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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율배반적 아이러니
1) 아이러니의 개념
아이러니(反語, irony)는 희랍어 eironeia를 어원으로 하는데, '숨기다', '시치미 떼다'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즉 아이러니는 시치미를 떼고 무언가를 둘러대는 데서 발생한다는 것이다. 가령 하숙집에서 아침상을 받은 하숙생이 "오늘도 풀밭에서 식사하는군"하고 중얼대는 것은 야채류로 이루어진 반찬들에 대한 비판적 태도라는 것을 누구나 쉽게 눈치챌 수 있다. 풀밭에서 식사를 한다는 것 자체는 매우 즐거운 일이지만, 그 속뜻은 반찬이 형편없다는 것에 대한 불만인 것이다. 시에서 이러한 아이러니의 형식이 도입되는 것은 시가 진실에 대한 축어적 표현이란 점과 연결된다. 즉 아이러니는 표면적 현상 속에 감추어진 진실을 밝히는 데 효과적으로 기여하는 특성이 있다.
2) 아이러니의 유형
⑴ 내적 아이러니:
어떤 새는 모음으로만 운다 / 차주일
자신을 먹이로 쫓던 새를 찾아가
그 새의 눈물을 빨아먹어야만 살아남는 나방이 있다
천적의 맥박에 맞춘 날갯짓으로
잠든 눈까풀을 젖히는 정지된 속도로
눈물샘에 긴 주둥이를 밀어 넣을 수 있었던 진화는
새가 단 한번 눈 깜빡이는 사이에 있다
그 사이는 목숨 그 너머를 수혈하기에 충분한 찰나
천적의 눈물에 침전된 염기를 걸러
제 정낭을 채운다는 미기록종 나방이여
상사빛 날개를 삼켜 다시 염낭을 채워야 하는 새여
너희들은 날개로 비행궤적을 지우는 고요의 동족
고요에 찔려 본 자만이 볼 수 있는 그 궤적은
내가 오직 한 사람을 그리워해 온 여태껏,
내가 가위눌린 몸짓으로 썼던 미기록종의 자음들
나방이여 새가 널 먹고 살아남으려 함은
이미 제 영혼인 네 자음을 썩힐 수 없는 유일책이기 때문
영혼을 찔린 안구가 움직이지 않더냐
새의 부리를 열고 울음통 속으로 들어가 보아라
차마 소리로 뱉지 못할 자음이 있어
모음만으로 울며 날아가는 궤적을 소리쳐 읽어보아라
너무 늦게 그에게 놀러간다 / 나희덕
우리 집에 놀러와. 목련 그늘이 좋아.
꽃 지기 전에 놀러와.
봄날 나지막한 목소리로 전화하던 그에게
나는 끝내 놀러가지 못했다.
해 저문 겨울날
너무 늦게 그에게 놀러간다.
나 왔어.
문을 열고 들어서면
그는 못 들은 척 나오지 않고
이봐. 어서 나와.
목련이 피려면 아직 멀었쟎아.
짐짓 큰소리까지 치면서 문을 두드리면
조등(弔燈) 하나
꽃이 질 듯 꽃이 질 듯
흔들리고, 그 불빛 아래서
너무 늦게 놀러온 이들끼리 술잔을 기울이겠지.
밤새 목련 지는 소리 듣고 있겠지.
너무 늦게 그에게 놀러간다.
그가 너무 일찍 피워올린 목련 그늘 아래로.
⑵ 외적 아이러니:
목련에 대하여Ш / 박남철
국민학교 때 나는 학교 화장실 뒤의 콘크리트 정화조 안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는 개 한 마리를 보았었다.
지금도 나는 그 생각만 하면 눈에 눈물이 고인다.
아마 그 개는 그 정화조에서 끝내 빠져나오지 못했을 거다……
어른이 된 지금도 나는 똑같은 상황에서 어찌해볼 수도 없는 자신에 절망한다……
덥썩 잡아서 끌어올려야 하는 건데
그러나 개는 잡는 시늉만 해도 이빨부터 먼저 드러낸다 으르렁
2
나는 자본주의의 정화조에 빠진 한 마리 개이다.
나의 직장도 불안하다 / 이중기
내 직장은 명예퇴직 걱정이 없는 안전지대다
정년도 걱정할 필요가 없는 평생직장이라
이 공장에는 일흔이 훨씬 넘은 동무들 수두룩하다
무기수의 평생직장이 철창 안이듯
죽음으로 사표를 쓰지 않는 한 철밥통이다
다른 공장 사내들 밥줄에 전전긍긍 힘들 때마다
떄려치우고 우리공장으로 옮기겠다고 장담도 하지만
물정 모르는 객기야 때로는 힘이 되는 것,
농사는 오랜 숙련으로 쌓은 내공이 필요하다
그러나 연봉에 문제가 많은 우리는 비정규직이다
우리 연봉은 미리 책정되는 것이 아니라
그해 강우량과 소비자들의 취향에 따라 달라진다
철저하게 외부요인에 의해 연봉이 책정되므로
우리 제품에는 희망소비자가격이 없다
수많은 직원들이 죽음으로 사표를 썼고 수리되었다
철밥통 이 공장도 구조조정 대상으로 전락되면서
논밭으로 출근하는 햇살과 바람도 낌새가 수상해졌다
⑶ 극적 아이러니:
재미없는 마술사 / 김광규
어느날 마술사가 곡예단을 이끌고 우리 마을에 들왔다. 아무도 그를 부른 사람은 없었다.
마술사는 서부의 무법자처럼 쌍권총을 차고 있었다. 신기한 그의 사격 솜씨는 단 한 발에 날아가는 새를 떨어뜨렸고, 500m 전방의 코카콜라 병뚜껑을 맞혔다.
하지만 이미 커크 더글라스가 나오는 영화를 본 사람들은 그의 묘기에 곧 싫증이 났다.
그러자 그는 자기의 목에다 대고 총을 쏘았다. 사람들은 놀랐으나 그는 죽지 않았다.
「저건 가짜총이다!」 한 사나이가 말했다.
「가짜총이라고 말한 분 나와 보시오.」 마술사는 웃으며 말했다.
마술사는 그 사나이에게 총을 쏘았다. 그 사나이는 대번에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살인이다!」 사람들은 외쳤다.
「살인이라고 말한 분 나와 보시오.」마술사는 엄숙하게 말했다. 아무도 선뜻 나서지 못했다.
「나는 불사신이오. 나를 믿지 못하는 사람은 목숨을 잃게 될 것이오.」마술사는 위협적으로 말했다.
그때부터 마을 사람들은 매일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억지로 재미 없는 마술을 구경해야만 했다. 경건한 자세로 대오를 맞춰 서서, 그의 마술이 끝날 때마다 일제히 박수를 치고 열광적인 환성을 울려야만 했다. 그렇지 않으면 곡예단원들이 채찍을 휘둘렀다.
그의 쌍권총 한 자루는 진짜총이고, 한 자루는 가짜총이라는 것을 곧 알게 되었지만 아무도 그런 말을 입 밖에 내지 못했다.
드디어 이 장기 흥행의 소문이 퍼져, 세무서에서 관리가 나왔다. 마술사는 우리에게서 매일 거둔 구경 값으로 세금을 냈다. 경찰서에서 경관이 오자 마을 사람들은 마술사를 쫓아내 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경관은 「단속할 법규가 없다.」고 그냥 돌아갔다.
이제 우리에겐 자조와 협동의 길밖에 남지 않았다. 그리하여 내일부터는 아무도 마술을 보러가지 않기로 결정했다.
과연 그렇게 될지 우리는 가슴을 두근거리며 내일을 기다리고 있다.
사무원 / 김기택
이른 아침 6시부터 밤 10시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그는 의자 고행을 했다고 한다.
제일 먼저 출근하여 제일 늦게 퇴근할 때까지
그는 자기 책상 자기 의자에만 앉아 있었으므로
사람들은 그가 서 있는 모습을 여간해서는 볼 수 없었다고 한다.
점심시간에도 의자에 단단히 붙박혀
보리밥과 김치가 든 도시락으로 공양을 마쳤다고 한다.
그가 화장실 가는 것을 처음으로 목격했다는 사람에 의하면
놀랍게도 그의 다리는 의자가 직립한 것처럼 보였다고 한다.
그는 하루 종일 손익관리대장경과 자금수지심경 속의 숫자를 읊으며
철저히 고행업무 속에만 은둔하였다고 한다.
종소리 북소리 목탁소리로 전화벨이 울리면
수화기에다가 자금현황 매출원가 영업이익 재고자산 부실채권 등등을
청아하고 구성지게 염불했다고 한다.
끝없는 수행정진으로 머리는 점점 빠지는 배는 부풀고
커다란 머리와 몸집에 비해 팔다리는 턱없이 가늘어졌으며
오랜 음지의 수행으로 얼굴을 창백해졌지만
그는 매일 상사에게 굽실굽실 108배를 올렸다고 한다.
수행에 너무 지극하게 정진한 나머지
전화를 걸다가 전화기 버튼 대신 계산기를 누르기도 했으며
귀가하다가 지하철 개찰구에 승차권 대신 열쇠를 밀어 넣었다고도 한다.
이미 습관이 모든 행동과 사고를 대신할 만큼
깊은 경지에 들어갔으므로
사람들은 그를 30년간의 장좌불입이라고 불렀다 한다.
그리 부르든 말든 그는 전혀 상관치 않고 묵언으로 일관 했으며
다만 혹독하다면 혹독할 이 수행을
외부압력에 의해 끝까지 마칠지 못할까 두려워했다고 한다.
그나마 지금껏 매달릴 수 있다는 것을 큰 행운으로 여겼다고 한다.
그의 통장으로는 매달 적은 대로 시주가 들어왔고
시주는 채워지기 무섭게 속가의 살림에 흔적 없이 스며들었으나
혹시 남는지 역시 모자라는지 한 번도 거들떠보지 않았다고 한다.
오로지 의자 고행에만 용맹정진했다고 한다.
그의 책상 아래에는 여전히 다리가 여섯이었고
둘은 그의 다리 넷은 의자다리였지만
어느 둘이 그의 다리였는지는 알 수 없었다고 한다.
1. 언어를 희롱하는 펀(pun)
2. 펀의 유형
⑴ 말재롱:
새우젓 사러 광천에 가서 / 정희성
주일날 새우젓 사러 광천에 갔다가
미사 끝나고 신부님한테 인사를 하니
신부님이 먼저 알고, 예까지 젓 사러 왔냐고
우리 성당 자매님들 젓 좀 팔아주라고
우리가 기뻐 대답하기를, 그러마고
어느 자매님 젓이 제일 맛있냐고
신부님이 뒤통수를 긁으며
글쎄 내가 자매님들 젓을 다 먹어봤겠느냐고
우리가 공연히 얼굴을 붉히며
그도 그렇겠
아름다운 세상 / 조승기
뜻과는 아무 관계없이
헤어져 나만 홀로 남아
어
거지
푸성귀에서 뜯어낸 잎으로
국 끓여 먹고 살자니
우
거지
식사 후 그릇 모아
깨끗이 씻는데도
설
거지
그래 나는 거지다
가령과 설령 / 박제영
가령
이것이 시다, 라고 쓴 대부분의 것은 시가 아니다
설령
이것이 시가 되지 않더라도, 라고 쓰여진 것은 대부분 시다
가령(佳嶺)은 도처에 있다 가령 화사하고 화려한 것, 가령 사랑이란 단어, 가령 그리움이란 단어, 봄날 꽃놀이 관광버스가 가 닿는 곳, 그곳이 가령이다
설령(雪嶺)은 보이지 않는 자리에 스며 있다 어둡고 춥고 배고픈, 눈과 귀와 혀의 뿌리 설령 어시장 좌판이라도, 설령 공중화장실이라도, 설령 무덤이라도, 설령 보이지 않더라도, 그곳에 있다
등반자여 혹은 동반자여
가령은 도처에 있고 설령은 도무지 없다
도대체 어디를 오를 것인가
⑵ 말우롱:
秋美哀歌靜晨竝/雅霧來到迷親然/凱發小發皆雙然/愛悲愛美竹一然 -블랙유머
하여지향 / 송욱
시시한 是是非非~
하늘처럼 하늘대는~
외마디를 마디마다~
民主 注意(칠)~
따라서 따라가면~
쌀쌀한 쌀~
데모하는 아아 데모크라시~
李朝末葉이 우수수 진다~
정치 / 이은봉
정치는 염치없는 잔치다 치사한 일 많아도
절대로 치사하지 않는다 정치는
눈치코치 없는 불치다 한번 걸리면
쉽게 치료되지 않는 암치다
비늘 없는 갈치 따위 조려 유치하게 잔치나 벌이고 있는 정치,
등 푸른 꽁치 따위 구워 치졸하게 잔치나 벌이고 있는 정치,
가까이 다가서면 정치는 치한처럼
아무나 잡고 치근대며 놓아주지 않는다
마음속 깊이 폭탄을 장치를 한 채
치정어린 잔치 따위 벌이고 있는 정치,
치즈조각 따위 씹어대고 있는
정치는 먼발치의 경치일 때나 아름답다
온종일 잔디밭을 걸으며
공치는 일로 역사를 잡치는 사람들
수치스러운지도 모르고 지금 서로의 뺨 치고 있다
더러는 한강 둔치의 국회의사당에 앉아
법 개정의 치적 쌓기도 하고
치솟는 물가 걱정도 하는 정치
치자꽃 밤꽃 향기에 잔뜩 젖어 있기 때문일까
기껏 아줌마들의 치맛자락을 쳐들기에 바쁘다
눈 치켜뜨고 잘난 체 하기에 바쁘다
칫솔에 치약을 묻혀 양치질하듯 깨끗하게 닦아내고 싶은 정치,
밥솥에 쌀 안치듯 정치는
사람들의 치욕 제자리에 들어앉히는 일 아닌가
아침까치 마음으로 거리를 달리며
어지럽게 도치된 세상, 차분히 정치시키는 일 아닌가
간 / 임영조
푸성귀는 간할수록 기죽고
생선은 간할수록 뻣뻣해진다
재앙을 만난 생의 몸부림
적멸의 행간은 왜 그리 먼가
여말에 요승이 임금 업고 까불 때
간 잘 맞춘 임박은 승지가 되고
간하던 내 선조 임향은 괘씸죄 쓰고
남포 앞 죽도로 귀양 가 소금이 됐다
세상에 간 맞추며 사는 일
세상에 스스로 간이 되는 일
한 입이 내는 奸과 諫 차이
한 몸 속 肝과 幹 사이는 그렇게 먼가
꼴뚜기는 곰삭으면 무너지지만
멸치는 무너져도 뼈는 남는다
꽁치 하나 굽는데도 필요한 소금
과하면 짜고 모자라면 싱거운
간이란 그 이름을 세워주는 毒이다
간이 맞아야 입맛이 도는
입맛이 돌아야 살맛 나는 세상에
그 어려운 소금 맛을 늬들이 알어?
부뚜막에 쪼그려 수제비 뜨는 나어린 처녀의 외간남자가 되어
김사인
부뚜막에 쪼그려 수제비 뜨는 나어린 그 처자
발그라니 언 손에 얹혀
나 인생 탕진해버리고 말겠네
오갈 데 없는 그 처자
혼자 잉잉 울 뿐 도망도 못 가지
그 처자 볕에 그을려 행색 초라하지만
가슴과 허벅지는 소젖보다 희리
그 몸에 엎으러져 개개 풀린 늦잠을 자고
더부룩한 수염발로 눈곱을 떼며
날만 새면 나 주막 골방 노름판으로 쫓아가겠네
남는 잔이나 기웃거리다
중늙은 주모에게 실없는 농도 붙여보다가
취하면 뒷전에 고꾸라져 또 하루를 보내고
나 갈라네, 아무도 안 듣는 인사 허공에 던지고
허청허청 별빛 지고 돌아오겠네
그렇게 한두 십 년 놓아 보내고
맥없이 그 처자 몸에 아이나 서넛 슬어놓겠네
슬어놓고 나 무능하겠네
젊은 그 여자
혼자 잉잉거릴 뿐 갈 곳도 없지
아이들은 오소리 새끼처럼 천하게 자라고
굴속처럼 어두운 토방에 팔 괴고 누워
나 부연 들창 틈서리 푸설거리는 마른 눈이나 내다보겠네
쓴 담배나 뻑뻑 빨면서 또 한세월 보내겠네
그 여자 허리 굵어지고 울음조차 잦아들고
눈에는 파랗게 불이 올 때쯤
나 덜컥 몹쓸 병 들어 시렁 밑에 자리 보겠네
말리는 술도 숨겨놓고 질기게 마시겠네
몇 해고 애를 먹어 여자 머리 반쯤 셀 때
마침내 나 먼저 숨을 놓으면
그 여자 이제는 울지도 웃지도 못하리
나 피우던 쓴 담배 따라 피우며
못 마시던 술도 배우리 욕도 배우리
이만하면 제법 속절없는 사랑 하나 안 되겠는가
말이 되는지는 모르겠으나
립스틱의 발달사
서안나
고대 메소포타미아 인들은
보석을 갈아 눈과 입에 발랐다
립스틱의 기원이 되었다
고대인들은 빛나는 눈과 입술로 별에 닿고 싶어 했다,
라고 나는 단정한다
그러므로 날개는 별에서 태어난다
그러므로 내 눈과 입술에
별이 뜨고 날개가 돋는다, 란 논법엔 오류가 없다
클레오파트라는 딱정벌레와 개미 몸을 짓이겨
입술을 칠했다
클레오파트라의 입술에 굶주린 곤충들이 날아들었다
여인의 입술을 위해 쉽게 목숨을 버렸다
그러므로 죽음 속에서 립스틱은 빛난다,
는 문장도 용서될 수 있다
당신이 별을 바라볼 때 애잔해지는 이유는
죽음을 넘어선 욕망의 얼굴과
잠시 마주쳤기 때문이다
욕망은 순결한 육체를 천천히 날아올라
별들 사이에서 별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당신은 아침마다 당신의 입술에 날개를 그려 넣는 것이다
입술을 칠하며 별을 건너는 것이다
당신이, 반짝인다
봄 / 이성부
기다리지 않아도 오고
기다림마저 잃었을 때도 너는 온다.
어디 뻘밭 구석이거나
썩은 물 웅덩이 같은 데를 기웃거리다가
한눈 좀 팔고, 싸움도 한판 하고,
지쳐 나자빠져 있다가
다급한 사연 들고 달려간 바람이
흔들어 깨우면
눈 부비며 너는 더디게 온다.
더디게 더디게 마침내 올 것이 온다.
너를 보면 눈부셔
일어나 맞이 할 수가 없다.
입을 열어 외치지만 소리는 굳어
나는 아무 것도 미리 알릴 수가 없다.
가까스로 두팔 벌려 껴안아 보는
너, 먼데서 이기고 돌아온 사람아.
봄! 살찐 볼을 만지는 것 같다. 입안에 쑥 냄새가 돈다.
노란 산수유 그늘도 펼쳐진다. 연못가 버들개지도 눈을 뜬다.
볕은 보송보송하다.
옷은 가볍고 걸음은 경쾌하다.
찬 없이 따뜻한 밥과 냉잇국 한 그릇을 받고 싶다.
차닥차닥 빨랫방망이 소리가 들리던 옛날의 빨래터도 다시 가보고 싶다.
봄! 자연에게만 봄이 다시 돌아오는 것은 아니다.
마음에도 그것은 돌아온다.
인심에도 계절이 있다. 정치가 싸움판을 걷어내거나, 경제가 잘 돌아 보통사람의
주머니 사정이 좋아지면 훈풍 부는 봄이 왔다고 한다.
넉넉하고 화창하면 모두 봄이다.
그러므로 봄은 우리의 일상에서 제일로 선호하는 비유의 언어이다.
봄에는 게정게정 불평하는 소리가 싹 사라진다.
이 시의 맛은 봄을 '먼 데서 이기고 돌아온 사람'으로 빗댄 데 있다.
그러나 이 시에 등장하는 봄의 비유로서의 사람은 순박하고 좀 어수룩하다.
제 잘난 맛에 사는 사람이 아니다.
저기서 기웃거리는 것을 좀 보라.
무리에 끼어서 한눈도 팔고 궂은 데서 뒹굴기도 한다.
자기를 기다리는 사람이 있는 줄을 모르고 한량처럼 '나자빠져' 있기도 한다.
느려터졌지만 한판 싸움질도 하는 것을 보니 강퍅하니 나름으로는 고집도 센 듯하다.
대처를 떠도느라 산전수전 다 겪었다. 몸고생 마음고생이 많았을 것이다.
아, 그러나 사람 냄새가 나는 그는 '마침내' 돌아온다.
민주주의의 도래처럼. 격전지에서
생환한 용사처럼. 봄의 백성이 되어 꿈에도 못 잊고 기다리고 있던 사람의 품으로.
이성부(66) 시인은 남성의 굵직한 목소리를 지닌 민중시인이다.
"벼는 서로 어우러져/ 기대고 산다./ 햇살 따가울수록/ 깊이 익어 스스로를 아끼고/
이웃들에게 저를 맡긴다.
서로가 서로의 몸을 묶어/ 더 튼튼해진 백성들을 보아라"라고 쓴 시
'벼'는 민중서정시의 한 경지를 보여주었다.
광주 출신의 그는 '80년 광주'를 겪은 후 죄의식으로 방황을 하다 산(山)에서 정신적인 위안을 얻는다.
그는 산행을 통해 "처음에 울적하게 막혔던 것이 나중에는 쾌함을 얻는다"라는 퇴계의
글귀에 공감하게 되었다고 한다. 근년까지는 지리산과 백두대간을 종주한 경험으로
'내가 걷는 백두대간' 연작시를 발표했다.
그가 돌아오고 있다.
오늘은 먼 데서 이기고 돌아오는 봄을 마중 나가자.
들길과 거리와 사람 사는 동네에, 그리하여 이 세상에 봄볕 그득할 때까지.
- 문태준.시인
벼 / 이성부
벼는 서로 어우러져
기대고 산다.
햇살 따가와질수록
깊이 익어 스스로를 아끼고
이웃들에게 저를 맡긴다.
서로가 서로의 몸을 묶어
더 튼튼해진 백성들을 보아라.
죄도 없이 죄지어서 더욱 불타는
마음들을 보아라. 벼가 춤출 때,
벼는 소리없이 떠나간다.
벼는 가을 하늘에도
서러운 눈 씻어 맑게 다스릴 줄 알고
바람 한 점에도
제 몸의 노여움을 덮는다.
저의 가슴도 더운 줄을 안다.
벼가 떠나가며 바치는
이 넓디 넓은 사랑,
쓰러지고 쓰러지고 다시 일어서서 드리는
이 피묻은 그리움,
이 넉넉한 힘…….
글 쓰는 이들이 즐겨 사용하는 것으로 '현실'이라는 말과 '삶'이라는 말이 있다. 상식적인 차원에서 누구나 쉽게 이해될 수 있으므로 별 다른 이의 없이 통용되는 말이다. 그러나 바로 이 상식적인 이해가 때로는 예기치 못하는 오해를 불러일으킨다. 엄밀히 말하자면 '현실'이나 '삶'이라는 말은 앞에 한정어가 붙지 않는 이상 그 뜻이 매우 애매모호하기 때문이다. 가령 등산을 하는 것도, 연애를 하는 것도, 여행을 하는 것도, 출산을 하는 것도, 병을 앓는 것도 현실이자 삶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글 쓰는 사람들이 즐겨 사용하는 이 말에는 '등산을 하는 것'이나 '꽃구경을 하는 것'이나 '병을 앓고 있는 것'이나 '연애를 하는 것' 따위의 의미는 포함되어 있지 않은 듯하다. 그것은 이들 용어를 즐겨 사용한 사람들이 대체로 사랑을 이야기하거나 꽃을 노래하는 시를 '현실을 외면한 사랑 타령' 혹은 '음풍 농월'이라고 몰아 붙이는 데서도 쉽게 짐작이 간다.
그러므로 그들이 말하는 '현실'이나 '삶'이라는 말은 그 이외의 다른 어떤 것, 보다 분명히 하자면 '노동 현장'이나 '노동 투쟁'과 같은 정치적, 사회적 차원의 현실을 가리키는 말임이 분명하다. '현실', '삶'이라는 용어에 대한 이와 같은 어법 즉 그것을 정치적, 사회적 차원의 의미로 축소시켜 사용하는 어법은 소위 민중문학을 옹호하는 논자들이 즐겨 사용하여 왔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를 염두에 두지 않고 그것을 보통 명사적인 뜻으로 받아들인 독자들이 있다면 큰 혼란에 빠지게 될 것이다. 가령 그들이 '현실을 반영하지 않은 문학은 정당한 가치를 지닐 수 없다.'고 말할 경우 우리는 그것이 함축하는 의미를 (1) 사회 혹은 정치적인 현실을 반영하지 않은 것은 정당하지 않다. (2) 사회 혹은 정치적인 것을 포함해서 인간이 관여하는 그 어떤 것이라도 반영하지 않은 문학은 정당한 가치를 지닐 수 없다는 두 가지로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소한 문제이지만 민중문학에 대하여 논의할 때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 될 것 중의 하나이다.
이성부는 우리 시단에서 흔히 '민중시인'이라 불리는 사람 중의 하나이다. 그러므로 앞서 언급한 민중문학의 용어로 말하자면 그의 시적 관심은 일관되게 '삶'과 '현실'을 추구하는 데 있었다. 이성부는 고통스럽고 부조리한 민중의 삶을 직시하고 그것을 보다 인간다운 삶으로 향상시키려는 노력에서 시를 써 왔다는 것이다. 여기서 그 인간다운 삶이 무엇이냐를 설명한다는 것은 그의 전체 시 세계를 거론하지 않고서 간단히 언급되고 있듯 '사랑으로 연대한 공동체'인 것만큼은 분명하다. "벼"의 마지막 연에서 '벼가 떠나가며 바치는/이 넓디 넓은 사랑/쓰러지고 쓰러지고 다시 일어서서 드리는/이 피 묻은 그리움'이라는 진술의 의미가 그렇다.
"벼"가 이 시에서 민중을 가리키는 은유로 제시된다. 즉 "벼"는 바로 민중의 표상이다. 그런데 "벼"로 형상화된 민중은 이 시에서 억압을 받거나 고통을 받는 부정적 모습으로 그려져 있지 않고 건강하면서도 생명력이 가득한, 그리하여 새로운 이상적 공동체의 건설을 위해 매진하는 긍정적인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이성부는 "벼"로부터 민중의 크나큰 가능성과 불굴의 투지 그리고 자기 희생적 공동체의 사랑을 발견했던 것이다. 그러한 관점에서 이 작품은 시인이 이미 개념화시킨 자신의 어떤 주장을 이야기하기 위해서 소재를 선택하는 방식을 쓰여진 것이 아니라 사물에 대한 통찰에서 깨우친 의미를 자신의 이념으로 결합시키는 방식에 의해 쓰여진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즉 이 시에서 "벼"는 단지 시인의 이념 전달의 수단으로 차용된 것이 아니라 그로부터 시인의 이념이 확대되는 대상 바로 그 자체인 것이다. 그러므로 "벼"는 존재론적 의미를 지닌다. 이성부의 시가 그 나름의 독특한 개성을 갖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성부는 이념 전달이라는 민중시의 본질적 특성을 이처럼 존재론적 입장에서 문학적으로 굴절시켰던 것이다. 따라서 이성부의 장점은 시류(時流-그 시대의 풍조.유행)적인 민중시가 항상 범해 왔던 것처럼 시를 단지 이념 전달의 도구로 전락시키지 않고 이념성을 확고히 하면서도 문학성을 지켰던 것이라 할 수 있다.
"벼"는 모두 4연으로 되어 있는데 이는 벼의 일생을 모두 네 가지로 인식한 데서 얻은 어떤 깨우침을 형상화한 것들이다. 그 깨우침은 다음과 같다. 첫째 연에서 시인은 벼가 다른 벼들과 함께 논을 이루어 사는 것을 통해 민중의 공동체적 연대성을 발견한다. 둘째 연에서는 가을 수확기의 볏단에 묶인 벼를 통해 개개인의 이념적 결속이 보다 강한 힘을 발휘할 수 있음을 확인한다. 셋째 연에서는 파아란 가을 하늘 아래 익어 가는 벼의 모습 속에서 순결한 삶의 태도를 본다. 넷째 연에서는 벼가 베어져 쌀알이 되어 가는 과정을 통해 삶의 이상이라 할 자기 헌신적, 이타적 사랑의 정신을 배운다. 이 모두 미덕이 결국 민중의 본성을 이루는 것은 물론이다. 따라서 추수가 끝난 가을의 텅빈 들녘은 민중의 자기 희생적 사랑을 뜻하고 은유라고 말해야 할 것이다
나무 물고기
차창룡
물고기는 죽은 후 나무의 몸을 입어
영원히 물고기 되고
나무는 죽은 후 물고기의 몸을 입어
여의주 입에 물고
창자를 꺼내고 허공을 넣으니
물고기는 하늘을 날고
입에 문 여의주 때문에 나무는
날마다 두들겨 맞는다
여의주 뱉으라는 스님의 몽둥이는 꼭
새벽 위통처럼 찾아와 세상을 파괴한다
파괴된 세상은 언제나처럼 멀쩡하다
오늘도 이빨 하나가 부러지고 비늘 하나가
떨어져나갔지만
- 시집 ‘나무 물고기’(문학과 지성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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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
대부분의 불교 사찰에는 범종각(梵鐘閣)이 있고,
이 곳에 범종(梵鐘), 법고(法鼓), 운판(雲版)과 함께 보관되어
있는 것이 나무 물고기, 즉 목어(木魚)이다.
아침과 저녁의 예불에서 이를 치며 의식을 행하는 도구인데
수중 고혼에 대한 위로와 해탈, 이고득락(移苦得樂)을 위하여
친다고 한다. 형상은 나무에 물고기를 조각하고, 커다란
여의주를 입안에 물려놓은 모습인데 물고기는 항상 눈을 뜨고
있기 때문에 수행자의 잠을 깨우고 혼미함을 경책하기 위하여
물고기 모양을 본따 목어를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깊고 깊은 산사에서 푸른 하늘을
베고 누운 나무 물고기 한 마리,
창자를 꺼내고 허공을 넣었으니 얼마나 큰 외로움이었으랴
입에 문 여의주 때문에 아침, 저녁으로 두들겨 맞으면서도
차마 놓지도 버리지도 못하는 저 번뇌망상은 또 무엇이란 말이냐
멀고도 먼, 저 보리(菩提-깨달음)의 길에
목어 우는 소리,
심장 두근거리는 저 소리.... [양현근]
갠지스 강물위에 불꽃 떠가네
히말라야의 얼음이 녹아 흐르는 차가운 강물은
불꽃을 사랑하여 꼭 껴안아 주고 싶지만
껴안으면 불곷은 죽고 만다네
뜨거운 햇살에 검게 탄 손으로 띄운 불꽃은
강물을 사랑하여 그 젖가슴 묻고 싶지만
그러면 곧 죽고 만다네
강물은 불꽃을 데불고 흘러갈 뿐
불꽃은 강물이 가는 곳을 쫒아갈 뿐
마침내 불꽃이 수명을 다하면
강물은 그 시신 고이 안아
부드러운 젖가슴을 물려주네
- [죽어야만 이루어지는 사랑] 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