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 용봉사로 1... (대전IC를 지나며)
예산군 덕산면 상가리에 있는 흥선대원군 이하응(李昰應)의 아버지 남연군 (南延君) 이구(李球)의 묘... 南延君 묘의 지세는 한마디로 풍수지리가 일컫는 명당의 조건을 모두 갖춘 곳이다. 1822년 남연군이 서거한 뒤 연천(漣川)에 모셨다. 그 뒤 지관에게 천하의 명당을 부탁하였는데 지관은 가야산 동쪽에 2대에 걸쳐 천자가 나오는 자리(二代天子之地)가 있고 광천 오서산에는 만대에 영화를 누리는 자리(萬代榮華之地)가 있다고 했다. 흥선군은 두말할 것도 없이 가야산을 택했다. 하지만 이 자리는 가야사라는 절 앞에 탑(塔)이 있는 곳이다.
대원군은 우선 연천에 있는 묘를 가야사 근처로 옮기고, 사찰에 불을 지르면서 중을 몰아내고, 탑을 부순 다음에 탑 자리에 묘를 이장(移葬)하였다. 그 후 흥선대원군을 아들 재황((載晃, 명복)을 얻었는데 바로 훗날 고종이다. 또 그 아들이 순종이 되었으니 2대 天子를 본 것만큼은 틀림이 없다. 한편 조선 역사의 왕위 계승을 보면 헌종(憲宗)이 대를 잇지 못하면서 사도세자(장조)의 아들인 은언군의 손자가 등극하였다. 바로 철종으로 헌종의 재당숙이다. 이렇게 선왕(先王)이 항렬이 아래인 경우는 조선 역사상 세조(世祖)와 단 둘이다.
이로 인하여 헌종의 어머니(익종 비(翼宗妃)인 조대비는 불편한 마음이었단다. 또한 남연군은 인조의 아들인 인평대군의 혈손(血孫)이다. 그는 13촌 되는 사도세자의 아들인 은신군(은언군의 동생)의 양자(養子)로 입적(入籍)되어 갑자기 순조와 4촌간이 되었다. 남연군의 손자인 재황이 등극하니 바로 고종으로 헌종과 8촌간이다. 한편 독일인 오페르트(Oppert)가 조선과의 통상교섭에 실패한 뒤 대원군과 다시 흥정하기 위하여 이 묘의 시체와 부장품을 도굴하려다 미수에 그쳤다. 이 사건으로 대외적으로는 서양인의 위신이 크게 떨어졌고, 크게 노한 대원군은 통상수교 거부정책을 강화하고 천주교 탄압을 가중시켰다.
이와 같이 사찰을 폐허화시키고 묘를 쓴 사건이 또 있으니 홍성의 용봉사다. 현 사찰 서편의 조금 높은 곳에 있던 옛 절이 명당임을 안 평양조씨(平壤趙氏)가 18세기 후반 무렵 절을 폐허화시키고 그 자리에 묘를 썼단다. 권력이란 무소부위(無所不爲)라 독일인 오페르트보다 더한 것이 아닌지... 無所不爲하니 전OO 고스톱이 생각난다. 비 광 하나만 있으면 상대방이 획득한 패 중에서 가져오고 싶은 것을 빼 오는 경우이니 이보다 더 무서운 것이 있으랴... 오늘 여행길 한화관광을 따라 용봉사로 여행을 떠났다. 대전-당진간 고속도로를 달린다.
홍성 용봉사로 2... (삽교를 지나며)
한편 섰다에는 끼지도 못하는 비 광... 고스톱에서도 광(光)의 대접을 못 받는 미운오리새끼다. 막내 쌍피 보다 인기가 없는 비운의 광이랄까? 하지만 광박 위기에서 살려주고 5광이라는 영광을 누리려면 비 광이 필수품(必需品)이다. 비 광을 보면 선비와 두꺼비가 있다. 비 오는 날 두꺼비가 물방울이 파리인줄 알고 열심히 뛰어서 결국 잡아먹는 모습이다. 오랫동안 과거에 실패한 선비... 떨어져서 낙향하는 도중에 두꺼비가 파리를 잡아먹는 모습을 예감(豫感)하면서 열심히 노력하여 훗날 과거에 합격하였다니 대기만성(大器晩成)이 아닌가?
일제 강점기 들어온 화투(花鬪)... 그 타령(他領)은? ‘정월 솔에 쓸쓸한 내 마음, 이월 매화에 매어 놓고, 삼월 벚꽃에 산란한 내 신세, 사월 흑싸리에 축 늘어지네. 오월 난초에 나는 흰나비, 유월 목단에 웬 초상인가, 칠월 홍돼지 홀로 누워, 팔월 공산 허송한다. 구월 국화 굳어진 내 마음, 시월 단풍에 우수수 지네. 동지 오동에 오신다던 임은, 섣달 비 장마에 갇혀만 있네.’ 국민 오락인 花鬪... 어느 카페에 나온 내용으로 당시 식민지에 대한 삶의 허무함을 표현하였다. 여행길은 예산IC를 빠져 나가 국도 45번을 따라 삽교(揷橋)로...
섭다리가 변하여 삽다리... 한자화 한 것이 揷橋란다. 그 유래는 삽교 근처에 살고 있는 아씨... 친정어머니의 부음(訃音)을 받고 다리를 건너지 못하는 애타는 마음... 마을 주민이 힘을 모아 섭다리를 놓아 건너게 하였단다. 일설에는 흥선대원군이 아버지인 남연군의 묘를 이장할 때 섭다리를 놓았다는 설도 있다. 한편 삽교에 가면 곱창 생각이 산다. 서민들의 대표적인 먹을거리였던 곱창... 저지방, 저칼로리 영양 건강식품으로 식도학가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삽교역 근처의 할머니 곱창(338-2641)이 소문난 맛집이란다.
또한 삽교는 조영남(趙英男)의 고향이다. 1.4후퇴 때 남하한 그는 삽교로 피난 와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음악에 취미가 있는 그는 서울대학을 다녔으나 학비 조달로 미군악단에서 노래를 부르면서 가수로 활동하였다. 1969년에 딜라일라(Delilah)를 한국어로 번안(飜案)한 곡으로 가요계에 데뷔하였다. 그는 김시스터즈 내한 공연에 초청되어 ‘신고산 타령’을 불렀는데, '와우 아파트 무너지는 소리에'로 개사(改詞)하여 불렀다가 미움을 사서 군대에 입대하였다. 박대통령 앞에서 이애리수의 ‘황성옛터’를 부를 것을 요청받았지만 분위기를 띄울 목적으로〈각설이 타령〉을 불러 위기에 직면하게 된 적도 있었단다.
홍성 용봉사로 3... (덕산을 지나며)
그는 예산이 고향이라 ‘내 고향 충청도’를 불렀지만 뭐라 해도 ‘화개장터’가 최고의 히트곡이다. 이혼한 후 공백 기간이 있을 때 의지가 되어주었던 김한길의원이 가사를 쓰고 본인이 작곡한 이 노래는 그를 TOP 가수 반열에 올랐다. ‘전라도와 경상도를 가로지르는’으로 시작한 화개장터... 영호남 갈등이 생각난다. 하지만 김영삼 대통령의 서거(逝去)로 국가장... 서로 갈등을 녹여 통합과 화합을 할 수 있는 용광로 장례위원회가 되었으면 한다. 또한 그는 ‘체험 삶의 현장’ ‘지금은 라디오 시대’ 등에 출현하여 방송인으로 맹활약하고 있다.
삽교읍을 지나면 덕산면.. 덕풍현과 이산현을 합병함으로서 덕산현으로 개칭되었다. 이곳의 덕산온천(德山溫泉)... 약알칼리성 중탄산 나트륨천으로 만성 류머티즘을 비롯하여 피부미용에 이르기까지 효능이 다양하다. 이율곡 선생이 온천의 유래를 자신의 저서인 ‘충보(忠寶)’에서 날개와 다리를 다친 학(鶴)이 논의 물을 열심히 상처에 찍어 바르고 있는 모습을 설명하였단다. 자연적으로 분출되는 온천수가 어머니의 젖과 같은 효과를 지녔다고 해서 그 터를 지구유(地球乳)라 하고 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옛날부터 탕치객(湯治客)이 모여들었다는 기록이 있지만 실제 개발은 일제 강점기다.
서산방면으로 가면 충의사... 윤봉길(尹奉吉) 의사의 애국 충절이 서린 곳이다. 장부 출가 생불환(丈夫出家 生不還)이란 유서를 남기고 망명길에 오른 윤봉길... 상해 홍커우(虹口)공원에서 일본 천황의 생일인 천장절 날 전승 축하 식장을 폭파하여 군 수뇌부를 사상(死傷)케 하고 순국(殉國)하였다. 이 거사를 두고 중국의 장제스는 ‘중국의 100만 대군도 해내지 못한 일을 한국 용사가 단행하였다.’라고 높이 평가하였다. 이는 중국인은 물론 국제적으로도 한국 독립운동에 큰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되어 적극 지원을 받았다.
그래도 덕산에 오면 백제 위덕왕(威德王) 때 지명(智明)이 처음 세운 것으로 추정되는 수덕사(修德寺)를 빼 놓을 수가 없다. 원효(元曉), 나옹(懶翁) 스님이 중수(重修)하였다고 전해지는 이 수덕사는 일제강점기 경허(鏡虛), 만공(滿空), 일엽(一葉)스님이 거쳐 간 곳이다. 특히 문필가로 날리던 일엽(一葉) 스님... 화가 나혜석과 함께 대담한 행동과 필설로 여자의 사회활동을 선구적으로 보여 주고 일깨웠단다. 한편 이곳의 대웅전... 봉정사 극락전, 부석사 무량수전과 더불어 국내에 현존하는 오래된 목조건물이다. 이제 용봉사로...
홍성 용봉사로 4... (용봉사애서)
덕산에서 609번을 타고 내려가니 우측으로 수암산, 용봉산이 줄을 잇는다. 좌측으로는 충남도청이 있는 내포 신도시... ‘행복한 변화 새로운 충남, 충남도청(내포)신도시’라는 경축 간판이 보이는 뒤로 용봉산이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다. 본청동과 별관동은 홍성군에, 의회동과 문예회관은 예산군에 속해 있다. 이는 백제시대의 한성. 웅진. 사비와 현재의 충남을 상징화 하고 또 4개동이 아래로부터 기운을 타고 합쳐져 하늘로 웅비하는 웅장한 언덕을 형상화 하고 있단다. 한편 경찰청은 예산에, 교육청은 홍성군에 속한다.
용봉산 주차장에 도착한다. 주차장 위에 있는 용봉산 시네마 자동차 극장(632-8123)... ‘은은한 달빛과 반짝이는 별을 보며 둘만의 공간에서 잊혀지지 않는 달콤한 추억을 쌓아보고 싶지 않으세요.’ 유혹적인 광고다. 라이트를 끄고 주파수를 맞추면서 편안한 자세로 영화를 관람할 수 있는 곳... 젊은 세대에 맞을 듯하다. ‘분위기 좋아 좋고, 맛 좋아 좋고, 값 싸서 좋고, 좋고 좋고 좋고’... 그 뒤의 식당광고도 일품이다. 용봉산 자연 휴양림을 따라 오르니 일주문(一柱門)이다. 물속에 사는 고기들은 용(龍)의 지배를 받고, 땅에 사는 온갖 짐승과 새는 봉황(鳳凰)의 지배를 받는다 해서 용봉산이라 부른단다.
좁은 터에 축대를 쌓고 지은 용봉사(龍鳳寺)... 대웅전을 비롯하여 지장전, 삼성각, 적묵당 등의 전각(殿閣)과 마애불입상, 영산회 괘불탱이 문화재가 있다. 또 옛터에 마애석불, 석조(石槽)와 절구, 거대한 맷돌이 평양 조씨에게 빼앗긴 사찰의 아픔을 대변하고 있다. 한편 김대중, 김영삼 대통령은 대전 현충원에 대통령 묘역(墓域)이 있는데 굳이 동작동 국립묘지를 고집하는지... 사병 묘역에 안장된 채명신 장군이 더 돋보인다. 병풍바위, 용바위, 의자바위, 사자바위 등을 돌면서 용봉산을 떠나 김좌진(金佐鎭) 장군 사당으로...
청산리(靑山里) 80리 계곡에서 유인되어 들어온 일본군을 섬멸(殲滅)한 金佐鎭 장군... 백운평, 천수평, 마록구 등지에서 연전연승, 개가(凱歌)를 올린 민족의 영웅이었으나 41세에 공산주의자에게 암살당하였으니 안타까운 일이다. 생가 앞에 비문(碑文)... ‘할 일이... 할 일이 너무 많은 이때에 내가 죽어야 하다니... 그게 안쓰러워서’ 마지막 순간까지도 독립에 열정을 되새긴다. 여행길은 남당리로... 영조 때 학자 한원진이 낙향하여 그의 호를 따라 남당리라 불렀다. 대하로 입맛을 돋우고 대전으로 오면서 여행을 마친다. 고맙습니다.
위는 용봉사 아래는 김좌진 장군 사당에 있는 석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