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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원문보기 글쓴이: Next Paul Scholes No18
1. 올시즌 뭐할라고 경기하나.
올시즌 맨유에서 유난히도 까이는 와중에 최선을 다해서 지려하는 반할의 노력에 퇴장했으면 하는 박수를 보내고 싶다. 1516시즌 맨유와 토트넘전에서 3대 0으로 진 상황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이때껏 참고 지낸 올시즌 십수경기들을 보면 돈내고 보는 관중들이 민망하지 않을까 싶을 만큼 유머가 없는 경기력은 선수에게 주어진 능력을 십분활용하지 못하는 사태가 자주 벌어지기 때문이다. 팀스피드 향상도 유스들을 적극 활용하면서 압박과 공수전환이 싱싱해졌을 뿐, 전술의 완성은 아직도 요원하다.
전술의 완성으로 팀스피드가 올라간다면 당연히 박수칠 일이다. 하지만 체력의 안배를 생각하지 않고 뛰는 젊은 자원들의 활약은 가면 갈수록 상대 견제에 활약이 죽기도 하고, 개인기량으로 뚫어내는 과정도 그다지 바람직해 보이지 않는다. 그저 안쓰러울 뿐이다.
전술이 선수들의 사기를 저하시키고 밸런스에 맞지 않는 변화가 지속되면 선수들의 폼은 떨어지기 마련이다. 맞지 않는 포지션에 선수들을 교체변화라고 내놓는 것 따위도 감독으로서 승리에 대한 열망이 심히 의심되는 상황이다. 교체는 승리를 위한 작전의 포석이다. 그 포석을 잘못 둔다면 상대는 금세 우위를 점하게 된다. 선수의 기량이 문제가 아니라면 당연히 전술을 탓하지 않을 수 없다.
[ 당시 반할 아웃을 외치던 바르샤 팬들 ]
l 1. [ 90년대 반할 ]
l 97년도 반할이 아약스에서 이뤄낸 챔스 리그 우승은 에레디비지에서 이뤄낸 마지막 챔스 우승이다. 이후로 자본의 급격한 유입이 이피엘을 비롯한 여러 팀에서 심화되던 시절이라 네덜란드가 가진 스카우팅 시스템이 여러팀에 이식되고, 상대적으로 강점을 보였던 네덜란드 유스 시스템은 점점 내리막길을 걷게 된다. 9495시즌 리그에서 27승 7무 106득점을 기록하며 아약스 재임 6년동안 그의 경력에는 암흑기가 따로 존재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는 이런 성적을 바탕으로 바르샤 감독으로 부임한다.
l 2. [ 90년대 말 - 2000년대 반할 ]
l 9798시즌은 반할의 경력에서 문제가 없는 시즌을 보냈다. 리그우승과 코파델레이 우승은 바르샤가 39년만에 달성한 기록이었다. 이쯤되면 무슨말을 할지 모든 분들이 알 것이다. 문제는 이후 반할의 행보였다.
l 3. [ 선수 대립 ]
l 한번더 라리가 우승을 하지만 바르샤가 원했던 챔스 리그 우승을 하지 못하고, 바르사 역사상 네번째 발랑도르 수상자였던 히바우두의 포지션 변경 건으로 대립하게 된다. 그리고 오만한 반할은 히바우두를 방출선수 명단 리스트에 올리고 만다. 당시 클루이베르트와 피구가 존재했던 시절의 이 왼발 스폐셜 리스트는 반할이 내세운 쓰리톱 시스템에서 윙포워드로 뛰었는데, 섀도우롤이 그에겐 최적의 포지션이었다. 그러나 그를 측면 미드필더로 변경을 관철했다.
l 4. [ 바르샤를 떠남 ]
l 2000년대 리그 우승에도 불구하고 챔스에서 죽을 쑨 것에 대한 책임론때문에 바르샤 회장과 함께 그는 사임한다. 1978년 바르샤 회장에 오른 누네즈는 불명예스러운 퇴진을 반할과 함께 했다.
l 5. [ 월드컵 ]
l 0203년 바르샤에 재부임하기 전에 반할은 네덜란드 월드컵을 위한 감독으로 부임한다. 당시 그가 아약스에 키웠던 다비즈와 반 데사르, 섀도르프와 클루이베르트는 물론 부임 첫시즌에 UEFA컵 우승을 이끈 이후에 보내야 했던 베르캄프까지 모든 조건이 우승에 다가선 상황이었으나 포루투갈, 아일랜드에게 차례로 지면서 유럽 예선도 통과하지 못한 성적을 들이밀었다. 2006년도까지 계약되어 있는 상황에서 그가 했던 말은 조롱거리가 되었다. "나는 네덜란드 국가대표팀과 2006년까지 계약했는데, 이말은 월드컵을 두번 우승할 수 있다는 뜻이다."
l 6. [ 한번더 고집을 부린 반할 ]
l 그가 흑역사를 쓰고 있는 동안 바르샤도 성적부진으로 동일한 상황에 처했던 0203년도에 바르샤로 재부임한다. 히바우두는 재계약 포기, 그리고 윙백으로 뛰던 세르히도 곧바로 AT마드리드로 이적한다. 임대선수였던 코코는 AC밀란으로 복귀하며 윙백은 무주공산이 된 상황에 야심차게 영입한 공미 능력자 리켈메를 본인의 의지대로 좌측 미드필더에 고정시키며 성적에 죽을 쓰기 시작한다. 당시 리그 성적은 10위권을 넘기며 개판, 그러나 챔스리그선 6경기 전승한다.
l 7. [ 고집의 반할은 맨유서도 계속된다. ]
l 스콜스의 반할에 대한 점유율에 대한 발언이나 웨스트 햄의 빅샘의 맨유 전술은 롱볼축구라는 관련 발언에 일일이 대꾸하며 맘에 담아두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자기의 선택이 맞았음을 증명하기 위해 성적과 무관한 전술로 맨유를 실험하는 상황에서 최악의 상황을 감지하지 않을 수 없다. 팀은 성적으로 증명해야 하는데, 성적과 무관한 타 감독의 발언에 일일이 대꾸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 샘 알러다이스 ]
l 8. [ 반할을 싫어하는 감독들 ]
l 반할과 대척점에 있는 감독은 쿠만만이 아니다. 그는 로저스 감독이 리버풀 재임시 기술고문 자리에 취임할 뻔했는데 감독권한 침해에 민감했던 로저스의 반대로 취임하지 못했을 뿐, 고문자리에서도 감독에게 감놔라 배놔라 하는 스타일이다. 그 후에 아약스 파벌 싸움에서 크루이프와 반 크루이프 싸움에 이용되었고, 결국 그 싸움에서 패한 이후에 다시 네덜란드 감독으로 부임한다.
[ 98년 당시 당시 히딩크를 보좌했던 쿠만 수석코치 ]
[ 쿠만을 원했던 히딩크 ]
l 9. [히딩크와 다른 길을 걷는 반할 ]
l 그리고 히딩크에 대해 묘한 라이벌 의식이 있는지 종종 대립각을 세운다. 레알마드리에서 흑역사를 썼던 히딩크를 3대 0으로 격파하며 99년 2월 그를 레알 마드리드에서 쫓아내게 하는데 공을 세웠다. 2000년대 초반뿐 아니라 80년대의 히딩크는 PSV에서 네덜란드 FA컵 우승과 리그 우승 트레블과 우승에 이어 트레블을 달성했기에 90년대 아약스의 반할의 위상만큼 대단한 감독이다. 따라서 팀에 대한 라이벌 의식이 있었던 듯 하다. 선수로 따지면 리버풀의 킹 케니와 맨유의 킹 칸토나의 대립 정도라고 봐두면 된다. 하지만 에레디비지에서 둘이 감독으로 붙은 경험은 없다.
l 10. [ 매직과 암흑기 사이에서 ]
l 90년대 중반 히딩크는 반할처럼 월드컵 역사에서 암흑기를 겪는다. 하지만 그 암흑기 내용은 달랐다. 에드가 다비즈의 항명으로 유로 1996대회에서 쫓겨난 사례가 있었고, 98 월드컵에서 4강까지 가는 동안 아르헨티나를 누르며 우승 근처까지 갔지만 실패했던 결과로 감독직을 사임했을 뿐이다. 이후 레알마드리드에서 반할에게 맞은 치명타 이후에 황금 멤버를 가지고 월드컵을 이끈 반할이 예선에도 진출하지 못하자 비판하면서 결국 반할과 앙금을 맺게 된다. 당시 예선 2조에 속한 네덜란드는 포루투갈, 아일랜드, 에스토니아, 키프러스안도에 속해 있었다. 2000유로 당시 레이카르트가 거둔 4강 성적도 사임의 이유가 되었는데, 반할은 두번 우승할 수 있다는 헛소리를 해댔으니 비웃을 만한 사실이다. 히딩크는 "이제 반할이 떠났으니 네덜란드 축구에 좋은 순간이 올 것이다."라며 예선도 통과못한 반할에 쐐기를 박았다.
l 11. [ 4강의 신화 이후의 히딩크 ]
l 레알 마드리드의 실패를 무릎쓰고 히딩크는 한국 국대 감독으로 부임해 모든 상황을 일거에 뒤집는다. 반할은 예선도 밟지 못한 대신 히딩크는 4강 신화를 거두며 PSV 감독으로 재 부임하면서 모든 상황은 한순간에 그를 명장의 반열로 재조명하기 시작했다.
[ 반할과 대립했던 쿠만 ]
l 12. [ 역사의 아이러니 ]
l 97시즌에 바르샤에 부임한 반할의 수석코치는 쿠만이었다. 쿠만은 히딩크와 98시즌에 네덜란드 국대 대표팀에서 수석코치로 부임했는데, 두 사람의 대립이 어찌나 심했는지 중간에 쿠만이 나가버리고, 후에 아약스 감독으로 부임할 적에도 선수 훈련에 대해 이거저거 시키는 반할과 대립했는데, 이 때는 쿠만의 고유 감독권한을 침해했기 때문에 쿠만의 승으로 끝났다.
l 13. [ 대립은 왜 필요한 것일까 ]
l 당시 쿠만과 반할의 대립이 얼마나 심했는지에 대해 결정적인 예를 들자면 즐라탄 이적 요청 건으로 둘이 대립하자 반할은 즉각 즐라탄을 팔아버리고 만다. 결국 이 사건으로 둘은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넜고, 반할은 경질된다. 이후 쿠만은 반할 후임으로 알크마르 감독에 내정되는데 소튼에서처럼 당시에도 그 둘은 서로를 폄하하는데 모든 시간을 할애했다. 쿠만은 현재 소튼 감독이며, 발렌시아에서 6개월간 이끌었던 흑역사를 제외하면 딱히 괴장으로서 면모는 없다. 최근에 쿠만은 히딩크에게 첼시 감독 후임으로 자신을 추천해 달라는 말을 방송에서 언급한 적이 있다. 해당 URL은 "첼시 감독 노리는 쿠만, 히딩크, 나 좀 추천해줘"를 검색하면 알 수 있다.
2. 과거를 곁에 두고
[ 뭐가? ]
[뭐! 넌 내가 안 때렸어. 주먹을 불끈 쥔 발렌시아 ]
발렌시아와 나니가 팀을 하드 캐리했던 시절을 상기해보자. 그들은 원래 잘 했지만 중원이 헐거워지기 시작할 때 그들의 기량을 깍아먹는 대신 팀을 승리로 이끈 듯 보인다. 팀 전력이 상승해서 그들의 능력이 시너지를 발휘한 것이 아니다. 단지 그들의 능력으로 승리를 담보했을 뿐이다. 지금 래쉬포드나 마샬이 그런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전술의 다변화와 팀 전력을 향상시키지 않으면 언젠가 침체기를 걷게 될 것이 분명하다.
교체 선수의 포지션을 생각한다면 최근 영을 원톱으로 세웠던 교체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영이 원톱으로서 활약이 두드러졌던 시절은 아스톤 빌라다. 측면이 아닌 스트라이커로 그의 활약이 두드러진것은 선수비 후역습 과정에서 상대적으로 중앙으로 움직이는 선수들에게 많은 자유도를 부여했던 빌라의 전술과 관련이 있다. 그리고 당시의 전술은 지금의 트렌드와 맞지 않을 만큼 미들에서 타이트하게 싸우는 과정을 생략하고 있다.
영을 중심으로 돌아갔던 빌라는 맨유가 아니다. 강팀의 공격 과제는 상대 공수밸런스를 의식적으로 파괴하는 움직임에서 비롯된다. 그 과정은 한 선수를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공격루트를 시의 적절하게 구사하는데서 비롯된다. 중위권의 에이스 선수라면 당연히 선수의 능력에 의존한 전술 하나로도 시즌을 감당할 수 있다. 그러나 리그 우승과 챔스를 모두 병행하는 팀들은 순위싸움은 만만치 않고, 감독은 로테이션으로 선수들의 폼을 유지시킨다. 로테이션은 강팀들에게 가장 중요한 체력안배와 선수들의 폼 유지를 위한 특별한 기술이다.
팀이 승리로 이끌기 위해선 당연히 공격수의 움직임과 득점이 중요한데, 득점에서 제일 중요한 빈도로 공격수에게 요구되는 상황이 있다. 중원싸움이 대등하게 일어난다면 공격수의 조건은 오프사이드를 뚫고 승부를 내는 움직임이 공격수가 득점하는 1옵션이다.
[ 어디서 원석을 구할 수 있을까? 반니를 데려온다면 구할 필요가 없겠지. ]
[ 그렇다면 반니를 어떻게 데려올까? 사탕발리면 반니가 카라멜로 변해서 나올까나? ... 미안하다. ]
[ 원톱의 정석 ]
하지만 공격수의 득점에 대한 미들의존도가 심하거나 상대 전술에 따라 변화 상황이 존재한다면 1옵션이 발휘되기 위해 공격수의 미들참여가 중요하다. 미들에서 경기력을 상승시키기위해 수적우위를 순간순간 유지시켜줘야 하는 것이 공격수의 2옵션이다. 그리고 상대의 대인마크를 뚫어 문전까지 내려와 상대할 수 있는 감독 지시에 의한 전술의 존재가 중요하고, 공격수가 가지는 제 1옵션은 2옵션이 우위를 점하기 전까진 중요하지 않게 된다.
공격수에게 주어진 2 옵션은 미들에서 침투단계를 위해 공을 점유하고 오프더 볼 움직임에 상대 수비 이탈이 필요한데 앞서 언급한 것처럼 이런 작업을 위해선 수적 우위를 점하는 과정이 중요하고, 이 과정에서 공격수와 미들과의 연계가 중요하다. 다른 말로 하면 공격 밸런스 유지가 중요하다고 말할 수 있고, 2선을 공미로 놓는 대부분의 팀들은 이런 요구조건을 충족시키기 위해 섀도우롤보다 미들을 원톱 뒤에 놓기도 한다.
3. 공격수의 2옵션
[ 2옵션의 정석 ]
공격수의 2옵션은 현대 축구에서 공격수의 득점루트 다변화를 위해 요구되는 부분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축구에서 가장 중요한 옵션의 발동은 위의 언급한 1옵션이다.
1옵션이 중요성을 가지는 이유는 간단하다. 득점 해결 공식에서 본인의 능력으로 득점을 마무리하는 능력이 극대화되기 때문이다. 미들싸움에서 점유율은 의미가 있을 때도 있고, 무의미할 때도 존재하는게 다반사라서 이와 별개로 1옵션이 존재하는 까닭은 어느 팀이든 이기는데 필요한 조건이 공격수가 쉽게 마무리 짓는 득점의 파괴력이기 때문이다. 공격수의 무게감은 1옵션이 존재할 때 팀 경기력이 향상된다. 그리고 우리는 공격수의 능력에서 선수에 대한 카타르시스와 경기력에서 주는 사이다를 모두 만끽하게 된다.
상대 선수들이 무력감을 느끼는 건 한 선수에 의해 경기력을 바꾸는 것 뿐만 아니라 공격수의 득점을 막지 못할 때다. 80년대의 마라도나를 기억해 보자. 왜 그가 역대 선수들중 최고가 될 수 있었을까. 현대축구에서 과거처럼 그가 보여주는 능력이 그 때의 기준으로 뛴다면 지금도 유효할까. 참고로 마라도나는 공격수가 아니라 공미이다.
선수가 팀 전체 경기력에 영향력을 주는 부분은 득점에 의한 것이 가장 사기 진작에 도움이 된다. 하지만 이런 원초적인 필요에도 불구하고 현대 축구는 그런 방향을 지양하고 있다. 왜일까.
4. 포백이 분화되던 시기
수비수를 4명으로 놓는 방식이 몇 십년을 통해 이미 정석의 플레이로 굳어진지 오래고, 스리백이냐 포백이냐의 구분은 결국 수비에서 공간의 점유를 통한 역습이냐 단순히 상대 역습을 막기위해 존재하는 수비포지션이냐로 구분되어 질 수 있다. 물론 스리백을 요즘에도 쓰는 관점에서 스리백의 역할은 단순한 수비력에 의존해서 전술을 구성하진 않는다. 상대 전술에 따라 간격 조정을 스리백에서도 분명히 하고 있으며 때에 따라서 카테나치오 식의 전술 구성이 용이하게 보여지는 현상도 스리백이 가진 다양한 전술 구성의 발전방향과 무관하지 않다. 다만 롤의 분화가 단순하지 않은 것이 스리백이 가진 현재의 제약이다.
세리에는 과거부터 공미와 스트라이커의 조합을 통해 비대칭 전술의 완성을 이뤄냈으며 수비 밸런스를 리베로와 수비형 미들을 통해 스리백의 형태를 동적으로 유지해왔다. 그리고 포백을 바탕으로 과거 모예스의 에버튼은 펠라이니를 통해 한쪽의 수비과부하를 이끌어내며 흡사 풀백의 오버래핑이 필수적으로 공격의 시발점이 되었던 카테나치오의 그것과 비슷하게 베인스의 킥력과 움직임으로 풀백에서 공격을 풀어나가는 기이한 플메의 전형을 이끌어 내었다.
당시 투박한 펠라이니의 움직임으로 상대의 과부하를 이끌어내는 과정은 그의 포스트 플레이가 단순한 롤이 아니라는 걸 의미한다. 그것은 상대 수비가 한쪽으로 쏠리는 시점을 바탕으로 다른 선수들의 자유도와 활동 영역이 커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중원에 존재하는 바클리나 다른 선수들의 움직임은 측면의 수적우위만 적절히 높였다 낮췄다 하는 과정을 통해 중앙의 움직임을 수월하게 가져갔다. 공수 밸런스의 조절을 펠라이니의 포스트 플레이를 통해 다른 전술을 구사할 수 있는 옵션이 파생되며, 베인스가 적극적으로 오버래핑할 때 측면에서 올라가는 크로스나 프리킥에 가까운 대각 크로스는 종종 상대의 플랫한 포백의 수비를 무의미하게 만들었다.
카테나치오식 전술에서는 풀백이 적극적으로 측면에 올라가 섀도우 롤을 부여받은 스트라이커와 공존하는 방법을 모색하지만 정확하고 준수한 킥력을 가진 풀백자원이 포스트 플레이에 특화된 자원에게 떨구고 상대 수비가 펠라이니에게 여러 명 붙는 동안 베인스 본인은 오버래핑하러 나가는 과정은 분명 카테나치오식 전술에서 풀백의 공격 참여 뒤 연계를 모색하는 방법과 많은 차이를 보인다.
카테나치오식 풀백의 오버래핑 시점은 단순하지 않다. 풀백이 올라가 버리면 그 뒤를 센터백이 장악하고, 수비형 미들은 또다른 센터백과 수비에 가담해 중앙을 담당해야 하고, 리베로는 순간적으로 반대 풀백에서 수비를 견고히 해줘야 한다. 이런 연쇄 이동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려야 수비밸런스를 안정적으로 가져갈 수 있다. 이런 밸런스의 운영은 사키가 주는 간단한 공간 압박의 관점에서 수비하라는 관점과 배치되며 빈공간을 서로서로 메꿔 운영하지 않으면 금세 약점이 드러난다. 그리고 클래스있는 자원들이 여럿 포진해야 가능한 전술이다.
그런데 과거 에버튼의 포백에서 추구하는 풀백의 공격 가담 조건은 단순하다. 리베로가 따로 존재하지 않는 중앙수비수는 자기 포지션만 지키며 오프사이드 함정에만 충실하면 되고, 반대쪽 풀백은 상대수비가 쏠린 허점을 찾아서 공격 시점에 윙어와 풀백 모두 공격 시점을 동일하게 가져가면 된다.
반면 비대칭 카테나치오 식의 전술은 일단 리베로가 풀백 포지션으로 이동하는 과정을 거친다. 그리고 리베로가 풀백의 포지션을 지키는 시점에 윙어는 공격하러 올라가 버린다. 카테나치오의 공격 시점이 수비롤의 변화를 추구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이 전술을 빗장 수비라고 부른다. 안정적으로 공격하러 올라간 풀백으로 인해 생긴 수비의 헛점을 메꾸고 수비 밸런스를 유지하기 위한 수비롤의 대체가 가능한 선수들의 구성이 과거 세리에를 대표하던 수비에서 공격으로 전환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사키가 제안한 442와 비교해보자. 리베로가 풀백이 되는 순간에 플랫 442에서 풀백은 이미 윙어와 연계하며 오버래핑에 들어간다. 공격시점에서 풀백이 공격참여를 거치면 자연히 빈공간에 대한 압박과 부담이 줄어들고, 중앙 수비는 오프사이드 룰에 충실하면 되는 것이다. 상대 역습은 윙어와 풀백의 간격이 벌어지지 않는 442의 특성상 측면을 봉쇄하면 되고, 중앙 수비수는 공수전환을 빨리 가져가는 풀백과 윙어의 수비 가담시까지 오프사이드 함정에만 충실하면 된다. 리베로가 없이 선수를 대인마크하는 상황에서 중앙 수비수는 조합이 중요하다.
플랫한 포진 구성상 오프사이드가 뚫리면 바로 실점으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단점에도 불구하고 수비와 공격의 타이트한 운영이 토털축구의 그것과 유사하기에 사키의 442는 토털축구를 계승했다 보는 것이 맞다. 다만 어떻게 수비적 불안을 메꾸는 가에 대해선 그 단점을 상쇄하는 방향으로 현재까지 발전이 진행중이다. 이 전술은 매력적이고, 쉽고 선수들의 능력은 극대화시키지만 아직 완성된 전술이 아니다.
세리에는 지금도 거의 없어진 리베로 롤에 대해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 밑에 다루게 될 리베로롤이 그들에게 왜 중요한지는 나중에 설명하자.
어쨋거나 포포투에서 구성된 윙어와 풀백의 연계가 수비와 공격의 혼용이 가능해지면서 수비수의 공격적 대응이 심화된 건 사실이지만 카테나치오에서 풀백의 오버래핑을 안쓰는 것은 아니다. 공격의 시작은 풀백의 오버래핑에서 비롯된 것이 비대칭 카테나치오 전술이고, 그로 인해 한쪽의 빈공간을 윙어 혼자 단독으로 드리블 할 기회가 많았던 것이 풀백의 오버래핑이 노리는 부차적인 효과다. 오늘날처럼 윙어의 공격이 첨병처럼 쓰여지지 않았을 뿐이다.
[ 카테나치오 구성 ]
[ 실제 이탈리아 국대로 재구성한 선수들 ] [ 에레라의 비대칭 카테나치오 식 전술 구성구성 ]
비대칭 전술은 필수적으로 한쪽의 쏠리는 공격 때문에 다른 쪽은 상대적으로 넓은 공간을 허용하게 되고, 윙어의 자유로운 공격 추구의 예는 실제 이탈리아 국대 팀에서 60M 드리블로 상대 진영까지 돌파한 경우에서 찾을 수 있다. 윙어의 긴 드리블 공격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 건 비대칭 전술이 한쪽에서 추구하는 풀백의 오버래핑의 연쇄적 효과를 간접적으로 겪게 되는 전술에서 흔히 쓰이는 반대쪽 윙어의 공격 대응 방법이다.
1. [ 80년대 카네나치오 ]
선수들 구성을 부면 당시 파울로 로시부터 시작해 로마에서 뛰던 브루노 콘티부터 시작해 지안카를로 안토뇨니의 플메롤부터 시작해 리베로로 가에타노 시레아를 놓고 토토네로 스캔들로 선수생활 2년 자격정지를 먹은 파울로 로시를 통해 전술을 재구성했던 82시즌의 이탈리아는 월드컵 우승을 이뤘던 전술이다.
2. [ 챔스 우승의 카테나치오 ]
당시 우승 후보는 브라질이었는데, 당시 유럽은 남미의 개인기에 고전을 면치 못하던 시기였다. 네덜란드의 토털 축구가 광풍을 불어댔지만 아약스에 한정된 축구였으며 70년대를 기점으로 주류에서 사라진다. 이후 브라질을 누를만한 전술 구성으로 투볼란치가 아닌 60년대 탄생한 카테나치오는 전술 상성상 투볼란치보다 한수위의 빚장 수비를 선보였다. 투볼란치가 단순히 공미 플메를 막는 전형으로 공격과 수비, 그리고 미들을 공미만 막으면 되는 투볼란치의 424 전형이라면 비대칭 카테나치오는 유기적 전술로 수비에서 시작해 공격을 마무리하는 측면의 과부하를 유도해 한쪽으로 수비를 쏠리게 해 놓고 반대쪽 윙어의 드리블을 최적화 시킨 전술이다.
3. [ 파울로 로시 ] 결승에서 만난 브라질을 상대로 이탈리아는 펠레 스코어로 승리한다. 승리의 몫은 파울로 로시였고, 이후 헤이젤 참사가 발생했던 8586시즌 유로피언 컵에서 리버풀을 누르고 우승했던 시즌까지 유벤투스에서의 생활을 성공적으로 이끌어나갔던 로시가 포진한 카테나치오식 전술이다.
4. [ 막을 내리는 카테나치오 ] 축구 발전사를 볼 때 카테나치오는 총 3세대에 걸쳐 이탈리아 축구의 트렌드를 결정했으며, 사키의 포백 구성이 제안되기 전까지 대체 불가한 전술이었다. 1세대의 지아친토 파케티(Giacinto Facchetti) 와 산드로 살바도레(Sandro Salvadore) 부터 시작해 안토니오 카브리니 (Antonio Cabrini) 와 가에타노 시레아(Gaetano Scirea) 의 2세대를 거치고 파울로 말디니 (Paolo Maldini)와 프랑코 바레시(Franco Baresi)로 마무리되는 3세대는 이후 재구성하기 힘든 카테나치오식 전술의 핵심이었다. 필자가 언급한 선수들은 모두 공통점이 있다. 순서가 있다. 왼쪽 수비수와 리베로 조합이다. 1세대부터 시작해 3세대까지 비대칭 전술의 시작은 왼쪽 수비수의 오버래핑이었고, 리베로는 수비의 재구성을 위해 공격시 측면으로 이동하는 것이 빗장수비의 시작이다.
[ 지아친토 파케티 별을 달고 ]
l 1. [ 카테나치오 1세대 - 지아친토 파케티 ]
l 풀백으로 최초 오버래핑이란 개념을 선보인 선수 그도 그럴 것이 에레라의 비대칭 카테나치오 전술은 풀백이 공격에 참여해야 했기에 1세대인 그가 최초인 것은 당연하다. 스쿠데토와 10회이상의 우승을 달성해 별을 달고 있는 모습은 그의 포지션인 왼쪽 수비를 연상케 한다. 인테르의 3번은 6,70년대 국대 팀 주장이던 파케티의 번호이며 영구결번되었다. 11년을 국대 주장으로 남은 사례는 이탈리아 역사에서 많지 않음을 상기해 볼 때 뛰어난 오버래핑의 달인 파케티의 능력을 증명하고 있다.
밀란에서 그는 18시즌 출장하는 동안 리그 4회 우승과 챔스 2회 우승을 하며 발롱도르 2위에 오르기도 했다.
[ 가에타노 시레아 ]
[ 리베로 신기원의 중간 기착지 ]
l 2 [ 카테나치오 2세대 - 가에타노 시레아 ]
l 유벤투스 선수로서 오래도록 스위퍼와 리베로롤에 충실한 선수였다. 최초의 딥플메 롤의 조상격인 선수이다. 원래 리베로롤은 수비를 지향하고, 최종 수비롤에 해당하였으나 풀백이 올라갈 때 연쇄적인 포지션 이동으로 중앙으로 내려온 수비형 미들과 함께 측면에 서서 포백을 구성하는 롤을 진행하고 수비시는 중앙 수비 뒤에서 최종 스위퍼 역할을 하는 스리백의 스토퍼 시스템에 충실한 롤이지만 그 대신 경기의 진행방향을 조율하는 롤을 수행했던 선수였다. 원래 리베로는 최후방 수비수이기에 볼을 잡는 시간 전 경기 통틀어 5분도 되지 않은게 다반사인데, 시레아는 리베로 위치에서 올라가 미들 참여가 잦아지면서 세리에서 한정된 역할인 수비에만 머무는 종래의 역할에서 벗어나게 된다. 그의 역할과 비슷한 롤을 수행했던 선수라면 독일에서 최초이자 최후의 리베로라 불리는 베켄바우어 정도다. 그가 달았던 6번은 유벤투스에서 영구결번이 되었다. 시레아의 리베로로서의 능력은 워낙 뛰어나 그다음 세대의 리베로 격인 바레시는 그가 은퇴하기 전까지 국대에 승선하지 못했다는 설이 있다. [ 참고 : 리베로롤은 베켄바워가 창시자다. ]
[ 프랑코 바레시 ]
[ 리베로는 여기서 막을 내린나? ]
l 3. [ 카테나치오 3세대 - 프랑코 바레시 ]
l 아쉽지만 바레시 이후로 리베로는 찾아 보기 힘들게 되었다. 사키의 포백이 제시되면서 수비의 압박은 가장 높은 선에서 유지되며 공간 압박과 공간 점유가 우선되다시피 하다보니 바레시 또한 사키의 전술에 녹아들면서 자연히 풀백으로서 카테나치오 전술보다 442전술에서 빛을 발휘하게 된다. 무엇보다 카테나치오에서는 볼 수 없는 오프사이드 함정을 레알 마드리드를 상대로 한 밀란 경기서 그는 20번 넘게 시전한다. 그와 함께한 밀란은 리그 6회 우승과 챔스3회 우승을 했으며 리베로로서는 드물게 발랑도르 2위까지 오른다. 현재 그의 달았던 6번은 영국 결번되었다. 그는 스콜스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밀란에서 축구인생을 마친다.
[ 알렉산드로 네스타 ]
[ 세리에 마지막 리베로 ]
l 4. [카테나치오 4세대 - 알렉산드로 네스타 ]
l 이쯤되면 거의 끝판에 가깝다. 2000년대 들어 리베로를 유일하게 볼 수 있는 선수였다. 비슷한 선수로 로마에서 축구 인생을 마감하고 있는 데로시가 있지만 그는 전형적인 수비형 미들이다. 현재는 라치오와 밀란에서 선수 생활을 마치고 현재는 미국 마이애미 축구 감독이다. 현역시절 말디니-네스타-스탐-카푸의 철의 포백을 구성했던 최강의 수비라인을 구축했다. 이 라인으로 구성된 시절의 옥의 티라면 우승이 없다는 것 정도. UEFA 결승전에선 이스탄불의 사기극을 겪으며 리벌풀에 좌절됐고, 승부 조작 사건인 칼치오 폴리 사건이 연이어 터지면서 승점이 8점 깍인채 시즌을 시작하면서 카푸는 아약스로 은퇴의 길을 걷고, 스탐은 이적한다.
l 5. [ 카테나치오를 몰락시킨 사키 ]
[ 아리고 사키 ]
l 세리에는 아직도 사키의 전술적 성과를 의도적으로 폄하하는 편이다. 별볼일 없는 구두쟁이가 어느 날 명문 팀의 감독으로 부임해 전술 발전에서 가장 이식하기 쉬운 포포투 전술로 우승컵을 든 사례는 그들 관점에서 볼 때 신데렐라나 다름없었다. 계모의 구박에도 신데렐라는 왕과 결혼하지만 사키에게 계모는 계모가 이탈리아 언론이자 자국 국민들 중에서도축구 광팬들인데 인정하려 들까. 본인들은 스스로 역사속에서 콩쥐팥쥐 계모가 되었다는 사실도 부정하고 있을 듯 싶다. 그래서인지 사키의 업적은 자국 리그보다 해외에서 그 업적을 인정받는 편이다. 어쩌면 그들의 기준에서 밑에 언급할 베켄바워처럼 감독으로서 선수로서 단장으로서 모두 성공한 사례를 더욱 높이 평가하는 듯 하다. 이탈리아가 괜히 유럽의 한국이라 하는 건 아닌 듯 하다. 학벌도 중요하고 얼굴도 중요하니, 홍명보를 감독으로 쓰는 한국문화 또한 이해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여기선 만치니나 인정받지, 클롭이나 무리뉴 처럼 어중이 떠중이로 선수시절을 보냈던 선수는 모두 감독으로 결격사유를 가지고 출발해야 할지 모른다.
l 당시 세리에서 나온 사키의 포포투(4-4-2)의 해악을 살펴보면 이렇다.
l "리베로가 아닌 공간압박으로 선수들이 간격유지만 하다 보니 상대의 대인마크의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한다. 그래서 공간에 침투해 오는 상대를 누가 마크할 지 혼선을 준다."
l 이와 같은 문제의 정확성이 대두된 것은 90년대 말 맨유에서였다. 이른 시간 챔스 4강, 8강에서 도르트문트와 모나코에게 실점하고 챔스 토너먼트에서 탈락하게 되면서 퍼거슨은 세리에서 대두된 2선과 3선사이의 역할을 두고, 한동안 고심하다 4231로 체질변화를 서두르는데, 결국 사키의 이론과 리베로의 절충점을 찾아낸 것이 2000년대 후반 팀 전력이 약화되면서 대두된 수비형 미들의 포백보호와 딥플메롤이다.
l 피를로를 조련한 마쪼네 감독은 그에게 후방플메롤로 전환시켰고, 그와 비슷한 롤로 오늘날까지 뛰고 있는 선수로 수비형 미들에서 뛰는 데로시가 있다. 그 대척점에 위치한 선수는 네스타로 스위퍼와 중앙수비를 오고가며 최종 수비수의 역할을 충실히 해냈다.
l 6. [ 리베로 번외편 ] - [ 독일 리베로 1세대 ] 베켄바워 - 리베로를 만들다.
l 그의 롤은 세리에서 파생된 리베로롤에 독일축구를 대표했다. 보통 리베로는 카테나치오 전술에서 최후방 수비수로 인식했던 편인데, 베켄바워는 적극적으로 미들과 수비수 사이를 오고가며 빌드업에 관여하는 롤로 진화시켰다. 오늘날 딥플메의 개념과 유사하나 수비형 미들에서 발전한 딥플메와 달리 최후방 수비수의 역할이 강조되던 시기였다. 은퇴 후에 별다른 경력 없이 월드컵 국대를 맡고 86년 준우승, 90년 우승을 일궈내고, 94년에 뮌헨 회장과 감독을 겸임하면서 UEFA 우승과 분데스 리그 우승을 1회씩 경험한다. 이쯤되면 홍명보가 베켄바워를 따라갈 수 없는 이유는 뭐였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 결승전에서 크루이프와 베켄바워 - 창과 방패가 주장으로 만나다. ]
[ 74년 우승컵을 들고 선 베켄바워 ]
l 7. [ 리베로 번외편 ] - [ 독일 리베로 1.2 세대 ] 울리히 슈틸리케
l 베켄바워가 뛰던 비슷한 시절에 그와 비슷한 롤로 뛰어댕기던 선수 중의 하나가 슈틸리케다. 현재 대한민국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재직중이고, 70년대 현역 시절 뮌헨글라드바흐에서 3차례 리그 우승컵을 들고, UEFA 컵 우승을 하고 레알로 이적한다. 당시 외국인 선수 제한은 2명이었는데, 8년간 레알에서 부동의 중앙미드필더와 리베로로 뛰었다. 리베로롤 수행시에도 미드필더로 올라갈 때는 박투박 성향을 보여줬고, 울리히가 레알로 들어온 7778시즌부터 3시즌 연속 리그 우승을 이룬다. 당시 슈틸리케와 같이 뛰던 레알 선수는 델 보스케, 카마초였다.
l 슈틸리케의 불운이라면 당시 비슷한 롤을 수행했던 베켄바워의 존재였다. 오랜 선수생활에 비해 독일 국대 팀에서 활동했던 경기는 42경기 정도다. 당시 선수의 해외이적이 자유롭지 않은 상황에서 레알로 이적한 슈틸리케의 국대 입지는 검증된 기량에 비례한 것이 아니었다. 오늘날 분데스리그에서 뮌헨에 소속돼 활동하는 독일 선수들이나 라리가에서 바르샤에 소속돼 활동하는 스페인 국적의 선수들이 대부분 국대에 승선하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슈틸리케가 국대에 오른건 78년도 아르헨티나 월드컵이 처음이니 당시 자국 리그에서 뛰지 않는 선수들이 아무리 뛰어나도 국대팀 승선에선 텃세가 심했음을 알 수 있다.
[ 운명의 장난 : 베켄바워 vs 슈틸리케 ]
[ 우승 방패를 들고 있던 뮌헨 글라드바흐 시절 오른쪽 에서 두번째는 유프하인케스 ]
[ 헬무트 쇤 독일 대표팀 감독과 함께 한 슈틸리케 ]
[ 베켄바워가 은퇴하고 나서야 비로소 국대에 제대로 승선한 슈틸리케 ]
[ 신문을 보는 슈틸리케 ]
l 8. [ 리베로 번외편 ] - [ 독일 리베로 2세대 ] 로타어 마테우스
l 사실 마테우스는 전형적인 리베로가 아니다. 하지만 그는 중앙미드필더에선 박투박으로 수비형 미들과 스위퍼, 중앙 수비수에 이르기까지 공격수를 제외한 모든 포지션에서 뛸 수 있는 선수였다. 따라서 그를 전형적인 리베로라 칭하긴 힘들고 베켄바워처럼 공수 양면에서 경기를 지배하는 롤이라 보는 것이 맞다.
l 주 포지션은 스위퍼와 수비형 미들을 봤으며 전형적으로 최후방 수비와 수비 앞선에서 중앙 수비를 보호하며 빌드업에 적극 관여하는 리베로와 무관하지 않기에 마테우스를 리베로로 올리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84년 뮌헨으로 이적해 매경기 10득점하는 스위퍼를 본적 있는가? 마테우스 롤은 현대 축구에서도 정의하기 힘든 롤이다. 인테르로 가선 9192시즌에 중앙 미들로 나와 16골을 넣는다. 90년에는 발롱도르 상을 수상했다.
[ 월드컵에서 마라도나를 막는 마테우스 ]
l 9. [ 리베로 번외편 ] - [ 독일 리베로 3세대 ] 마티아스 잠머
l 최후의 독일 선수 리베로는 베켄바워가 아니라 잠머다. 동독과 서독이 통일 되면서 동독선수였던 잠머는 슈투트가르트에 입단하고 후에 도르트문트로 옮기면서 히츠펠트 감독을 만나 리베로로 전향한다. 원래 포지션은 국대에선 중앙미드필더였고, 롤은 리베로가 아닌 스위퍼이다. 2000년대 초반 도르트문트에서 흑역사를 쓰고, 슈투트가르트 감독으로 한시즌 있다가 2012년 이후로 바이에른 뮌헨 단장을 맡고 있다.
[ 히츠펠트 감독과 잠머 ]
[ 분데스에서 리그 우승하다. ]
[ 잠머와 클롭 ]
[ 뮌헨 단장이 된 잠머 ]
[ 노가리 까는 잠머와 리베리 ]
4. 비대칭 카테나치오와 다른 모예스의 전술구성
[모예스 맨유 감독 시절 ]
[ 홈팀은 맨유였는데 ]
[ 한탄강을 건너 ]
[ 결국 라리가로 건너갔다. 하지만 재기는 물거품이 되버리고... ]
[ 부제: 꺼진 불도 다시 보듯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널 때는 물거품을 조심하자. ]
1. [ 에버튼에서의 모예스 평가 ]
전술 구성에서 현대적 플메롤을 정립했으나 이는 불가피한 전술고착화를 낳았다. 이에 대한 설명은 밑에 설명하기로 한다.
2. [ 레알소시에다드서 생활하는 모예스 ]
강등권에서 허덕이며 생활하는 소시에다드에 산소 호흡기를 달았던 모예스는 강력한 수비를 바탕으로 승점을 쌓아 1415시즌 12위를 기록한다. 하지만 다음 시즌에 경질되었다. 이피엘식 축구가 낳은 폐해이기도 하나 어쨋든 소시에다드서 보여진 그의 축구는 정밀한 작업을 요하는 라리가의 수준에 적합하지 않은 듯 하다. 적어도 이피엘식 전술이 통하려면 시오메네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모예스는 카테나치오가 가지는 복잡한 구성을 단순화시키기 위해 다른 선수들이 아닌 펠라이니에게서 찾은 많은 가능성으로 전술의 역동성을 역설적으로 찾은 듯하다. 맨유로 영입된 펠라이니는 느린발과 적은 활동량으로 제공권의 우위와 체격으로 밀고 들어오는 선수들을 압살시키는 옵션 말고는 딱히 보여지는 장점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데, 펠라이니가 포스트 플레이로 일관할 때는 제공권과 체격의 우위가 상대 수비의 과부하를 일으켰다는 점에서 위력적인 옵션은 분명하다. 펠라이니 자체가 역동적인 선수가 아니라 그로 인해 생긴 수비 과부하로 기동성 있는 다른 선수들의 움직임을 자유롭게 했던 에버튼의 키는 베인스와 펠라이니의 조합에서 찾을 수 있다.
[ 자네 샌드위치를 아는가? ]
[ 베인스와 펠라이니는 외질 뒤에서 껴 안기 신공 나오기 전 ]
그의 능력을 단순 무식한 활용법으로 8시즌에 가까운 에버튼의 재임기간중에 상당히 안정적으로 모예스는 그 기반을 다진 계기가 되지 않았나 싶다. 맨유에 부임했을 때 펠라이니와 베인스 모두를 영입하고자 했던 것은 파트너의 조합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반쪽은 전술에서 아무런 시너지를 이끌어내지 못한다. 그리고 반쪽은 결국 전술의 완성이 아닌 계륵으로 넘어갈 가능성이 대부분이다.
현대 축구에서 이런 포스트 플레이로는 상대의 다양한 전술을 메꾸기엔 부족하다. 포백에서 나올 수 있는 시너지는 분명 다양한 전술과 선수들의 분업화, 능력에 대한 적절한 배분과 활동량의 변화로 공격과 수비에서 상대의 부족분을 메꿔주는 방향으로 발전해 왔고, 이점이 포스트 플레이로는 상대의 다양한 공격을 대응하기에는 부족하다는 근거가 된다.
풀백이 윙어와 연계하여 적절한 시점에 오버래핑을 나가는 문제나 윙어가 풀백의 수비를 봐주는 플레이는 전형적으로 득점을 위한 세축의 공격 시점을 독립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측면의 종적 플레이는 결국 공격을 위한 수비적 대응을 뛰어 넘는 결과를 낳는다.
후에 이런 클래식한 연계 플레이에서 더 나아가 미들이 전영역을 압박하며 활동량을 극대화시켰던 전술을 상기해본다면 쓰리톱이 가진 가공할 득점력에서 풀백의 단독 움직임까지 유도해 내던 2000년대 초반의 돌풍을 일으켰던 무리뉴의 433과 2000년대 후반 펩의 티키타카 식 433 점유율 공격으로 넘어갈 때 풀백이 윙어처럼 단독으로 전술을 수행했던 과정을 생각할 수 있다. 풀백의 공격 참여는 미들의 활동량이든 미들의 볼 점유율이든 전술 발전에서 중요한 축이 되고 있다.
[ 비틀즈의 머리를 고수하는 선수 ]
[ 비틀즈 멤버라 해도 믿을 만큼 먹어주는 외모긴 한데 넌 왜 여기서 축구를 하니? ]
5. 현대 축구의 풀백 요구 조건
스리톱에서 윙포워드의 직접적인 드리블과 득점을 위한 경기력을 진행하는 경우 역삼각 미들을 통해 1차적으로 수비를 저지하는 포지션은 풀백이 아닌 수비형 미들이다. 그리고 미들이 삼각 대형을 유지하는 동안 윙포워드의 직접적인 공수밸런스에 가담하는 자원은 2선의 박투박 자원이다. 433에선 직접적으로 풀백이 윙포워드 자원과 연계하는 일이 442만큼 많지 않다. 따라서 단독으로 오버래핑 시점을 잡아 가는 것이 풀백에게 가장 요구되는 능력이다. 2000년대 초반뿐 아니라 2000년대 후반 다니엘 알베스의 풀백 공격력이 극대화된 시점을 상기해보면 433에서 꾸준히 공격력에 가장 큰 수혜를 입은 포지션은 풀백 포지션이 아닌가 싶다. 이는 카테나치오가 직접적으로 수비수의 공격 가담을 요구한 것보다 능동적인 공격의 반응을 이끌어낸 것이 아닐 수 없다.
공격력과 압박이 극대화된 2000년대 초반 433에서 보여지는 풀백의 공격 가담 패턴은 지금도 유효하다.
[ 풀백의 위치 ]
[ 2000년대 후반 바르샤의 433 ] [ 레이카르트의 433 ]
1. [ 풀백 사용법 ]
풀백을 기준으로 했을 때 사실 바르샤를 기준으로 하면 곤란하지만 풀백의 오버래핑에서 자주 언급될 수 밖에 없는 것이 레이카르트의 433과 펩의 433이다. 2000년대 초반 반할이 남긴 처참한 성적을 극복하며 레아카르트는 바르샤를 재건하는 성공했는데, 그 원천은 1선의 쓰리톱의 화력과 데쿠의 활동량이었다. 당시 사비는 수비형 미들로 자주 써먹었는데, 펩에 이르러서는 2선에서 활동하며 중원의 압박과 점유율을 극강으로 이끌어내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2. [ 전술 운용의 차이 ] 가장 큰 차이는 패스 전개다. 레이카르트는 3개의 선으로 존을 분화시켜 포지션에 따라 공격과 수비 지역을 분리해서 선수들의 역할을 확실히했으며 그리고 수비와 공격 밸런스를 미들에 맡기는 3선 운영에 가장 이상적인 공격 형태를 구축했다. 사키의 442와 다른 해법이나 공간을 점유하는데 2선의 활동량을 근거를 가진 것과 달리 공격수를 미들로 내보내며 개인기량 위주였던 6,70년대 남미 국대팀에서 쓰던 433은 그 목적이 다를 수 밖에 없다. 2000년대 레이카르트가 433을 쓰면서 가장 트렌디하게 유지했던 것은 박투박 형태의 미들 자원들로 경기력을 유지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 부분은 펩이 추구하는 라볼피아나 전형과 상극임을 알 수 있다.
2. [ 레이카르트 초기 ]
풀백의 역할보다는 전방에서 몰아치던 화력의 향방이 결정되던 시기에는 분명 미들 활동량은 이들의 수비적 밸런스를 메꾸기 위한 헌신적 뛰어다님이 중요했다. 이미 크루이프가 이식시킨 바르샤 유스들의 재능으로는 2000년대 부터 그 부작용이 나타나기 시작했는데, 부임하는 감독들은 하나같이 이해할 수 없는 수비 불안으로 바르샤 축구는 재미없고, 별볼일 없는 수준으로 추락시켰다. 그리고 당시 바르샤는 레알에 많이 밀려 있었다. 그런 모든 상황을 극복하고 보여준 레이카르트의 극복 방법은 지극히 공격적이었다. 크루이프가 바르샤 유스에 이식시켰던 공미 플메에 대항해 만든 토털축구를 계승한 것이 아니라 사키의 축구를 계승한 것이 바르샤를 구한 것이다.
3. [ 다이나믹 433 ]
레이카르트의 축구적 마인드가 4231에서 허우적 대던 퍼거슨에게 영감을 준 건지 모른다. 펩이 보인 뮌헨의 바르샤를 보면서 역시 한계가 있는 볼 점유율 중심의 축구를 다시금 보게 될 때마다 팀에 따라 전술을 유동적으로 메꿔 승리했던 유프 하인케스의 전술이 위에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전방의 대량 득점은 엔리케가 추구하고 있는 바르샤의 뮌헨화와 연관되어 있음을 생각한다면 전술은 결국 돌고도는 것이고, 쉽게 접근해야 축구를 보는 모두에게 피곤하지 않다.
4. [ 무리뉴 ] 뛰어난 선수들이 아니어도 승리할 수 있다면 감독의 역량이다. 필자가 무리뉴를 선호하는 이유다.
5. [ 안피풋볼 티키타카 ]
2000년대 후반의 바르샤는 메시를 중심으로 풀백의 오버래핑이 활발하던 시기다. 알베스와 아비달은 측면을 공략하며 윙포워드 대신 측면 공격에 참여하는 빈도가 높아져 갔다. 이들의 활동영역을 확보하기 위해 부스케츠는 두 센터백과 함께 라볼피아나 전형을 수시로 생성하며 패스의 트라이 앵글을 후방에서 생성하고 탈압박을 자주 보여줬으며 페드로는 드리블대신 중앙 공격 참여했다. 이로 인해 중원은 압박과 점유율을 기반으로 상대가 손을 쓰지 못하고 당하며 수적우위속에 공격이 마무리되는 것이 바르샤의 공격 패턴이었다. 수비인지 공격인지 알 수 없는 볼 점유율 속에서 상대가 허탈만 느끼던 허탈감은 솔직히 필자에게 안티풋볼로 다가온다.
5. [ 볼 점유율에 중요한 패스 ] 지속적인 삼각 패스를 만들어내며 선수들의 포지션 이동은 보다 적은 체력소모를 위해 포지션 이동이 극히 제한된 반면 풀백은 직선주로를 통해 공수 전환이 자유로워 지는 모순을 낳았다. 수비의 공격 참여를 위해 공격수들의 드리블과 제공권 장악이 제한되고 오로지 땅볼로 연계되는 플레이를 보기 위해 이들은 태어난 것일까.
6. 퍼거슨 말기 맨유의 문제점
1213시즌 우승을 이룬 맨유의 스쿼드와 1516시즌 침체를 겪다 못해 우울한 맨유의 스쿼드를 비교해보자. 무슨 차이가 있을까. 사실 1213시즌은 조건이 아주 열악했다. 반페르시를 영입했던 것 말고는 딱히 중요해 보이는 영입은 존재하지 않았다. 윙어들은 수시즌 진행된 중원의 열세를 혼자 메꾸느라 떨어진 폼들이 말이 아니었고, 마치 로테를 돌리지 않고 돌린 1415시즌의 첼시처럼 담시즌 어느 한 포지션에 폼의 급격한 저하라는 구멍이 생겨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만큼 위태로웠다.
불행하게도 그 포지션은 맨유를 살렸던 윙어 자리였고, 수비의 노쇠화에도 불구하고 투톱의 가공할 득점력으로 일찍 리그 우승을 이뤄낸 것은 1선의 공이었다. 필자가 위에서 언급했던 1옵션이 발휘되는 시즌이었다.
[ 루니는 반페르시와 손을 잡고 집으로 가면... 아니아니 아니되오. ]
반페르시같은 공격수는 미들과 연계를 통해 1.5선에서 활동하는 공격수다. 이 유형은 중앙에서 침투할 때 패스해주는 선수들의 존재가 중요하며 크로스에 의한 헤딩골 혹은 볼을 잡고 2차 움직임을 통해 골로 마무리하는 행위는 아군 선수들의 융합된 조직력을 필요로 한다. 결국 경기력 향상을 위해 미들과 수비진은 적절한 시점에 라인을 올려야 하며 경기에서 빌드업과 침투 과정을 빈번하게 시도해야 반페르시의 연계플레이는 골로 연결될 가능성이 컸다. 그런데 상대의 조직력에 고전하고 있다면 골을 넣는 것이 가능할까.
원톱의 조건은 드리블러든 2옵션이 존재하든 안하든 스스로 골을 마무리하는 능력이 중요하기 때문에 미들의 도움이나 측면에서 오프사이드를 파괴하는 움직임이 별도로 필요하지 않아도 득점할 수 있는 조건이 필수적일 수 밖에 없다. 하지만 반페르시는 원톱이 아니었다. 분명한 건 루니의 섀도우 롤이 망가진 중원에서 그나마 반페르시와 중원의 연계를 이끌어 나가는데 큰 시너지를 발휘한 거라 보여질 수 밖에 없다. 루니가 움직이는 활동량과 준수한 킥력은 탈압박에 분명 약점을 가지고 있는 그를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도록 2선에서 미들과 연계하는 반페르시의 움직임과 무관하지 않다. 상대적으로 루니의 득점력이 반페르시보다 저조했음에도 그는 그 역할에 만족했다.
1213시즌 윙어들의 폼이 폭망한 가운데, 반페르시, 루니에 의한 득점을 생각해 본다면 중원이 망가지고, 수비진도 노쇠화를 겪는 와중에 공격수의 득점 본능이 가장 빛나던 시즌이 아닌가 싶다. 0910시즌 이후 맨유의 중원은 커다란 구멍을 메꿔야 함에도 그러한 선작업없이 윙어들을 혹사시키느라 기둥을 뽑아내듯 한시즌 한시즌을 버텨냈다. 그들의 폼이 죽음으로 인해 결국 영입할 포지션은 중앙수비와 전멸된 2선 모두를 새로 리빌딩해야 했던 것이 1314시즌의 모예스에게 주어진 과제였다. 송장만 남긴 1314시즌이었다.
필자는 퍼거슨이 은퇴한 당시의 우승에 크게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그 시즌에 풀백은 노예가 되지 않으면 운용이 되지 않았고, 진즉 세대교체가 이뤄졌어야 할 중앙 수비에서 다른 포지션에서 활동해 성장에 큰 제약을 받았던 필 존스와 스몰링을 생각해 보면 그들이 가진 잠재력을 깍아먹은 행위가 불쾌할 수 밖에 없다. 감독이 퍼거슨이라서 이 부분을 함구하고 넘어가고 싶진 않다. 솔직히 멀티 포지션 소화로 희생당한 선수들이 한두명인가? 그렇게 퍼거슨의 시절은 흘러갔다. 무뎌진 선수구성을 남기고.
[ 담시즌은 기약할 수 없었던 1213시즌의 스쿼드 ]
l 1. [ 현재의 관점에서 재고할 일들 ]
우리는 지금도 망가졌던 스쿼드에 대해 다시 생각하지 않으면 안된다. 우승컵을 들어올리기 위해 재능들이 낭비되었던 순간들을 생각해야 한다. 대형수비수로 성장이 가능했던 필존스는 멀티포지션으로 본인의 재능을 상당부분 낭비했고, 클레버리는 윙어가 아닌 중원에서 뛰느라 이도저도 아닌 폼만 운을 띄었고, 그나마 스몰링이 거기서 벗어나 이제서 피고 있는 실정이다.
l 2. [ 조합의 문제 ]
올시즌 주구장창 센터백으로 뛰고 있는 블린트와 스몰링 조합을 보면서 로테 없이 뛴 선수들의 담시즌을 걱정해야 하지만 블린트의 능력은 계속된 경험치 몰빵 효과를 나타내고 있다. 애초에 중앙수비로 뛰기에는 한계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한시즌 50경기 넘게 뛰면서 성장한듯 하다.
당시 스쿼드로는 담시즌부터 본격적으로 이뤄질 공격수의 맨마킹이 심해지면 아무런 공격옵션도 생기지 않을 거라 우승은 물론 챔스권 수성도 어려웠을 거라 예상되었는데, 느닷없는 퍼거슨 사퇴는 4년간 미뤄왔던 리빌딩의 미진함을 1314시즌에 드러내면서 그 암적인 후폭풍을 모예스가 감당해야 했다. 모예스는 그 희생양일 수도 있고, 위기를 자신의 역량으로 극복하지 못한 사례일 수도 있다. 감독에게 주어진 기회는 불공평했다.
7. 풀백이 많아진 현재
[ 루크쇼와 보스윅잭슨, 다르미안과 바렐라에 이어 로호와 발렌시아와 1415시즌 풀백에서 뛴 블린트까지 총 6명]
1516시즌은 분명 풀백들의 천국이 되고 있다. 필자가 언급한 풀백의 조건은 433에서 압박과 역습으로 대응하면 할수록 풀백은 측면에서 오버래핑을 끝없이 해낼 수 있는 여지가 충분하다. 그럼에도 4231전술로 반할이 대응했을 때 우리는 수비적 역할만 주구장창하느라 기량만 깍아먹은 풀백의 현실을 보고 있다. 안타깝지 않은가. 그 원인은 이미 맨유에는너무나 많은 10번롤이 존재한다는 것인데, 올시즌 들어 공미를 쓰는 방법이 유독 두드러지는 과제가 되고 있다.
현재의 관점에서 볼 때 풀백의 공격력은 4231이 아닌 433이나 442에서 위력을 발휘하는 포지션이다. 4141도 수비를 안정화시키기 위한 포메이션이라 풀백의 공격력을 위한 최적의 포지션은 아니다. 이른 시간에 전술 변화를 준다면 433으로 변용이 가능하나 변화시점에선 미들의 롤부여가 달라져야 하므로 활동량이 관건이다. 직접적인 수비 과부하에 대응하지 않으려면 풀백의 활용도는 오버래핑이 가능한 수준을 요구하고 있다. 카테나치오 전술을 쓰는게 아니라면 당연히 현대 전술은 그 부응에 보답하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반할은 선수들 발굴과 포변의 재능을 앞에 두고도 정작 성적은 곤두박칠 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신은 왜 반할에게 인생에서 유연성을 주지 않았는가 한탄스럽다.
8. 베론과 마타
[ 4대 미드필더가 이때꺼정 좋았는데... ]
[ 베론에게 필요한 약은 무엇이었을까. 보다폰은 아니겠지. ]
처음에 공미를 쓰는 문제에서 4231전형이 문제라고 생각해왔던 것은 2000년대 초반 베론이 영입되면서 442에서 공미의 공존 방법에 애로사항을 겪고, 시행착오 끝에 실패를 맛보던 베론의 마지막 위치는 수비형 미들이었음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문제와 무관하지 않다.
분명 442가 가진 자유도는 아군에게 공간의 활용을 넓게 활용하면서 상대 압박을 무너뜨리는데 개인 기량이 전술에 부합했던 1990년대 맨유의 포메이션이나 그 포메이션이 베론에게 역효과를 불러 일으킨건 다름아닌 베론의 위치에서 다른 선수들에게 요구되는 제약된 움직임이다.
아군이 중원에서 취하는 유기적인 패스의 대응은 한번의 터치로 상대의 오프사이드를 무너뜨리는 크로스와 중원의 중장거리 패스가 투톱내지는 원톱에게 우선적으로 대응했기에 공격수의 득점능력만 보장된다면 굳이 2선을 다른 전술로 바꿀 이유가 없었다. 베론이 2선의 모든 상황을 대응해야 한다면 스스로의 움직임이 마라도나가 아닌 이상 모든 선수들이 베론을 중심으로 경기를 진행하지 못하는 딜레마를 겪게 된다. 베론은 오랜 맨유의 포메이션에 적응하지 못해 첼시로 이적하게 된다.
플랫한 442를 통해 리그에서 수위를 달리고 있으나 챔스에선 이른 시간에 실점했던 맨유전형의 근본적 수비 대응에 대한 고민으로 퍼거슨은 공미 플메로 전환하려 했지만 해결책은 오히려 3미들의 역할분화로 이어진 다이나믹 433이 맞는 해결로 드러났다. 미들의 활동량이 공격과 수비 모두 공헌하면서 자연히 풀백의 오버래핑 시점이 빈번해지고, 공격 대응 속도가 빨라지며 역습이 최적화된 전술이 2000년대 후반 맨유의 모습이다.
오늘날 마타의 움직임도 베론의 뒤를 따라갈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그가 베론과 다른 점은 베론없이도 잘도아가던 2000년대 초반 맨유 사정과 달리 여러곳에서 문제가 터진 상황이 현재를 달리고 있고, 전술적 변화가 선수들 능력에 따라 유동적으로 융합되지 못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에레라라는 파트너를 만났다는 점이다. 그리고 현재는 과거와 달리 3미들의 공존에서 박투박 2명에 수미를 두는 것이 아니라 롤 재정립을 통해 공미의 공존이 가능하다. 무리뉴가 내치지 않으면 433에서 공미 플메의 성공 가능성이 높아진 시점이다.
[ 마타야! 사실상 나는 너에게 고마워. 하지만 무리뉴가 오면.... 미안하다. 그말싫... ]
공미와 더블볼란치 윙어와 원톱이 모두 존재하며 사실상 아군 공미와 상대 공미를 막기 위한 전형적인 4231 전형은 올시즌 대부분의 이피엘 팀들이 들고 나오는 포메이션이 되고 있다. 이런 구성은 리그가 가진 강점에서 한참 벗어난다. 루니와 마타, 에레라가 존재하는 상황에 셋의 공존을 위해서 꺼내든 포메이션이 얼마나 효력을 발휘했을까. 그 어쩔 수 없는 불포화 지방산을 뱉어내야 했다면 셋중 하나는 로테이션으로 돌아가며 팀 전술 변화를 유동적으로 가져갔어야 했다. 선수의 장점을 불신하지 않는다면 전술을 구상할 때 선수의 능력을 감독은 살필 필요가 있다.
전술의 발전 없이 적당하게 리빌딩한 폐해는 올시즌에 드러났다. 맨유는 레알이 아니다. 선수에 맞춰서 경기력을 유지하려면 지금껏 맨유가 지탱해온 멘탈과 배치되는 행보를 걸어야 한다.
9. 표류하는 배, 지금은 어디에 있을까.
시행착오의 1시즌을 거치고, 영의 폼은 살아나고, 발렌시아는 풀백으로 완전히 자리잡았으며 슈나이덜린은 캐릭을 대체할만한 영입으로 성공적이지만 리빌딩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곳은 1,2선이다. 그리고 4선의 영입은 아직도 미완이다. 천문학적 돈을 거치고도, 실패한 포메이션을 들고 나온 것이나, 폼이 재생되면서 전시즌 수비불안을 극복한 사례는 충분히 괜찮은 사례로 기록될 듯 싶으나 올시즌은 반할 2년차를 여지없이 보고 있다. 애증의 대상이다.
1516시즌 반할이 맨유라는 축구에서 수비적 역할에 치중한다는 것은 과거부터 일관적으로 보여준 백태낀 경기력에서 멀지 않다. 알크라르와 월드컵에서 반전을 이뤄내고, 맨유 첫시즌에 전술적 타개 능력으로 안정적인 궤도를 안착시켰지만 거기까지다. 또다른 발전은 없었다. 이런 단점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반할을 지지해왔다. 지지의 결과는 배신감이다.
10. 공미롤과 감독
무리뉴가 온다면 그는 수비형 미들을 중시하는 전술을 들고 나올 것이다. 데브라이너를 그가 왜 놓친 것일까. 단순히 유스장사만 잘하는 첼시의 무능력일까. 그가 첼시에 재부임하면서 마티치의 포지션은 빛을 발휘했고, 파브레가스를 영입하면서 짜임새 있는 상황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파브레가스는 전형적인 공미롤 뿐 아니라 중미롤이 가능하다. 데브라이너를 위한 포지션을 택할 거라면 그를 위한 팀에서 뛰어야 가능하다. 맨시티나 아스널처럼 2선에서 공미와 윙어롤 모두 가능한 중앙 프리롤이 그에게 적합한데, 이런 유형의 선수는 3선의 과부하를 일으키게 된다. 그럼에도 그는 데브라이너를 남겨주길 첼시에 요구했다. 분명 스네이더 이상의 가능성을 보인것이 데브라이너이기 때문이다. 그가 박투박 유형과 파괴스러운 수비형 미들을 좋아하긴 하는 것과 별도로 말이다. 그는 전술적으로 선수들 구성에 경색되는 감독이 아니다.
[ 헤나투 산체스 ]
l 1. [ 맨유가 영입한다면 ]
무리뉴성향으로 볼 때 가장 이상적인 미드필더에 가깝다. 올시즌 뮌헨을 상대로 이정도 능력을 보인다는 건 앞으로 더 볼일이 많다는 의미다. 가장 비싼 선수를 사는 것이 가장 싸게 영입하는 것이다 라고 했나. 어쨋든 맨유로 온다면 환영이다.
l 2. [ 맨유의 부족분 ]
현재 맨유에 부족한 것은 파이팅인데, 그걸 일깨울 선수들은 없다. 얌전한 선수들로만 가득해서 지금의 맨유에게도 필요한 선수인듯 하다.
무리뉴가 원하는 공격은 공격의 마무리 능력이지 공미의 플레이메이킹을 별도로 필요치 않는다. 이부분은 우려스럽기도 하고, 다행이기도 한 것이 맨유의 기존 철학과 부합되고, 점점 수비형 미들의 포백보호와 플메적 롤이 중요시하는 과도기에 와 있다는 점이나 공격수의 새로운 영입에 제대로 된 영입을 추가로 할 것이라는 점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타는 이번에도 희생될 가능성이 크고, 그를 위한 롤을 0910시즌 인테르의 스네이더처럼 쓸일은 많아 보이지 않는다. 밀리토와 에투를 영입하며 트레블을 이룬 무리뉴에게 스네이더는 세리에의 특성을 감안한 영입이지 그의 전술에서 필수적으로 중요로 하는 포지션은 아니다.
수비를 튼튼히 하고, 득점을 마무리하는데 얼마되지 않는 공격 기회로 공격수가 득점해야 한다면 공미롤이 그다지 각광받지 않는 이피엘에서 데브라이너 같은 스타일은 지금처럼 성장하지 않았다면 제외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데브라이너가 이적한 맨시티는 만치니 감독이 구축한 강력한 수비에 이은 공미의 공격 능력을 극대화하는 전형적인 라리가와 세리에 전술이며 펠레그리니 감독 또한 비야레알에서 이피엘에 부임한 이후로 그 전술을 굳이 바꾸지 않았다. 그리고 현재 윙어들의 폼은 빠른 돌파에 이은 득점루트까지 진행할만큼 롤의 분화가 진행해왔다. 이점이 데브라이너와 같은 공격 스타일을 맨시티에서 선호하는 이유다. 다만 리빌딩에서 미들 진 노쇠화와 중앙 수비수 조합에서 2옵션이 최악이라는 점이 현재 맨시티가 겪는 부진의 원인이다.
[ 진격의 데브라이너 ]
[ 올시즌 맨시티를 먹여 살리는 데브라이너, 첼시가 떠오른다. 얼렁 첼시로 고~ ]
클롭의 게겐프레싱에서 공미롤은 아주 중요하다. 전방 1선의 상대 빌드업 방해를 극대화하고 공을 가로채면 벌떼처럼 공격하는 형식의 공격은 결국 공격에서도 수비밸런스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데, 볼의 키핑과 상대의 간격이 좁은 수비라인을 뚫고 득점하는 공식이 존재해야 게겐프레싱 전술이 극대화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올시즌 클롭이 생각보다 위력적이지 않은 까닭은 2옵션의 부재다. 도르트문트에서라면 4231에서 수비시 451로 가는데 전방 선수들의 맨마킹 압박이 주효했으나 리버풀에서는 그 부분이 이제서야 발휘되나 지공 상황을 조절한 선수들은 보이지 않는다.
선수비 후역습의 리버풀을 클롭 부임이후 표본수는 부족하지만 거의 본적이 없는 것 같다. 벵거나 맨시티 모두 같은 전술을 쓰지 않지만 결국 옵션의 존재는 각각 다른 포지션의 경기력 하드캐리가 존재하기에 챔스권 유지가 그동안 가능했던 것이다. 아이러니 하게도 챔스권에 올라와 있는 팀들 중에 공미를 주축으로 전술을 구사하는 팀이 3팀이나 존재한다. 이피엘은 공미롤이 대세가 아닌데, 이런 현상은 왜 존재하는 것일까.
11. 혼재된 혼란속의 반사이익
4231의 천적은 다이나믹 442이다.
올시즌 이런 공미 롤에 대한 각 팀들의 전형 구성으로 반사이익을 얻은 팀이 레스터 시티다. 레스터시티는 과거 맨유가 보여준 다이나믹한 전술을 들고 지금까지 선전하고 있다. 1415시즌 토트넘이 맨유를 상대로 힘을 쓰지 못한 상황의 원인은 에릭센의 중원움직임 봉쇄이며 아군의 4선에서 별다른 효력을 이끌지 못했던 점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이후 맨유가 맨시티나 아스널을 상대로 승리했던 경기력을 보면 예상보다 쉽게 공미를 막으면 상대는 경기력을 찾지 못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당시 맨유의 전술은 433이나 4141전형이었고, 전술 구성에서 별다른 최적점을 찾기가 힘들었다. 그럼에도 공미플메 전술을 주축으로 하는 팀을 상대로 좋은 모습을 보인 것은 주의할 만하다. 무얼 의미할까 그만큼 수비의 발전은 급격하게 발전했다는 것이다.
그 영감은 사키의 포포투가 처음이자 마지막일만큼 수비의 발전은 카테나치오 식 빗장수비와는 비교도 할 수 없게 선수 구성에서 자유롭게 되고, 감독은 전형을 짜면서 선수를 억지로 끼워맞출 필요도 없어졌으며 딥플메처럼 다른 롤의 분화를 촉진시켜 왔다. 그리고 4-4-2 전형은 다른 전형의 발전을 불러 일으켰다. 카테나치오 전술이 비대칭 전술로 발전한 것 이외에 전형의 또다른 유도를 이끌어냈다고 볼 수 없는데, 포포투는 4231 과도기를 거쳐 4141과 433으로 가는데 바탕이 되었다. 물론 모든 전형이 사키의 442에서 유래된 것은 아니다. 다만 현대 전술 발전에서 기초가 되었다는 걸 말하고 싶을 뿐이다.
[ 레스터 시티 442 라인업 ]
첼시는 리빌딩에 실패하고, 맨시티는 최근 노쇠화를 겪고 있으며, 가장 우승에 근접한 시즌이었던 아스날은 여전히 3위에 목매고 있는 상황에서 맨유마저 감독 반할의 꼭두놀음에 좋은 선수들가지고 악수를 두는 현실이다보니 어느 누구도 전력의 상향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리고 이런 문제점은 442 전형을 가지고 리그 1위를 달성한 레스터 시티의 현주소와 무관하지 않다.
상대의 공격을 봉쇄한다는 건 꽤 중요한 경기력 변화이다. 정상적이지 않은 맨유의 스쿼드로도 강팀들을 상대로 대응할 때 맨유는 이기는 경기를 운영해왔다. 아스날에게 패했던 경기를 보면 2선의 봉쇄를 무시하고 움직였을 때 드러났으니 상성이 명확한 팀들을 상대로는 언제나 확실한 전술을 제시할 수 있다. 과거 해왔던 강팀들 상대로 경기하는 방식은 올시즌에도 맨유는 여전히 위력적이지만 문제는 감독이 반할이라는 것이고, 반할 2년차라는 것이다. 무리뉴 2년차와 정말 대조된다.
[ 마레즈의 다이브 장면 저걸로 쏠쏠히 올시즌 상대 문전에서 써먹고 있다. ]
[ 맨시티를 향한 역습 ]
l 1. [ 올시즌 레스터앞에서 선 두팀 ]
l 맨시티나 아스날 모두 4231전형을 주축으로 쓰는 선수들이다. 그런데 레스터 시티의 442 앞에선 맥을 못추고 있다. 아스날은 한명 퇴장당한 레스터를 상대로 2대 1로 겨우 이기고, 맨시티는 3대 1로 떡실신 당했다. 후반에 아구에로가 득점하면서 겨우 한점 내는게 전부였다.
l 2. [ 4231과 442 관계 ]
l 올시즌 개나 소나 모두 4231 전형을 들고 나오는게 프리미어 리그 트렌드 인 듯 하다. 전형적인 공미롤도 없이 무슨 4231인지 기가 막힌다. 필자는 레스터가 위력을 보였던 이유중의 하나가 전형의 상성이라 보고 있다.
l 3. [ 거북스런 맨유의 4231 ]
l 맨유가 2000년대 초반 조용한 양반인 스콜스마저 공미롤에서 뛰길 거부할 정도였다면 이유가 있는 거다. 사실 이 포지션은 공미 하나로 현대 축구에서 살아남기 힘들다. 이미 스피드에서 위력적인 선수가 발생하면 공미의 활동영역을 축고시키는 것만으로 상대 경기력을 묶어 버릴 수 있다는 전례가 끝도 없이 많지 않은가.
[ 442와 4231의 상성 ]
[ 442 기본 ] [4231로 공격 대응시 ]
1. [제시된 룰에 충실한 442 ]
사키의 관점에서 보면 선수비후 역습시 뛰어난 전방 공격의 대응이 주효한데, 올시즌 바디의 스피드와 마레즈의 돌파를 보면 그런 기본에 충실할수록 사키의 이론은 수십년이 지났음에도 아직도 유효한 전술인 듯하다.
2. [ 퍼기의 442 ]
선수들의 구성은 유스들로 모두 대체했던 퍼거슨은 5년동안 맨유에 뿌리내리면서 곧 터질 유망주들을 수집하면서 준비했으나 라니에리는 그런 시간 없이 얼마 안되는 자본력으로 우승의 결과물을 내었다. 객관적인 비교는 될 수 없다. 그리고 담시즌 레스터 시티는 어디까지 갈지 알 수 없는 스쿼드다.
3. [ 4231로 442에 대응한다면 ]
공격과 수비시 지역방어를 기본으로 하는 442에 대응하는 4231은 공격시 상대수비를 6명 상대해야 한다. 그런데 공격수는 4명이다. 현대 축구에서 수비의 발전은 90년대보다 훨씬 진보되어 있는데, 뛰어난 공미롤을 보유한 선수들조차 레스터시티의 정비된 442에 대응하긴 무척 힘들다. 공미를 중앙에서 봉쇄하면서 스피드로 결정해 버리는 레스터 시티의 놀음은 세리에서 사키가 보인 충격과 유사하다. 현실은 직시해야 한다.
4. [ 4231에 거부감을 보였던 스콜스를 생각하며 ]
2선이 아닌 1.5선 앞에서 2000년대 초반 겪었던 고립 때문에 스콜스는 이 전형에 가장 크게 반감을 가진 선수중 하나였다. 더 이상 섀도우롤처럼 움직일 수 없는 그 롤에 대해 모든 선수들도 거부했다. 지금은 어떤가. 롤 자체가 가진 한계로 다양한 역동성을 부여하지 못하고 있다. 마타에게 이 롤을 맡긴다면 당연히 좁은 간격으로 공수라인을 유지한채 상대 역습을 차단하는데 주력해야만 가능한 시나리오다. 그마저도 선수들 구성이 간단치는 않다. 레스터를 보자 바디와 마레즈의 캉테만으로도 선수비 후역습이 가능한 442를 만드는데 드는 비용은 얼마였는지.
12. 공미롤 지금 상황에 꼭 필요한 결과물일까.
반할이 공미를 제대로 쓰지 못하고 있다는 점은 순위권에서도 드러나듯 기존에 이미 구축된 공미롤이 정립된 아스날이나 맨시티의 그것처럼 급격한 체질 변화를 이루긴 힘들다는 점을 의식할 수 있다. 그리고 그는 2선의 공미롤을 잘 쓰는 감독이 아니다. 전술에서 일가견이 있으나 유동적이지 않고, 공격수의 창의력을 바탕으로 하려면 반드시 공미를 배제한 전술구축만이 그를 살릴 수 있는 길임에도 그렇지 못한 점은 끝내 지루함을 벗어날 수 없는 그만의 이상이다. 이 이상이 얼마나 속을 부글부글하게 만들었는지 모두다 알고 있지 않은가.
마타가 제 역할을 하고 있지만 첼시에서 했던 마타롤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은 맨유가 공미롤 정립에서 그동안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었는지 간접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결국 지금의 리빌딩에서 중요한 건 공미가 아니라 공격수와 윙어의 영입, 성장이 중요한 시점에 와 있다는 점이다.
마타에게는 정말 미안한 말이지만 우리팀에는 공미롤이 별도로 필요하지 않다, 하지만 옵션으로는 꽤 유용한 카드가 될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펠라이니와 마타, 루니의 존재는 어느 것 하나도 취하기 힘든 조합이 된다는 것을 2시즌 전에도 인식한 부분이다. 포스트 플레이를 할것이냐 마타를 위한 수비적 움직임을 취할 것이냐, 가공할 원톱의 존재가 있어야 위력이 배가 되는 루니를 위한 전술을 들고 나오느냐 하는 문제는 결국 전술에서 주축을 세우기 어려운 문제점을 드러낸다.
펠라이니를 위한 전술을 생각해 보자.
이 전술은 에버튼처럼 중원의 능력이 강화된 전술에서 카테나치오 전술처럼 풀백의 공격력이 극도로 강화된 방식으로 운용한다면 가능하다. 베인스의 킥력을 올시즌에도 유효한데, 중원을 무주공간으로 만들 수 있도록 펠라이니의 포스트 플레이가 상대 수비를 과부하시키는 것이 핵심이다. 수비수는 한쪽으로 몰릴 수 밖에 없고, 미들 또한 펠라이니를 막기 위해 공간을 좁게 가져간다면 반대편 측면은 텅텅비게 된다. 하지만 이런 전술을 쓰려면 중미에서 박투박을 소화할 자원이 필수적이다. 그리고 이 전술로는 우승할수도 없고, 챔스권에 다가갈 수도 없다.
다음은 마타를 위한 전술을 생각해 보자.
흔히 발렌시아나 첼시에서 보여준 그의 능력은 공격수의 마무리 능력보다 더 빛나는 공미롤에 해당한다. 드록바 이후로 첼시는 공격수들의 무덤이 된 것은 무리뉴가 첼시와 헤어진 시즌 이후부터 두드러진 현상이다. 잘나가던 토레스를 5000만 파운드에 영입했으나 결국 공격수 사용법 대신 마타 사용법을 채택한 결과는 0910시즌 베니테즈가 리버풀을 칠버풀로 말아먹었던 4231전술과 유사하다.
433의 세축의 공격력이 극대화된 전술운용과 달리 공미롤은 지공시 능력을 발휘하며 역습에 대한 대비는 3,4선의 수비능력과 미들의 수비 연계가 중요하다. 무리뉴가 첼시에 오고, 물오른 마타의 폼을 무시하고, 다시 공격수의 득점 능력을 위한 전술로 재구성되었다. 올시즌 루니가 1선에서 자주 볼간수를 못하는 모습이나 득점에 부진한 모습을 보이는 건 측면에 배치되었지만 수행마타의 공미롤 때문이다. 탈압박에 능하지 못한 루니의 모습이 이토록 부진을 겪었던 때가 있었나 싶을 만큼 루니는 2선에서 볼을 길게 끌고 다니는 재능이 아니다.
윙어에 배치되었으나 결국 드리블로 뚫지 못하는 윙어는 1옵션을 포기한 것과 마찬가지다. 따라서 상대 측면은 윙어와 풀백의 연계로 상대에게 과부하를 일으키며 다르미안이 혹사된 풀백 포지션이기도 한다. 공미롤이 제대로 발휘되려면 2선에는 공미롤을 수행하는 자원이 맨시티나 아스널처럼 1명 더 필요하다. 현재 에레라가 2선에서 같이 연계해 줘야 마타의 공미롤은 빛난다.
마지막으로 이제는 그만 헤어져야 할지 모르는 루니를 위한 전술을 생각해보자.
루니가 혼자서 경기를 캐리했던 경우는 호날두가 나가고 나서다. 그렇다면 호날두 때문에 루니의 성장이 지체된 것일까. 일부는 맞겠지만 호날두가 존재했을 때, 루니와의 공존이 가능했던 까닭은 1선의 스위칭 전술에서 맨마킹에 헐거웠던 상대의 수비적 과부하 때문에 루니는 자유로운 섀도우롤을 최적화시켜 움직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경기를 진행할 때 스위칭의 433에서 1선의 움직임은 동적으로 자유로웠고, 호날두의 움직임은 측면에 제한되지 않았다. 그리고 그의 스피드와 드리블은 결국 상대 오프사이드를 종종 뚫어내곤 했다. 이것은 루니에게 집중할 수 있는 대인마크를 배제시키는 효과를 낳았다.
1213시즌 미들과 연계가 부드럽고, 볼을 잡지 않은 상황에서 득점이 가능했던 반페르시가 영입되면서 중원에선 득점을 스스로 마무리 지을 수 있는 옵션이 2개 존재했다. 반페르시, 루니 조합은 한명의 존재만으로도 득점이 가능했던 클래스다. 그런데 두명의 다른 조합은 시너지를 낳았다. 미들과 연계는 반페르시가 자유로운 동선이동이 가능한 루니의 섀도우롤은 후방에서 침투가 자유로웠기 때문에 헐거워진 중원에도 불구하고 이 둘에게 득점이 보장되었던 시즌이다.
하지만 루니 짝으로 반페르시만한 공격수 영입이 가능할까. 그리고 루니는 예전 루니가 아니다. 따라서 1,2번에서 언급한 전술보다 오히려 효율성이 떨어질 수 있는 전술이다. 다만 그를 대체할만큼 2선의 자원이 보강된다면 담시즌의 경기력을 재고해 볼 수 있다.
위의 언급된 세 선수들 가지고는 전술의 한판을 짜는데 각각의 부족분을 서로가 메꿀 수 없다. 세 선수 다 미들 자원으로 분류한다면 3미들에서 이들에게 어떤 시너지를 기대할 수 있을까. 마타는 수비력이 헬이고, 펠라이니는 좁은 활동 반경을 가지고 있고, 루니는 벌려주는 패싱력은 좋아도 경기 조율은 미숙하며, 올시즌 들어 득점과 연계된 행동이 부실하다.
그렇다면 누군가는 이들의 부족분을 메꾸거나 판을 다시 짜야 한다. 정확하게 말하면 우리 팀에 크랙이 없기 때문에 전술의 다변화를 지향하는데, 제약이 존재한다. 그런 의미에서 필자는 담시즌 무리뉴가 감독으로 부임하는 시점에 윙어 또한 제대로 영입되길 바라고 있다.
13..... 사실 요번에 만든 글은 20번까지 나갑니다. 그런데 다음 에디터에서는 그정도 분량이 감당 안되어서 이만 쓰려 합니다. 그림파일은 50개를 넘을 수 없고, GIF는 10mb를 넘을 수 없는 관계로 다음 편을 기약해야 할 것 같습니다. 쓰다 보니 50쪽이 넘어갔습니다. 이걸 어찌 해야 하나 좀 고민해 봐야 겠네요. 뭔가 똥싸다 중간에 끊고 나온 느낌이라 개운치는 않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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