
“공산군이 몰려오고 있습니다. 어서 피난을 떠나야 합니다”
어느 날 아침에 반장이 골목을 돌면서 외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사람들은 서둘러 솥단지를 챙겨 등짐을 지고 아이들의 손을 잡고 피난을 떠나기 시작했습니다.
모두가 떠나는 이 긴박한 상황 속에서도 피난길에 오르지 못한 집이 있었습니다. 마을 언덕배기 초가에는 출산을 앞둔 만삭의 어머니가 누워 있었습니다.남편은 타지 친척 집으로 일을 도우러 가고 어머니 곁에는 열세 살 어린 시동생뿐이었습니다.
전화도 없고 걸어가야 했던 시절이라 남편에게 이 위급함을 알릴 방법이 없었습니다. 만삭이 된 어머니는 어린 시동생을 이웃집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형수님, 저 안 가요, 형수님 혼자 두고 어떻게 가요?”
어린 시동생은 눈물을 흘리며 형수님의 옷자락을 잡고 떼를 썼습니다.
“도련님, 나 혼자 있는 것이 더 안전해요. 그러니 걱정하지 말고 따라가요. 무사히 아기 낳고 기다릴 테니 잘 다녀와요.”
어머니는 시동생의 손을 잡고 타일러서 딸려 보냈습니다. 떠나는 사람들의 발소리와 가족을 부르는 소리가 멀어지고 마을은 쥐 죽은 듯 적막했습니다.
어머니는 어린 시동생을 피난길에 함께 보내고 홀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시집온 지 겨우 일 년 만에 도와줄 시어머니도 손을 잡아 줄 남편도 없는 텅 빈 초가집에서 혼자 남아 출산을 해야 했습니다. 이 모든 일이 운명이라 생각한 어머니는 처음 만나게 될 아이를 생각하며 기대하는 마음으로 출산을 준비했습니다.
모두가 떠난 사흘이 되는 날 아침부터 진통이 시작되었습니다.
‘괜찮아, 괜찮을 거시여. 시동생에게 기다리겠다고 했으닝께. 정신을 바짝 차려야 되야.’
어머니는 어차피 혼자 감당해야 할 일이니 처음 만날 아이를 생각하며 무사히 이겨내기로 다짐했습니다.
거친 숨소리가 방 안을 채우고 온몸은 땀에 흠뻑 젖었습니다. 마지막 소리를 지르며 배에 힘을 주자 어머니의 정신이 아득해지려는 순간이었습니다.
“응애! 응애!”
위대한 생명의 탄생을 알리는 청아한 울음소리가 텅 빈 마을에 울려 퍼졌습니다. 아기의 울음소리는 신기한 마법이 있었습니다. 녹초가 된 어머니는 몸에 힘이 생기면서 뒤처리를 마쳤습니다. 그리고 숨을 내쉬며 아기를 품에 안았습니다. 온기 하나 없는 차가운 방 안에서 미역국 한 그릇 먹지 못한 어머니의 땀범벅이 된 품에 안긴 아기는 배냇짓으로 첫인사를 대신했습니다.
“아가, 걱정하지 마라. 이 어미가 목숨을 걸고 너를 지켜주마.”
어머니는 아직 핏기가 가시지 않은 아기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대답 대신 굳게 다짐했습니다.
아기가 태어난 지 딱 사흘째 되던 날이었습니다. 드디어 마을 골목길에 검은 그림자들이 들이닥쳤습니다. 후퇴하던 공산군들이 군수품을 구하기 위해 대푸른마을로 들어온 것입니다.
총을 든 군인들이 부잣집으로 보이는 집들을 골라 뒤지며 올라왔습니다. 어머니가 누워 있는 초가집 앞을 지나치려던 바로 그 순간이었습니다. 엄마의 빈 젖을 빨다 지친 아기가 앙칼진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습니다.
"쿠당탕!"
사립문이 부서지는 소리가 나더니 군인들이 들이닥쳤습니다.
“거기서 끌어내라! 숨어 있는 놈들은 본보기로 처단한다!”
그들은 거동조차 힘든 어머니를 툇마루 아래 마당으로 끌어내었습니다. 그리고 두 손을 뒤로 묶어서 마당 구석에 서 있는 감나무 밑에 세웠습니다.
“차렷! 장전 총!”
그들은 사정도 알려 하지 않고 다짜고짜 차가운 총구를 어머니의 가슴에 겨누었습니다. 감나무조차 공포에 질린 듯 푸른 잎사귀를 파르르 떨었습니다.
차가운 총구가 가슴을 향하는 절체절명의 순간이었습니다. 어머니의 머릿속에서 사흘 전 아기에게 했던 약속이 번개처럼 스쳤습니다. 어머니는 덜덜 떨리는 몸을 추스르며 간신히 고개를 들고 온 힘을 모아 말했습니다.
“에 말이요, 애기 난 지 사흘 되얐소. 살려주씨요.”
구수하고 투박한 전라도 사투리 한마디는 총을 겨눈 군인들의 마음을 흔들었습니다. 그 짧은 외침 속에서 죽음도 갈라놓을 수 없는 어머니의 절박한 모성애를 느꼈습니다. 전쟁터에 끌려 나올 때 눈물을 흘리시며 고향집 앞에 서 계시던 어머니의 애절한 모습이 눈앞에 어른거렸습니다.
총을 겨누고 있던 군인들의 눈빛이 크게 흔들렸습니다. 쫓기는 신세가 되어 죽음의 공포 속에서 후퇴하고 있는 자신들의 처지가 처량했습니다. 그리고 총구 앞에서도 오직 자식의 생명을 지키려는 어머니의 위대한 사랑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총 내려.”
숨 막히는 정적 속에서 대장으로 보이는 군인이 천천히 손을 들어 명령했습니다.
대장의 지시를 받은 그들은 말없이 돌아서서 담장 밖으로 사라졌습니다. 어머니의 거룩한 모성애가 죽음의 그림자를 거두어 내고 기적을 만들어 낸 순간이었습니다.
그 후 긴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때 감나무 아래서 살아남은 작은 핏덩이 아기는 이제 머리가 하얀 할아버지가 되었습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비어 있는 집을 가끔 둘러보던 할아버지는 그날도 감나무 아래 앉아 지그시 눈을 감았습니다.
그날따라 차가운 총구 앞에서도 담대하게 자식을 지켜내셨던 어머니가 사무치게 그리웠습니다. 그래서 조용히 어머니를 불렀습니다.
“어머니, 그때 혼자서 얼마나 무서우셨어요. 어머니의 빈자리가 이렇게 큰 줄을 미처 몰랐습니다. 불효자는 이제야 눈물을 흘립니다.”
나뭇잎을 스치는 부드러운 바람을 따라 생전의 어머님 살가운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습니다.
“아니다, 내 아들아. 늬가 이렇게 건강하게 자라서 잘살아 준 것이 내게는 가장 큰 선물이었단다.”
멀리 용암산 봉우리에 걸쳐 있는 하얀 구름 한 덩이가 피어오르고 있었습니다. 점점 다가오는 꽃구름 속에 어머니께서 환하게 웃으시며 손을 흔드는 것 같았습니다.
<동화의 모티브> “에 말이요, 애기 난 지 사흘 되얐소. 살려주씨요.” 어머니께서 아내에게 하신 말씀을 듣고 전해 준 한 마디는 충격이었습니다. 그것도 어머니께서 돌아가신 후에 후에야 전해 들었습니다. 아마 어머니께서도 나에게 그런 말씀을 하셨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런데 기억을 못한 것은 그 동안 제가 얼마나 불효한 자식이었는 지 가슴 앓이를 하다가 동화 작품으로 기록을 남겨두었습니다. <어버이 살아실제 섬기기를 다하여라/돌아간 후이면 애닮다 어이하리/평생에 고쳐 못 할일 이 뿐인가 하노라> 이 시조는 제가 국교 5학년 때 교실 벽면에 족자로 걸어 놓았던 시조를 보는 순간 외웠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아는 것과 행하는 것은 다르다고 하셨나 봅니다. 아는 것은 지식일 뿐 행함이 없는 지식은 죽은 지식이라고 합니다. 반대로 아는 것을 실천하는 것은 산 지식이라 하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