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행”
한국영화, 장르:액션,스릴러 개봉:2016.07.20.
감독,각본:연상호, 관객:11,437,625명(2016.08.29.현재)
제작:이동하외, 주연:공유,마동석,정유미,김수안,김의성,최우식,안소희
전대미문의 재난 블록버스터, “부산행”은 영화개봉과 동시에 100만명을 돌파하며 천만관객을 향하여 여전히 고속질주를 멈추지 않고 있다 정체불명의 바이러스가 전국적으로 확산되는 가운데 긴급재난경보령이 선포된다 우연하게 KTX열차에 승차한 사람들은 도시의 유일한 행운아들이었을까? 유일한 안전지대인 부산으로 가는 초고속 열차속에도 바이러스에 감염된 한 여인이 있었다
트럭운전기사가 운전중 부주의로 갑자기 뛰어든 사슴으로 보이는 동물을 들이받고 떠나 버린다 그대로 즉사할 것 같은 동물이 그 자리에서 갑자기 일어나게 되고 짐승의 눈동자는 흰색으로 바뀌어 가며 영화는 시작된다 이 알 수 없는 한 사건을 계기로 정체불명의 바이러스가 전국적으로 확대되며 겉잡을수 없는 도시는 폭동사태가 일어난다
“석우”(공유역)는 증권회사 펀드매니저로 생일을 맞은 딸 “수안”(김수안역)과 함께 부산행KTX를 타고 아내가 있는 부산으로 향한다 그러던 중 수안의 눈에 정체를 알 수 없는 한 여자가 KTX에 동승하게 되고 그 여자는 고통속에서 좀비로 변하게 된다 순간 지나가던 여승무원을 물어 여승무원이 좀비로 변하고 좀비들이 또 다른 사람을 무는 연쇄적이고 기하급수적인 좀비세상이 되어가고 있다
KTX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고 승객들은 달리는 기차속에서 좀비를 피해 앞쪽으로 도망을 치고 있었다 석우가 열차객실문을 닫으려는 순간 “상화”(마동석역)와 임신한 그의 아내 “성경”(정유미역)이 좀비를 피해 도주를 하지만 석우는 이내 문을 닫아 버린다 다행히 상화와 성경이 좀비를 피해 가까스로 들어오게 되지만 그들의 눈빛속엔 여전히 불신이 쌓여 있다 상화부부가 안전지대로 피난하였을 때 좀비들이 그대로 문을 향하여 돌진하고 그 문을 열고자 하였지만 문을 여는 방법을 알 수 없을 만큼 그들의 지능은 저하되어 있었다
정체불명의 바이러스에 감염된 좀비들은 짐승들과 같은 유사한 반응을 보여주고 있다 그들은 소리와 빛에만 반응을 하며 그것에 따라 움직임을 보여주는 특징을 갖고 있었다 이것을 감지한 성경은 열차문 유리에 물을 뿌리고 신문지로 창문을 가려 그들이 빛을 볼 수 없도록 하였다
KTX는 부산을 향하여 행진을 계속하고 있다 대전역 일대에는 좀비들과 대치하며 폭동을 진압할 군대가 배치되었다는 소식이 전달되었다 대전역에 도착했을 때 승객들은 군인들이 있는 메인 광장으로 이동을 했지만 석우와 석우의 딸 수안은 지인이 알려준 다른길로 가려고 이동중이었다 그러나 폭동진압부대는 이미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좀비로 변해 버린 위기상황이었다
대전역 철로는 그야말로 아수라장이 되고 좀비를 피해 부산행 KTX로 달아나는 사람들의 행렬속엔 넘어지고 다치는 사람들이 다반사였다 그들 중에서 살아남은 자들이 있으니 상화부부와 석우와 수안, 그리고 고교야구부 학생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미쳐 가족들의 손을 잡지 못한채 떨어져 있었고 그들과 그들의 가족은 각각 9호와 13호에 위치해 있었다 이들이 KTX에 승차하였을땐 그들이 잠궈버린 문을 부수고 좀비들도 함께 승차한 후 였다 좀비들은 10호와 11호, 그리고 12호를 장악한 상태에서 사람들을 분리시켜 놓은 행운을 잡은 것이다
9호열차에 승차한 상화와 석우는 각각 자신들의 아내와 딸이 있는 13호 열차로 이동하기로 결정하고 좀비들과 일대 결전을 벌이기로 작정한다 좀비들은 소리와 빛으로 반응하기 때문에 좀비들과의 싸움은 터널을 경유하는 짧은 시간안에 시작하고 끝내야만 했다 상화(마동석역)의 리더십이 두각을 나타내는 가운데 KTX에는 생존게임이 계속되고 있다 그들의 움직임을 눈치채지 못하는 좀비들을 하나씩 제거해 가며 13호실로 이동중인 상화와 그 일행의 눈빛에는 정의감과 함께 용기가 표출되어 있다
한편, 13호 열차에는 “용석”(김의성역)의 카리스마 아래 극단적 이기심이 자라고 있었다 그들은 그 어떤 희생과 용기도 허용하지 않았다 그들과 함께 동승한 “진희”(안소희역)는 그의 친구 “영국”(최우식역)이 좀비를 물리치며 13호로 오고 있다고 사람들에게 희소식을 전하였지만 그들의 생각은 달랐다 좀비들이 가면을 쓰고 우리 모두를 삼키려 한다는 여론을 만들어 가족을 찾아 사투를 벌이며 13호를 찾았던 상화와 석우와 영국 일행을 막으며 대치를 한다
극도의 위기상황, 13호의 이기심과 불신감이 초래한 비극은 결국 상화를 좀비로 만드는 최악의 구도로 이어간다 좀비들과 대치하며 온몸으로 그들을 막아서던 상화는 결국 힘에 지쳐 좀비에게 물려 버리고 만 것이다 좀비로 변해가는 그 상황속에서 석우에게 임신중인 자신의 아내를 부탁한다면서 태아의 이름을 알려준다 사람들의 이기심은 이토록 수많은 비극을 던져 주지만 그들에게 남은 것은 불신외에 아무것도 없다
상화는 이렇게 결국 좀비가 되어 버리고 생존자가 있는 호실로 입성한 석우와 성경과 진희와 그 일행들은 여전히 이들을 불신하는 사람들에 의해 간이칸 호실로 이동하게 된다 자기 자신만의 생존만이 중요한 사람들 앞에서 무고한 사람이 죽음을 맞이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양심은 좀비처럼 아무것도 작동하지 않았다
그러던 중 두명의 할머니가 KTX에 함께 동승해 있었는데 그 중 나이가 많은 할머니 한 분이 좀비로 변해 좀비들이 타고 있는 호실에 있었다 이것을 비관한 동생 할머니는 생존자들의 이기심 때문에 이런 일이 일어났다고 생각한 나머지 생존칸 호실의 문을 열어 버리는 위기가 발생하였다 이로 인해 생존칸에 승차한 사람들이 하나씩 좀비에 물려 연쇄적으로 좀비가 되어 가고 다행히 화장실에 숨어 있었던 남자 승무원과 이기적인 한 남자만이 생존자가 되었다
이기적인 한 남자가 초래하는 비극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좀비를 피하여 다른 열차에 타려던 진희는 한 남자의 이기적인 행동 때문에 좀비에 물리게 되고, 진희를 지키려던 그의 남친 영국도 진희에게 물려 좀비가 되어 버린 것이다 그러나 결국 그 이기적인 한 남자도 좀비가 되어 버렸다 석우와 마주친 그 남자와 격투를 벌이는 과정에서 그 남자는 열차에서 떨어져 흔적없이 사라졌지만 이 과정에서 석우도 좀비에게 물려 변해가는 자신을 발견한다
석우는 결국 상화의 아내 성경과 수안을 위해 열차에서 스스로 뛰어내려 자살을 결행한다 부산에 도착한 성경과 수안은 열차에서 내려 터널을 지나고 있었다 때마침 군인들이 이 길을 지나다가 두 사람을 발견하고 바이러스 감염자로 오판한 나머지 총을 겨누고 있다 이것으로 KTX승객들은 모두가 죽음으로서 끝나게 되는가? 갑자기 수안이 노래를 부르고 군인들은 그들이 생존자라고 구조를 한다
좀비 바이러스의 원인은 명확하게 규명되지 않았다 그러나 증권회사 펀드매니저였던 석우와 치명적 유출사고가 발생한 회사 대리와의 통화내용은 바이러스와의 연관성을 느끼게 한다 유출사고로 인하여 주식은 폭락하고 회사는 부도위기에 직면한다 펀드매니저였던 석우는 그 회사에 투자하여 큰 이득을 취할 속셈을 갖고 증권가들의 손들과 결합하려 하였다 통화가 끝난후 석우는 자신으로 인하여 재앙이 확대되었다고 자괴감 섞인 눈물을 흘린다
2016년 여름, 태풍처럼 몰고온 “부산행”은 개봉과 동시에 전국 상영관들을 초토화 시키고 있다 상영 하루만에 100만명, 천만명 흥행을 위한 걸음이 스피드를 내며 다른 영화들의 간판을 내리게 하고 있다 이 영화의 복선은 “이기심”과 “불신”이었다 생존에 관한 문제가 일어났을 때 사람들은 고민에 빠지거나 더 생각하지 않는다 “일단 내가 살고 봐야 한다”는 극단적 이기주의가 세상을 뒤덮고 있는 것이다
다른 사람을 위해 자신을 기꺼이 희생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정신과 일치한다 그리스도인들도 이 영화를 찾을 것이다 이 영화가 끝나고 극장에서 밀려 나오는 관객들을 보며 사람들은 좀비를 연상한다고 한다 그 만큼 이 영화는 리얼함을 더하고 있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망각해 버린 좀비는 무엇을 상징하고 있을까? “정(情), 신뢰(信賴), 관계, 사랑”, 우리는 모두 자신의 문을 닫아 버리고 다른 사람들과의 소통과 정의를 외면한다 이것은 그리스도인의 태도가 아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 앞에서 정의와 공평, 신뢰와 사랑을 전해야 하는 의무를 가지고 있다 이것은 이기심과 충돌한다 부산행KTX에 그리스도인이 타고 있었다는 증거는 없다 그러나 이기심에 동승하며 자신만이 살아남으려는 자의 자리에 있는지, 아니면 자신을 희생하며 다른 사람들의 생존을 위해 노력하는 자의 자리에 있었는지 돌아보는 계기가 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