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밀직부사공(密直副使公)께서 개국원종공신(開國原從功臣)이셨던 증빙자료
* 아울러 전리판서(典理判書) 휘(諱) 광리(光利), 판도판서(版圖判書) 휘(諱) 안리(安利)께서 개국원종공신(開國原從功臣)이셨음을 증빙(證憑)할 자료
이원길(李原吉) 개국원종공신녹권(開國原從功臣錄券)-[국보 제250호]
이 녹권은 태조 4년(1395) 윤 9월에 공신도감에서 원종공신 전좌우위보승별장(前左右衛保勝別將) 이원길(李原吉)에게 발급된 개국원종공신녹권이다.
공신녹권은 나라에 공이 있는 인물에게 공신으로 임명하는 증서로 내린 것인데, 이 개국공신녹권은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가 나라를 세우는데 공헌한 신하들에게 내린 것이다.
개국원종공신 제도는 조선시대에 개국공신을 늘리려는 의도에서 만들어진 일종의 새로운 포상제도로, 1392년부터 1397년까지 여러 차례에 걸쳐 1,400여 명에게 봉해졌다. 서두에 ‘공신도감(功臣都監)’이란 글에서 시작되는 개국원종공신녹권은 모두 공신도감에서 발급한 것으로, 이 문서에 나오는 인명은 총 695명이다.
문서의 첫머리와 시행일자, 그리고 이은 부분 개자(改字) 부분에는 「이조지인(吏曹之印)」이란 인장(印章)이 22 군데 날인되어 있다. 그리고 녹권 발급에 관여한 공신도감 임원 18명 중 4명만이 수결(手決)이 없고, 다른 임원은 직함과 성명 다음에 서명ㆍ수결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 문서는 말미에 공신도감의 임원, 직명이 적힌 23항(行)이 목판이고, 그 외의 부분은 모두 목활자로 인쇄되어 조선초기 인쇄문화를 살피는 데 귀중한 자료이며. 조선 전기 개국공신에 대한 대우 및 국가성립에 영향을 미친 인물에 대한 연구, 공신록의 양식과 관련하여 중요한 가치를 지닌 역사적 자료로 평가된다.
이 자료의 크기는 폭 30.4cm, 길이 372cm이며, 한 행에 9∼12자까지 수록하여 전체 243행을 이루고 있다. 판종은 목활자에 목판이 일부 포함되어 있다. 문서 끝 부분에 공신도감 임원, 직명이 기록된 23행만 목판으로 되어 있으며, 나머지는 목활자로 인출한 권자본이다. 전체에 걸쳐 '禮曹之印(예조지인)'이 22곳에 날인되어 있고, 권말의 임원의 서명 부분에는 전체 18명 중 14명의 수결이 직함과 성명 다음에 기록되어 있다. 이 록권은 기존에 알려진 김천리록권(金天理錄券)·김회련록권(金懷鍊錄券)과 내용상 거의 같고, 특히 김천리의 록권과 많이 일치하며, 김회련의 록권은 개자(改字)가 많고 글씨체도 단정하지 못하며 보충자도 많은 까닭에 약간의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이 세 록권은 이원길·김천리·김회련과 같은 순서로 일치하며 록권에 따른 은전이 없다. 다른 록권들과 달리 이들 록권에 토지를 사급하지 않은 것은 태조 4년(1395) 5월에 대간의 상언(上言)에서 국가의 군량을 확보하기 위하여 원종공신에게 토지지급을 중지할 것을 건의한 것이 받아들여진 것으로 이 록권들은 대부분 9월에 발급되었다.
이들 록권 자료는 조선 전기 개국공신에 대한 대우와 국가 성립에 영향을 미친 인물에 대한 연구, 공신록의 양식, 조선 초기 목활자 자료들에 대한 분석, 이두문의 사용과 문체 등의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서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
************
<原文과 國譯>
功臣都監
공신도감이 발급함
功臣,前左右衛保勝別將,李原吉,本完山
공신 전 좌우위 보승별장 이원길(李原吉). 본관이 완산임.
右員乙,原從功臣錄券良中,奇是臥乎事叱段
위의 관원을 원종공신 녹권에 부치시는 것은
洪武二十五年十月日,都評議使司出納內,洪武二十五年十月初九日,都承旨安景恭次知 ,口傳王旨,義興親軍衛,簽節制使崔允壽,定州都護府使皇甫蓋等,二百十三員, 亦勤勞於內,或奔走於外,積以歲月,予甚多之
홍무 25년(1392) 10월 일 도평의사사의 출납 내에서, “홍무 25년(1392) 10월 9일 도승지 안경공(安景恭)이 담당한 구전 왕지(口傳王旨)에서 이르기를 ‘의흥친군위 첨절제사 최윤수(崔允壽), 정주 도호부사 황보개(皇甫蓋) 등 213원(員)은 내직에서 근로하였는가 하면 혹 외직에서 분주하기도 하였으되 오랜 세월을 보냈으니, 내가 매우 훌륭하게 여겼노라.
及兇徒結儻謀亂,變生不測,乃能從一二將相之計,請聲其惡,兇徒伏辜,以勞以功,在所當賞,其功臣之號,褒賞之典,有司擧行爲良如敎事,是去有等以,王旨內事意乙用良,啓受使內向事,出納是白齊
그런데 흉포한 무리들이 편당(偏黨)을 만들어 난역을 모의함에 변란이 예측할 수 없는 데에서 일어날 상황에 이르러서는 마침내 한두 사람의 재상 및 장수의 계책에 따라 그들의 악행을 성토할 것을 청했던 결과 흉포한 무리들이 처벌을 받게 되었으니, 수고한 일로 보나 세운 공적으로 보나 상을 주어야 마땅하다. 공신의 칭호와 포상하는 은전을 유사(有司)가 거행하여라.’고 하셨으므로, 왕지 내의 취지로써 계품(啓稟)하여 윤허를 받도록 할 일이다.”는 뜻으로 출납하였다.
洪武二十六年十二月日,都評議使司出納內,洪武二十六年,七月二十二日,都承旨 李稷次知,口傳王旨,南陽伯永通,領三司事宗源等,一百二十七員,亦自辛氏竊位.亂極思治之際,而安危皆注意於予,喩德宣譽,馴致今日,功亦不細矣.其褒賞之典,有司擧行爲良如敎是齊
홍무 26년(1393) 12월 일자 도평의사사의 출납 내에서, “홍무 26년(1393) 7월 22일 도승지 이직(李稷)이 담당한 구전 왕지에서 이르기를 ‘남양백(南陽伯) 홍영통(洪永通)과 영삼사사 안종원(安宗源) 등 127원은, 신씨(辛氏)가 왕위를 훔치자 난세가 극도에 이르러 다스려진 세상을 그리워하게 된 때부터, 안전하거나 위태롭거나 간에 모두 나에게 관심을 기울이면서 도덕을 깨우쳐주고 명예를 퍼뜨려줌으로써 점차 오늘날에 이르도록 하였으니, 그 공로가 적지 않다. 포상하는 은전을 유사가 거행하여라.’고 하셨다.
洪武二十六年,七月二十七日,左承旨李懃次知,口專王旨,紀功行賞,古有令典,矧當創始之初,是宜先擧其功,判開城府事仁烈,器宇雍容而有遠見,自予出將入相之日, 乃以舊識,注意寡躬,捍衛之功,誠有焉.判內侍府事師幸,於踐祚之初,閫則粗立而未備,歷擧前朝盛時之宮儀,損過益不及,而飾內助之治,功可錄也.
홍무 26년(1393) 7월 27일 좌승지 이근(李懃)이 담당한 구전왕지에서 이르기를, ‘공적을 기록하고 상전(賞典)을 베풂에 대해서라면 예전에 훌륭한 전범(典範)이 있었다. 더구나 나라를 창시한 초기를 당해서는 마땅히 먼저 그 공적을 현양(顯揚)하여야 한다. 판개성부사 우인열(禹仁烈)은 의표(儀表)가 온아(溫雅)하면서 깊은 식견을 지녔는데, 내가 출장입상(出將入相)하던 시절부터 오래 사귄 친구로서 과인(寡人)의 몸에 관심을 기울였으니 보호해 준 공이 참으로 있었다. 판내시부사 김사행(金師幸)은 내가 즉위한 초기에 곤칙(閫則)이 엉성한 채 아직 갖추어지지 못했을 적에 앞 왕조의 흥성하던 시대의 궁중 법도를 낱낱이 들추어보고 지나친 점을 줄이는 한편 모자라는 점을 보태어서 내조(內助)의 치적을 아름답게 꾸몄으니, 그 공적을 기록할 만하다.
同判內侍府事尹祥,李匡,知內侍府事安居等,雖未及此,補助之益,蓋多有之.亦可錄也,三司左僕射仲和,前門下贊成事石璘等八員,亦自辛氏竊位,亂極思治之際,而安危皆注意於予,其褒賞之典,有司擧行爲良如敎是齊.
동판내시부사 윤상(尹祥) 및 이광(李匡), 지내시부사 안거(安居) 등은 비록 이 정도에는 미치지 못한다 할지라도 보조해준 유익함이 많이 있었으니, 또한 기록할 만하다. 삼사좌복야 권중화(權仲和), 전 문하찬성사 성석린(成石璘) 등 8원은, 신씨(辛氏)가 왕위를 훔치자 난세가 극도에 이르러 다스려진 세상을 그리워하게 된 때부터, 안전하거나 위태롭거나 간에 모두 나에게 관심을 기울였으니, 포상하는 은전을 유사가 거행하여라.’고 하셨다.
洪武二十六年,七月二十九日,左承旨李懃次知,口傳王旨,紀功行賞,古有令典,矧當創始之初,是宜先擧其功,前判三司事仁裕,前判開城府事韓蕆等六十一員,亦自辛氏竊位,亂極思治之際,而安危皆注意於予,喩德宣譽,馴致今日,功亦不細矣.檢校密直副使方澤,檢校中樞院副事乙俊等十一員,亦方卽位之時,俱在日官,心不疑貳,謹卜天時,勸登大位,其功亦可賞巳,其褒賞之典,有司擧行爲良如敎是齊.
홍무 26년(1393) 7월 29일 좌승지 이근(李懃)이 담당한 구전 왕지에서 이르기를, ‘공적을 기록하고 상전(賞典)을 베풂에 대해서라면 예전에 훌륭한 전범(典範)이 있었다. 더구나 나라를 창시한 초기를 당해서는 마땅히 먼저 그 공적을 현양(顯揚)하여야 한다. 전 판삼사사 강인유(姜仁裕), 전 판개성부사 한천(韓蕆) 등 61원은, 신씨(辛氏)가 왕위를 훔치자 난세가 극도에 이르러 다스려진 세상을 그리워하게 된 때부터, 안전하거나 위태롭거나 간에 모두 나에게 관심을 기울이면서 도덕을 깨우쳐 주고, 명예를 퍼뜨려줌으로써 점차 오늘날에 이르도록 하였으니, 그 공로가 적지 않다. 검교밀직부사 유방택(柳方澤)과 검교중추원부사 노을준(盧乙俊) 등 11원은 내가 막 즉위할 무렵에 모두 일관(日官)으로 있으면서 두 마음을 품지 않은 채 삼가 천시(天時)를 점치고 대위(大位)에 오를 것을 권고하였으니, 그 공도 또한 상줄 만하다. 포상하는 은전을 유사가 거행하여라.’고 하셨다.
洪武二十六年,七月二十九日,左承旨李懃次知,口傳王旨,紀功行賞,古有令典,矧當創始之初,是宜先擧其功,前典書天守天祐等,五百九十五員,亦於予出將入相三十餘年,許身以死,備嘗艱險,捍衛寡躬,俾保生民,又致坐成代業,式至今休,功誠不能忘也.或適遠而擧義之日,雖有不與焉者,前功安敢略乎,有司宜悉載賞典亦敎事是白齊
홍무 26년(1393) 7월 29일 좌승지 이근(李懃)이 담당한 구전 왕지에서 이르기를, ‘공적을 기록하고 상전(賞典)을 베풂에 대해서라면 예전에 훌륭한 전범(典範)이 있었다. 더구나 나라를 창시한 초기를 당해서는 마땅히 먼저 그 공적을 현양(顯揚)하여야 한다. 전 전서 홍천수(洪天守) 및 김천우(金天祐) 등 595원은 내가 출장입상(出將入相)하던 30여 년 동안 목숨을 걸고 몸을 바쳐 온갖 고난을 다 겪으면서 과인의 몸을 지켜주고 백성들을 보호함으로써 또한 왕업을 쉽사리 이룩하게 하고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아름답도록 하였으니, 그 공을 참으로 잊을 수 없다. 어떤 사람은 원방에 나간 바람에 거의(擧義)하던 날 참여하지 못한 경우도 있었지만, 지난날의 공을 어찌 감히 소홀히 볼 수 있겠는가. 유사는 의당 모두 상전(賞典)에 실어야 한다.’고 하셨다.
洪武二十六年,八月十日,左承旨李勳次知,口傳王旨,敷奏以言,明試以功,而報其庸者,古之道也.判校書監事文中,大將軍趙卿等,自予在潛邸,安危注意,艱險不避,以至今日,其褒賞之典,有司擧行爲良如敎事,是去有等以,王旨內事意乙用良,使內向事 出納是白齊.
홍무 26년(1393) 8월 10일 좌승지 이근(李懃)이 담당한 구전 왕지에서 이르기를, “치적을 말로써 진술하여 아뢰면 능력을 공으로써 분명히 시험하여 각각 그 공로에 보답하였으니, 이는 고대의 치도(治道)이다. 판교서감사 송문중(宋文中)과 대장군 조경(趙卿) 등은 내가 잠저(潛邸)에 있었을 때부터 안전하거나 위태롭거나 간에 관심을 기울여 어렵고 험한 일을 피하지 않은 채 오늘날에 이르렀으니, 포상하는 은전을 유사가 거행하여라.’고 하셨다. 그러므로 왕지 내의 취지로써 하도록 <계품(啓稟)하여 윤허를 받도록> 할 일이다.”는 뜻으로 출납하였다.
洪武二十七年正月日,都評議使司出納內,洪武二十六年七月二十九日,左承旨李懃次知 ,口傳王旨,紀功行賞,古有令典,矧當創始之初,是宜先擧其功,前鷄林尹李觀, 檢校贊參門下府事茂宣等十員,亦自辛氏竊位,亂極思治之際,安危注意於予,喩德宣譽,馴致今日,功亦不細矣.其褒賞之典,有司擧行爲良如敎事,是去有等以,王旨內事意乙用良 使內向事 出納是白齊
홍무 27년(1394) 1월 일자 도평의사사의 출납 내에서, “홍무 26년(1393) 7월 29일 좌승지 이근(李懃)이 담당한 구전 왕지에서 이르기를, ‘공적을 기록하고 상전(賞典)을 베풂에 대해서라면 예전에 훌륭한 전범(典範)이 있었다. 더구나 나라를 창시한 초기를 당해서는 마땅히 먼저 그 공적을 현양(顯揚)하여야 한다. 전 계림윤(鷄林尹) 이관(李觀)과 검교참찬문하부사 최무선(崔茂宣) 등 10원은, 신씨(辛氏)가 왕위를 훔치자 난세가 극도에 이르러 다스려진 세상을 그리워하게 된 때부터, 안전하거나 위태롭거나 간에 모두 나에게 관심을 기울이면서 도덕을 깨우쳐주고 명예를 퍼뜨려줌으로써 점차 오늘날에 이르도록 하였으니, 그 공로가 적지 않다. 포상하는 은전을 유사(有司)가 거행하여라.’고 하셨으므로, 왕지 내의 취지로써 하도록 <계품(啓稟)하여 윤허를 받도록> 할 일이다.”는 뜻으로 출납하였다.
洪武二十七年三月日,都評議使司出納內,洪武二十六年八月十五日,左承旨李懃次知,口傳王旨,前門下贊成事安翊,前黃州牧使希古等十一員,亦自辛氏竊位,亂極思治之際,而安危皆注意於予,喩德宣譽,馴致今日,功亦不細矣.其褒賞之典,有司擧行爲良如敎事,是去有等以,王旨內事意乙用良,使內向事,出納是白齊.
홍무 27년(1394) 3월 일자 도평의사사의 출납 내에서, “홍무 26년(1393) 8월 15일 좌승지 이근(李懃)이 담당한 구전 왕지에서 이르기를, ‘전 문하찬성사 안익(安翊)과 전 황주 목사 조희고(趙希古) 등 11원은 신씨(辛氏)가 왕위를 훔치자 난세가 극도에 이르러 다스려진 세상을 그리워하게 된 때부터, 안전하거나 위태롭거나 간에 모두 나에게 관심을 기울이면서 도덕을 깨우쳐주고 명예를 퍼뜨려줌으로써 점차 오늘날에 이르도록 하였으니, 그 공로가 적지 않다. 포상하는 은전을 유사(有司)가 거행하여라.’고 하셨으므로, 왕지 내의 취지로써 하도록 <계품(啓稟)하여 윤허를 받도록> 할 일이다.”는 뜻으로 출납하였다.
洪武二十七年正月日,都評議使司出納內,洪武二十六年八月十七日,左承旨李懃次知,口傳王旨,紀功行賞,古有令典,矧當創始之初,是宜先擧其功,前書雲正金寶,前軍器少監成乞等三十九員,亦於予出符入相三十餘年,許身以死,捍衛寡躬,俾保生民, 又致坐成代業,式至今休,功誠不能忘也,或適遠而擧義之日,雖有不與焉者,前功安敢略乎.其褒賞之典,有司擧行爲良如敎事,是去有等以,王旨內事意乙用良,使內向事,出納是白齊.
홍무 27년(1394) 1월 일자 도평의사사의 출납 내에서, “홍무 26년(1393) 8월 17일 좌승지 이근(李懃)이 담당한 구전 왕지에서 이르기를, ‘공적을 기록하고 상전(賞典)을 베풂에 대해서라면 예전에 훌륭한 전범(典範)이 있었다. 더구나 나라를 창시한 초기를 당해서는 마땅히 먼저 그 공적을 현양(顯揚)하여야 한다. 전 서운정(書雲正) 김보(金寶)와 전 군기소감 성걸(成乞) 등 39원은 내가 출장입상(出將入相)하던 30여 년 동안 목숨을 걸고 몸을 바쳐 온갖 고난을 다 겪으면서 과인의 몸을 지켜주고 백성들을 보호함으로써 또한 왕업을 쉽사리 이룩하게 하고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아름답도록 하였으니, 그 공을 참으로 잊을 수 없다.어떤 사람은 원방에 나간 바람에 거의(擧義)하던 날 참여하지 못한 경우도 있었지만, 지난날의 공을 어찌 감히 소홀히 볼 수 있겠는가. 포상하는 은전을 유사(有司)가 거행하여라.’고 하셨으므로, 왕지 내의 취지로써 하도록 <계품(啓稟)하여 윤허를 받도록> 할 일이다.”는 뜻으로 출납하였다.
洪武二十八年二月初九日,都評議使司出納內,洪武二十八年二月初五日,都承旨韓尙敬次知,口傳王旨,商議中樞院事彦修員乙良,功臣邦慶例以施行爲良如敎事,是去有等以,王旨內事意乙用良,使內向事,爲等如出納是白有亦,王旨內思審是白內乎矣.右事叱段,上項功臣等亦,或自殿下潛邸之時,服勤內外,積以歲月,及其兇徒謀亂, 卽從一二將相之計,請聲其罪,以沮其謀爲白齊
홍무 28년(1395) 2월 9일자 도평의사사의 출납 내에서, “홍무 28년(1395) 2월 5일 도승지 한상경(韓尙敬)이 담당한 구전 왕지에서 이르기를, ‘상의중추원사 홍언수(洪彦修) 1원은 공신 윤방경(尹邦慶)의 예(例)로써 시행하라.’고 하셨으므로, 왕지 내의 취지로써 하도록 <계품(啓稟)하여 윤허를 받도록> 할 일이다.”는 뜻으로 통틀어 출납하였다. 그러므로 왕지 내의 의도를 살펴보건대, 이상의 일은 위의 공신들 중 어떤 사람들은 전하(殿下)께서 잠저에 계셨을 때부터 안팎에서 수고하면서 오랜 세월을 쌓았는데, 흉포한 무리들이 난역을 모의함에 이르러서는 즉시 한두 사람의 재상 및 장수의 계책에 따라 그들의 악행을 성토할 것을 청하여 그 모의를 저지하였다.
或自辛氏竊位,亂極思洽之際,而安危注意於殿下,喩德宣譽,馴致今日爲白齊.或於殿下出將入相三十年間,許身以死,不避艱險,捍衛殿下,馴致今日爲白齊.或方殿下卽位之初,閫則未備,而損益前朝盛時之制, 以餙宮儀爲白齊.
어떤 사람들은 신씨(辛氏)가 왕위를 훔치자 난세가 극도에 이르러 다스려진 세상을 그리워하게 된 때부터, 안전하거나 위태롭거나 간에 모두 나에게 관심을 기울이면서 도덕을 깨우쳐주고 명예를 퍼뜨려줌으로써 점차 오늘날에 이르도록 하였다. 어떤 사람들은 전하께서 출장입상(出將入相)하던 30여 년 동안 목숨을 걸고 몸을 바쳐 어렵고 험한 일을 피하지 않으면서 전하의 몸을 지켜드려 점차 오늘날에 이르도록 하였다. 어떤 사람들은 곤칙(閫則)이 아직 갖추어지지 못했을 적에 앞 왕조의 흥성하던 시대의 제도에서 지나친 점을 줄이고 모자라는 점을 보탬으로써 궁중의 의절(儀節)을 아름답게 꾸몄다.
或方殿下卽位之時,在於日官,謹卜天時,勸登大位爲白齊爲等如.王旨內貌如,功勞可尙是白敎等用良,更良功臣職名單字,申聞爲白叱乎亦中,科科以分例敎矣.
어떤 사람들은 바야흐로 전하께서 즉위하실 무렵에 일관(日官)으로 있으면서 삼가 천시(天時)를 점치고 대위(大位)에 오를 것을 권고하였다. 이들은 통틀어 왕지 내의 뜻과 같이 가상하다. 그러므로 다시 공신직명단자(功臣職名單子)를 신문(申聞) 하였더니, 거기에 대해 전하께서 낱낱이 분례(分例)하셨다.
前府使皇甫盖,陳義貴,李滉,洪保,卒檢校侍中李崇,故檢校門下府事崔茂宣,前知門下致仕金得齊,前密直尹就,權鈞,柳蕃,觀察使李至,節制使李希忠,前密直副使郭璇,權鉉,權顯,金天理,檢校中樞院使金之瑞,原賓柳方澤,盧乙俊,前開城尹李舒原,柳瑚,鄭義,前節制使丁令孫,故檢校密直副使周原,前簽節制使朴鄰祐,前典書姜儒,廉廣原,朴諠,尹順,田饒,朴忱,呂遇,辛良貴,奇琠,高義,鄭原輔,崔潤文,安仁吉,鄭復,閔仲萱,洪沙顔,洪承祐,崔天,盧承慶,康允柱,任天年,姜陽,權衷,趙瓊,禹文粹,金遜.
전 부사 황보개, 진의귀, 이황, 홍보, 졸 검교시중 이숭, 고(故) 검교문하부사 최무선, 전 지문하치사(致仕) 김득제, 전 밀직 윤취, 권균, 유번, 관찰사 이지, 절제사 이희충, 전 밀직부사 권현, 권현, 김천리, 검교중추원사 김지서, 원빈, 유방택, 노을준, 전 개성윤 이서원, 유호, 정의, 전 절제사 정령손, 고 검교밀직부사 주원, 전 첨절제사 박린우, 전 전서 강유, 염광원, 박의, 윤순, 전요, 박침, 여우, 신량귀, 기전, 고의, 정원보, 최윤문, 안인길, 정복, 민중훤, 홍사안, 홍승우, 최천, 노승경, 강윤주, 임천년, 강양, 권충, 조경, 우문수, 김손.
朴之原, 朴原植, 安吉, 申夏, 黃允奇, 朴萬龍, 孫原忠, 郭萬慶, 金安理, 洪章善, 金命山, 李原實, 金子河, 安義, 權遜, 金居道, 金智山, 趙仁琇, 林永荗, 許準, 張原甫, 前兵馬使李龜鐵, 前上將軍康候, 前判書金暄, 前門下評理柳惠孫, 前提學李誠中, 牧使李龜齡, 金懷鍊, 前牧使李衍修, 朴義龍, 金之鉉, 蔡克敬, 丁子偉, 鄭原厚, 金斗南, 姜思德, 曹仲生, 黃居中, 故牧使李丘直, 判事李慇, 曹庶, 池巨源, 前判事玉山, 奇石抹, 成彦, 金開, 李艶, 黃琥, 梁原奇, 李有芬.
박지원, 박원식, 안길, 신하, 황윤기, 박만룡, 손원충, 곽만경, 김안리, 홍장선, 김명산, 이원실, 김자하, 안의, 권손, 김도거, 김지산, 조인수, 임영무, 허준, 장원보, 전 병마사 이귀철, 전 상장군 강후, 전 판서 김훤, 전 문하평리 유혜손, 전 제학 이성중, 목사 이귀령, 김회련, 전 목사 이연수, 박의룡, 김지현, 채극경, 정자위, 정원후, 김두남, 강사득, 조중생, 황거중, 고 목사 이구직, 판사 이은, 조서, 지거원, 전 판사 옥산, 기석말, 성언, 김개, 이염, 황호, 양원기, 이유분.
李英奇, 崔思哲, 金南用, 楊天祿, 朴寅吉, 朴原吉, 安世, 高永壽, 李原貴, 朴彦, 朴靖變, 也仙不花, 鄭瑚, 李延哲, 李之用, 李興林, 郭允庇, 朴大祐, 李鷹, 徐仁庇, 金原, 梁原守, 金原龍, 成乙寶, 崔松幹, 仁平, 金之銑, 李文, 大將軍高鳳禮, 前卿 鮮于吉, 尹佐, 金膺, 李仁祐, 崔安兩, 朴理, 李瑀, 嚴永富, 趙之玉, 丁夢吉, 崔混, 姜廉, 朴鳳, 魯彦, 諫議吳陞監, 韓彦, 蔡仁哲, 金德成, 嚴仁敬, 前監仇自平, 朴乙生.
이영기, 최사철, 김남용, 양천록, 박인길, 박원길, 안세, 고영수, 이원귀, 박언, 박정변, 야선불화, 정호, 이연철, 이지용, 이흥림, 곽윤비, 박대우, 이응, 서인비, 김원, 양원수, 김원룡, 성지보, 최송간, 인평, 김지선, 이문, 대장군 고봉례, 전 경 선우길, 윤좌, 김응, 이인우, 최안량, 박리, 이우, 엄영부, 조지옥, 정몽길, 최혼, 강렴, 박봉, 노언, 간의 오승, 감 한언, 채인철, 김덕성, 엄인경, 전감 구자평, 박을생.
池哲, 李玉, 李允成, 李瑛, 崔濚昌, 原祐, 李思恥, 白寶, 金甲生, 金順任, 地藏, 李都介, 黃旱雨, 尹福海, 朴先祐, 金哲, 李芬, 崔原富, 金哲, 李順吉, 金田富, 前知州事李渾, 李白卿, 朴原吉, 李之剛, 文石柱, 前令都云壽, 朴英吉, 辛天乙, 張天奇, 前正李韞, 趙千, 咸原, 文之祐, 朴云生, 裴允桂, 咸承彦, 白漢鄰, 朴允遜, 金仁浩, 崔原隰, 雲伯不花, 李原祥, 金仲南, 閔天生, 辛用儒, 崔思潤, 劉阿郞介, 廉公柱, 辛之奉, 玄用富.
지철, 이옥, 이윤성, 이영, 최영창, 원우, 이사치, 백보, 김갑생, 김순임, 지장, 이도개, 황한우, 윤복해, 박선우, 김철, 이분, 최원부, 김철, 이순길, 김전부, 전 지주사 이혼, 이백경, 박원길, 이지강, 문석주, 전 영(令) 도운수, 박영길, 신천을, 장천기, 전 정(正) 이온, 조천, 함원, 문지우, 박운생, 배윤계, 함승언, 백한린, 박윤손, 김인호, 최원습, 운백불화, 이원상, 김중남, 민천생, 신용유, 최사윤, 유아랑개, 염공주, 신지봉, 현용부.
鄭渚, 尹哲, 金柱, 朴延, 任世珍, 徐天吉, 徐承啓, 洪天倫, 朴天祐, 朴文贊, 崔毛多吾, 知州事秦吉修, 李陟, 黃演, 前左尹朴文吉, 鄭允富, 盧琠, 前尹 白原, 池福龍, 池得龍, 正劉旱雨, 前摠郞李啓林, 金自珍, 辛原吉, 前將軍金久珍, 韓興寶, 朴依, 前少監權之祐, 任得富, 朴成龍, 吳臣傑, 白仁寶, 金程, 朴仁包, 金乙忠, 盧英伯, 金貴生, 金興, 朴眞啓, 崔原者, 邊得龍, 金敬德, 全仁儉, 金生麗, 張仁貴, 金章, 方龍, 金成吉, 尹奇, 辛鄰.
정저, 윤철, 김주, 박연, 임세진, 서천길, 서승계, 홍천륜, 박천우, 박문찬, 최모다오, 지주사 진길수, 이척, 황연, 전 좌윤 박문길, 정윤부, 노전, 전 윤 백원, 지복룡, 지득룡, 정 유한우, 전 총랑 이계림, 김자진, 신원길, 전 장군 김구진, 한흥보, 박의, 전 소감 권지우, 임득부, 박성룡, 오신걸, 백인보, 김정, 박인포, 김을충, 노영백, 김귀생, 김흥, 박진계, 최원자, 변득룡, 김경덕, 전인검, 김생려, 장인귀, 김장, 방룡, 김성길, 윤기, 신린.
朱萬, 姜伯, 金原冏, 韓大安, 千韓順, 李成傑, 崔英守, 前少卿李得坊, 李興門, 朴桂孫, 龍天奇, 廉邦吉, 李牧, 李松, 姜好舍好, 李良, 將軍黃似蘭, 李衎, 內史舍人安束, 少監盧湘, 副正李貞杞, 前少尹黃得雨, 全德生, 金贊延, 上左李英乙, 金自和, 前副令林逸, 李天彦, 廉之甫, 金之彦, 金斤, 前副正朴文柱, 李長壽, 李英發, 王壽龍, 朴得淵, 權祐, 張原祿, 金連, 李加勿, 金仟, 崔也吾乃, 朴乙沖, 盧臣啓, 朴祿, 李原己, 楊震, 劉玉.
주만, 강백, 김원경, 한 대안, 천한순, 이성걸, 최영수, 전 소경 이득방, 이흥문, 박계손, 용천기, 염방길, 이목, 이송, 강호사호, 이량, 장군 황사란, 이간, 내사사인 안속, 소감 노상, 부정 이정기, 전 소윤 황득우, 전덕생, 김찬연, 상좌 이영을, 김자화, 전 부령 임일, 이천언, 염지보, 김지언, 김근, 전 부정 박문주, 이장수, 이영발, 왕수룡, 박득연, 권우, 장원록, 김련, 이가물, 김천, 최야오내, 박을충, 노신계, 박록, 이원기, 양진, 유옥.
徐連, 金原迪, 林之侯, 崔乙奇, 劉仁吉, 朴根, 金連, 李南秀, 金呂, 崔允珍, 朴 和, 朴興, 孟守, 石承守, 金原奇, 韓天奇, 崔澤, 張良, 邊永奇, 訓鍊觀司直李陽生, 三軍府鎭撫宋興寶, 前正郞金穩, 前中承李端, 前牧判官徐勣承, 金堆, 張思彦, 中郞將全亮, 李得貴, 金希, 金逸, 金南逸, 朴臣忠, 韓得雨, 金重器, 金貴, 金溫, 朴順和, 李支興, 前監務 朴陽生, 前中郞將吳允義, 崔原奇, 李原中, 林乙成, 李仁祐, 李之奉, 申桯, 金原富, 朴興達, 金仁甫, 邊成萬, 鄭天富.
서련, 김원적, 임지후, 최을기, 유인길, 박근, 김련, 이남수, 김려, 최윤진, 박화, 박흥, 맹수, 석승수, 김원기, 한천기, 최택, 장량, 변영기, 훈련관사직 이양생, 삼군부진무 송흥보, 전 정랑 김온, 전 중승 이단, 전 목판관 서적승, 김퇴, 장사언, 중랑장 전량, 이득귀, 김희, 김일, 김남일, 박신충, 한득우, 김중기, 김귀, 김온, 박순화, 이지흥, 전 감무 박양생, 전 중랑장 오윤의, 최원기, 이원중, 임을성, 이인우, 이지봉, 신정, 김원부, 박흥달, 김인보, 변성만, 정천부.
金天延, 宋仁祐, 孔奇, 李芸, 尹之原, 金成柱, 庾天老, 李仁守, 池原, 魯成佐, 張順雨, 李德龍, 朴允卿, 金成吉, 金南澤, 李光孫, 李英守, 李湖, 韓良啓, 朴彦, 李之彦, 廉誠萬, 朴良富, 李云甫, 方之信, 嚴仁甫, 金呂生, 嚴侃, 李原龍, 金天命, 趙原吉, 朱原奉, 孫仁呂, 金南玉, 金安, 張乙珍, 李夫介, 方天, 姜和尙, 梁啓, 金思奇, 朴英眞, 朴天, 崔安彦, 文成哲, 金思彦, 金啓, 邊呂, 崔克儒, 陳臣彦.
김천연, 송인우, 공기, 이운, 윤지원, 김성주, 유천로, 이인수, 지원, 노성좌, 장순우, 이덕룡, 박윤경, 김성길, 김남택, 이광손, 이영수, 이호, 한량계, 박언, 이지언, 염성만, 박량부, 이운보, 방지신, 엄인보, 김려생, 엄간, 이원룡, 김천명, 조원길, 주원봉, 손인려, 김남옥, 김안, 장을진, 이부개, 방천, 강화상, 양계, 김사기, 박영진, 박천, 최안언, 문성철, 김사언, 김계, 변려, 최극유, 진신언.
金乙富, 金仁英, 邊原, 嚴功琇, 金庇, 朱大, 刑曹佐郞 安升慶, 前佐郞李士剛, 丞李公裕, 注簿高烋, 柳原直, 張俊, 許孜, 故中郞將金光利, 前注簿秦斯立, 郞將金寶景, 林時大, 趙成玉, 辛思義, 沈仁吉, 李云龍, 朱方吉, 徐金剛, 安天祐, 徐仁奇, 魏仁柱, 韓原吉, 曹轀, 咸吉甫, 劉末巾, 林仁吉, 金義山, 金取金, 玄祐, 辛天奉, 姜臣柱, 金富, 全萬, 李自芳, 原奉, 奉思義, 金彦富, 李原哲, 孟順富, 辛思貴, 原祐, 金原甫, 前郞將孔成柱, 李萬, 李夫介.
김을부, 김인영, 변원, 엄공수, 김비, 주대, 형조좌랑 안승경, 전좌랑 이사강, 승 이공유, 주부 고휴, 유원직, 장준, 허자, 고 중랑장 김광리, 전 주부 진사립, 낭장 김보경, 임시대, 조성옥, 신사의, 심인길, 이운룡, 주방길, 서금강, 안천우, 서인기, 위인주, 한원길, 조온, 함길보, 유말건, 임인길, 김의산, 김취금, 현우, 신봉천, 강신주, 김부, 전만, 이자방, 원봉, 봉사의, 김언부, 이원철, 맹순부, 신사귀, 원우, 김원보, 전 낭장 공성주, 이만, 이부개.
孟良啓, 金靖, 徐龍, 徐天起, 沈龍, 韓八主, 韓加大, 楊加里, 李英寶, 文哲, 李連雨, 許富, 金佐, 金乙光, 金誠, 李原立, 韓乙卿, 張益冲, 金重寶, 梁仁柱, 申玄啓, 李萬, 韓得啓, 原天啓, 安吉, 辛得奉, 羅進, 黃乙珍, 李乙奉, 申守, 原天守, 朴仁奇, 黃乙仲, 全用富, 咸仁永, 李哲, 崔仁甫, 朴丁, 辛天己, 朴奇, 趙萬, 崔雨, 林景, 朴仁奇, 蔡河生, 仁奉韓原, 吳原吉, 別將吳逸, 嚴英守.
맹량개, 김정, 서룡, 서천기, 심룡, 한팔주, 한가대, 양가리, 이영보, 문철, 이련우, 허부, 김좌, 김을광, 김성, 이원립, 한을경, 장익충, 김중보, 양인주, 신현철, 이만, 한득계, 원천계, 안길, 신득봉, 나진, 황을진, 이을봉, 신수, 원천수, 박인기, 황을중, 전용부, 함인영, 이철, 최인보, 박정, 신천기, 박기, 조만, 최우 임경, 박인기, 채하생, 인봉한원, 오원길, 별장 오일, 엄영수.
金思友, 金原卿, 沈順景, 李英順, 李果珍, 孟彦, 尹尙俊, 朴仁被, 李原貴, 金鄰, 金希, 黃甫仁, 韓均, 原奉李筌, 辛光富, 鄭時雨, 鄭文吉, 金南, 張翼, 李彦林, 河進, 魯仁儉, 全龍奉, 前別將劉時賀, 劉大富, 趙加勿, 李萬自, 李英吉, 金龍奉, 金安守, 梁原奇, 韓甫, 羅吾, 金余愁, 李原魯, 都乙赤, 林仁祐, 劉原奇, 李仁守, 邊漢, 劉金, 田永奇, 劉羅知, 劉於山, 朴原祐, 李仁起, 郭天起, 申吉富, 高豆彦.
김사우, 김원경, 심순경, 이영순, 이과진, 맹언, 윤상준, 박인피, 이원귀, 김린, 김희, 황보인, 한균, 원봉 이전, 신광부, 정시우, 정문길, 김남, 장익, 이언림, 하진, 노인검, 전룡봉, 전 별장 유시하, 유대부, 조가물, 이만자, 이영길, 김룡봉, 김안수, 양원기, 한보, 나오, 김여수, 이원로, 도을적, 박인우, 유원기, 이인수, 변한, 유금, 전영기, 유라지, 유어산, 박원우, 이인기, 곽천기, 신길부, 고두언.
朴原吉, 黃甫介, 高松呂, 金暄, 金哲, 曹漢, 嚴祿, 朱奉, 李石啓, 金守, 文赤, 宋天, 林原奇, 金南用, 張原, 李逢吉, 石甫介, 鄭龍, 朴仲, 方龍, 尹臣祐, 全松, 姜原, 李松, 李原, 安千, 金沖, 韓倫, 孟原亮, 金迪, 金乙富, 高天富, 朴沖, 金天儉, 崔萬, 李天住, 金誠柱, 林豆彦, 車萬, 金奇, 崔原守, 林成乙, 吳永具, 楊得富, 李白, 崔原禮, 金思衍, 韓乙富, 申陽德, 金仲富.
박원길, 황보개, 고송려, 김훤, 김철, 조한, 엄록, 주봉, 이석계, 김수, 문적, 송천, 임원기, 김남용, 김원, 이봉길, 석보개, 정룡, 박중, 방룡, 윤신우, 전송, 강원, 이송, 이원, 안천, 김충, 한륜, 맹원량, 김적, 김을부, 고천부, 박충, 김천검, 최만, 이천주, 김성주, 임두언, 차만, 김기, 최원수, 임성을, 오영구, 양득부, 이백, 최원례, 김사연, 한을부, 신양덕, 김중부.
金祿, 金啓富, 金斗, 金田, 金哲, 車仁, 金延, 李富, 權誠祐, 李原吉, 李田, 朴奇鄰, 宋仁儉, 孟天富, 金原吉, 金永, 金可賢, 公成祐, 金貴英, 尹天祐, 徐得仲, 宋原富, 天柱, 全陽, 張守, 盧英富, 咸千, 金延守, 夫介, 咸千甫, 劉千吾, 李之松, 毛河照, 散員金乙富, 金仁弼, 劉德興, 文義, 尹奉, 崔游, 金富, 李惇, 咸龍琦, 盧永富, 高天, 朴忠連, 金天奉, 黃天奇, 李奉, 秦丁, 前散員徐允景.
김록, 김계부, 김두, 김전, 김철, 차인, 김연, 이부, 권성우, 이원길, 이전, 박기린, 송인검, 맹천부, 김원길, 김영, 김가현, 공성우, 김귀영, 윤천우, 서득중, 송원부, 천주, 전양, 장수, 노영부, 함천, 김연수, 부개, 함천보, 유천오, 이지송, 모하조, 산원 김을부, 김인필, 유덕흥, 문의, 윤봉, 최유, 김부, 이순, 함용기, 노영부, 고천, 박충련, 김천봉, 황천기, 이봉, 진정, 전 산원 서윤경.
金永甫, 姜萬, 林芳啓, 李生, 崔乙奉, 林郞官, 禹碩, 崔延守, 金龍奇, 金守文, 李原吉, 金誠彦, 廉伐介, 蔡林, 孫柱, 李松, 金奉, 金文生, 尹天, 李天富, 蔡仁奇, 李原, 金成柱, 韓君禮, 韓永貴, 李仁, 韓仁富, 朴乙生, 朴柱, 崔天王, 金誠柱, 金玉, 孟進, 金乙之, 金貴生, 辛奇, 金冲甫, 蔡原, 池得千, 李逢順, 李原邑, 金音松, 李天雨, 方長守吐也介, 前伍尉朴生員.
김영보, 강만, 임방계, 이생, 최을봉, 임랑관, 우석, 최연수, 김용기, 김수문, 이원길, 김성언, 염벌개, 채림, 손주, 이송, 김봉, 김문생, 윤천, 이천부, 채인기, 이원, 김성주, 한군례, 한영귀, 이인, 한인부, 박을생, 박주, 최천왕, 김성주, 김옥, 맹진, 김을지, 김귀생, 신기, 김충보, 채원, 지득천, 이봉순, 이원읍, 금음송, 이천우, 방장수토야개, 전 오위 박생원. <이상 695명>
等乙,子孫蔭職,宥及後世爲良於爲,分例敎事是白有良厼,右員等乙良,原從功臣稱下敎是旀,父母妻封爵,子孫蔭職,宥及後世敎是齊.立碑紀功向事,幷以各掌官出納爲白遣,錄券成給爲良
등에 대해서는 자손에게 음직을 주고 죄를 용서함이 후세의 자손들에게까지 미치도록 하려 하여 분례하셨다. 그러므로 이상의 관원들에 대해서는 원종공신을 칭하(稱下)하도록 한다. 그 부모와 처에게는 봉작하고, 자손에게 음직을 주며, 죄를 용서함이 후세의 자손들에게까지 미치도록 할 것이다. 비석을 세우고 공을 기록하는 일도 아울러서 각 장관(掌官)이 출납(出納)하도록 하고, 녹권을 성급(成給)하라고 하셨다.
如敎喩乃申聞爲白叱乎亦中,洪武二十八年三月初七日,右承旨,翊戴開國功臣,通政大夫,經筵參贊官,寶文閣直學士,知製敎,知戶曹事,臣閔汝翼,伏奉王旨,依申敎事是白有良厼,錄券施行.
이러한 일까지도 다 아뢴 데 대해 홍무 28년(1395) 3월 7일 우승지 익대개국공신 통정대부 경연참찬관 보문각직학사 지제교 지호조사 신(臣) 민여익(閔汝翼)이 삼가 왕지(王旨)를 받드니, “아뢴 대로 하라.”고 하셨다. 그러므로 녹권을 시행한다.
洪武二十八年閏九月 日
홍무 28년(1395) 윤9월 일.
錄事權知都評議錄事前修義副尉興威衛右領散員 鄭
錄事權知都評議錄事前神虎衛精勇別將 朴 (着名)
判官宣敎郞閤門通贊舍人 朴 (着名)
副使奉正大夫禮曹議郞 姜 (着名)
副使奉正大夫戶曹議郞 朴 (着名)
녹사 권지도평의녹사 전 수의부위 흥위위우령 산원 정(鄭)
녹사 권지도평의녹사 전 신호위 정용별장 박(朴) [착명]
판관 선교랑 합문통천사인 박(朴) [착명]
부사 봉정대부 예조의랑 강(姜) [착명]
부사 봉정대부 호조의랑 박(朴) [착명]
使
使翊戴開國功臣通訓大夫判校書監事直集賢殿知書籍院事兼藝文春秋館編修官咸 (着名)
사, 사 익대개국공신 통훈대부 판교서감사 직집현전 지서적원사 겸 예문춘추관편수관 함(咸) [착명]
判事 推忠協贊開國功臣嘉靖大夫商議中樞院事都評議使司使洪 (着名)
判事 推忠翊戴開國功臣嘉靖大夫啇議中樞院事都評議使司使集賢殿學士吳 (着名)
판사 추충협찬개국공신 가정대부 상의중추원사 도평의사사사 홍(洪) [착명]
판사 추충익대개국공신 가정대부 상의중추원사 도평의사사사 집현전학사 오(吳) [착명]
吏曹
佐郞 承議郞考功佐郞 李
佐郞 承議郞兼尙瑞直長 尹
正郞 通德郞考功正郞 柳 (着名)
正郞 通德郞金
議郞 奉正大夫世子左弼善知製敎兼藝文春秋館編修官徐 (着名)
議郞 奉正大夫李 (着名)
이조
좌랑 승의랑 고공좌랑 이(李), 좌랑 승의랑 겸 상서직장 윤(尹), 정랑 통덕랑 고공정랑 유(柳) [착명], 정랑 통덕랑 김(金), 의랑봉정대부 세자좌필선 지제교겸 예문춘추관편수관 서(徐) [착명], 의랑 봉정대부 이(李) [착명]
知曹事
典書
典 書
兼典書
判事
지조사, 전서, 전서, 겸전서, 판사
別監
翊戴開國功臣通政大夫中樞院左承旨經筵參贊官兼尙瑞尹集賢殿直學士知製敎知兵曹事閔 (着名)
保功將軍龍騎巡衛司大將軍金
朝散夫夫司憲侍史鄭 (着名)
별감
익대개국공신 통정대부 중추원좌승지 경연참찬관 겸 상서윤 집현전직학사 지제교 지병조사 민(閔) [착명],
보공장군 용기순위사대장군 김(金),
조산대부 사헌시사 정(鄭) [착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