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목록 피라미드 | 스핑크스 <출처: By Ad Meskens @Wikimedia Commons(CC BY-SA)> |
피라미드와 스핑크스를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아마 흔치 않을 것이다. 이렇듯 이집트는 이집트에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사람들에게조차 친숙한 나라이며, 수많은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관광대국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이집트를 관광대국으로 만들었을까? 우선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인 피라미드를 비롯한 각종 문화유산을 들 수 있다. 우리가 잘 아는 스핑크스부터 카르낙, 아부심벨 신전 같은 거대한 고대 건축물이 이집트의 젖줄인 나일 강을 따라 수도인 카이로(Cairo)와 룩소르(Luxor), 아스완(Aswan) 등의 도시에 산재해 있다. 투탕카멘의 황금 마스크 등 왕의 무덤에서 발견된 화려한 부장품과 미라는 사람들의 호기심을 끌기에 충분하다. 이슬람 국가이지만 성경 ‘출애굽기’의 배경이기도 한 이집트에는 모세가 십계명을 받았다는 시내산을 비롯한 여러 기독교 관련 명소가 있어 성지순례 여행객에게는 빼놓을 수 없는 여행지다.
룩소르
그뿐인가. 이집트에는 전 세계 다이버들이 일생에 한 번은 꼭 가보고 싶어 한다는 아름다운 홍해에 후루가다(Hurghada), 샤름 엘 셰이크(Sharm el Sheikh) 등 세계적으로 유명한 휴양지가 있는 데다 국토의 90% 이상이 사막인 나라답게 바하리야(Bahariya), 시와(Siwa) 등지에 사막, 오아시스 관광지도 있다. 1년 내내 비가 오지 않는 건조한 사막기후 덕분에 따뜻한 햇볕을 그리워하는 유럽인, 러시아인 등의 겨울 휴양지로도 큰 사랑을 받아왔다.
이미지 목록 홍해 | 바하리야 |
이처럼 이집트는 현대 과학으로도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를 간직한 세계적인 문화유산과 더불어 천혜의 자연환경, 유럽과의 지리적 접근성 및 저렴한 물가 등으로 전 세계 관광객의 사랑을 받으며 관광대국으로서의 입지를 다져왔다. 관광 산업은 2010년 기준 이집트 전체 GDP의 약 12%를 차지하며 관광객 2,800만 명, 관광수지 300억 달러, 인구의 10% 고용 등의 성과를 기록한 이집트의 대표적인 효자 산업이다. 그런데 최근 들어 이집트 경제를 든든히 떠받치는 버팀목으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해온 관광 산업에 금이 가고 있다. 이집트로서는 경제를 뿌리째 흔드는 악재임에 분명하다.
이집트 관광 산업, 그 위기의 시작
별다른 투자를 하지 않아도 많은 관광객을 끌어모으며 계속 성장하던 이집트 관광 산업은 2011년 1월 25일 발발한 시민혁명으로 30년간 권좌에 앉아 있던 호스니 무바라크(Hosni Mubarak) 대통령이 하야하면서 위기를 맞았다.
호스니 무바라크 이집트 전 대통령 <출처: By Presidenza della Repubblica @Wikimedia Commons>
대도시에서만 10만 명 이상이 참가한 시민혁명의 와중에 공권력 약화로 인한 치안 공백이 초래되면서 공권력에 대한 공격과 각종 약탈 등 무정부 상태에 가까운 혼란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시민혁명이 발발하자 미국, 일본 등은 특별기를 투입해 자국민을 철수시킨 바 있다. 우리 정부 역시 2011년 2월 2일 특별기 편으로 이집트 교민과 주재원 180명을 대피시켰다.
이집트에 살던 사람마저 치안 부재를 이유로 대피하는 마당에 관광객이 이집트에 올 리 만무했다. 게다가 시민혁명 이후에도 정정 불안이 계속되자, 이집트의 불확실한 미래는 곧 치안에 대한 불안감으로 이어져 관광 산업이 치명타를 맞았다. 결국 2010년 한 해 동안 2,770만 명을 기록한 관광객은 2011년 980만 명으로 65%나 수직 하락했다. 관광객의 감소는 곧 외화 수입의 감소를 의미했다. 이는 사회경제적 불안요인과 맞물려 이집트의 외환 보유고를 절반 이하로 떨어뜨리는 결과를 가져와 경제 불안을 더욱 부채질했다.
2011년과 2012년 초의 사회적 혼란은 2012년 6월 24일 모하메드 무르시(Mohamed Morsi)가 첫 민선 대통령으로 선출되면서 다소 진정되는 듯 보였다. 그러나 무르시 대통령과 여당인 이슬람형제단은 충분한 수권 능력을 차지하지 못했고, 실권이 없는 무르시 대통령의 인기가 하락하면서 반(反) 무르시, 반(反) 이슬람형제단 정서가 고조된 틈을 타 이집트 군부는 2013년 7월 3일 대통령에 선출된 지 약 1년 만에 무르시 대통령을 축출했다.
모하메드 무르시 이집트 전 대통령 <연합뉴스 제공>
군부의 무르시 대통령 축출은 이집트 전역에서 무르시 지지 시위대와 반무르시 세력 간의 유혈충돌을 야기했다. 특히 이집트 군부가 지휘하는 임시정부의 보안군이 2013년 8월 14일부터 나흘간 이집트 전역의 시위대를 무력으로 해산시키는 과정에서 800명 이상의 사망자가 나온 것으로 공식 집계됐는데, 이는 2011년 시민혁명 이래 최대 규모의 사망자다. 2011년 공권력 부재에 따른 치안 악화로 초래된 이집트 관광 산업의 불경기는 회복을 모색할 새도 없이 2013년 또다시 큰 소요 사태를 겪으며 끝없는 침체의 늪에 빠져들었다.
2014년 2월 16일에는 이집트에서 이스라엘로 넘어가는 국경 도시인 타바에서 한국인 단체 관광객이 탑승한 버스를 대상으로 한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 세력의 자살 폭탄테러가 발생해 한국인 3명이 사망하고 17명이 부상당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이집트 타바 국경검문소 앞에서 벌어진 자살폭탄 테러로 한국인 관광객들이 타고 있던 버스가 완파됐다. <연합뉴스 제공>
이 테러를 자신들의 소행이라고 주장한 이슬람 극단주의 단체 안사르 베이트 알마크디스(Ansar Bait al-Maqdis)는 사건 이틀 뒤인 2월 18일 인터넷에 올린 성명을 통해 모든 관광객(외국인)을 대상으로 나흘 내 이집트를 떠나지 않으면 다음 목표가 될 수 있다고 경고해 테러가 이집트 정부에 선포한 ‘경제전쟁’의 일환임을 선언했다. 다행히 추가적인 위협이 현실화되지는 않았지만 테러 사태는 부진의 늪에 빠져 있는 이집트 관광상품 예약률을 단박에 30%P 이상 추가로 떨어뜨리며 이들이 주장한 경제전쟁의 효과를 거두었다. 타바 폭탄테러 사건 이후 정정 불안에도 소규모 그룹으로 이어지던 한국인 관광객의 발길은 완전히 끊겼고, 다른 국가도 이집트 여행경보를 일제히 상향 조정하면서 이집트로 향하던 관광객 수요는 급감했다.
2014년 6월 8일 전 국방장관인 압둘 파타 엘시시(Abdel Fattah el-Sisi)가 군부의 지원 아래 대통령에 취임했다. 이집트 경제 재건이라는 중차대한 과제를 안게 된 엘시시 대통령에게 관광 산업 활성화를 통한 외환 확보, 일자리 창출, 관광 산업 개발과 관련된 각종 투자 프로젝트 진행은 선택이 아닌 필수 과제이다. 엘시시 대통령은 취임 후 경제개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4대 역점 추진 사업 중 하나로 연간 관광객 3,000만 명 유치를 골자로 한 관광 산업 개발을 천명했다.
압둘 파타 엘시시 현 이집트 대통령 <출처: By Erin A. Kirk-Cuomo @Wikimedia Commons(CC BY-SA)>
현 상황에서 관광객의 발길을 이집트로 되돌리기 위한 가장 중요하고 유효한 조치는 치안확보다. 이와 관련, 이미 경찰뿐만 아니라 군대가 동원되는 등 엘시시 정부는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안전한 나라’의 이미지를 만들고 관광 산업 및 외국인 투자 유치를 확대하기 위해 노력할 것으로 보인다.
치안 불안으로 고심 중인 이집트의 상황을 볼 때 보안 관련 산업에서 다양한 시장과 수요가 만들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집트 관광청은 이집트에서 운행되는 모든 관광버스에 CCTV를 설치하겠다는 계획을 세운 바 있으며, 주요 관광지 및 진출입 도로 등을 대상으로 한 보안 시스템 구축에도 관심을 보이고 있다. 앞으로 상당 기간 이집트 관광 산업은 ‘관광객 안전 확보’를 화두로 다양한 보안 관련 투자에 나설 것으로 기대된다.
또한 이집트 정부는 거의 방치하다시피 한 낙후된 관광 인프라 개선 사업과 개발이 미흡한 홍해 및 서부 사막 지역의 관광지 개발에 박차를 가할 것으로 보인다. 유럽 관광객의 빈자리를 메워줄 것으로 기대되는 중동 지역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한 고부가가치 여행상품 개발 노력도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집트 관광 산업의 재건은 단순히 관광 산업만의 문제가 아니라 이집트 경제 재건과 관련된 문제다. 이집트 정부가 테러의 위협을 극복하고 관광대국으로서의 면모를 회복할 수 있을 것인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