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오페라단의 창단 41주년 제55회 정기공연
지역 문화 인프라 구성 중요한 주체..기업과 문화재단
시민사회의 후원과 협력도 함께 고민해야
11월 20일과 21일 이틀 동안 한국소리문화의전당 모악당에서 펼쳐지는 작품은 이탈리아 사실주의 오페라를 대표하는 작곡가 움베르토 조르다노의 걸작 다.
ABC뉴스=백학기 (시인, 영화인)/ 한 시대의 문화예술은 어느 날 갑자기 만들어지지 않는다. 한 사람의 열정으로 시작할 수는 있지만, 그것이 지역의 문화자산으로 자리 잡기까지는 수많은 사람의 시간과 땀이 필요하다. 무대 위의 박수는 짧지만 그 박수를 만들어내기까지 걸린 시간은 길다. 지난 1986년 전주에서 창단한 호남오페라단의 40년이 그렇다.
호남오페라단은 전북 제1호 전문예술법인으로서 지난 40년 동안 전북의 오페라 문화를 지켜왔다. 전북도와 전주시의 지원을 마중물 삼아 매년 정기공연을 이어왔고, 서양음악의 한 장르에 머물지 않고 지역의 문화적 다양성을 넓히는 전문예술단체로 성장해왔다. 국악과 판소리의 전통이 강한 전북에서 오페라라는 다소 낯선 장르가 한 세대, 두 세대를 건너며 살아남았다는 사실 자체가 하나의 문화적 기록이다.
그런 호남오페라단이 지금 존립의 기로에 서 있다. 올해 전주시의 예산 지원이 축소되면서 운영난이 가중됐고, 내년에도 지원을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지방자치단체의 재정 사정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한정된 예산을 어디에, 어떻게 배분할 것인가는 지방정부가 감당해야 할 어려운 선택이다. 그러나 예산을 줄이는 것과 한 지역의 문화적 기반을 흔드는 것은 같은 의미가 아니다.
특히 공연예술은 더욱 그렇다. 오페라 한 편이 무대에 오르기 위해서는 성악가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지휘자와 오케스트라, 합창단, 연출가, 무대·조명·의상·분장·제작진이 함께 움직여야 한다. 그 안에는 오랜 시간 축적된 경험과 호흡이 있다. 관객과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매년 한 번씩 극장을 찾는 관객, 그 무대를 기다리는 시민, 지역에서 성장하는 젊은 음악인들의 시간이 차곡차곡 쌓여 하나의 문화 생태계를 만든다.
그래서 공연이 한두 해 멈춘다고 해서 단순히 ‘공연 두 편이 사라졌다’고 말할 수 없다. 사람이 떠나고 경험이 끊기고 관객이 돌아서면, 훗날 예산을 다시 투입한다고 해도 과거의 자산을 그대로 되살릴 수 없다. 문화에는 행정의 예산표로는 계산하기 어려운 시간이 있기 때문이다.
호남오페라단의 위기는 그런 의미에서 한 예술단체의 경영난을 넘어선다. 그것은 전북이 지난 40년 동안 축적해온 문화적 시간의 문제다. 한 지역이 무엇을 기억하고 무엇을 다음 세대에 물려줄 것인가에 관한 질문이기도 하다.
전주시와 전북도는 전문예술단체가 단순히 보조금을 받는 대상이 아니라 지역의 문화 인프라를 구성하는 중요한 주체라는 인식에서 지원 방식을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 기업과 문화재단, 시민사회의 후원과 협력도 함께 고민해야 한다.
문화예술은 행정기관만의 몫도, 예술가만의 몫도 아니다. 지역의 문화자산을 누리고 향유하는 시민 모두의 몫이다. 특히 40년이라는 시간을 가진 전문예술단체라면 더욱 그렇다.
그런 점에서 호남오페라단의 창단 41주년 제55회 정기공연은 각별하다. 오는 11월 20일과 21일 이틀 동안 한국소리문화의전당 모악당에서 펼쳐지는 작품은 이탈리아 사실주의 오페라를 대표하는 작곡가 움베르토 조르다노의 걸작 <안드레아 셰니에>다.
프랑스 대혁명의 격랑 속에서 예술가의 신념과 숭고한 사랑을 그린 <안드레아 셰니에>는 시대의 폭풍 속에서도 인간이 지켜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를 묻는 작품이다. 혁명의 거대한 물결 앞에서 한 인간의 양심과 사랑, 예술적 신념이 어떻게 흔들리고 또 어떻게 끝내 자신의 길을 선택하는지를 보여준다.
그래서 이번 무대가 더욱 의미 있게 다가온다. 존립의 어려움 속에서도 호남오페라단은 다시 무대를 준비하고 있다. 그것도 지역 공연에 머무르지 않고 세계와 호흡하는 글로벌 프로젝트로서 새로운 무대를 선보인다. 40년의 시간이 위기의 벽 앞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10년, 100년을 향해 다시 이어지는 순간이다.
이번 기념무대 <안드레아 셰니에>가 그래서 특별하게 다가온다. 격조 높은 음악적 감동과 함께 40년을 이어온 호남오페라단의 시간이 객석에 깊이 전달되기를 기대한다. 그리고 그 무대를 바라보며 우리 지역의 문화예술을 어떻게 지켜갈 것인지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