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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조건적 불멸과 악인 소멸 신앙의 전말
인간의 종말에 관한 두 가지 신앙
고대 이집트 사람들과 플라톤으로 대표되는 헬라 사상, 어거스틴으로 이어지는 중세 교회, 그리고 칼빈에 의하여 정립된 개혁 신앙은 다같이 영혼을 몸을 떠나 존재할 수 있는 불멸의 본질로 간주했다, 따라서 구원받은 의인이 영원한 복락을 누리는 것처럼, 구원받지 못한 악인은 지옥 불 속에서 영원한 고통을 당한다고 가르친다. 우리는 방금 이러한 영혼 불멸이나 영원지옥 신앙이 성경에 근거한 진리가 아니라, “거짓의 아비”(요8:44) 인 사단의 최초의 거짓말(창3:4)에 기초한 것임을 성경과 역사적 증거로 확인했다.
우리는 앞서의 연구를 통하여, 인간에게는 처음부터 불멸의 속성이 주어진 바가 없고, 하나님에 대한 순종의 조건으로 영생이 보장되었음을 성경에서 확인했다. 따라서 불순종으로 인한 범죄는 인간을 죽음에 이르게 하여“죄의 삯은 사망(롬6:23)임을 경험하게 한 것이다. 그러나 이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는 조건으로(요3:16, 36; 11:25), 예수 재림 시에야(요일5:11; 고전15:51-53) 비로소 썩지 아니할 생명을 부여받을 것(롬2:7; 딤후1:10)임을 약속 받았다.
반대로 끝까지 복음을 거절하고 불순종을 고집한 사람들은 마지막에 있을 심판을 거쳐, 재림후 천년 뒤에 있을 둘째 부활로 주어진 육신의 몸으로 그 결과가 영원한 심판의 불에 사루어져 없어짐으로 영원히 소멸된다는 사실도 아울러 확인했다(계20:12-15; 말4:1, 2; 시37:9-11; 롬6:23). 이러한 조건적 불멸과 악인 소멸의 신앙의 근원은 어디에 있으며, 그것이 어떻게 전수되어 왔는지를 살펴봄으로써 그 기초를 확인하는 것은, “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마7:24)의 신앙을 드러낼 것이다.
“정녕 죽으리라”- 구약 성경의 가르침
조건적인 불멸과 영혼 멸절의 신앙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창2:16, 17)는 하나님의 말씀에 드러나 있다. 바꾸어 말하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범죄하지 않으면 불멸의 영생을 보장받게 된다는 조건적 불멸인 것이다.
반대로 불순종하여 범죄하면 죄의 값은 사망에 이른다는 악인 멸절(滅絶)의 선언인 것이다. 이러한 신앙은 구약의 모든 부조들과 선지자들에 의해 확고하게 옹호되었으며, 구약 성경의 일관된 신앙이다. 이에 관하여 「유대 백과사전」에는 이렇게 진술하고 있다.
“육신이 해체된 뒤에도 영혼은 계속 전재한다는 신념은 단순한 신앙이라기 보다는 철학적이나 신학적인 사변(思辨)에 불과한 것이며, 따라서 성경 어디에도 분명히 가르쳐진 데가 없다.”111
영혼 불멸 사상이 구약 성경에 결코 용납될 수 없었음이 같은 책에 다음과 같이 진술되어 있다.
“[죽은 후에도] 영혼이 계속적인 생명을 누린다는 신앙은 원시적인 조상숭배와 고대 이스라엘 사람들도 실패한 바 있는 강신술(降神術. 삼상28:13; 사8:19)의 기초를 이루었던 것인데, 생명의 하나님이신 여호와를 믿는 믿음에 적대(敵對)되는 것으로 선지자들과 치리자들에 의하여 좌절당하고 억압을 당했다.”112
다시 말하면 구약 성경은 영혼 불멸 신앙을 사단의 역사로 간주하고 이단시하였을 뿐만 아니라 가장 혹독한 방법을 써서 근절시키도록 촉구했다(례19:31; 20:6, 27; 삼상28:9; 대상10:13; 사8:19)
몸의 부활-신약 성경의 가르침
이미 살펴본 대로, 신약 시대에 이르러 예수님은 물론 모든 사도들과 신약 성경 전체는, 당시에 편만했던 헬라의 영혼 불멸 사상을 결코 용납하지 않았으며, 유대교 내부까지 깊이 침투해 있던 그릇된 내세관을 정면으로 배척했다.(마22:23-33; 행4:2; 23:8). “바울이 예수와 또 몸의 부할 전함을 인”(행17:18)하여 변론이 일어났음을 주목하라. 예수님과 사도들이 전한 복음은 마지막 심판 후 재림 때에 있을 몸의 부활로 인한 불멸이었지, 영혼의 불멸이 아니었다(사26:19 ; 요11:25, 26; 고전15:52-54; 살전4:16). 「영혼 불멸과 죽은 자의 부할」이란 논문을 발표하여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20세기를 대표하는 스위스의 신학자 쿨만(Oscar Cullmann)은 그의 논문에서 이렇게 밝히고 있다.
“초대 기독교적 부활 신앙은 영혼 불멸에 대한 헬라적인 관념과 조화될 수 없는 것이 사실이 아닌가?...신약에서는 언제나 죽음을 궁극적인 원수라고 생각함으로 죽음에서 친구를 찾았던 헬라 사상과는 극적인 대립을 이루고 있다는 것이 사실이 아닌가? 바울은, ‘오 죽음아 네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고 쓰지 않았는가?”113
죽음을 친구처럼 다정하게 대했던 소크라테스나 환희에 찬 영혼이 해방으로 받아들인 칼뱅의 사상은114 모두 신약 성경의 가르침에 전적으로 위배된다. 쿨만은 자신의 깊은 연구를 통해 이렇게 단언하고 있다.
“...초대 그리스 도인들에게 있어서 영혼은 본질적으로 불멸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하여서만이,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해서만이, 불멸의 것이 된다는 사실이 분명해진다.115
초대 교부들의 조건적 불멸 신앙
이러한 사도 교회의 정통적인 부활 신앙. 곧 조건적인 불멸 신앙은 사도들의 뒤를 이은 사도 교부들에 의하여 거의 일관성 있게 유지되었음을 보게 된다. 사도 바울과 직접 친교를 나눈 것으로 알려진 로마 교회의 감독 클레멘스(Clement of Rome), 베드로의 후계로 알려진 안디옥의 감독 이그나티우스(lgnatius), 요한의 제자로 알려진 서머나의 감독 폴리카프(Polycarp)를 비롯하여, 당시의 문서들인 디다케(Didache)라는 교훈집, 바나바(Barna-bas)서신, 헤르마스(Hermas)의 목양서 등에는 영혼의 불멸이 아니라 육신의 부활을 강조하고 악인의 영원한 소멸을 진술하고 있어 영혼 문제에 관한 한 사도들의 신앙이 속(續)사도 시대에도 애써 유지되고 있음을 엿보게 된다.116
서기 150년부터 325년 역사적인 니케아 세계 종교회의가 열리기까지의 시대를 니케아 전(前)시대(Ante-Nicene Period)라고 하는데, 이 시대의 시작과 함께 로마제국에 편만했던 헬라의 영혼 불멸 사상이 본격적으로 그리스도교안으로 침투하기 시작한다. 이 기간 동안 사도 바울도 경계했던 거짓된 종교철학인 영지주의(靈知主義)가 들어오고(딤전 4:7; 6:20), 어거스틴이 몰두했던 신플라톤 사상도 넘쳐 왔다.
“점차적으로 그리스도인 학교들 안에 헬라의 영향이 압도했으며, 교회안에도 영혼 불멸의 사상이 오랫동안 내세에 관한 성경의 가르침을 대신했다.117
이러한 와중에서도 믿음을 위해 순교한 저스틴 마터 (Justin Martyr . c. 106-165)는 조건적 불멸과 악인의 소멸을 성경에 일치하게 논증했으며,118 그의 제자인 타티안(Tatian 110-172), 폴리카프의 제자인 안디옥의 데오필러스(Theophilus d. 180사망)도 같은 신앙을 고수했다.119
특히 지금의 프랑스 남부 고을 지방의 감독이였던 이레니우스(lrenaeus . 130-202)는 탁월한 종말 신학을 가지고 영지주의와 플라톤의 영혼 불멸의 사상, 영원 형벌 신앙을 논박하여 조건적 불멸 신앙의 2세기 챔피온이 되었다.120
헬라 철학의 본거지가 된 북아프리카 출신의 교부들, 즉 터툴리안과 오리겐 등의 영향과 그리스도교 신앙에 깊은 뿌리를 내린 신플라톤 사상이 영혼 불멸과 영원 지옥의 신앙을 공고히 하는 분위기에서 역사적인 니케아 종교회의가 열렸다. 이 회의에서 그리스도의 완전한 신성을 옹호하여 정통 신앙의 기수가 된 아다나시우스(Athanasius 297-373) 감독이, 이미 시대의 분위기의 영향을 받은 듯 훨씬 약해진 논증으로 성경에 입각한 조건적인 불멸을 옹호한 것을 마지막으로 대세는 기울어졌다.121이러한 때에 나타난 탁월한 신학 교부 어거스틴은 플라톤의 영혼 불멸 사상과 터툴리안의 영원 지옥 신앙, 그리고 이교 적인 연옥 신앙을 정립시켜 중세기 교회에 전수함으로써, 그 이후 거의 천년간 진실을 밝히는 소리는 거의 잠잠했다.
중세기 조건적 불멸 신앙의 기수들
12세기에 접어들면서 다시 성경적인 조건적 불멸을 옹호하는 음성이 가냘프지만 다시 들리기 시작한다. 12세기의 가장 탈월할 신학자로 알려진 메돈(Methone)의 헬라 감독 니콜라스(Nicholas)가 일어나 신플라톤 사상을 공박하기 시작했고 , 중세기를 대표하는 몇 유대인 학자들. 곧 마이몬(Moses Beu Miemon . 1131-1204), 킴치(David kimchi . 1160-1232), 아브라바넬(Judah Abravanel. 1437-1508) 등이 영원 지옥을 반대하고 나섰다.122
12세기 이후 성경이 진리를 고수하며 알프스 산중에 칩거하던 종교개혁의 선구자들인 왈덴스인(the Waldenses)은 연옥의 교리가 이교 사상임을 지적하고 죽은 자들을 위한 미사들을 반대함으로서 혹독한 핍박을 받았다.123
14세기가 밝아오자, “종교개혁의 새벽별”로 불리우는 영국 옥스포드 대학의 교수 위클리프(John Wycliffe . 1324-38)가 과감히 일어나 연옥의 거짓됨과 죽음은 잠과 같은 무의식 상태임을 성경을 근거로 강력히 논증했다.124
종교 개혁과 조건적 불멸 신앙의 부할
마침내 16세기에 접어들면서, 오랫동안 중세 교회에 의하여 억눌렸던 신앙양심은 폭발하여 1517년 독일을 시작으로 종교개혁이 일어난다. 종교개혁의 큰 별 루터는, 인간의 행위가 아니라 믿음과 은혜로 받게 되는 구원을 선포했으며, 인간의 전통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만이 신앙의 기준이 됨을 선언했다. 이교적인 거짓에 불과한 연옥의 교리로 사람을 위협하여 면죄부 판매로 수익을 올리던 중세 교회의 타락이 모두 거짓된 영혼불멸과 영원형벌 신앙에 근거했음은 명심할 일이다.
루터는 1520년 11월 29일에 발표한 그의 41개조 신조에서, “영혼이 불멸이라는 신조는 터무니없는 다른 견해들과 함께 로마교회의 교령집 쓰레기 더미에서나 별견되어지는 것”125 이라고 논박하고 있다.
“루터는 성경적인 근거로써 영혼의 잠을 신조로 삼았으며, 그것은 연옥과 성자 숭배를 반박 하는 데 썼고, 그 신조를 죽는 순간까지 유지했다.”126
루터는 죽음을 잠으로 비유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잇다.
“성경은 성도들의 죽음을, 마치 그들이 쓰러져 잠들었다가 아버지에게로 모여들듯이, 그들이 그리스도안에 있는 믿음과 위로로 죽음을 정복하고 죽음으로 그들보다 앞서간 성도들과 함께 부활을 기다리는 것으로 말하고 있으며 성경은 어디에서나 이러한 위로를 베풀고 있다.”127
때마침 스위스와 독일 등지에서는 영아세례를 비성서적인 것으로 반대하고 성경적인 중생과 물에 잠기는 성인 침례를 강조한 재세레파(Anabaptists) 신자들이 일어나 종교개혁의 선구자적인 역할을 했다. 이들은 대개 다섯부류로 구분되었는데 이들 중에는 광신적이거나 극단적인 부류도 있어 지탄을 받았으나 다수는 성경적인 그리스도인들이었다. 건전한 재세례파 신자들은 철두철미한 성서적인 신앙을 실천하면서 영혼불멸을 반대하고 죽음을 무의식적인 잠으로 확신하고 부활을 소망으로 강조했다. 이들은 신구교 모두에 의하여 가혹한 핍박을 받았으며, 특히 칼빈은 「혼수론」이란 논문까지 써서 이들을 이단으로 공박했다. 아이러니칼한 것은 칼빈의 아내 이델레타(ldelettade Bure . 1503-49)는 재세례파 출신이었는데, 임종시 칼빈이 가르쳐온 아브라함의 품이 아니라 끝날에 있을 부활의 소망을 고백하면서 죽었다는 인상깊은 사실이다.128
부활 신앙과 영혼 불멸 사상의 대결
옥스퍼드와 캠브리지 출신이 탁월한 언어학자요 영국을 대표하는 종교 개혁자인 틴데일(Willism Tyndale . 1490-1536)은 최초로 헬라어 신약 성경을 영어로 번역한 까닭으로 화형을 당한 위대한 순교자이기도 하다. 신, 구약 성경을 해박한 원어에 대한 지식을 통하여 깊이 이해한 텐데일은 다니엘서와 요한 계시록을 근거로 중세 교황권을 적그리스도로 단정함과 동시에 중세교회가 가르쳐온 영혼불멸, 죽은 뒤 영혼이 간다는 그런 천국, 지옥, 연옥을 모두 부인하고, 재림시에 있을 부활을 그리스도인의 유일한 소망으로 확인했다, 그는 반대자들을 향하여 이렇게 논리적으로 반문했다.
“그대들은 몸을 떠난 영혼들을 천국이나 지옥, 연옥에 둠으로써 그리스도와 바울이 입증한 부활의 논증을 파괴하고 있는 것이다.... 참된 믿음은 부활에 근거하고 있으며 그것을 매시간 바라보도록 깨우치고 있다. 이교의 철할자들은 이것을 부인하고 영혼은 언제나 살아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교황은 그리스도의 영적인 교리와 철학자들의 인간적인 교리를 함께 결합시켜 놓았으나 이것들은 서로 어긋나기 때문에 일치할 수가 없고 그리스도인 한 사람 안에서 성령과 육신이 더이상 역사 할 수가 없다... 내게 다시 말해주시요, 만약 영혼들이 하늘에 있다면 그들이 왜 천사들의 경우와 같지 못한가? 그런 뒤에 [새삼스럽게] 부활이 있어야 할 까닭이 무엇인가?”129
결국 영혼불멸 사상과 부활의 신앙은 논리적으로 공존할 수 없다는 결론이며 서로 어긋나는 교리를 동시에 유지하려는 무리한 시도 때문에 이 엄청난 모순과 혼란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죽는 즉시 영혼이 천국이건 지옥이건, 게다가 연옥까지 모두 가버리고 나면, 행한 대로 갚아 주시는 때인 재림은 무슨 소용이 있고 부활은 무엇 때문에 있어야 하는가? 솔직히 반문해보라. 1532년 루터는 전도서 주석을 써서 사람이 죽으면 절대 무의식으로 돌아간다는 사실을 강력히 논증하고 (전9:4-6; 3:19-21), 이를 근거로 중세 교회의 연옥 교리와 죽은 성자 숭배를 논박했다. 그러나 2년후인 1534년 칼빈은 「혼수론」이라는 논문을 써서, “죽음의 온 밤을 통하여 영혼은 행복을 누리기에 필요한 모든 의식과 감각을 가지고 깨어 있다”120 는 비성경적 주장을 내놓음으로써 모처럼 재상하고 있던 성서적인 조건적 불멸 신앙에 찬물을 끼얹었다. 그리고 죽음을 무의식적인 잠과 같은 것으로 가르치는 사람들을 이단으로 정죄함으로서, 심지어 루터의 제자들까지도 “자신들이 이단이 될 것에 대한 어리석은 염려” 때문에 오히려, “자기 선생의 가르침을 옹호하는 대신, 자기 선생님은 결코 그런 교리를 고수하지 않았던 것으로 증명하려는 입장에 자신들을 두었다.”131는 18세기의 성공회 학자요 사제인 블랙번(Francis Blackbu-rne)의 안타까운 진술이다.
칼빈은 자신이 주도한 그 이후의 종교개혁 과정에서, 플라톤과 어거스틴의 영혼불멸 사상과 영원 지옥 신앙을 끝까지 고수하였다. 그리고 중세 교회의 연옥을 대신하여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 해석에서 드러난 것과 간은 애매한 중간 상태의 교리를 소개함으로써 실제로 영혼문제에 관한한 종교개혁을 무용하게 만들었다.
부활 신앙을 위해 죽음을 선택한 사람들
이러한 종교적 분위기에서 정치적인 이유로 로마카톨릭 교회와 결별한 영국교회는 오히려 개혁 교리의 영향을 받으며, 성경의 명백한 가르침을 따라 영혼불멸을 부인하고 조건적인 불멸을 고수하는 다수의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을 투옥하거나 화형에 처했다. 그들 가운데 엘리자벳 여왕(Elizabeth 1) 때인 1575년 7월 테르우르트(Hendrik Terwoort)와 피터스(Jan Pieters)가 화형에 처해졌고, 제임스 1세(Jaames I)때인 1611년 4월 레가트(B. Legatt)와 위트만(Edward Wightman)이 역시 같은 이유로 화형을 당했다.132 앞의 두 사람이 죽기전에 엘리자벳 여왕에게 재가해 주기를 요청했으나 거절 당한 13개조의 신앙고백 가운데 하나인 제12조의 신앙고백은 아래와 같다.
“우리는 이사야 26장19절, 요한 복음11장 25절, 다니엘12장2절, 요한복음5장 25절, 고린도전서 15장 22절, 데살로니가 전서 4장16절에 기록된 대로 죽은 자의 부활을 믿습니다. 우리는 그의 천사들과 함께 구름을 타고 오실 때 죽은 자로부터 자신의 몸으로 일어날 것이며, 욥기19장25절, 아사야26장 19절, 고린도전서15장, 그 후에는 각 사람의 행위에 따라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마태복음 25장34절, 로마서2 장6절.133
이토록 고결한 성서적 정통 신앙이 어째서 화형에 처해질 이단의 신조가 되었는가? 종교적 편견에 사로잡힌 다수(多數)는 참으로 참으로 맹목적이기 때문에 더욱 무서운 것이다.
빛을 이기지 못한 어두움
17세기초에 이르러 재세례파의 교리와 회중교회의 조직을 겸한 침례교회가 영국과 화란에서 형성되었다. [일반 침례교]로 알려진 이들은 칼빈의 예정설 대신 아르미니우스(Arminius)의 예지 예정을 믿고, 인간의 타고난 불멸을 부인하고 부활 때까지는 무의식임을 믿었다.134 1660년 2만명 이상의 침례교인들이 서명한 25개조 신조에는 이러한 조건적인 불멸 신앙이 뚜렷이 반영되어 있었다.135
이와같이 재세례파와 연결된 [일반 침례교]의 신조를 통하여 다시 불붙기 시작한 조건적 불멸 신앙은 “실낙원”(失樂園)의 저자이기도 한 위대한 학자 시인이요, 정치가인 밀톤(John Milton. 1608~74)과136또 다른 청교도 학자 시인인 위더(George Wither. 1588~1667)에 의하여 번져 나갔다.137이와 같은 신앙은 의학적으로 세계적인 공헌을 한 학자요, 제임스 1세, 찰스 1세와 2세 등 3대를 이은 영국 왕실의 궁중의사며 신학자요, 목사이기도 한 챔벌린(Peter Chamberlen .1601-1683)에 의하여 아름답게 고수되었다. 그는 재세례파 출신의 침례교인으로 궁중의사를 지내면서 한 때 목사직까지 수행하였다. 깊은 성경 연구 끝에 성경상의 참 안식일은 제칠일인 것을 깨닫고 1651년부터 죽기까지 32년간 제칠일 안식일을 준수하였고, 4년간은 안식일을 준수하는 제칠일 침례교의 목사직을 맡기도 했다.138안식일 준수와 함께 죽음을 무의식적인 잠으로 믿으며 부활을 소망으로 삼은 것이 그의 글과 말에 역력했다.139
같은 때에 나타난 독일의 학자로 헬라어 신약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한 스테그만(Joachim Stegmann), 청교도 학자인 홈즈(Nathanael Holmes), 캠브리지 대학의 이름난 학자인 바로우(lsaac Barrow), 당대를 대표하는 그리스도인 철학자 록크(John Locke)등이 모두 17세기를 장식하는 조건적 불멸을 옹호한 지성적 투사들이었다.140
18세기에 들어서서도 오류를 제치고 인간의 영원한 운명에 관한 진실을 파헤치는 노력은 계속되었다. 성공의 목사요, 역사가인 블랙번(Feances Blackbuene . 1704-87)은 캠브리지 대학 출신의 탁월한 학자로 15세기로부터 18세기에 이르기까지, 죽음에서 부활까지의 중간 상태에 관하여 벌여온 논쟁을 책으로 써서 그 진상을 파헤쳤다. 이 책에서 그는 칼빈의 경우처럼, 개혁자들이 전통에 얽매어 영혼 불멸을 고수함으로써 종교개혁을 완성시키지 못한 것을 크게 나무랐다.
“최초로 죽음 사람[아담]으로부터 마지막 사람의 부활이 있기까지, 죽은 사람의 영혼이 살 아서 의식하고 활동하며 행복과 불행을 능히 경험한다고 가정하고서, 이것을 이성과 철학으로 과시하려 드는 것은 분명히 그리스도교의 모든 제도를 뒤집어 엎는 일이다.141
양심과 지성으로 지켜진 진리
르네상스와 종교개혁 이후 교조주의(敎條主義)에 얽매인 성직자들을 제쳐놓고 각분야의 학자들과 전문 지식인들이 진리를 회복하는 일에 앞장선 것은 괄목할 일이다. 영국계 미국인 과학자로 산소를 발견한 프리스틀리(Jo-seph Priestley . 1733-1804)는 영원 지옥을 적극 부인하고 나셨으며, 만유인력의 법칙을 찾아낸 뉴톤(Sir lsaac Newton . 1642-1727) 경이나 그를 뒤이은 캠브리지의 수학자 휘스톤(William Whiston . 1667-1752) 등은 과학자요 신학자로서 성경에는 물론 이성에도 어긋나는 영혼불멸을 적극 반대하고 나섰다.142
영국 찬송가의 아버지요, 신학자인 아이삭왓츠(lsaac Watts . 1674-1748)는 초기에 지녔던 칼빈의 영혼불멸 사상을 버리고 성경의 진리로 돌아섰으며,143 의사요 신학자인 스코트(JosePh N, Scott), 성공회의 감독이요 학자인 로(Ed-mund Law), 캠브리지 교수요 성공회 목사인 페카드(Peter Pecard) 등도 18세기가 다하기까지 조건적 불멸을 옹호한 기수들이었다.144
불란서 혁명과 그 여파로 장식된 18세기가 지나고 19세기에 접어들면서 종말 신앙에 대한 관심은 더욱 고조되었다. 혁명을 통하여 모순과 오류가 낱낱이 드러난 로마 가톨릭교회의 진상은 지금까지 교권(敎權)에 억눌렸던 양심을 일깨웠다. 일일이 열거할 수 없는 성직자들과 학식을 갖춘 지도자들이 소속한 교파의 전통적인 입장에 도전하며 영혼 문제에 대한 성경적인 이해를 촉구했다. 프룸(L, E, Froom)씨는 그의 저서에서 19세기 동안 이 일에 앞장선 128명의 대표적인 증인들을 열거하고 있다.145
그 가운데는 네 차례에 걸쳐 수상을 지낸 영국이 자랑하는 최대의 정치가요 저자이기도 한 그래드스톤(W. E. Hladstone . 1809-98)도 있다. 광범위한 지식을 토대로 한 그의 저서에서 그는 플라톤의 영혼 불멸의 사상이 오리겐과 어거스틴을 통하여 초대 교회에 침투했음을 밝히고,146 그것이 성경에 입각한 그리스도인 신앙에 어긋남에도 불구하고, “효과적이면서도 조용한 과정을 거쳐 뒷문을 통하여 교회안으로 숨어들어왔다.147고 지적했다.
오늘날까지 굴지의 성경주석 학자로 꼽히는 루터교의 히브리 학자 델리취(Feanz Delitzsch. 1813-1890)는 그의 고전적인 구약 성경 주석에서, “전체 성경은 영혼의 속성에 기초한 불멸에 관하여 아무것도 아는 바가 없다”148 “성경적인 관점에서 볼 때 영혼은 죽음에 이를 수 있다. 그것은 죽는 것이다.”149라고 단언하고 있다.
침례교 신학자요 언어학자로 현대어 신약 성경을 낸 웨이머드(R, F, Wey-mouth . 1822-1902) 는 그의 번역 성경 해설에서, 고린도전서 15장 18절, 히브리서 9장 28절, 계시록 14장 11절, 20장 10절 등에 나타난 표현들이 모두 끝이 있는 고통이나 파멸을 뜻하는 것이라고 단정하고 있다.150
조건적 불멸 신앙의 보루-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
어거스틴 이후 거의 천년간 계속된 중세기의 영적 암흑 속에서 독버섯처럼 마음놓고 자란 영혼 불멸 신앙의 거짓됨을 고발하는 양심의 소리가 종교개혁을 전후하여 다시 드높아지기 시작했으나 조직을 갖춘 것은 아니었다. 그러던 중, 1877년 11월 11일 유서 깊은 영국의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는 역사적인 사건이 일어났다. 당대에 가장 존경받던 성공회 지도자요, 후에 캔터베리 책임자까지 된 파라르(Canon F. W. Farar. 1831-1903) 사제가 강당에 서서, 사원의 역사 6백년 만에 처음으로, 중세 교회가 천 5백년간 가르쳐 온 교리, 즉 악인은 지옥에서 영원한 고통을 당한다는 교리가 성경에 어긋나는 거짓임을 엄숙히 선언한 것이다. 그는 이 역사적인 설교에서, “내게 있어 [악인이 끝없는 고통을 당한다는] 지옥에 대한 일반적 가르침은, 어거스틴 사상과 로마 가톨릭 사상, 그리고 칼빈 사상이 지닌 잘못들을 합친 것 가운데 최악의 것으로 이루어진 소름이 끼치는 혼합물로 간주된다”151고 선언했다.
이 혁명적인 설교에 대한 반응은 대단했으며,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다음 해인 1878년 9월 정식으로 조건적 불멸 신앙을 옹호하는 초교파적인 연구 조직이 이루어져, 침례고, 성공회, 회중교, 감리교, 플리머스 형제회(Ply-mouth Brethren)의 다수의 성직자들과 학식 있는 지도자들이 대거 참여하였다.152 이 조직은 오래 존속하였으며 거의 매년 총회를 개최하고 기관지를 정기적으로 발행하고 각종 서적을 출판하였으며 그 영향력을 국내외로 넓혀갔다.
1789년 일어난 불란서 혁명으로 중세기 교황권은 무너지고 신앙과 양심의 자유가 고조되고 성경연구의 열정이 기어지는 가운데 신대륙 미국에서는 침례교 지도자 윌리암 밀러(William Miller)가 이끄는 초교파적인 재림 운동이 일어났다. 뒤에서 상세히 설명하겠지만 그 결과로 1863년에는 인간적인 전통을 모두 배척하고 성서적 신앙만을 추구하는 여러 교파들의 신자들로 형성된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회가 구성되기에 이르렀다. 제임스 화잇(Ja-mes White)내외, 베이츠(Joseph Bates). 앤드루스(J. N. Andrews), 스미스(Uriah Smith) 등 각 교파로부터 모여든 지도자들은 재림의 확고한 신앙과 함께 그 때에 있을 생명의 부활을 그리스도인의 유일한 소망으로 확신하기에 이르렀다. 그들은 영혼불멸과 영원 지옥, 연옥 등이 모두 성경에 어긋나는 것으로 중세 교회가 이교로부터 받아들인 거짓임을 깨닫고 성경에 입각한 조건적인 불멸과 악인의 소멸을 공식적인 신조로 택함으로서, 안식일 교회는 정통적인 그리스도교 가운데 이러한 진리를 간직한 최초이면서 동시에 유일한 교회가 된 것이다.153
20세기 양심이 거부한 영혼불멸과 영원지옥 신앙
20세기가 밝아오자 더욱 밝혀진 성경 지리의 빛 가운데 조건적인 불멸을 옹호하는 지성과 양심의 소리가 드높았다. 성공회의 선교 책임자인 에이트켄(William Aitken. 1841~1972)을 시작으로 성공회의 최고 지도자인 켄터버리 대주교인 템플(William Temple. 1881~1944)은 영혼불멸이 플라톤의 이교 사상임을 지적하고 부활 때에 부여되는 불멸을 강조하는 한편 연옥과 지옥에 대한 로마 가톨릭교회의 가르침이 전적으로 어긋나는 것임을 거듭 강조했다.154
프룸 박사는 그의 저서에서 20세기에 들어서서 조건적인 불멸을 옹호한 137명의 대표적인 지도자들을 열거하고 있는데, 일별만으로도 그들이 각 교파를 대표하는 신학자들과 지도자들임에 대해 놀라움을 갖게 된다.155(그들 가운데 일부가 첨부된 도표에 포함되었다). 그 중에는 모팻 역(譯) 성경으로 잘 알려진 스코트랜 장로교의 신학자인 모팻(James Moffatt), 스웨덴의 루터교 신학자인 나이그렌(Anders Nygren), 미국의 개혁교회 신학자인 니이버(Rei-nhold Niebuhr), 스위스의 신학자인 브루너(Emil Brunner)와 바르트(Karl Ba-rth), 쿨만(Oscar Cullmann), 독일 루터교의 신학자인 불트만(R. Bultmann), 미국 하바드의 신학자 틸리히(Paul Tillich)와 영국 침례교 신학자인 스크로기(W. G. Scroggie)등은 일반에게도 알려진 근대의 신학자들이다. 특히 화란 출신의 현대 칼빈주의 대표 신학자인 벌카워(G. C. Berkouwer)도 칼빈의 이중 예정과 함께 전통적인 영혼불멸 신앙의 모순을 느끼고 성경적인 조건적 불멸의 신앙으로 전화한 것은 학자의 양심을 가진 신앙인의 떳떳한 태도이다.
부활 신앙의 챔피온-오스카 쿨만
1958년, 현대 신학계의 굴지의 신약 학자로 꼽히는 독일 사람 오스카 쿨만(Oscar Cullmann. 1902~)은 세계적인 파문을 일으킨 논문을 발표했다. [영혼의 불멸인가 죽은 자의 부활인가?]라는 제목의 이 논문은 한국에서도 장로교 원로 신약 성서학자요 목사인 전경연(全景淵. 1916~) 씨에 의하여 번역되어 1965년 복음주의 신학총서(5권)에 소개된 바 있다. 이 논문에서 쿨만은 “죽은 자의 부활에 대한 그리스도교의 소망과 영혼불멸에 대한 헬라사상 사이에 근본적인 차이가 있음”156을 성경주석을 통하여 빈틈없이 밝히고 있다. 그리고 “영혼불멸을 믿는 헬라 사람들에게 있어서 그리스도교의 부활 설교를 받아들이기가 가장 어려운 것”157은 당연한 논리의 귀결임을 지적하고 있다. 서로 모순되기 때문이다.
“신약에서는 ‘영혼불멸이냐 죽은 자의 부활이냐’ 하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명백하다. 위대 한 철학자인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의 가르침은 결단코 신약의 가르침과 일치할 수는 없 다.”158
이 논문에 대한 교계의 비평은 격렬하였으나, “어느 비판자도 본문 주석으로 나를 반론코자 시도하지 않았다는 데 바로 우리 연구의 근거가 사무쳐 있다.”159고 쿨만은 실토한다. 또한 “나는 철학자인, 심리학적인, 무엇보다도 감정적인 막연한 이유로 공격을 받고 있다.”160고 깊은 유감을 표했다. 성경에 어긋나는 신앙은 그리스도교의 신앙이 아니다. 감정이나 심리가 성경을 대신해서는 안 된다. “베뢰아 사람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보다 더 신사적이어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면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 그 중에 믿는 사람이 많”(행 17:11)았음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쿨만의 말처럼 영혼불멸과 부활을 동시에 믿을 수 없는 서로 어긋나는 신앙이다.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성경을 상고하”여 올바른 것을 바로 택하는 것이 신사적인 그리스도인의 줏대있는 신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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