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과 일본 그리고 예술
-『신라 할아버지』 에 대하여-
최윤정 평론집.
2000년, 문학과 지성사 발간. 『슬픈 거인』 에서
손끝에 묻은 “일본 독”을 빼기 위해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의 지혜가 한데 합쳐진” 경주에 정착, “우리 민족이 본래 가졌던 얼굴과 표정”을 자신의 인형에 담으려 애쓰는 공예가 수동이, 『신라 할아버지』는 그 수동이라는 인물이 공예가가 되기까지, 그리고 우리 문화를 설파하는 박물관 학교의 선생님이 되기까지의 이야기를 조선과 일본 땅을 오가며 그린 작품이다. ‘신라 할아버지’라는 다분히 작위적인 제목, 그리고
“우리 문화, 우리 정신, 우리 것을 소중히 여겨야 할 필요성을 잊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이 할아버지의 삶과 정신을 통해 우리 정신과 문화의 뿌리를 지켜나가는 생각을 가다듬어봤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합니다.”
라는 작가의 말은 어쩐지 이 작품이 독자에게 우리 문화를 일방적으로 주입하려는 것이 아닌가 하는 혐의를 갖게 했다. 그러나 그런 혐의는 작품을 읽어나가면서 말끔히 걷힌다. 일제시대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수동이의 삶의 이야기 자체가 독자를 집중시키는 힘이 있지만, 무엇ㅎ보다도 이 작품의 힘은 인형 만들기 라는 소재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30년간의 식민 통치 체험은 우리로 하여금 일본에 대하여 무조건 반감을 가지게 만들었고 지리적으로 가장 가까운 이웃 나라이면서도 일본에 대해 아주 무지하게 만들었다. 내 어린 시절을 돌이켜보아도 일본 하면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치는 ‘유관순 누나’를 무자비하게 공격하고, 독립 운동을 하나는 우리나라 사람들을 탄압하는 총칼 찬 순사들이 떠오른다. 내가 읽은 어떤 교과서도 동화책도 다른 모습의 일본 사람들을 보여주지 않았다. 그러니까 일본 사람은 공격적이고 나쁘고, 우리나라 사람은 선량하고 점잖다는 것이 거의 공식처럼 어린 내 머릿속에 박혀 있었다. 그리고 그런 사정은 우리 아이들에게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신라 할아버지』 에는 일본 사람들이 많이 나온다. “광주 학생 석방하라”를 외치는 조선의 학생들을 총칼로 때리는 순사도 나오고, 걸핏하면 “조센징은 할 수 없다.”며 조선 학생을 업신여기는 교사도 나오지만 위험을 무릅쓰고 도항증을 끊어주는 경찰서장이 나와 수동이로 하여금 “이때껏 웃을 줄 모르는 얼굴, 총칼을 들고 괴롭히는 게 일본 순사라는 생각을 고쳐”준다. 또한, 처음 일본 땅을 찾아가느라 모든 것이 서툰 수동이를 도와주는 마음씨 좋은 일본인들도 많이 나온다.
수동이가 일본에 간 것은 인형 만드는 법을 배우기 위해서였고, 어려움을 참아가며 노력한 끝에 인형 공예 작업 속에서 가와바다, 그리고 나카노코담과 진정으로 만나게 된다. 인형을 만드는 일 속에는 수동이와 가와바다 혹은 나카노코담에게 조선이과 일본인이라는 구별이 없다. 그들은 다 같이 인형을 만드는 사람일 뿐이다. 그들에게 분류가 필요하다면 조선인과 일본인이 아리나 인현 만드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라는 구별일 것이다. 인형을 만드는 그들에게는 예술가 의식이 있다. 예술 속에서 작가는 일본과 조선(그리고 한국)이 화해하기를 바란다. 그래서 수동이의 꿈속에서 “조선 인형과 일본 인형이 서로 어깨를 두드리며 악수를 ”나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따져보면 울 일본보다 너희 조선이 더 훌륭한 점이 많아.” “아니, 너희 일본도 좋은 점이 많아.” 일본과 한국의 화해는 허구임에도 불구하고 꿈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꿈일망정 “우리나라 사람과 일본 사람이 나란히 어깨를 겨루고 함께 살 날”을 그리는 작품은 지극히 드물다. 박경선의 좋은 점은 흑백 논리에 빠지지 않도록 정신이 깨어 있다는 점이다. 예술가를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을 보아도 그 점은 확인된다. 가와바디 씨는 술만 마시면 주정을 해대고 기자들이 찾아와 인터뷰를 하는 공예가 누님의 성공을 시샘하여 그녀를 쫓아내기까지 하는 치기어린 행동을 보인다. 죽은 지 십년이다 되는 아내를 잊지 못하는가 하면 “물건이나 사람을 한번 미워하는 병이 들었다 하면 한동안 그 마음을 아무도 주체할 수가 없.”다. 그러나 작가는 이처럼 “예술가의 나쁜 기질”만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나카노코담의 입을 빌려 전쟁 인형을 만들어 돈을 벌자는 조카에게 “난 장사꾼이 아닌 예술가야. 예술가의 할 일이 뭐니? 전쟁 중에 있SMS 사람들 마음에도 평화를 심어주어야 해.”라고 말한다. 또, 한 달이 걸려 제작한 불상을 운반 과정에서 수동이가 깨뜨리자 조용히 방안으로 들어가 불경을 외우며 화를 가라앉히는 나카노코담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야단을 맞지 않고 오히려 더욱 크게 뉘우치는 수동이에게 하는 다음과 같은 말은 작가가 이 작품 전체를 통해서 하고 싶은 말인지도 모른다. 우리 한국 사람들이 일본 사람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내가 화를 내어 꾸짖었다면 수동이 양반에게 교훈이 될 수 없었을 거에요. 화를 내어 말하는 건 어느 때라도 감동을 줄 수 없지요.”
수동이는 비로소 알았습니다. 화를 가라앉히고 상대를 용서한 뒤에 하는 이야기는 어떤 이야기라도 감동으로 받아들여진다는 사실을...
이처럼 입체적인 작가의 시선은 일본과 우리나라를 새롭게 생각하게 하고 “예술가의 길이 얼마나 힘들고 외로운 길인가를 마음속에 심어”준다. 그뿐만 아니라 수동이가 임종을 지키지 못한 어머니의 상을 당하여 고향에 내려가 관에 흙을 뿌리면서 흙은 늘 사람과 함께 있다는 걸 깨닫는 동시에 흙으로 인형을 빚는 일의 소중함을 되새기는 장면을 통해서 예술을 삶이나 죽음과도 연결시켜서 보여준다. 일본에 가서 배운 탓에 수동이의 인형에서는 어딘지 일본의 냄새가 난다.
“아름다움이란 그 고장에서 싹이 터서 그 고장에서 자라나 그 고장에서 꽃이 피는 ”것이라는 고유석 박물관장의 가르침과
“수동아! 네가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 죽어도 공예가로서의 네 꿈은 버리지 말아라. 뜻을 세우려면 세상에 어떤 일이라도 쉬운 게 없느니라.”라는 포은 선생 유적지에서의 깨달음을 통해 손끝에 묻은 일본독을 빼내고 아이들에게 우리 문화의 아름다움을 전하는 박물관 선생님이 되는 다분히 도식적인 구조의 이야기가 작품성을 획득할 수 있었던 것은 작가가 진지한 태도로 사태의 표면적 묘사에 머물지 않고 입체적인 시선으로 사물의 본질을 건드리면서도 흑백 논리에 빠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배타주의의 편협함에 갇히지 않은 이 작가에게서 우리 어린이 문학의 밝은 미래 한 자락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