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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백지역은 태백산을 중심으로 한강, 낙동강 등의 발원지가 모인 산으로 둘러 싸인 고원 지역이다. 고원과 바람의 나라, 태백에는 고생대자연사박물관이 자리하고 있다. 왠지 어울릴것 같지 않은 조합으로 보이지만, 태백에도 몇억년전에는 바다였기에 그 당시를 떠올릴 수 있는 지층 유적과 화석들이 많이 분포하고 있다. 고생대하면 경남 고성이나 전남 보성, 제주도를 많이 떠올리지만 태백의 고생대도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한 획을 긋고 있다.
평균 해발이 800m정도로 서울의 북한산이나 도봉산보다도 높은 곳에 위치한 도시이다. 그래서 연중 기온이 선선하고 여름철 밤에도 다른 지역의 불볕 더위와는 동떨어져 있다.
지금 이렇게 고지대의 산악지형에 있는 태백이 오래 전에 바다였다면 과연 믿을 수가 있을까?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을 훨씬 초월한 상상도 하기 힘든 아주 오래 전인 5억년 전의 이야기다.
태백고생대자연사박물관은 약 5억년 전기 고생대 오르도비스기의 지층위에 건립되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고 영험한 백두산이 하늘, 즉 천신을 상징한다면, 태백산은 지신, 즉 지상의 단군을 모시고 있는 성스러운 산. 이 태백산 분지에서 처음으로 삼엽충화석이 발견되어 이를 연구하기 시작한 것은 1924년 일본인 학자들이다.
1990년대 들어서야 체계를 잡고 본격적인 연구를 하여 밝혀진 바로는, 태백 일대가 약 5억년 전 고생대 캄브리아기 때, 얕고 넓은 바다였다고 한다. 그 때의 흔적이 지층 속에 남아 지금까지도 전설처럼 화석으로 전해 오고 있다.
왜 이런 산악지형속에 고생대박물관이 만들어졌을까. 그 이유는 바로 옆에 있는 구문소와 관계가 깊다. 구문소는 전기 고생대의 자연환경과 그곳에 살았던 생물의 역사를 추적할 수 있는 다양한 화석과 퇴적구조를 확인 할 수 있는 곳으로, 학술적 가치를 인정받아 주변에 고생대 자연사 박물관이 들어설 수 있도록 해주었다.
낙동강의 발원지인 황지연못에서 분출한 맑은 물이 황지천을 따라 흘러 연화산 끝자락을 뚫고 철암천과 만나게 되는 곳이 구문소. 구문소 일대는 태백산 분지에서도 화석이 풍부한 곳으로 삼엽충과 함께 필석류, 완족동물, 조개류, 복족류, 두족류 등, 다양한 화석이 발견되고 있다. 이처럼 고생대의 지질을 간직하고 있는 구문소는 여러 사람들이 새겨 놓은 글과 구멍들로 자연과 사람의 흔적을 간직해 가고 있다.
고생대박물관은 태백의 끝 언저리, 31번 국도를 따라 봉화로 가는 길, 구문소 옆에 자리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몇 안되는 국제규격의 레이싱 트랙인 태백레이싱파크와도 그리 멀지 않다. 박물관으로 들어가려면 일단 검은 악마가 입을 벌리고 서있는것처럼 특이한 지형의 구문소로 흘러가는 계곡을 건너야 한다. 태백이 좀 외진 지역이고 박물관은 더 깊숙한 곳에 있는지라 아직 사람들의 때를 덜 타지 않았다.
통유리 건물로 이루어진 고생대자연사박물관은 2층의 선캄브리아시대, 전기, 중기 고생대 구역, 3층 후기 고생대, 중생대, 신생대 구역, 그리고 1층의 화석발굴과 지질탐험을 느낄 수 있는 체험공간으로 나뉘어 있다.
신비로운 고생대에 대해 알 수 있도록 꾸며놓은 전시실을 꽤 유익하지만 왠지 낯선 용어들, 그리고 실물이나 사진보다는 딱딱한 자료로 이루어진 박물관은 성인들이 보기에도 어려워보인다. 좀 더 쉽고 이해하기 쉽도록 자료를 구성하고 배치하는것이 좋을것 같다. 물론 고생대의 자료를 찾고 생생한 설명을 함께 해놓는것이 워낙 어려운 일이겠지만 말이다.
자, 그럼 태백의 고생대자연사박물관에서 5억년의 시간을 거슬러 지구여행을 떠나보자.
태백고생대자연사박물관에 가려면 박물관 건너편의 주차장에 차를 세워두고 가야 한다. 주차장에서 나와 산길로 이어지는 도로를 십여분 정도 가면 레이싱파크가 있다.
고생대자연사박물관으로 들어가기 전 주차장 근처에 있는 공원을 먼저 산책코스로 잡아도 좋다. 천천히 걷는다 해도 30분이면 족하다. 주차장에서 나와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작은 언덕이 있다. 계곡 건너편 반짝이는 유리건물의 박물관은 물론 구문소터널과 구문소도 한눈에 볼 수 있다. 주차장 근처에는 출렁다리와 돌담공원, 야생화 정원 등이 있어 걸으면서 산책해도 좋고 벤치에 앉아 태백의 바람을 느껴도 된다.
3층으로 이루어진 고생대자연사박물관은 산아래 혼자 덩그렇니 놓여있어 좀 외롭게 보인다. 다리를 건너면서 아래를 보니, 열목어가 산다는 계곡에는 뭣 하나 찾아볼 수 없다. 맑고 차가운 물속에 어디선가 웅크리고 있을 물고기들은 겨울 동면에 접어들었나보다. 물안개가 낀 계곡 저 다리 아래로 내려가면 자연의 신비를 느낄 수 있는 구문소가 있다. 잠잠하게 흐르던 계곡은 구문소와 만나면서 급류를 이루고 용소같은 폭포도 만든다. 겨울이지만 날씨가 맑고 따뜻해 걷기에 좋다. 박물관 입구 다리를 건너다 보면 바닥의 타일마다 아기자기하게 고생대 화석을 만나며 화석을 맞추는 게임도 할 수 있다.
입구 안내소에서 입장권을 구입하고 해설사와 함께 고생대로의 여행을 떠난다. 전시실 입구에는 커다란 지구본이 있고 아래에는 지구의 나이를 24시간 즉 하루로 나눠 표시하고 있다. 하루 24시간 중 단 1분도 채 되지 않는 지금의 인류의 시간은 바닷가의 한알 모래에 비교할 수 있을만큼 희미하다. 그렇지만 지구의 시간도 인류의 탄생과 함께 비로소 빛을 발휘했으니, 인간이 없는 지구는 다른 행성처럼 무지의 시간일 것이다.
46억년 전의 지구의 모습과 생명이 처음 생겨나는 이야기를 한 눈에 들어오는 전시물을 통해 배울 수 있다. 안으로 들어가면 일단 지구의 탄생보다는 지구에 최초로 출현한 생명체의 기원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은하계의 작은 행성인 지구에 처음 생명체가 나타난 시기는 대략 35억년 전이다. 이 생명체는 단백질이란 요소로 탄생하게 되는데, 단백질이란 유기물이 만들어지면서 비로소 생명이 움텄다.
생명체의 탄생에 대한 학설은 대체로 세가지로 주장되는데, 첫번째 학설은 바로 열수기원설이다. 심해의 바다속에는 뜨거운 물이 나오는 열수배출구가 있는데, 이 배출구가 원시상태의 지구바다와 조건이 비슷해, 이곳에서 유기화합물이 생성되면서 이것을 먹이로 하는 박테리아와 여러 생명체들이 만들어졌단다.
두번째의 학설은 지구의 생명체가 우주에서 왔다는 운석기원설. 수십억년전 지구에 떨어진 운석속에 들어있던 유기화합물이 생명체를 탄생시켰다는데, 호주에 떨어진 운석에서 아미노산이 나오고 남극에서 발견된 운석에서도 박테리아 화석이 발견돼 관심을 모았다.
지구 생명체에 대한 학설 중 세번째는 바로 화학진화설. 원시 지구는 대기가 매우 불안정해 번개가 자주 치고 공기가 매우 뜨거웠는데, 번개에서 나온 전기와 고온의 무기물이 변화를 일으켜 유기물이 되었고 이 유기물들이 생명체로 진화했다. 이 화학진화설은 미국의 스탠리 밀러라는 과학자의 실험으로 증명되었는데, 물론 밀러의 실험이 완전하지는 않았지만 원시 대기중에서 생명체가 탄생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줬다.
세가지의 학설 중 어떤 주장이 옳을지는 아마 신만이 알고 있지 않을까. 확실한 증명이 안된 증거자료와 연구, 실험만으로 오묘하고 신비로운 지구의 탄생과 발전에 대해 어떻게 알 수 있을까만.
지구의 나이는 대략 46억살로 알려졌다. 100년도 채 못사는 인간이 어찌 범접할 수 있는 시간이랴. 그리고 약 35억년 전 바다속의 박테리아들이 햇빛을 받아 광합성 작용을 해서 지구에 드디어 산소가 생긴다. 박테리아들이 내뿜은 산소가 점점 많아지면서 바다를 가득 채우고, 바다 이외의 공기중까지 나오게 되면서 육지에도 비로소 생명체가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이 갖추어진다. 그러니까 인간을 비롯한 모든 생명체의 기원이 물이며, 바다라는 말이 틀린것은 아닌가 보다. 처음 생성된 지구는 매우 뜨거웠는데, 차차 시간이 흐르며 지구의 온도도 내려가고 땅의 뜨거운 열기도 하늘로 증발된다. 하늘로 상승한 수증기가 구름이 되어 비가 내리고 뜨거운 대지를 적시며 지구는 점점 식어간다. 이 비로 인해서 바다가 만들어졌고 수많은 생명체가 잉태될 수 있는 조건으로 진화해 간 것이다.
지구의 역사를 살펴보면, 처음 생성되기 시작한 46억년 전에 시작된 선캄브리아시대는 대략 5억 4천만년 전까지 계속된다. 지구의 일생을 따지면 선캄브리아시기는 갓난아기 같은 상태이다. 막 알을 까고 탄생한 지구가 오늘의 지구의 모습을 갖추어가는 시기가 바로 선캄브리아시대.
선캄브리아 시대를 거치면서 후기에는 단세포가 아닌 다소 복잡한 다세포 생물체들이 출현한다. 바닷속에서 머리와 피부, 내부 기관이 있는 복잡한 다세포 생명체가 등장하는데, 호주 에디아카라 언덕에서 발견된 화석들이 제일 크고 유명해 보통 이 시기의 생명체 화석들을 에디아카라 동물군이라 한다. 에디아카라 동물군은 처음에는 단단한 골격이 없이 몸으로 영양분을 흡수했지만, 차차 치열한 생존 경쟁을 거치면서 단단한 껍질과 집게발 등을 갖추면서 빠른 속도로 진화했다. 에디아카라 동물군을 대표하는 생물로는 스리리기나, 에르니에타, 랭기아, 사이클로메두사 등이다.
지구의 유아기인 선캄브리아시대에는 전세계의 지형이 평평했고 높은 산맥같은 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오늘날 지구에 존재하는 각종 동식물 그리고 인간의 기원은 바로 원핵생물이다. 지구의 생명체의 모태가 된 원핵생물은 세포 안에 뚜려한 핵이 없는 원핵세포로 이루어진 단세포생물이다. 원핵생물의 대표적인 예가 바로 박테리아이다. 35억 년 전 지층에서 발견된 '스트로마톨라이트'는 최초의 원핵생물인 시아노박테리아가 광합성을 하고 산소를 내뿜었던 흔적이 남아있는 암석 속의 퇴적구조이다.
이 작은 단세포생물인 박테리아가 산소를 만들기 시작하면서 지구상에 생명체가 탄생하게 되었다. 바로 태백의 검룡소와 황지의 작은 연못 한줄기 물줄기가 한강과 낙동강이라는 큰 강을 만든 것과 비슷한 이치이다. 그리고 치열한 경쟁을 통해 정자와 난자가 만나 한점 씨앗이 사람을 탄생하는 생명의 신비도 유사한 것이다.
캄브리아기의 후기에는 다양한 형태의 생명체들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기 시작한다. 이러한 대폭발과 혼돈의 시기에 잘 적응한 생물들은 살아남았고 그렇지 못한 종들은 사라져간다. 진화의 빅뱅 시기인 캄브리아기 대폭발. 이 생명대폭발로 인해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물의 조상이 나타난다. 이 시기에 최초로 눈을 가진 생물인 잘 아는 삼엽충이 출현한다. 선캄브리아기 생명대폭발로 인해 나타난 생물군을 보면, 고대 오징어인 원시송곳조개, 새우와 비슷한 모습의 생타카리스, 5개의 눈을 가진 오파비니아, 갑각류의 조상인 카나다스피스, 척추동물의 조상격인 피카이아, 그리고 고생대 바다를 지배했던 고생대 말 페름기에 지구상에서 종적을 감춘 삼엽충 등이 등장했다.
전기 고생대에는 본격적으로 하나로 뭉쳐있던 원시지구의 대륙들이 이동하면서 갈라지기 시작한다. 한 덩어리로 붙어 있던 초대륙인 로디니아는 선캄브리아대 말기에 여러 조각으로 분리되기 시작하는데, 대륙이 분리되면서 많은 지진과 화산활동이 일어났고 이 때문에 수증기, 이산화탄소, 메탄 등의 온실가스가 나와 지구가 달궈지기 시작했다. 고생대의 태동기인 캄브리아기부터는 대륙의 주변부가 따듯하고 얕은 바다가 만들어지고 좋은 환경에서 서식하는 생물들이 번성하였다.
오르도비스기에 번성한 삼엽충을 뒤이어 실루리아기에는 보다 다양한 육상생물이 나타난다. 고생대 실루리아기에는 최초로 땅위에 동물이 출현하는데, 대부분의 일생을 물속에서 생활했던 현대 양서류의 조상이다. 건조기에는 살던 호수가 말라버리자 다른 물을 찾아 호수로 이동하기 위해 지느러미 모양의 다리를 이용하기도 했다. 또한 쿡소니아, 칼라미테스, 리니아 등의 속이 빈 관을 지닌 관다발 식물이 점점 진화해 속씨식물과 양치류 등의 식물이 선보인다. 그 중 쿡소니아는 화석으로 발견된 것중 가장 오래된 육상식물이다.
전기 고생대의 바닷속에는 이런 생물들이 어울려 살아가고 있었다. 약 4억년 전 데본기에는 어류와 양서류의 조상들이 세상에 모습을 보인다. 데본기를 어류의 시대라고도 하는데, 특히 턱이 없고 단단한 골판으로 머리를 감싼 갑주어류가 번성했고 폐어와 상어도 번성했다. 이들 중 갯벌이나 진흙처럼 물이 거의 없는 곳에서도 호흡이 가능했던 폐어는 양서류로 진화했다. 이들은 데본기의 숲속에 살았으며, 육지를 기어 다니는 최초의 척추동물이었다.
고생대박물관에 살아 있는 생물은 볼 수 없었는데, 지나가다 수조에 뭔가 있기에 쳐다보니, 마치 고대의 화석같은 생명체가 작은 미동을 보여 주었다. 일명 투구게라고 하는데, 가오리같은 모양이다. 투구게 옆에는 둥근 유리관에 거대한 물체가 눈에 들어왔는데, 커다란 삼엽충이었다. 마치 외계의 괴물같은 모양이 범상치 않아 보였는데, 툭툭 치면 덤벼들까봐 지나가면서 조용히 숨을 죽이고 눈치를 보면서 살폈다.
고생대를 대표하는 생물은 뭐니뭐니해도 삼엽충이다. 고생대의 시계, 고생대 바다의 지배자라 불리던 삼엽충은 캄브리아기에 나타나 고생대 말 페름기에 지구상에서 사라진다. 절지동물인 삼엽충은 세부분으로 몸이 나눠졌기에 삼엽충이라 불린다. 현재까지 15,000여 종의 삼엽충이 발견되었는데, 몇 cm부터 1m에 육박하는 대형 삼엽충도 생존했었다.
왜 삼엽충에 고생대의 시계란 별명이 붙었을까. 그건 삼엽충이 고생대의 지층속에서 발견되는 표준화석이기 때문이다. 표준화석이란 일정한 시기에만 번성해 화석으로 묻혀 지층의 나이를 변별하게 해주는 화석인데, 이 표준화석으로 그 시대의 지층의 나이와 생명체를 구분하게 해준다. 태백에서 발견되는 삼엽충도 그 당시의 표준화석과 비교해보면 따듯하고 생물이 많았던 바다였음을 알 수 있다. 어떤 지층에서 삼엽충이 발견되면 바로 그 지층이 고생대 동안 퇴적된 지층이라는 것을 알려준다.
고생대는 캄브리아기, 오르도비스기, 실루리아기, 데본기, 석탄기, 페름기 등으로 나뉜다. 데본기를 지나 석탄기에는 양서류들이 물을 떠나 삶의 터전을 넓히기 위해 보다 건조한 내륙의 대지로 진출한다. 그 결과 양막을 가진 알을 낳는 파충류가 출현하는데, 초기의 파충류는 50cm 정도의 작은 크기였다. 그렇다가 점차 자연환경에 적응하고 생존을 위해 중생대가 되면서 몸집도 커지고 날렵해진 공룡으로 변하게 되었다.
후기고생대를 주름잡던 에다포사우르스, 스쿠토사우르스, 고르고놉스 등이 유리관 속에서 울부짓고 있다. 고르고놉스 부부가 갓 세상으로 나온 알을 침입자로부터의 공격에 지키면서 사방을 정찰하고 있다.
고생대 석탄기와 페름기를 거치면서 수중으로 점차 진출한 생물들은 폐어는 양서류로, 다시 파충류로 진화했다. 그리고 따듯하고 습한 원시림에서는 곤충과 양치식물이 번성하면서 양서류와 파충류의 개체수를 늘려갔다. 이때 땅에서 살던 곤충들도 길이가 70cm인 메가네우라 잠자리와 30cm의 날개가 달린 프로토파스마라는 바퀴벌레서 보이는 등 하늘을 나는 생명체로 점차 변모했다.
이렇게 번성하던 고생대도 후기로 접어들면서 대멸종의 시대를 맞이한다. 약 2억 5천만년 전인 페름기 말기에 지구상에 존재하는 대부분의 생명체가 멸종되는데, 이 후기고생대 대멸종 사건으로 고생대는 종말을 맞이하고 중생대가 열리게 된다.
후기고생대의 대멸종에 대해서는 화산활동설, 초대륙 판게아 영향설, 운성충돌설 등의 다양한 가설등이 있다. 이때 페름기의 약 800만년에 걸쳐 일어난 멸종으로 약 96%의 생명체가 사라지게 되었고, 특히 삼엽충이 지구상에서 완전히 자취를 감추고 원시 파충류들이 멸종하면서 그 자리를 공룡들이 채우게 된다.
태백 지역에서 발견된 삼엽충의 화석 뿐만 아니라 세계 각지의 희귀한 화석과 암석들이 전시되어 있다. 지층의 나이와 그곳에서 퇴적된 생명체의 화석을 관람하는것은 신비롭고 아늑한 지구 여행의 시간을 준다. 하지만 이름도 생소한데다가 영어 표기가 많아 그렇게 팍팍 가슴에 다가오지 않음은 좀 아쉽다.
약 25억년의 역사를 간직한 한반도는 5억년 전에 지금과 같은 완전한 모습을 갖추게 된다. 역시 딱딱한 생명체와 지구의 신비를 알아보는 시간은 재미가 없다. 생소한 전문용어들과 감이 안오는 시대를 이야기하려니, 영 뭔가가 어색하다.
잠깐 쉬어가는 시간, 태백의 8경이나 살피면서 휴식을 취한다.
1경 - 고조선 단군 시대에 쌓았다는 하늘에 제를 지내는 신령스런 태백산 천제단. 2경 - 박물관 옆에 있는 낙동강 상류 황지천이 암반을 뚫고 지나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고생대의 보고 구문소. 3경 - 한강, 낙동강, 오십천의 분수령이 되는 해발 920m의 고개인 삼수령. 4경 - 남한강과 낙동강의 근간이 되는 풍력발전기와 고랭지 배추밭의 풍경이 아름다운 1,330m의 매봉산 바람의 언덕. 5경 - 주목과 고사목 군락이 있고 본적암, 묘점암 등의 암자가 자리한 고원의 싱싱함을 만날 수 있는 함백산 설경. 6경 - 야생화의 보고이며 고려 유신들이 세운 사직단이 있었다는 태고의 자연을 만날 수 있는 대덕산 금대봉의 야생화 군락지. 7경 - 우리나라 근대 산업기의 중요한 시설이었으며 1935년 일제 강점기에 세워져 지금까지 가동중인 철암역두선탄장. 8경 - 조선 시대 예언가였던 정감록에 피난지로 알려졌던 하늘과 맞닿은 고원의 풍경에 넋을 잃게 하는 삼수동 산촌마을.
태백 8경이라하여 순서를 정하긴했지만 우열을 가리기 힘들만큼 모두 아름다운 곳이다. 한곳 한곳 모두 나름의 내력과 인생의 피력이 깊게 밴 선경과 역사를 보여주는 곳이다. 내가 꼽는 8경, 또는 인생의 8대 사건을 꼽으라면 과연 어떤 것을 떠올려야 할까.
2층 전시실에서 푹신한 계단을 따라 잠시 올라가면 3층 중생대, 신생대 전시실을 만나게 된다.
후기 고생대의 대멸망의 시기를 지나면서 본격적인 중생대가 시작된다. 중생대는 트라이아스기, 쥐라기, 백악기 등으로 나뉘는데, 본격적으로 체구가 큰 공룡과 육상 동식물들이 출현하게 된다. 중생대를 대표하는 것은 뭐니뭐니해도 파충류의 대장격인 공룡과 암모나이트이다. 공룡들도 처음부터 체구가 크고 날카로운 이빨과 발톱을 가진 것은 아니었다. 초창기에는 작고 가벼운 몸체와 두발로 걷는 육식공룡이었고 원시 초식공룡인 원시 용각류도 출현했다.
비록 작고 힘없어 보이는 공룡이지만 이놈들도 여럿이 뭉쳐서 공격하면 삼십육계 줄행랑을 쳐야 한다. 언제 앞으로 와서 확 날라 목덜미를 물을지도 모른다. 저 뱀같은 눈과 이빨에 당한다면 생각만해도 끔찍하다. 보통 초식공룡은 발톱의 끝이 뭉툭하고 발가락 3개가 뚜렷이 보이지만 육식공룡은 발가락 폭이 좁고 발가락 끝이 날카롭다. 초식공룡들의 발자국은 둥글고 네 발로 걸었기 때문에 앞발과 뒷발의 자국을 쉽게 구별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보통 뼈화석보다는 공룡 발자국화석과 알화석이 많이 발견되는 편이다. 경남 고성군 덕명리를 비롯해 경북 의성 제오리, 전남 해남 우항리, 전남 화순 서유리 등지에서 발자국 화석이 발견되었다. 대표적 공룡알 화석지로 경기 시화호, 전남 보성, 경남 고성이고, 최근에 여러 지역에서 공룡 뼈와 발자국 화석이 발견되고 있다.
중생대에 살았던 원시 깃털을 가진 공룡인 딜롱. 앞쪽의 뿔과 함께 볼에도 두개의 뿔이 달려 있고 꼬리에는 마치 논의 벼마냥 꼿꼿한 털이 붙어 있다. 그리고 잔디를 심어놓은 것처럼 온몸을 뒤덮은 털복숭이 공룡도 있다.
공룡들이 주름잡던 시대였지만 그 시대에도 다소 낯선 모습의 포유류들도 나름 진화하고 있었다. 공룡처럼 긴 꼬리가 있지만 늑대나 개의 모습을 한 머리와 사자의 발을 연상시키는 날카로운 발톱도 달려 있다. 점차 긴 꼬리가 짧아지고 발톱도 포유류의 특성에 맞게 진화하면서 적응해갔다. 하지만 중생대에는 파충류와 포유류의 중간 형태로 다소 긴 두개골과 아직 완전히 발달하지 못한 치아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몸체가 큰 공룡들이 지배하던 중생대는 쥐라기에 번성하다가 후기인 백악기를 지나면서 멸망하게 된다. 약 6,500만년 전 공룡을 비롯한 바다악어, 익룡 등을 비롯한 대부분의 생명체가 사라지고 그 자리를 조류와 포유류, 도마뱀, 거북 등이 대신하게 되었다. 이 당시 공룡을 비롯한 중생대 백악기 생물의 약 반이 사라졌다고 한다.
그 큰 등치의 공룡들이 왜 멸종했을까 하는 점은 지금까지도 의문으로 남아 있다. 다만 백악기 말에 거대한 운석이 지구와 충돌해 지진이나 해일 등이 발생하고 화산재와 먼지 등이 햇빛을 차단해, 빙하기가 시작되고 초식공룡, 육식공룡까지 멸망했다고 하는 운석충돌설이 근거로 사용되고 있다. 거대한 공룡들도 먹어야 하는 초식공룡이 사라지니 자연스레 사라지게 된 것이다. 요즘도 거대한 공룡기업들이 자리를 잡지 못해 사멸하는 것을 볼 수 있다. 큰 몸집으로 위세를 떨치면서 작은 기업들을 집어 삼키지만 결국 살아갈 방도를 찾지 못하고 망해가는 것. 큰 시련에는 거대한 규모보다는 내실을 다지면서 미래를 열어가야 한다는 교훈도 느낄 수 있다.
현재의 지구와 생물의 모습으로 점차 변모해가는 시기인 신생대. 신생대는 포유류의 시대라고 할 수 있다. 다양한 포유류와 어류, 양서류 등이 본격적으로 현재와 같은 모습으로 출현한다. 그리고 흩어지고 모이기를 반복했던 지구의 대륙들도 현재와 같은 모습으로 정렬된다.
5천만년전의 에오세, 1,400만년전의 마이오세를 거치면서 현재에 이른 지구. 남아메리카와 북아메리카가 다시 연결되고 아메리카와 아프리카 대륙 사이는 더욱 벌어졌다. 그리고 인도 대륙은 유라시아와 충돌하여 히말라야 산맥을 만들고 남극 대륙은 지금의 남극점으로 이동했다. 신생대인 3천만년전, 아시아의 대륙에서 떨어져 나간 대륙 일부가 남쪽으로 이동하기 시작한다. 이렇게 이동한 틈으로 태평양의 바닷물이 밀려들어오면서 바다 모양이 만들어진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 우리나라의 동해.
크기와 모양에서 다양한 포유류가 왕성하게 생성되던 신생대. 그야말로 포유류의 시대를 열게 되었다. 포유류는 공룡과 익룡 등이 멸종한 이후 신생대 4기에 가장 번성했다. 포유류는 파충류에 비해 지능이 높고 민첩하며 몸이 털로 덮혀 있어 더위나 추위에 강했다. 그래서 포유류는 짧은 기간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종에 비해 빠른 속도로 진화할 수 있었다. 신생대 초기의 포유류들은 대부분 작은 몸집과 뇌를 가지고 있었지만 점차 몸과 머리가 커지고, 네다리의 구조도 생활습관과 자연환경에 따라 네발, 두발 등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신생대의 포유류들은 낮은 기온에 적응하고 체온을 유지하기 위해 점점 몸집이 커졌는데, 매머드, 대형 들소, 비버 등은 북아메리카에, 대형 캥거루와 몸집이 큰 오리너구리는 호주에 살았고, 아시아 일부와 유럽 지역에는 동굴곰, 코끼리 및 대형 사슴이 살고 있었다.
신생대의 포유류는 말과 닮은 메리키푸스, 현재의 코끼리의 조상인 마스토톤, 곰포테리움, 파키케투스, 메소니키드 등이 대표적.
현재 지상에서 가장 큰 동물인 코끼리의 조상인 장비목도 신생대에 탄생했다. 장비목은 유라시아, 아프리카, 아메리카에 분포했던 포유류인데, 긴 코와 상아, 넓은 다리, 육중한 몸을 가지고 있었다. 코기리의 조상인 장비목은 매머드, 룩소던트, 엘리파스의 3가지 종류로 진화하였는데 매머드는 빙하기에 번성했다 사라졌고, 룩소던트는 오늘날의 아프리카 코끼리로, 엘리파스는 인도 코끼리로 진화하였다.
초기 장비목은 긴 코와 상아가 없었는데, 이 후 코의 길이와 크기가 다양해지고 상아의 모양도 여러 가지 형태로 진화한다. 긴 코는 입술과 코의 끝이 늘어난 것이고, 거대한 상아는 위턱의 앞니가 자란 것이다.
가끔 설원의 빙하에서 화석으로 발견되는 매머드는 약 480만 ~ 4천 년 전까지 살았던 동물이다. 코끼리와 비슷하지만 털이 있었고, 훨씬 더 육중해서 어깨까지의 높이가 4.5m에 이르는 것도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전라북도 부안군과 함경북도 길주군에서 매머드 화석이 발견되기도 하였다.
지구상의 생명체 중에서 늦게 탄생한 지금의 인류. 약 540만년 전 영장류에서 갈라져 진화한 원시인류의 등장으로 현재의 인류가 출현하게 되었다. 영장류는 유인원과 우너시인류 두종으로 갈라졌는데, 원시 인류는 시간이 흐르면서, 거주하는 지역과 환경에 따라 여러 단계를 거치면서 진화하였다.
흔히 침팬지나 고릴라를 원시 인류라고 착각하기도 하는데, 그들이 현재 인류의 조상이라기보다는 사촌쯤에 해당한다. 유인원과 원시인류의 차이는 바로 두발로 직립보행을 했냐 하는것. 인간은 유인원과 달리 직립보행을 하는데, 덕분에 걸을 때 팔을 이용해 물건을 운반하고 도구를 만들게 되면서 점차 뇌가 발달하고 언어를 사용하는 등 높은 지능을 갖게 되었다.
최초의 인류와 비슷한 원시인류는 아프리카에서 발견된 700만년전의 사헬란트로푸스 차덴시스, 그리고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390만년전의 오스트랄로페테구스 아파렌시스. 그리고 도구를 사용하는 사람이란 뜻의 호모 하빌리스는 현재 인류와 비슷한 모습이었다. 그 후 호모 에렉투스, 호모 네안데르탈렌시스 등의 시대를 거쳐 현생인류인 지혜가 있는 사람이란 뜻의 약 20만년 전에 출현한 현생인류인 호모 사피엔스로 진화하였다.
전시실을 나와 복도로 가면 여러 가지의 테마로 이루어진 포켓 전시관이 있다. 고생물 친구, 삼엽충 전시관에서는 직접 삼엽충 표본을 보고 색을 입혀 출력까지 할 수 있는 재미를 더하고 있다.
작은 포켓전시관에서는 시멘트의 원료로 알려진 석회석을 살펴볼 수 있다. 양질의 석회암을 제품의 원료로 사용할 때는 고품의 석회석이라 부르는데, 시멘트 뿐만 아니라 종이, 의약품, 화장품 등의 원료로 사용된다. 고생대의 석회암과 최신의 신생대의 석회암을 비교해놓은 공간에서는 그 차이를 느낄 수 있다.
1층으로 가면 지질탐험과 화석발굴 등을 체험하고 직접 화석으로 탁본을 할 수 있는 체험실이 있는데, 딴짓하다 들러보진 못했다. 아까비. 대신 구문소를 만날 수 있었다.
포켓전시관을 지나 통유리로 만든 테이블에서 잠시 창밖을 바라보며 휴식을 취한다. 태백의 맑은 공기 위로 흘러가는 구름 속에서 튀어 나온 밝은 햇살이 유리창을 뚫고 들어온다.
고생대자연사박물관을 나와 구문소로 가는 길은 마치 잘 꾸며놓은 산책로를 연상케 한다. 인근 유치원에서 나온듯한 아이들이 인솔하는 교사와 생태안내가의 설명을 들으면서 화석도 찾아보고 물소리에 귀도 귀울인다.
햇살을 받아 쳐다보기에도 눈부신 박물관을 40여분 정도 둘러보고 나가는 길엔 완전하게 떠오른 햇님이 방긋한다. 계곡 건너편 작은 공원의 팔각정과 소나무가 한폭의 그림을 떠올리게 한다.
강원도 태백시 태백로 2249 < 033 - 581 - 8181> , http://www.paleozoic.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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