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다룰 브리얀트와 크라우제의 요한복음 주석의 내용은 서언(1:1-2)에 나타난 '말씀(로고스)'의 영원성과 기원, 그리고 삼위일체적 신성을 학술적 배경과 함께 명쾌하게 풀어낸다. 예수는 단순한 인간을 넘어 창조 이전부터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를 나누신 '본질적인 하나님'이셨다. 저자는 역사적·철학적 배경 연구를 통해 그리스도교적 관점에서 로고스 개념의 독창성을 증명해 내고 있다. 이 포스팅을 통해 독자들은 요한복음에 기록된 예수의 모든 사역과 말씀이 곧 하나님 자신의 역사임을 깊이 깨닫게 될 것이다.
[브리얀트 & 크라우제, 대학출판 NIV 주석: 요한복음]
I. 예수께서 자신(그의 영광)을 세상에 나타내심 (1:1–12:50)
A. 서언(1:1–18)
"요한에 따르면”이라는 제목은 사본 א(시내 사본)과 B(바티칸 사본)에는 "요한에 복종하여(요한에 따르면)"로 되어 있고, 더 오래된 사본들에는 "요한에 따른 복음"으로 되어 있다. 전자가 여기서 더 원시적일 수 있으며 본서의 원래 제목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1. 시간 이전의 로고스(1:1–4)
성자의 신성(1:1–2)
¹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²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
1:1. "태초에"라는 단어는 창세기 1:1을 메아리치듯 연상시키며, 특히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에게 그러하다. 그러나 요한복음 1:1의 이 단어들은 창조의 행위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창조가 일어났을 때 이미 존재하고 계셨던 분, 즉 '말씀'을 가리킨다. 사람들은 "태초에…하나님이"라고 읽을 것을 기대할 수 있겠지만, 대신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E. Haenchen, A Commentary on the Gospel of John. Hermeneia, 독일어판, 1980(Philadelphia: Fortress, 1984), p. 116.)를 읽고 놀라게 된다. 그리고 이 칭호는 여기서 "그리스도", "인자", "하나님의 아들" 등의 칭호보다 더 적절하다. 요한복음의 서언은 기독교 복음의 핵심인 예수의 인격과 사역을 소개하고 요약하기 위해 특별히 구성된 것으로 보인다. 또한 "태초에"라는 단어가 마가복음의 시작을 상기시키려는 의도였을 것이다.(C.K. Barrett, The Gospel According to St. John (New York: Macmillan, 1955), p. 131.) 네 명의 복음서 기자들은 각자 예수의 활동을 시작점(άρχή, archē)으로 밀어붙이며 복음서를 연다. 마가는 예수의 세례와 성령의 강림, 그리고 예수의 아들 되심에 대한 하나님의 인정을 복음서의 시작으로 삼는다. 마태와 누가는 예수의 동정녀 잉태와 출생으로, 요한은 창조와 그 이전의 시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요한은 마가(마가복음 1:6-8, 13)와 마태, 누가(1:13)가 기록한 시작 사건들을 언급하고 있는 것일 수 있다. 저자가 영원 속의 하나님과 함께 시작한다는 점에서 그의 오프닝은 참으로 놀랍다. 이토록 장엄하게 시작하는 책은 그리 많지 않다!
"말씀"이라는 칭호의 배경에 대해서는 학계에서 다양하고 다채로운 의견이 제시되고 있다. (1) 일부 학자들은 요한이 "말씀"이라는 용어와 연관 지은 개념들이 그리스 철학, 구체적으로는 헤라클레이토스와 스토아학파에서 유래했다고 본다. 즉, 헤라클레이토스와 스토아학파 모두 말씀을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기 위해 사용하신 편재하는 힘(무소부재한 능력)으로 묘사했다는 것이다. 헬라 사상가들을 따랐던 유대인 철학자이자 구약 주석가인 필로(Philo)도 이들의 뒤를 이었으나, 이들 중 누구도 말씀을 진정으로 '인격적인 존재'(Cf. Haenchen, The Gospel of John, 1:137a.)로 생각하지 않았고, 대개는 중력이나 사슬의 융합(원자의 결합)과 같은 '비인격적인 힘'으로 여겼다. (2) 다른 학자들은 "말씀"의 의미가 (a) 구약성경(잠언 7:22-8:1, 여기서 하나님의 지혜는 세상의 창조를 수반함) 및/ 또는 (b) 외경의 유대 문헌(예: 지혜서 24장)에서 유래했다고 추정한다. 그러나 여기서도 지혜는 인격적인 면이 덜하고 비인격적인 힘에 더 가까웠다. (3) "말씀"이라는 용어는 예수와 그분의 전파 및 사역에서 유래했을 가능성이 훨씬 더 높다. 그분은 입으로 말씀을 전파하셨고, 행동으로 말씀을 실행하셨으며, 자신의 출생과 인격으로 말씀을 육신화하셨다. 신약성경에서 예수의 복음은 종종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칭된다. 따라서 예수의 칭호인 "말씀"은 전적으로 그리스도인들에게서 유래했을 수 있으며, 비록 일부 학자들이 이 용어에 깃든 이교 사상과 구약성경의 강조점을 고수하려 할지라도, 이교도나 유대인 어느 쪽에서도 유래하지 않았을 것이다.(George R. Beasley-Murray, John, Word Biblical Commentary (Waco, TX: Word, 1987), pp. 9-10.)
예수에게 적용된 '말씀'이라는 칭호의 의미(및 사용 이유)는 다음과 같았을 것이다. (1) 예수는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뜻의 주요한 계시였으며,(Rudolf Bultmann, The Gospel of John, A Commentary (Philadelphia: Westminster, 1971), p. 21.) 계시는 대개 말씀의 형태를 취한다. 이 설명은 주로 요한복음 1:3 이하에 묘사된 인간과의 관계와 관련이 있으며, 위격 간의 관계와는 거리가 멀다. 그러나 요한은 아포칼립토(άποκαλύπτο)나 아포칼립시스(άποκάλυψις)라는 용어를 결코 사용하지 않고, 대신 레고(λέϒω, "I say"), 랄레오(λαλέω, "I speak"), 파네로오(φανερόω, "I manifest"(나타내다)) 같은 단어들을 사용했다. (2) 예수는 인류에게 하나님의 말씀이나 메시지를 전하셨을 뿐만 아니라, 그분 자신이 곧 하나님의 말씀이자 메시지이시다.(Edwyn C. Hoskyns, The Fourth Gospel, Francis Noel Davey, ed., 2 vols (London: Faber, 1940); rev. ed. 1 vol. (London: Faber, 1947), p. 139.) 요한복음 1:1 이하에서 예수의 칭호로 로고스를 사용한 것에는 더 깊은 진리가 숨겨져 있을 수 있는데, 그것은 아주 단순하다. (3) 어떤 말이든 그 말의 생각과 밀접하게 결합되어 있는 것처럼(또는 그 반대도 마찬가지), 생각 없이는 그에 따르는 말(말이나 글 형태의)을 가질 수 없듯이, 아버지와 아들 예수 또한 매우 밀접하므로 하나를 가지면 다른 하나도 가지게 된다. 이 관찰은 요한복음 10:30; 14:9, 28 등과 같은 난해한 구절들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예수님을 뜻하는 "말씀"이라는 칭호는 구약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이름"(שׁם, shēm)의 관계와 비교되어 왔다. 구약에서 하나님의 이름은 때때로 독립된 권능으로서 하나님과 나란히 서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상 하나님과 분리된 어떤 것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행하시는 한, 그리고 특히 자신을 계시하시는 한에서의 하나님을 묘사한다(출 23:21; 사 30:27; 시 8:2, 10; 20:2 등).(Bultmann, The Gospel of John, p. 34, n. 2.)
[그리고]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하나님과 함께(πρὸς τὸν θεόν, "with God")라는 표현은 "하나님의 면전에서"(cf. 막 6:3) 또는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 속에서"라는 의미일 수 있다.(See Beasley-Murray, John, p. 10.)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라는 구절에서 관사가 없는 하나님(θέος)은 일종의 서술적 형용사처럼 쓰인 것이다. 그러나 이것을 단순히 "하나님 같은”(divine)으로 번역해서는 안 되며, 마치 예수가 하나님이라는 존재의 유일한 분인 것처럼 "하나님”(the God)으로 번역해서도 안 된다. "말씀은 하나님(또는 신성(deity))이셨다"가 이 짧은 문장을 표현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하나님과 함께"라는 표현은 말씀이 이 땅에 오시기 전, 영원 속에서 누리셨던 그 본질과 환경을 묘사한다. 또한 이 구절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신 분인 예수께서 단순한 인간이 아니었으며(예수의 사명 또한 한낱 인간에 의해 수행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셨던 하나님의 말씀이었음을 말해준다. 제4복음서의 이 시작하는 말들은 아주 처음부터 모든 상황을 올바르게 정립한다. 이 책에 이어질 이야기는 인간이면서 동시에 하나님 자신이기도 한 한 분에게 초점을 맞춘다. 이 본문에는 다신교적 개념이나 상상 속의 관념은 존재하지 않는다.(Bultmann, The Gospel of John, p. 33.) 따라서 요한은 이 책에서 예수의 것으로 돌려진 말과 사역들이 곧 하나님 자신의 말과 사역임을 독자에게 일깨워 준다.(Barrett, the Gosel According to St. John, p. 156)
1:2. 1:2에서 요한은 1절, 호우토스(οὗτος, houtos, "this one")에서 보여주었듯이 예수에 대해 이미 언급했던 내용을 다시 한 번 확언한다.
Beauford H. Bryant & Mark S. Krause, The College Press NIV Commentary: John (College Press Publishing Company, 1998), pp. 35-38.
첫댓글 헬라 철학과 구약 문헌의 한계를 넘어 예수 그리스도의 독창적인 위격과 신성을 학술적·역사적 배경으로 명쾌하게 입증해 낸 깊이 있는 분석이 매우 인상적입니다.
요한복음 서언에 담긴 로고스의 영원한 신성을 일깨워줌으로써, 예수님의 모든 사역과 말씀이 곧 하나님의 역사라는 본질적 진리를 깊이 깨닫게 만드는 탁월한 내용입니다.
공감합니다 😁
요한복음의 서언은 창조 이전부터 존재하셨던 말씀의 영원성과 본질적인 삼위일체적 신성을 선포하며 복음서의 핵심을 장엄하게 소개합니다.
저자는 로고스 개념이 그리스 철학의 비인격적인 힘이나 유대 지혜 문헌의 한계를 넘어 오직 기독교적 관점에서만 독창적인 위격으로 해석됨을 밝힙니다.
말씀이신 예수는 하나님의 뜻을 완벽하게 보여주는 계시이자 그분 자신과 본질적으로 하나이신 온전한 메시지 자체로 묘사됩니다.
이 구절에 나타난 신성은 다신교적 상상을 배격하며 예수가 단순한 인간을 넘어 영원 속에서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를 나누신 분임을 증명합니다.
결과적으로 독자들은 이 주석을 통해 예수의 땅 위에서의 모든 말과 사역이 곧 하나님 자신의 역사이자 계시라는 근본적인 진리를 깨닫게 됩니다.
네,공감합니다.
철학적·역사적 배경을 바탕으로 로고스에 담긴 심오한 삼위일체 진리를 명쾌하게 풀어내 주셔서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창조 이전부터 하나님과 함께 계셨던 말씀이 바로 예수님이라는 사실이 새삼 큰 경외감과 감동으로 다가옵니다.
예수님의 모든 삶과 사역이 곧 하나님의 역사라는 본질을 짚어주셔서 복음서의 장엄한 서두를 더욱 깊이 깨닫게 되었습니다.
네, 저도 그렇습니다.
태초부터 하나님과 함께 계시며 온전한 신성으로 역사하신 말씀의 주님을 찬양하며, 우리에게 나타나신 그 계시의 말씀을 온전히 신뢰하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모든 사역과 말씀이 곧 하나님의 일하심임을 깊이 깨닫게 하시고, 영원한 진리 안에서 날마다 주님과 친밀히 교제하게 하소서.
아멘!
그리스 철학의 비인격적인 힘이나 유대 문헌의 지혜 개념을 뛰어넘어, 오직 그리스도교적 관점에서 로고스의 독창적 위격과 신성을 학술적으로 명쾌하게 증명해 주신 부분이 매우 인상 깊습니다.
'태초에'라는 선포를 통해 예수님이 단순히 창조의 한 시점에 등장한 인간이 아니라, 창조 이전 영원 전부터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를 나누신 '본질적인 하나님'이심을 다시금 확신하게 됩니다.
말씀과 생각이 분리될 수 없듯 아버지와 아들이 하나라는 비유를 통해, 복음서에 나타난 예수님의 모든 사역과 말씀이 결국 하나님 자신의 역사이자 계시라는 본질을 깊이 깨달았습니다.
요한복음 서언이 지닌 장엄함과 기독교 복음의 핵심인 예수의 인격을 올바르게 정립해 주셔서, 이어질 복음서의 내용을 더욱 경외함 가득한 시선으로 마주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태초부터 하나님과 함께 계시며 온 세상의 창조 이전부터 영원한 신성으로 존재하신 말씀의 주님을 찬양합니다.
그리스 철학이나 세상의 사상을 뛰어넘어 오직 온전한 하나님이자 인격적인 메시지로 우리에게 찾아와 주신 예수님의 독창적인 은혜를 기억하게 하소서.
복음서에 기록된 주님의 모든 말씀과 사역이 곧 하나님의 역사임을 깊이 깨닫고, 날마다 그 영원한 진리 안에서 주님과 친밀히 교제하며 살아가게 하소서.
아멘!
역사적·철학적 배경에 대한 깊이 있는 분석을 통해 요한복음 서언에 담긴 로고스의 기원과 의미를 아주 명쾌하게 짚어주셨습니다.
그리스 철학이나 유대 문헌의 비인격적인 한계를 넘어서는 예수 그리스도만의 위격과 독창적인 신성을 깨달을 수 있어 무척 유익합니다.
태초에 창조주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를 나누신 '본질적인 하나님'으로서의 예수를 고백하는 대목에서 깊은 울림과 감동을 받았습니다.
결국 예수님의 지상 사역과 모든 말씀이 곧 하나님 자신의 역사라는 진리를 정립해 주어, 앞으로 이어질 복음서의 내용을 더욱 경외함으로 마주하게 만드는 좋은 포스팅입니다.
매우 공감합니다.
로고스 곧 말씀이라는 독특한 용어의 기원이 그리스 철학이나 구약성경 및 유대교 전승이 아니라 신약에서 예수님의 말씀과 예수를 동일하게 여겼던 그리스도인들에게서 비롯된 것일 수 있다는 설명이 좋네요. 로고스라는 용어를 헬라어에서 차용한 것일 뿐, 내용은 선재하신 그리스도를 일컫는 고유명사로 사용한 것 같습니다.
예수님 자체가 인류에게 보내는 하나님의 뜻의 주요한 계시였으며 또한 계시 전달자, 메신저였다.
'예수는 하나님으로서 하나님의 말씀이시다.' 이 한 마디로 로고스를 설명할 수 있겠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올려주신 깊이 있는 버역 내용에 매우 공감 합니다.
그리스 철학의 비인격적인 힘이나 유대 문헌의 지혜를 넘어,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만의 독창적인 위격과 신성을 학술적으로 명쾌하게 짚어주셔서 깊은 울림이 전해집니다.
태초에 창조주와 친밀한 교제를 나누신 '본질적인 하나님'으로서 예수님을 조명해 주어, 복음서에 기록된 그분의 모든 사역과 말씀이 곧 하나님의 역사라는 사실을 경외함으로 깨닫게 됩니다.
매우 공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