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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명의 꽃중년 인도네시아 기행기
일시 : 2013.12.26 ∼ 2014.01.03 (7박 9일)
참가자 : 정성철(47) 이대용(52) 안창성(52) 도무석(54) 한경호(56) 윤한석(63)
괄호 안은 출생 연도임. - 평균 나이 60세
여행 유형 : 자유 여행( 숙소 및 항공, 교통은 BS Fun Tour 주선)
여행지 : 인도네시아 ( 발리, 브로모 화산, 족자카르타)
인도네시아 주재 한국 대사관 전화 번호 (xx62-21-520-1915)
목 차
여행 일정 소개
들어가며
에피소드 1 : 신성을 세속으로 덮다
에피소드 2 : 높은 곳에서 멀리 바라보다
에피소드 3 : 짠디 삼비사리의 개구라
여행을 마무리하며
여행 일정 소개
< MCEx 인도네시아 여행 일지 > 2013.12.26 ∼ 2014.01.03(7박 9일)
주1) 간을 하다 - 소주를 첨가하다. 주2) RP - 인도네시아의 화폐 단위 "루피아"
☆ 2013.12.26(목)
* 인천(11:05) ( GA871 ) → Denpasar(17:00) : 40분 연착
* 전용 차량(15인승, 운전기사 - 무르끼, 56세) 타고 Next Tuban Bali Hotel 도착
* Check- in 후, 짐정리. 꾸타 시내 ‘Manhattan' 식당에서 Sea food로 식사 겸 술 한잔 (약 130만 Rp)
* 호텔 수영장 옆 테이블에서 술 한 잔 후 취침.
☆ 2013.12.27(금)
* 아침 식사(7시) 후 Tour 출발(8시 30분).
* 따만아윤 사원 - 투계장, 코코넛 시음, 바나나 튀김.
* Tanah Lot(따나롯) 해상사원.
* Denpasar 시내의 Sate(꼬치)집에서 빈땅맥주(별이 그려져 있다)에 간을 곁들인 점심식사.
* 호텔에서 휴식 후, Uluwatu(울루와뚜) 절벽사원에서 낙조 감상.
* 짐바란 바닷가 Sea food식당에서 빈땅맥주에 간을 곁들인 저녁 식사.
(crab, sniper, kingfish)
* 호텔 수영장 옆 테이블에서 술 한 잔(권기현선생과 같이) 후 취침.
☆ 2013.12.28(토)
* 낀따마니 화산지대 가는 길에 안선생님 코끼리 한 점 구입(160$를 100$), 전망대에서 차 한 잔.
* 버사끼 힌두사원 관람 : 기원하는 부부
* 커피농장 방문
* 우붓의 “이부오까”식당에서 babiguling으로 빈땅에 간을 곁들인 점심 겸 저녁......
* 걸어 가다가 도저히 안되어 친절한 인도네시아 아줌마의 도움으로 택시 타고 “Tuk mat"에 도착하여 커피 한 잔 후 무르끼 만나 귀가 중 롯데마트에 들러 장보기(아낙발리, 과일, 빈땅 맥주.....)
* 호텔 Poolside 옆 table에서 한 잔....
☆ 2013.12.29(일)
* 발리섬 Denpasar(10:05) ( GA341 ) → 수라바야 SUB (10:05)
* 여행사 및 세림(주) 이길수씨와 meeting(25인승 버스)
* 세림공장(스펀지 생산) 방문
* 골프장 내 호텔에서 점심식사(나시고렝 및 빈땅 맥주)대접 받음.
* 버스 타고 프로볼링고로 이동(3시간)
* 프로볼링고에서 산악용 Jeep으로 갈아타고 해발 2000km 넘는 쩨모로라왕 마을의 숙소(빌라 - 방 3개, 응접실, 거실, 부엌, 화장실 2개)에 도착해 짐을 풂.
* 산정마을의 식당에서 빈땅에 간을 곁들인 저녁식사.
* 숙소에서 한 잔......
※ 오늘 하루 정말 힘든 여정이었다.
☆ 2013.12.30(월)
* 새벽 2시 30분에 일어나 세수하고, 3시에 산악용 Jeep 두 대에 나누어 타고 출발.
* 쩨모로라왕 마을의 숙소에서 5km를 달려 페난자칸 전망대(2706m)에 도착하여 1시간 정도 기다리니 동이 트기 시작함.(밤하늘의 은하수, 남십자성, 북두칠성, 일출-구름이 끼여 별로였음- 가끔 흰 연기를 뿜는 브로모화산, 주름치마 같은 바툭산, 멀리 수메루산(3767m)이 보임
* 바람이 심해 화산재 사막에 먼지가 심하게 날려 브로모 화산 분화구 정상 등정은 포기함.
* 숙소에 도착 후 컵라면 하나씩 끓여 먹고 산악용 Jeep 두 대에 나누어 타고 프로볼링고를 향해 출발.
* 프로볼링고에서 25인승 버스를 갈아타고 수라바야 시내 은행에서 환전 후, 한국식당 “명가”에 도착. 김치찌개, 된장찌개, 갈매기살구이로 빈땅맥주에 간을 곁들인 점심식사. 세림(주) 이길수씨가 또 계산을 함 - 안선생님의 낯이 서는 시간이었음.
* 세림(주) 이길수씨와 헤어져 수라바야 역에 도착 후 여행사 가이드 보냄. 찻집에서 휴식, 기차에서 먹을 간단한 장보기(음료수, 빵 등)
* 3시45분 기차(특실-우리나라 무궁화보다 못함)를 타고 8시 25분에 족자카르타에 도착
* 우여곡절 끝에 택시 두 대에 나누어 타고 Colombo Hotel에 도착(시설이 좋다. 그러나 방에 냉장고가 없다. 음식물 비상)
* 호텔 Poolside 옆 table이 없어 호텔방에서 빈땅에 간을 곁들여 술 한 잔.......
☆ 2013.12.31(화)
* 7시 아침식사 (조식 뷔페- Good)
* 8시 30분에 12인승 봉고(운전기사: 엑코 Eko) 타고 출발.
* Borobudur 사원 관람(입장료 22만 Rp - 세계문화유산, 3대 불교사원), Mendut사원 관람.
* 족자카르타 시내로 와서 늦은 점심(구덕요리 +토마토 쥬스 = 31,000Rp )
* 여행을 포기하고 몇 군데 돌아다닌 끝에 Bintang맥주 12캔 구입.
* Candi Sambisari (짠디 삼비사리 - 삼비사리 사원 )관람 : 힌두사원
* 호텔에서 송년파티 참석(1인당 10만 Rp) 뷔페 요리+소고기 닭고기+양 바베큐
2014.01.01(수)
* 디엥고원 관광(아침 8시 반에 출발하여 저녁 9시에 도착)
* Wonosobo에서 인도네시아식 뷔페로 빈땅에 간을 곁들여 점심 식사.
* 디엥고원 관광지 자체는 별로인데 가는 길의 풍광이 죽인다......
특히, 다랭이밭(계단식)의 모습이
* 디엥고원 마을의 Cafe에서 커피 한 잔(한국 돈으로 200원 정도)
* 저녁 7시경에 해물 나시고렝(한국 돈으로 2,800원 정도) Borobudur 사원 부근?
* 호텔에 도착하여 남은 술로 신년 파티
2014.01.02(목)
* 프람빠난 사원 관람(입장료 198,000Rp - 세계문화유산)
* 말리오보로 거리, 크라톤 왕궁, 따만사리, 재래시장 - 차창 관광
* 새 시장 관광
* 동물원 관람 후 빈땅에 간을 곁들여 점심 식사(가장 맛있는 식사)
- 소갈비찜, 통닭구이- 약 60만 Rp
* Cafe에서 커피 한 잔(별로였음) 후, 족자카르타 공항으로 이동
* 자카르타 공항으로 짐 부치고 보딩 패스 받은 후 대합실에서 휴식
(짐 문제로 상황이 달라져 약간의 혼선, 윤선생은 소매치기를 당하고, 어쨌든 피곤하다)
* Jakarta 공항에 도착(오후 8시 45분)하여 짐을 찾자마자 혀가 빠지도록 뛰어서 국제선 청사에 도착하여 가까스로 짐을 부치고 탑승권을 받아 쇼핑할 시간도 없이 인천행(GA9962) 탑승. 수속이 가루다 항공이 아니라 대한항공이라 혼선이 있었다. 정말로 정신이 없다.
2014.01.03(금)
* 오전 6시 45분 인천공항에 도착하여 짐 찾아서 세관 검색대를 무사히(?) 통과하여 이선생님이 도사장님이 맡긴 짐을 분실했다고 찾는 소동이 있었으나 무사히 찾음. 공항철도를 타고 서울역 도착.
* 안선생님과 정선생님은 서울에 남고 나머지 인원은 부산행 KTX를 타고 헤어짐.
* 2014년 01월 17일 부산에서 만나 정산하기로 함.
* 2014.01.02(목) 약간의 혼선이 있었으나 전체적으로 계획대로 진행이 되어 편한 여행이었음
< 기록 안창성, 정리 한경호 >
들어가며
이 글은 인도네시아에 대한 친절한 여행안내서가 아니다. 게다가 학술적으로 인도네시아의 문화와 역사를 논하려는 글도 아니다. 그러므로 이 글에 대해 자신의 학문적 지식을 내세워 나와 학술적으로 따지려는 사람이나 내가 많은 돈과 노력을 들여가며 이룩한 인도네시아에 대한 문화적 업적에 악성 댓글을 달려는 인간들은 곧 내가 욕을 할 것이므로 셋을 헤아릴 동안 사라져 주길 바란다.
하나,
둘,
셋.
그럼 지금부터 이 글을 읽는 독자 제위께서는 나의 의견에 적극적으로 동조하고 나의 행복에 함께 기뻐해 줄 마음의 준비가 된 분이라 생각하고 혹, 위에서 지적한 두 부류의 인간이 아직도 이 글을 읽고 있다면, 그분은 영어로 “보트(쉽새끼)”라고 하겠다. 물론 착한 독자께서도 궁금증을 제시할 수 있다. 이런 경우 정중함을 유지하기 바라며, 혹시 반론이 생긴다면, 최소 2회 정도의 아부를 한 후 살짝 반론을 제기하기 바란다. 나는 매우 민감한 사람이다.
부산에 사시는 분이 두 분, 대구에서 네 분, 한창 철도 민영화로 파업이 계속 이어지는 2013년 연말, 연착에 대한 불안한 마음으로 KTX 아침 운행의 두 번째 열차를 탔다. 첫차와의 시간적 간격은 30분이었는데 첫차를 타는 것이 심리적으로나 시간의 여유로나 훨씬 나았다. 여행은 항상 1시간 정도는 기다린다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인천공항에서 스마트폰 로밍이니 환전이니, 짐을 부치는 일 등에서도 가끔 예기치 못한 시간적 낭비가 생기기 때문이다. 이 날도 면세점에 간 두 분이 오지 않아 애를 태웠는데 중국인 아가씨가 물건을 엄청나게 사서 뒤에 서서 계산이 끝나길 기다리는데 시간은 자꾸 가고..... 물건 많이 산 중국인 아가씨를 예상한 사람은 없었다.
모양 빠지게 뜀박질을 해서야 겨우 인도네시아 발리행 가루다항공에 몸을 실었다. 30분은 사람 애간장을 다 태우게 할 수 있는 그런 긴 시간이다.
에피소드 1 : 신성을 세속으로 덮다
“발리에서 생긴 일”을 말하기 전에 ‘발리’라고 하면 ‘조인성’의 희멀건 얼굴을 떠올리면서 ‘발리’가 어디에 붙은 곳인지, 그곳이 남반부인지, 북반부인지도 생각지 않고 다만 펼쳐진 바닷가에서 비키니 입은 남녀만 머리에 떠올리는, 무지하면서도 반성할 줄 모르는 게으름을, 착한 부지런함을 가진 필자가 잠시의 노력과 조금의 지식으로 계몽하려 하노니 귀가 있는 자는 듣기 바란다. 심지어 내 주변에 인도네시아를 인도와 같이 생각하는 이도 있었다.
우선 ‘발리’는 국가가 아니다. 그리고 북반부에 어느 해변도 아니다. ‘발리’는 남반부 인도네시아에 속한 섬의 이름이고 이 발리 섬은 호주와 아주 가깝다. 그래서 북반부에서는 볼 수 없는 남십자성이 빛나는 섬이다. 문득 어느 가수가 부른 “월남의 달밤”이란 노래가 떠오른다. “남남 쪽 섬의 나라 월남의 달밤 십자성 저 별빛은 어머니 얼굴. 운운” 먼저 월남은 섬이 아니다. 또한, 북반부에 속한 곳이어서 십자성이 보이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 노래는 십자성이 아닌 다른 별을 십자성으로 착각한 것이므로 어머니 얼굴도 딴 사람 어머니의 얼굴을 자기 어머니의 얼굴이라 착각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예전에 TV 국군 프로에 “제 어머니가 맞습니다.”라고 뛰어 나오던 어벙한 국군에게 적합한 노래라 하겠다.
인도네시아는 수많은 섬으로 구성된 엄청난 나라이어서 그 폭이 비행기로 7시간 걸릴 만큼 광대하게 펼쳐진 나라이다. 인천공항에서 발리의 덴파사 공항까지 비행기로 7시간 걸리는 걸 생각한다면 인도네시아가 얼마나 넓게 펼쳐진 나라임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펼쳐진’이라는 표현에 스스로 만족하고 있음을 알아주기 바란다. 이 단어가 인도네시아를 표현하기에 매우 적절한 표현임에 자신의 ‘일물일어설’에 대한 교만을 느끼고 만족해하는 필자의 셀프 깔때기에 독자는 잠시 동참해 주길 바란다. ㅎ ㅎ
2013년 12월 26일, 우리를 발리 덴파사 공항에서 맞아준 운전기사는 ‘무르끼’라는 56세의 남성이었다. 영어는 거의 소통이 안 되고, 아는 척하고 있지만 사실은 모르고, 다시 몇 번 이야기하다가 의사가 소통이 되는, 그런 정도의 인상 좋은 아저씨였다. 우리가 발리에서 3일 간 묵을 호텔은 ‘NEXT TUBAN BALI' 호텔로 3성급 정도이며, 덴파사 공항에서 10분 거리인데 무르끼는 지리를 잘 모르는지 헤매기 시작하더니 3번이나 차를 세워 묻고, 오던 길을 다시 돌아가서야 호텔에 닿았다. 무르끼, 파이팅! 덕분에 발리의 교통 사정을 도착과 동시에 일목요연하게 파악했다. 그건 마치 개미들의 대이동을 방불케 하는 무질서한 일사불란함이었다. 마치 큰물이 졌을 때 그 큰 흐름 속에서 보이는 작은 흐름들이 무질서해 보이면서도 궁극은 하류로 흘러가는 것과 같은 카오스 속의 질서였다. 한국이라면 “운전 똑바로 해라. 이 Ten baby야”. “뭐! 이 십자가 알바단 줄인 샊이가? 이런 John만 한 아해를 봤나.” “ 이런 주옥같은 신발끈이 있나?” 등등의 아름다운 언어들이 오가고, 클라이맥스는 대로상에서 차를 세우고 나와 삿대질을 해가며 서로의 운전매너를 격렬하게 논하고 이를 지켜보는 모든 이들로 하여금 클랙슨을 월드컵 4강 경기할 때처럼 “빠빵빠 빵빠”, “빠빵빠 빵빠”의 박자로 장식해 생활 속 응원이라는 것이 무엇임을 보여줄 지경임에도 이들은 아래의 무르끼 사진처럼 합장하는 마음으로 기다릴 뿐이다. 그러면 어느새 모든 무질서는 다시 질서의 상태로 돌아가는 것이다. 즉 나도 법을 지키지 않을 수 있으니까 너의 무질서에 대해 지적하지 않겠다는 마음가짐처럼 보였다. 우리가 속이 탈 뿐, 무르끼는 부처처럼 이 모든 무질서에 몸을 맡긴 듯 평온한 표정이었다.
< 운전기사 무라끼, 그는 발리식 운전의 달인이다>
저녁식사를 겸한 도착 기념 파티를 위해 식당가로 가서 ‘Manhattan’이란 식당에서 몇 번의 흥정을 거쳐 몇 가지 해산물 요리를 시켰다. 인도네시아 대표 맥주인 빈탕 맥주를 가져간 소주에 말아서 건배를 때리고 나니 비로소 긴장이 풀렸다. 새벽 같이 일어나 가족들과는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하고 떠나와 우여곡절 끝에 남반부 발리 섬 식당 의자에 앉은 자신이 비로소 실감이 되었다. 한잔씩 마시자마자 동시에 물가에 대한 분석이 시작되었는데 루피아는 곱하기 0.09하면 우리 돈으로 환산이 되므로 40000루피아는 3600원 정도라는 것. 한 마디로 조금 싼 듯하다는데 서비스료가 15% 붙으니 거의 1/10이라 생각하는 것이 간단했다. 그러므로 40000루피아는 3960원이 되는 것이므로 0 하나를 떼어 4000원이라 생각하면 간단히 우리 원화와 비교할 수 있었다. 그러나 총무를 맡은, 산수에 진저리치는 수학선생인 윤선생은 이 루피아와의 싸움에서 종종 패하고 말았다. 그래서 계산을 할 때는 영어회화에 능한 국어 선생인 정선생이 영어로 묻고, 도사장이 계산하면, 윤선생은 지불하는, 다소 복잡한 쓰리 프로세스 시스템이라는 메커니즘을 유지할 수밖에 없었다. 이 날 우린 좀 과소비를 했는데 1,300,000루피아를 한 끼 식사비로 쓴 것이었다.
<첫날의 파티 장면. 빈탕 맥주병이 보이고 앞에 식수병을 가장한 소주병이 2개 보인다 >
‘NEXT TUBAN BALI' 호텔은 아담하고 깨끗한 편이었지만 식사가 조금 부실했다. 그러나 이런 단점을 덮을 수 있는 큰 장점은 밤에 풀장 옆 식탁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첫날 거의 새벽 2시까지 풀장 옆 식탁에서 맥주에 소주를 말아서 취토록 마셨다. 평시에 술을 섞어 마시는 걸 좋아하지 않는데 소주가 모자라니까 어쩔 수 없었다. 해물볶음밥의 경우 2800원 정도인데 빈땅 맥주 값이 4홉들이 한 병에 3500원에서 4000원 정도이니까 6명이 식사 한 끼 하면서 맥주 4병을 시키면 밥값과 맥주 값이 거의 반반으로 나왔다. 주량도 6사람이 비슷하고 술 욕심도 비슷하게 많아 늘 유쾌한 술자리였다. 6명이 가져간 소주는 360cc병으로 환산하면 49.33병의 분량으로 공항 세관에서 조금 문제가 있었지만 - 6명이 나가는데 계속 소주 4홉 병이 대여섯 개씩 보이니까 힌두교도이거나 이슬람교도로 보아서는 알콜 밀수의 수준이었을 것 - 세관에서 보다 더 절실한 문제가 우릴 기다리고 있을 줄 몰랐다. 즉 종교가 이슬람인 족자카르타는 힌두인 발리와 다르다는 것을 몰랐던 것이다. 그걸 알았다면 발리의 롯데마트에서 인도네시아의 안동소주 같은 40°의 ’아낙발리‘를 몇 병 챙겼을 것인데 롯데마트가 족자카르타에도 있다는 것을 보고 그만 방심하고 말았다. 여행 기념으로 한 병 사려했을 때 안선생이 무겁게 왜 들고 다니려느냐고 해 그만 두었는데, 이로서 내가 루피아로 물건을 구입할 수 있었던 유일한 기회를 나는 놓치고 만 것이었다. 7박 9일 간 루피아로 아무 것도 사보지 못했다. ㅠ ㅠ 하지만 이때는 몰랐다.
여행 둘째 날인 2013년 12월 27일, 이런, 나의 거룩한 아침 집필 작업을 방해하려는지 키가 큰 아가씨가 풀장 옆에 마련된 호텔의 아침 식탁에 앉는다. 혼자 온 호주 아가씨일 듯한데, 키가 172cm 정도 되는 날씬한 몸매로 주근깨가 꽤 많다. 잠시 윤동주의 시혼을 기리며,
“주근깨 하나에 정선생과, 주근깨 하나에 이선생과 주근깨 하나에 안선생과, 주근깨 하나에 도사장, 아! 그러나 그녀의 수많은 주근깨, 윤선생, 윤선생...
그러고도 남는 수많은 주근깨들과 그리고 또 보이는 다리의 주근깨까지, 하느님, 하느님.... 도저히 나는 지구상 60억의 이름을 다 헬 수 없습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나는 발리에 올 때, SPF 50 PA+++의 선크림과 챙이 넓은 모자와 우산 겸용 양산과 짙은 검은 선글라스를 준비했다. 발리의 이미지에 맞는 준비가 그러하지 않은가? 그런데 막상 우리가 가는 곳은 둘째 날 따만아윤 사원, 따나롯 해상사원, 울루와뚜 절벽사원, 셋째 날, 낀따마니 화산지대, 버사끼 힌두 사원, 커피농장, 우붓마을 탐방 등 바다와는 조금도 상관이 없는 곳이었다. 발리에서 바닷가에 다니지 않고 힌두사원만 돌아다니며 보는 것은 무슨 취미인지 모르겠다. 평시 힌두교에 대해 그리도 뼈에 사무는 그리움이 있었던지 사흘 중 도착 첫날을 제외한 나머지 황금 같은 이틀을 사원 관광만 하다가 볼일 다 봤다. 게다가 우기임에도 불구하고 하늘의 도움인지 우리가 도착한 날부터 비가 오지 않고 볕이 아주 쨍쨍하다고 한다. 그야말로 하늘이 도우는 이 날씨에 모든 젊은 선남선녀들은 그림같이 펼쳐진 황금빛 백사장에서 살아 날뛰는 물고기처럼 펄떡이고 있을 것이다. 생명력이 철철 넘치는 그곳으로 가서 선탠에 짙은 선글라스를 쓰고 원초적 생명력을 회복해야하는 것이 하늘의 명령임을 이들은 왜 모를까? 이 좋은 날씨에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사원관광이라니. 그럼 짙은 선글라스는 왜 준비하라고 한거야? 참 이상한 사람들이다.
< 따나롯 해상사원이 보이는데 많은 사람이 모인 걸로 보아 무슨 세레모니가 있었다. 바위 위에 검게 탄 흔적이 있어 인도의 갠지즈 강가에서 행해지는 장례식처럼 여기서는 바닷가에서 화장을 하나보다 라고 생각했는데 아니란다. 그렇다면 바다뱀을 위한 행사이거나 바다의 수호신을 위한 행사일 것이다 저 푸르게 빛나는 바다와 흰 구름, 적당한 파도가 밀리는 좋은 날씨다. 그러나 여기서도 비키니를 입은 쭉쭉빵빵은 없었기에 선글라스는 필요가 없었다. 무조건 비치에 가야 하는데 라는 생각이 끊임없이 나는 걸로 보아 나는 SON OF BEACH가 체질인 모양이다>
< 낀따마니 화산지대 - 중앙에 검게 그을린 곳이 보인다. 사진의 오른편에 큰 호수가 있다. 호수에는 물고기를 키우는지 가두리 양식장 같은 곳이 보인다. 발리의 수원지 구실을 하는 곳이란다. 그래서인지 수영하는 사람이 없고 나는 선글라스가 필요 없다 >
< 낀따마니 화산지대를 지나서 있는 버사끼 힌두사원. 이 젊은 부부는 무엇을 기원하고 있을까? 그들이 기원이 무엇이든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
< 커피농장에서 본 이름 모를 꽃 : 무르끼에게 “Do you know this flower's name?이라 했더니, Ya! flower.라고 하더니 인도네시아에서 꽃을 무어라고 한다고 가르쳐 준다. 이게 바로 친절한 무르끼식 회화법이다. 헐!!! >
< 커피농장에서 본 바나나꽃, 잎 하나마다 노란 바나나 새끼들이 소복소복하게 들어있다 점차 꽃대가 길어지면서 꽃의 색이 자줏빛으로 변해간다. 바나나는 계속 층층이 자라면서. 바나나는 포기 나누기로 번식을 하는 듯 하다. >
< 발리는 석물공장이 많다. 집집마다 신전을 모시기 때문에 돈 벌어 신전을 꾸미는데 다 쓰는 듯하다. 길을 가다가 신전 같은 것들이 수없이 많은 데 그게 개인이 소유한 가정집 속 신전이란다. 신이 삼만 삼천이라니 몇 분이나 모실 수 있을까? 하루 한 분의 신을 모신다면 365일×90년= 3,2850명의 신을 모실 수 있을 것이고 150명의 신들까지 계산하면 오래 살아야겠다 >
<차를 타고 지나가다 찍은 사진. 가정집인데도 각종의 신을 모신 사당들이 있어 문화유적지 같은 분위기가 느껴진다 >
힌두의 삼만 삼천의 신이 이슬람의 한 명의 유일신에 쫓겨 발리로 도망친 후 발리 섬이 힌두의 본산이 되었다. 그러나 힌두의 신들은 아마 이 좁은 섬을 떠나고 싶어 하리라. 그들보다 10배 정도 많은 인간이 이 좁은 섬에서 엄청난 매연을 뿜어대고 특히나 좁은 도로에서 오토바이가 언제 어떻게 끼어들지 모르는 교통난에 도대체 머리가 아플 지경이리라. 신이 느긋하게 다닐 길은 사라지고 신들도 오토바이 눈치를 보지 않으면 안 될 정도의 엄청난 혼란. 누군가 축복받은 섬이라고 하며 아래위 옷 두 벌에 슬리퍼 한 켤레면 살아가기 넉넉하다고 하길래 내가 하나 더 보탰다. 오토바이가 있어야 한다고. 두말없이 모두 동의했다. 발리에서는 오토바이 의자에 앉아서 발이 땅에 닿는다면 오토바이를 탈 자격증을 주는 듯했다. 오토바이 하나에 앞에서부터 장남, 운전사 아빠, 차녀, 엄마 이런 순으로 타고 가는 것이 너무 흔했다. 안 보여서 그렇지 힌두의 신들도 혹시나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지나 않을까?
그래서 나온 것이 무르끼식 운전법이다. 무르끼의 운전법을 살펴보면 무르끼는 신호 대기 중이거나 차가 밀리면 앞차와 간격을 20cm로 붙인 후, 10cm로 줄이고 다시 5cm까지 붙인다. 조수석에 앉아 있다 보면 앞차를 밀려고 하나 싶을 정도로 붙인다. 그래서 무르끼 차 앞을 지나 차선 변경을 할 수 있는 오토바이는 없다. 20cm만 해도 될 터인데 굳이 5cm까지 붙이는 건 무르끼의 운전에 대한 자존을 보는 듯했다. 과거 20cm 정도에서 용납하던 시절, 혹시 오토바이를 번쩍 들고 차선변경을 하려는 놈이 있었는지 모르지만, 결코 내 앞에서 차선변경은 용납할 수 없다는 임전무퇴의 정신을 앞차와의 5cm의 간격과 그의 굳게 다문 단호한 입술선에서 느낄 수 있었다. 족자카르타에서 엑꼬라는 운전기사는 자신의 차 앞을 지나 차선변경을 하는 수많은 오토바이에 대해 무력하게 지켜만 보았고 그 결과 그는 많은 시간을 오토바이에 양보하는 허약한 드라이버로 전락하고 말았다. 무르끼 짱!!!
< 드디어 비치에 오다. 게 요리를 시켰는데 볶아버리는 바람에 육즙도 없고 껍질만 바싹거리면서 이빨 사이에 끼인다. 아주 지랄 같은 요리다. 게 요리는 찌는 것 이상이 없다. 차라리 Sniper, Kingfish같은 찜요리가 맛이나 양념에서 마음에 든다.>
내가 도대체 왜 해변으로 가지 않느냐, 나는 카멜레온처럼 360° 눈을 돌려도 될 만큼 짙고도 검은 선글라스를 준비해 왔다. 기회를 달라. 이런 기회는 자주 오는 것이 아니고 기회는 왔을 때 잡지 않으면 반드시 후회한다고 항의했더니 드디어 내가 고대하던 바닷가로 가게 되었는데, 짐바란 밤 바닷가의 시푸드 집에 가서 생선과 게 요리 등을 검은 선글라스를 쓰고 쳐다보게 되었다. 내 마음도 검은 선글라스처럼 검게 타버렸다. 해변에는 서양계집애들이 모래 장난을 치며 놀고 있었다. 밤바람에 모래를 자주 뿌려 우리 자리까지 날아와 패죽이고 싶었지만 영어로 꾸짖을 마땅한 말이 생각나지 않아 모래가 날아오지 않는 척하고 참았다. 그 대신 모래가 눈에 들어가지 않게 검은 선글라스를 섰다. 앞이 캄캄했다. HEY, GIRL! WHY SEND SAND TO ME? 라는 말을 겨우 만들어 냈지만 SEND와 SAND의 발음이 또 나를 참게 했다. 겨우 SEND 대신에 SPRINKLE을 생각해 냈을 때 아이들은 가고 없었다. 선글라스를 벗어 조용히 케이스에 넣었다.
널따랗게 펼쳐진 모래사장을 따라 몇 군데의 대형 시푸드 음식점이 보였고 그 지붕 위로는 마치 불이 난 듯 엄청난 고기 굽는 연기가 올라가는 것이 보였다. 별빛을 그을릴 만큼의 끝없이 올라가는 고기 굽는 연기가 여기저기의 대형 음식점에서 끝없이 올라가고 있었다. 낮에는 매연으로, 밤에는 물고기 굽는 연기로 발리 사람들은 그들의 신에게 경배하는 것 같았다. 내가 신이라면 화산재와 용암으로 이들을 쫓아버리고 조용히 좀 지내고 싶을 지경이었다. 세속이 신성을 덮어버린 정신없는 발리의 밤낮이여!
<신들은 가격표를 목걸이 삼아 걸고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 (2014. 01. 05)
에피소드 2 : 높은 곳에서 멀리 바라보다
여행 4일째 되는 2013년 12월 29일. 아침 식사 후, 발리 섬에서 수라바야로 가는 비행기를 타고 보니 눈 아래 보이는 바다의 빛깔이 환상적임을, 저 활처럼 탱탱하게 당겨진 빛나는 바닷가라면 검은 빛 짙은 선글라스가 필요했음을 느꼈다. 1시간의 비행 후 내린 수라바야는 인니 제 2의 도시. 차라리 발리보다 조용하고 질서 있는 도시라고 느껴졌다. 하지만 이런 조용하고 질서 있는 도시가 품고 있는 엄청난 비밀이 있을 줄이야!
이런 저런 인연으로 인도네시아의 현지 사시는 스펀지를 만드는 공장인 세림(주) Lee사장님의 도움으로 나시고렝(볶음밥)까지 대접을 받은 우리는 오늘의 일정이 브로모 화산까지 가는 것이라는 것을 알고 대강 알콜 종류 수집에 대한 정보를 캐기 시작했는데, 바로 절망에 빠졌다. Lee사장 왈, 발리는 관광지이고 힌두교는 음주에 대해 조금 관대한 편인데 이 곳은 이슬람이라 음주 자체를 부정하니 4.5°이상의 음료를 팔지 않는 .......... 흑흑흑, 같은 롯데마트라도 파는 것이 다를 수가 있다는 현실이 뭔가 여백이 있는 꿈처럼 허황되게 느껴졌다.
식사 때 골프장 식당이라 제공되는 빈땅 맥주가 우리가 마실 마지막 맥주가 될지 모른다는 비장한 각오로 우린 각자의 캐리어에 있는 소주를 체크하기 시작했다. 어제 롯데마트 리큐르매장에서 살 수 있었던 아낙발리, 보드카, 포도주, 위스키, 제일 싫어하는 럼주까지..... 아, 수도 없이 많았던 맛보지 못한 리큐르들이여. 그리고 채곡채곡 쌓여 있던 빈땅 맥주들, 메아리처럼 들리는 Lee사장님의 말소리 “빈땅 맥주도 잘 없고 파는 곳도 드뭅니다.” 안--녕. 다행히 우린 어제 발리의 민속주인 “아낙발리”를 마심으로써 소주를 거의 1,200cc 정도 절약할 수 있었다.
안선생님의 목소리가 조금 떨리는 듯했다. “지금부터 소주는 최대한 아껴서 마시고 우리가 할 수 있는 한, 빈땅 맥주를 확보하여 이 어려움을 극복해야겠습니다.” 어젯밤, 술자리가 파한 후 도사장과 둘이서 또 소주 600cc 한 병을 해 조졌다는 사실이 뇌리를 스쳤지만, 어려울수록 단합이 중요하다는 마음에서 고개를 끄덕이며, 앞으로 또 그런 식으로 나를 부르지 않고 둘이서 마시면 용서치 않으리라고 단단히 결심했다.
수리바야에서 Lee사장님의 안내로 스펀지 공장을 둘러보고 우린 브로모 화산으로 향했다. 프로볼링고까지는 2시간, 거의 1차선 같은 2차선 도로를 달리던 버스는 이제 더 이상 갈 수 없어 산악용 지프에 우리를 인계하고 웃으면서 사라졌다. 프로볼링고에서 우리의 숙소가 있는 마을까지는 48km가 남았단다. 버스가 못 올라가는 48km라니, 시간이 1시간 반이 걸린다는데, 짐을 싣고 나니 두 대의 지프에 사람이 탈 수 있는 공간이 딱 8개 남았다. 참 공간 활용이 적절하다. 이 날은 유일하게 가이드를 두 명 채용했는데, 프랑스어를 잘해서 별 쓸모없는 28세의 현지인 청년, 한국어를 공부해 특별 캐스팅되었지만 윤선생의 영어실력만큼 큰 도움이 되지 않는 인도네시아 여대생 “고다솜(자기가 그리 지었단다)”, 그렇게 8명으로 우린 한 팀이 되었다.
숙소의 형태는 빌라라고 생각하면 된다. 즉, 주인은 성수기인 여행철이 되면 다른 친척집으로 가버리고 여행사에 집 자체를 빌려주는 것이다. 그래서 생활 도구가 그대로 있어 오히려 조심스럽다. 응접실에는 이 집 아이가 그렸음직한 크래용으로 그린 그림이 벽에 붙어있고 사진들도 그대로 있어 아이가 열서넛 되었으리라 짐작된다. 그리고 이 곳에 와서야 비로소 실제 생활하는 인도네시아인들의 생활에 접할 수 있어 생경스러우면서도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 윤선생이 앉아 있는 뒤에 보이는 것이 현관문이고 벽에는 상당히 잘 그린 크레용 그림이 붙어있다. 사진이며 트로피 등이 그대로 있다 >
< 거실이고, 좌측은 방이다. 건너편 초록색 벽 아래 가스렌지가 있는 주방이고 그 좌측에 검게 보이는 부분에 화장실 문이 있다. 그 사이를 잘 보면 고다솜 양이 컵라면을 준비하고 있음이 보인다. 인도네시아 아가씨들은 왜소하고 날씬한데 다솜양은 이름만 아니라 체형까지 한국을 닮으려는지 사진에서 보이는 굵은 팔이 나머지를 짐작케 한다. 제일 마지막 페이지에 다솜양의 사진이 있으니 참고 바란다 >
< 안방에 딸린 좀 서구화된 화장실, 주방 옆 변기는 그냥 우리나라 쪼그려 앉아 볼일 보는 변기 형식과 닮았다 >
특히나 화장실에서 볼일을 본 후 이리저리 둘러본 나는 화장지가 없음을 알았다. 그러나 내가 어떤 사람인가? 조금 당황하였지만 바로 사고방식을 이슬람 모드로 융통성 있게 전환하여 옆의 바가지로 물을 퍼서 수동 비데를 작동 후 왼손으로 깔끔하게 처리하고 다시 왼손을 씻음으로 바로 그들의 화장실 문화에 성공적으로 적응하였다. 하지만 이슬람문화를 체험하는 것과 익숙해지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므로 이후로는 반드시 화장지를 확보 후 화장실에 들어감으로써 우리 고유의 전통 화장실 문화를 고수하려 노력하였다.
여행 5일째 되는 2013년 12월30일. 오늘은 페난자칸 전망대에서 일출을 보고 브로모 화산에 오르는 것이 관광의 주요 일정이다. 우기에 해당하는 12월 말의 인도네시아 기온은 낮에는 28° 정도였으나 우리가 묵는 쩨모로라왕 마을은 자체 고도가 2,000m 이상 되는 듯하여 새벽 3시에 일어나니 추워서 다시 내의를 입고 위에는 패딩을 입어야 했다. 우리가 가야 할 곳은 고도가 2,706m의 페난자칸 전망대로 마을에서 5km 떨어진 곳이었는데 산악용 지프를 타니 거의 35° 오르막길을 가다가 다시 20° 내리막길로 처박히듯 꼬불꼬불한 길을 달리는데 결국 15° 만큼 올라간 셈이었다. 이러기를 반복하다 보니 길옆 사람들이 많이 모인 곳이 보였다. 저긴가 했더니 다시 지프는 엄청난 매연을 뿜으며 오르막길을 오른다. 그러다가 9부 능선 정도에 차를 세우고 우측으로 난 어두운 길로 가란다. 이런 플래시도 없는데 어떻게 가라는 건지 하는데 남자 가이드가 조그마한 플래시로 앞길을 비추어 준다. 발밑을 조심하며, 겨우겨우 전망대에 갔더니 이런 우라질레이션, 거기에서 아줌마가 플래시를 팔고 있다. 이 아줌마는 플래시를 지금까지 몇 개를 팔았을까? 그리고 플래시가 안 팔리는 이유를 알기나 할까?
전망대에는 모닥불을 피워 놓고 커피와 차를 파는 사람, 모자와 장갑을 파는 사람, 사진기를 설치하는 사람 등등이 모였는데 일출의 좋은 자리를 선점하기 위해 조금 앞으로 다가가 보니 발아래는 80°의 낭떠러지였다. 깜짝 놀라 뒤로 물러서서 다른 사람에게도 주의하라고 일렀다. 혹시나 오늘이 12월30일인지라 일출에 무언가 기원을 하려는 사람들이 몰릴 경우 벼랑으로 떠밀리게 되면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밀지 마라, 쫌!”인데 그걸 이 사람들이 알아들을까? 그렇게 되면 아껴 두었던 소주를 못 마시는 불상사가 생기게 되므로 허술하지만 대나무로 얼기설기 짜 맞춘 펜스에 의지해 우선 중요한 목숨을 보전하는 일에 열중했다. 아직도 캄캄한 지라 저 아래 화산재로 이루어진 사막 위로 오토바이와 지프의 헤드라이트가 끝없이 줄지어 오는 것이 보였다. 사막인지라 따로 길은 없고 차들이 자주 다니는 곳이 길이 되어 마치 레이스를 하듯 불빛들이 우리가 있는 전망대를 향해 달리고 있었다. 우리 위쪽에도 전망대가 하나 더 있는 듯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전망대가 네다섯 군데 정도였고 오면서 중간에 사람들이 모여 있던 곳이 가장 큰 전망대인 듯했다. 그들보다 우리는 약 100m 더 높은 곳에 있고 우리보다 또 100m위에 사람들이 모여 있는 듯했다.
< 작은 달을 확대, 확대, 확대하다보니 윤곽이 희미하게 되었다 >
새벽 공기는 상당히 찼다. 하늘에는 달이 사진처럼 초승달 모양으로 떠 있는데 - 이런 세밀함이 과학의 자세이다. 왜냐하면 남반부라서 이것이 북반부에서 말하는 초승달과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욕조에 물을 빼면 일정한 방향으로 회전하면서 빠지는데 이를 전향력이라고도 하고 발견자의 이름을 따서 코리올리 힘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지구의 자전으로 말미암아 생기는 것으로 왼쪽으로 빠지는 남반부와 오른쪽으로 빠지는 북반부가 그 방향이 다르다. 이와 같이 자연현상을 논할 때는 북반부 기준의 사고를 접어두는 신중함이 필요한 것이다. 이로써 신중함의 미덕까지 보였다 - 이 달을 보다가 문득 북두칠성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리고 말로만 듣던 남십자성도 찾았다. 그런데 북두칠성이라니!!!!
일행들에게 북두칠성을 보라고 했더니 믿지를 않는다. 북두칠성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 이유는 평상시 보던 북두칠성이 아닌 엎어진 모양의 북두칠성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남반부이기 때문에 북두칠성이 보일 리 만무하다는 것이었다. 그렇다. 여긴 분명 남반부이다. 그러나 내 눈에 보이는 저 국자 모양의 7개의 별은 그럼 무엇이란 말인가? 아직까지 남반부에 북두칠성 비슷한 모양의 별이 있다는 사실을 들어본 적도 없고 남두칠성이란 용어도 들어본 적이 없지 않은가. 다만, 북두칠성의 국자 쪽 두 별을 연결한 거리의 5배 자리에서 북극성을 찾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 까닭은 그 위치가 지평선 아래가 되기 때문이다. 물론 이렇게 장황하게 설명할 필요 없이 사진으로 보여 주면 될 것이나, 위의 달 사진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사진으로 찍을 수 있는 밝기가 아니었다. 2013년 12월 30일 5시경 브로모 화산이 내려다보이는 페난자칸 전망대 좌측 15° 위치에 엎어진 모양의 북두칠성이 있었다는 것을 알아 두기 바란다. 그리고 우측 20° 지점에 밝게 빛나는 남십자성이 있었다. 혹, 비슷한 날짜에 이곳을 방문하는 분이 있으시면 확인 후 연락주기 바란다. “남반부에서 북두칠성을 찾은 사람의 모임”이라도 만들고 싶을 지경이다.
< 일출점을 기준으로 좌측에 엎어진 북두칠성, 우측에 남십자성이 보였다 >
그런데 숙소로 돌아와 겨우 와이파이가 터지는 곳에서 네이버에 “남반부에서 북두칠성을 볼 수 있나?”로 검색을 했더니,
북두칠성 ㅎㅎ
tot**** 2008.06.02 17:34
추천 수3, 답변 : 3, 조회 : 572
저 님들아, 우리 과학 쌤이 남반구에서는 북두칠성이 안 보인다구 하는데..
저는 이 두 눈으로 남반구에서 북두칠성을 정확히 봤습니다... 그리고 물리학 박사와 함께...
진짜로 찍고 봤습니다. 이거 정말 거짓말 아니구요.
그러면 우리 과학 쌤이 틀린 건가요?
아주 성실한 답변 부탁 합니다.
질문자 인사
늦은 채택 죄송합니다.. 다른 일 하느라궁.. 그런데 제가 진짜로 북두칠성을 남 반구 7도에서 봤거든요? 그리고 아주 오랫동안... 그리고 주기적으로 계속 봤는데.. (그냥 하루만 본게 아니라.... ) 이건 어떻게 설명하죠? 이것까지 답변 해주시면 ㄳ
지구는 둥글고 태양의 주위를 공전합니다.
또 회전축을 기준으로 자전을 합니다.
반듯하게 서서 도는 것이 아니고 23.5도 기울게 서서 자전하죠.
이 두 가지를 합하여 일 년을 모두 보면 지구 자체의 그림자에 가려서 일 년 내내 보이지 않는 곳이 있죠. 미국이나 영국처럼.
그러나 아주 멀리 있을수록 보이는 각도가 커지게 됩니다.
남반부도 남반부 나름이어서 일 년 중 어느 짧은 한 때는 북두칠성이 보이는 곳도 있을 수도 있지만 그건 여러 가지 경우를 모두 그림을 그리면서 살펴보아야 알겠죠. 그러나 남반부 대부분에서는 북두칠성을 볼 수 없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남십자성을 볼 수 없듯이 말입니다. 샘은 옳고 님은 아주 특별한 경우에 있었는가봅니다.
keyqja
남반구에서는 보이지 않습니다.
북두칠성은 자전축에서 1도 이내에 존재합니다.
제가 천문대에서 봐서 압니다.
님이 구라를 까지 않는다면 물리학 박사랑 님이 북두칠성이 뭔지를 전혀 모르는 겁니다. 아니면 남반구가 어딘지를 모르는 것일 수도 있지요.
위도 경도를 밝혀 주세요.
큰곰자리랑 작은곰자리 햇갈린 게 아닐까요?
이와 같은 답변을 찾을 수 있었다. “tot****” 란 학생의 갑갑하고 억울함이 나에게도 전해졌고, “moonjlee47” 가 말한 “아주 특별한 경우”란 게 무엇일까를 생각해내면 문제가 해결될 듯했다. 그리고 ‘keyqja’란 놈의 싸가지 없고 편협한 사고와 발언에 분노를 금할 수 없었다. 자기 생각과 다르면 구라를 깐다거나 전혀 모르는 말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자체가 스스로의 미숙함을 드러내는 것이 아닌가? 특히 “님이 구라를 까지 않는다면 물리학 박사랑 님이 북두칠성이 뭔지를 전혀 모르는 겁니다. 아니면 남반구가 어딘지를 모르는 것일 수도 있지요.” 초딩들도 아는 북두칠성을 물리학 박사가 전혀 모르고 있다고? 그리고 아예 남반부가 어딘지를 모른다고? 이런 싸가지 없는 놈 때문에 내가 이 글의 첫머리에서처럼 경고문을 달아야 하는 것이다. Boat. 터무니없는 헛소리를 하는 놈들과 같은 하늘 아래 사는 자체가 부끄러울 뿐이다. 그저 “wjrmaxhd1400” 정도로 자신의 생각을 완곡히 드러낼 수 있지 않은가 말이다.
아무튼 “아주 특별한 경우“에 해당되는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니 그것은 시간과 고도라는 생각이 들었다. 북두칠성이 가장 높은 위치에 있을 때, 마침 내가 2,706m의 페난자칸 전망대에 있었던 것이다. 남반부의 평지에서는 지구 곡면에 가려 보이지 않던 북두칠성이 내가 2,706m 올라와 지구의 곡선을 극복하니 그 모습을 드러내 보인 것이다. 산에 가로막혀 뒤에 무엇이 있는지를 알지 못한 사람이 저 산 뒤에는 아무것도 없다고 주장하는 것과 그 산보다 높은 곳에 올라 산 너머에 마을이 있더라고 말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높은 곳에 올랐기 때문에 북반부의 밤하늘을 바라 볼 수 있었고 그래서 밑에서는 볼 수 없었던 북두칠성을 본 것이리라. 중국의 성인인 공자가 동산에 오르니 노나라가 작고 태산에 오르니 천하가 작다고 한 경지를 문득 깨달은 듯하다. 공자도 나처럼 평상시 보이지 않는다고 생각한 걸 본 게 아닐까? 아니면 상식을 넘어서는 새로운 경지를 깨달은 것이 아닐까?
< 저 멀리 수메루 산, 그리고 산의 2/3가 날아 가버려 위가 평평해진 이름 모르는 산, 주름치마처럼 단정한 모습의 바툭산, 그리고 흰 연기처럼 피어오르는 것이 브로모 화산이다. 생각하던 것보다 브로모 화산은 크지 않았다. 그 아래 펼쳐진 것은 화산재로 된 사막으로 길처럼 보이는 것이 새벽에 우리가 올라온 길이다. 자세히 보면 브로모 화산으로 올라가는 길이 보인다 >
어느 듯 여명이 비치자 별들은 점차 빛을 잃어 밝음 속으로 사라지고, 태양이 구름 속으로 그 모습을 드러냈건만 왠지 허무한 느낌이 드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저 멀리 스메루산(불교에서 말하는 수미산, 3,767m)을 배경으로 산의 2/3 정도가 없어진 엄청난 폭발의 흔적만 남은 이름 모를 산과 주름치마 모습의 바툭산 사이로 가끔 브로모 화산이 흰 연기를 뿜는 것이 보인다. 올라왔으니 이제 내려 가야한다.
올라간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인가? 우리는 단지 올라가는 것만으로도 많은 것을 깨달을 수 있다. 땅에서 우리가 사는 곳이 평평하다고 생각하지만 인공위성에서 지구를 보면 지구가 원이라는 사실을 바로 깨달을 수 있지 않은가. 더 높이 올라가면 우리가 속한 우주를 볼 수 있을 것이고 더 높이, 더 높이 올라가면 우주 전체의 모습이 보일 것이다. 거기서 다시 더 올라가면.......
신을 만날지 모르지.
( 2014. 01. 07 )
에피소드 3. 짠디 삼비사리의 개구라
2013년12월31일, 6일째 되는 날이다. 보로부두르 사원과 먼둣 사원을 본 후, 프람바난 사원을 가려 했으나 운전기사가 시간상 프람바난 사원은 내일 가는 것이 좋겠다고 말하고 대신에 다른 사원을 소개하겠다고 했다. 계획대로 되었다면 아마 에피소드3은 없었을 것이고 나도 동행에게는 평범한 사람으로 인식되었을 것이다. 이 에피소드는 마침 선배에게 메일을 보낸 것이 있어 그걸 조금 수정하여 옮기려 한다.
경치도 보시고 추리의 재미도 느껴 보세요. 2014.01.01
사진을 보낼 수 있는 능력이 나에게 있군요. 화산재에 파묻혀 잊혔던 탑인데 1966년에 우연히 발견되었답니다. 의문은 모두 네 가지입니다.
사진 설명부터 해야겠군요. 첫째 사진 (끝자리가 13)은 전체의 모습으로 좌측을 향해 탑이 있습니다. 49는 정면의 모습, 46은 탑의 입구, 57은 탑 속의 조각. 38은 바깥에 있는 조형물, 42는 이 탑의 이름인데 C를 ‘ㅉ’로 읽는답니다. 그래서 "짠디 삼비사리"가 이 탑의 이름이라는군요. 힌두 양식의 탑인데, - 사진이 첨부 파일임을 상기하라.
< 첫째 사진 (끝자리가 13)은 전체의 모습으로 좌측에 마을 사람들이 풀로 사원의 이름을 새겨 두었습니다. 1966년 일하는 농부가 우연히 발견하여 1972년부터 1978년까지 복원했답니다.>
의문 1. 왜 평지보다 낮은 곳에 탑이 있느냐? ㅡ 사원을 짓는 경우, 평지나 평지보다 높은 위치에 짓는 것이 일반적인데 이 사원은 지하에 있습니다. 그렇다면 후대에 화산폭발로 화산재에 파묻혔을 것이라는 것이 나의 추리였습니다. 이건 나중에 찾은 전시관에서 확인한 결과 내가 추리한 것과 일치했습니다. 5명의 일행이 나에게 갑자기 존경심을 품기 시작하는 계기가 됩니다.
< 주탑의 정면으로 탑 속으로 들어갈 수 있다>
< 탑 속의 조각(57) - 내 사진은 흐려서 불펌. 용서하세욤.
- 아래의 조형물과 달리 좌측에 물길이 있음을 주목하기 바랍니다.>
< 바깥에 있는 조형물(38) - 앞에 둥글고 윤기 나는 것은 그냥 돌입니다. 뭔가 의미 있는 것을 발견한
것이 아니니 흥분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의문 2. 57의 조형물이 무엇을 의미하기에 탑의 중앙부에 있나? ㅡ 이건 중심탑에서도 중앙에 위치한 것으로 보아 가장 중요한 상징성을 지닌 조형물일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석굴암으로 치면 본존불의 위치입니다. 날씨가 비가 왔고 내부가 어둡고 전체 모습이 희미하여 바깥에 있는 조형물(38)을 보고 추리를 했는데, 중국처럼 천원지방(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지다)이라는 힌두교의 우주관과 연관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보로부두르의 전체 모습도 사각형 비슷한 위에 제일 꼭대기는 둥근 모양이므로 이와 같다는 걸 문득 떠올렸지요. 연관지우는 것이 추리에서 매우 중요합니다. 일행들이 나를 존경을 넘어 경외의 대상이 아닐까 하는 의문을 품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좌측의 물길이 있는 것을 본 일행 중 한 사람이 의문을 품었습니다. 왜 여기 배수로 같은 것이 있을까라는 것이었지요. 상당히 의미 있는 질문이었습니다. 아직 어떤 종교적 상징물 옆에 배수구가 있는 것을 본 적이 없고 그것이 천 년 전의 물건인데야 더욱 의미를 부여할 만 했지요. 마침 이날 비가 내렸는데 탑 천장에서 물이 새어 이 조형물은 젖어 있는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비가 오면 물이 빠지도록 한 것이겠지 하는 의견과 이 조형물을 씻기 위한 것이겠지 하는 의견이 나왔습니다만, 첫째 의견은 가능성이 희박했습니다. 탑을 세울 때 천장이 샐 것을 대비하지는 않았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집을 지을 때 비 샐 것을 대비해 미리 물통 시설을 해 두는 경우는 없으니까요. 두 번째 경우도 먼지떨이로 털거나 걸레로 닦으면 되지 굳이 씻기기 위해 배수구까지 필요할까 하는 생각이 났습니다. 그래도 첫째 의견 보다는 나은 의견이긴 하지만 확실하지도 않고 너무 평범한 의견인지라 말을 아끼고 연구 대상으로 남겨 두었습니다. 나는 침착한 사람입니다. - 이 평범해 보이는 배수구가 내일 과거 힌두인들이 가졌던 엄청난 우주관을 발표하게 될 계기가 되리라고는 나도 이때는 짐작하지 못했습니다.
< 정면에서 바라본 모습으로 특히 큰 탑 앞에 세 개의 작은 탑이 있음을 주목하기 바랍니다.>
의문 3. 49의 정면의 앞쪽의 3개의 조형물은 무엇인가? ㅡ 주탑이 천원지방이라는 우주관을 표현했다면, 탑이 3개니까 우주에 버금갈만한 것으로 시간을 생각해 내었습니다. 그래서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시간관을 의미할 것이라고 추리를 했고 드디어 일행은 이 사람이 이 짧은 시간에 이렇게 그럴듯하게 짜 맞추는 걸로 보아 대단한 사기꾼일 것이라는 생각을 품고 속을 뻔했다고 결론지은 듯합니다. ㅠ ㅠ 하긴 내가 생각해도 나의 추리의 능력이 어디까지일까 궁금해질 정도입니다. 그리고 국문과를 갈 것이 아니라 역사 학자가 되었으면 인디아나 죤스가 성배를 골라내듯 그런 식견 높은 학자가 되지 않았을까라고 생각했습니다.
< 비록 부서졌지만 앞에 있는 세 탑의 계단을 잘 보기 바랍니다. 그리고 주탑의 계단도 한번 보세요.>
4. 드디어 의문 ㅡ 13의 사진에서 잘 드러나지 않지만 3개의 탑에 오르는 계단이 46의 주탑을 오르는 계단의 방향과 반대라는 사실입니다. 계단은 올라섰을 때 경외의 대상과 마주 보도록 설계가 되는데 이 경우는 서로 경외의 대상을 향했을 때 등지고 있는 형국입니다. 작은 사진에 미비한 설명입니다만 대강 저의 의문이 이해가 되나요? 왜 그럴까요? - 내가 찾아낸 답 : 늦은 시간에서야 숙소에 돌아왔지만 궁금증은 가시지 않았습니다. 누워서 추리와 고찰을 한 결과, 주탑이 우주관이고 세 개의 탑이 과거 현재 미래의 시간관을 드러낸다고 가정한다면 시간과 우주는 별개로 움직인다는 것을 표현한 것이 아닐까라고 생각했습니다. 마주 본다면 시간과 공간이 서로 공존하는 형상이 되겠고, 같은 방향이라면 하나가 하나를 추종하는 형상이겠지만 서로 등을 돌린 형상이야말로 시간과 공간을 따로 존재한다는 것을 나타낸 것일 거라는 엄청난 결론에 도달했지요. 그러나 이러한 나의 생각을 일행들에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이건 너무 엄청난 이론이라서 남들에게 이해시키기가 힘들고 또 별로 흥미를 가질 만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다만 계단의 방향이 다르다는 사소한 발견에서 이런 엄청난 이론을 추론해 내는 자신을 교만한 마음으로 쳐다보았습니다.
< C를 ‘ㅉ’로 읽어서 "짠디 삼비사리" 1987. 03. 27에 발굴이 끝났답니다 >
무식으로 속이고 무식으로 속다 2014.01.04
1월 2일에 족자카르타의 프람바난 사원으로 가기 위해 차를 탔습니다. 그리고 밤새 연구한 삼비사리 사원 주탑에 있던 배수구의 비밀을 발표했습니다. 잠시 57과 38의 천원지방의 조형물을 다시 보시면, 둥근 기둥 아래 네모의 받침이 있고 네모의 받침 둘레가 파여 있고 그 파인 곳에 배수구가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를 상징적으로 해석하자면, 둥근 하늘 아래 네모진 땅이 있고 그 주위를 바다가 에워싸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다는 배수구를 통해 우주로 물을 흘려보낸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었지요. 많은 양의 강물이 바다로 흘려들어가 바다가 차면 일정량을 우주로 내보내는 걸로 당시 사람들은 생각한 듯합니다. 물론 우주로 쏟아진 물은 다시 비가 되어 내리는 정도로 생각했겠지요. 그들은 달의 인력으로 밀물과 썰물이 생긴다는 것과 지구가 둥글다는 것도 몰랐을 것이니까요. 다만 바닷물이 점점 차올라 다시 비워지는 것과 달의 차고 이지러짐이 시간적으로 일치하는 정도로 생각했을 것이라고 판단했지요. 이런 과학과 우주에 기반한 학술적 이론에 비가 새는 것을 대비했다는 사람이나 청소하려고 했다는 사람들이나 나의 광오한 지식과 엄청난 상상력에 놀라 도대체 이 사람이 우리가 평소 알던 그 사람인가, 도대체 이 사람의 지식과 학식은 어디까지란 말인가라고 생각하는 듯 했습니다. 참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그래서 차라리 프람바난 사원은 가지 말아야 했습니다. 나의 완전한 교만의 지속을 위해서.
< 프람바난 사원의 일부 - 지진으로 부서진 걸 다시 세우다 또 지진 ㅠ ㅠ>
가장 아름다운 힌두 사원이라는 프람바난 사원은 참 대단한 사원이었습니다. 거의 보로부두르 사원에 맞먹을 정도의 규모와 조각물에 세계문화유산으로 손색이 없구나하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습니다. 그리고 슬프게도 삼비사리 사원에서 품었던 4가지 의문 중 3가지나 잘못 판단한 것이 드러나고 4번째 의문도 풀렸습니다.
주탑 앞의 세 개의 작은 탑은 과거, 현재, 미래의 시간관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프람바난 사원에 갔더니 중앙에 시바(가장 큰 탑), 좌측에 브라흐마, 우측에 비슈누를 모신 세 개의 탑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각각의 탑 앞 난디(암소), 함사(백조), 가루다(독수리)의 세 개의 탑이 있었는데 계단의 방향이 삼비사리 사원의 계단처럼 서로 마주 보고 있었지요. 그것을 보니 모든 의문이 풀렸습니다. 즉 시바신이 어디 가려 계단을 내려오면 자가용인 난디가 미리 차고에서 나와(계단을 내려와) 대기하고 있어야 하니까 계단이 마주 보는 게 이치상 맞는 것입니다. 세 개의 탑은 시간과 전혀 관계없는 힌두교의 주요 삼신의 자가용 차고인 셈이었습니다. 그래서 계단이 마주 보는 비밀은 풀렸습니다.
그리고 천원지방 ㅡ 삼비사리 사원의 주탑 속 조형물에 대한 나의 견해ㅡ에 대해서는 새해 첫날 프람바난으로 이동하는 차 안에서 배수구의 비밀까지가 보태어 가며 얄팍한 과학과 우주의 이치를 곡학하여 기존 거짓에 새로운 거짓을 보탰더군요. 몽매한 다섯 동행자들로 하여금 그 조형물은 힌두의 우주에 대한 엄청나고 오묘한 이치를 담은 것이구나 하고 느끼도록 한 것 등이 몽땅 엄청난 개구라라는 사실이 드러났지만, 일행 중 아무도 모르고 있어 다행입니다. 어리석은 사람들을 추리적 지식을 바탕으로 한 완전 개구라를 사실로 믿게 하고 존경심마저 불러일으킨 나의 행동은 고의가 아니라는 점에서 용서 받을 수 있을까요? 아니면 나의 무식이 죄일까요?
귀국 후 하루 쉬고 새벽에 일어나 와이파이가 마음껏 되는 한국의 문화적 현실에 감사하며 찾아보니, 둥근 형상은 남성인 시바의 상징인 링가이고 사각형은 여성인 요니의 상징으로 요니가 링가의 받침대가 되어 이 둘은 분리할 수 없는 모든 존재의 완전성을 드러낸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주탑의 외면벽에 코끼리 형상의 비슈누와 시바와 브라흐마가 조각되어 있던 게 기억이 나고 사진도 찍었더랬습니다.(아래의 사진이 그것입니다)
브라흐마 비슈누
그렇게 보면 삼비사리의 탑은 주탑인 링가가 우주의 본원적 이치인 음양과 창조와 파괴의 이치를 드러내고 이를 세 주신이 바깥에서 지키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세 주신의 자가용이 항시 앞에 대기하고 있어 모든 문제는 즉시 해결된다는 것을 말하는 게 아닐까요?
그러나 그 세 주신들과 그들의 자가용은 화산재에 파묻히고 말았습니다. 현재 거의 8미터나 되는 깊이니까 당시의 화산재로 보면 몇 미터가 될지 짐작이 되지 않을 지경입니다. 그들을 숭배하던 인간들이 쏟아지는 뜨거운 화산재에 파묻혀 죽어갈 때 그들은 암소를 타고 독수리를, 백조를 타고 어디로 출동했을까요? 세 주신뿐만 아니라 힌두의 삼만 삼천의 신들은 아마 대답하지 못할 듯합니다.
- 전체적으로 정리하면 이번 여행에서는 세 편의 기행문이 나올 듯합니다. 이 메일은 세번째 에피소드의 초고인 셈이네요.
한경호 (2014.01.04) - 결과적으로는 세 번째 에피소드가 제일 먼저 완성이 되었다.
여행을 마무리하며
여행을 다녀왔더니 만나는 사람들마다 재미있었느냐고 묻는다. 힌두 사원이 무슨 재미가 있고 브로모 화산의 연기가 어떻게 재미있을 수 있을까마는 그냥 예라고 말한다. “여행이 유익했습니까?”라고 묻는다면 여러 가지 유적지와 관광지와 새로운 견문들로 판단하겠지만 재미를 묻는 건 좀 곤란하다. 여행은 현지의 사람을 보러가는 것이다. 그 사람들의 일부는 죽은 사람이며, 그 일부는 살아 있는 사람이다. 그러나 그것보다 중요한 여행의 재미는 동행하는 사람들이다. 동행하는 사람이 재미있어야 한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이번 여행은 엄청 재미난 여행이었다. 난 인천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소주나 다시 보충하고 다시 떠나고 싶을 정도였다. 그리고 음식은 왜 그리도 입에 착착 맞고 거부감이 없는지 짜증날 정도였다.
여행의 다섯째 날, 콜롬보 호텔 505호에서 가진 술자리에서 안선생님의 말이 기억에 남는다. “여행도 이제 5일째 되었으니, 피곤할 때도 되었습니다. 피곤하면 예민해지니 서로 조금 조심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말 때문에 감정이 상하는 경우가 있으니 서로 말을 조심해야 하겠습니다.” 이런 자질구레한 일에 신경을 쓰는 것이 전문가이다. 윤선생님이 고생이 많았다. 총무로서 출발 전부터 자질구레한 모든 일을 처리하고 진저리치는 루피아와의 싸움에서 파김치가 되어도 저녁이면 압축기 하나로 우릴 얼마나 웃었던가. 없으면 안 되고 있으면 불편하다는 객관적 평가의 윤선생이야말로 필수요원이다.
정선생님, 이선생님, 도사장님,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형제 같고 서로가 자신이 지닌 재주로 서로를 감싸 안으며 보낸 7박9일의 일정이 얼마나 재미있었으며, 우리 삶에 이런 여유롭고 흥미진진한 시간이 얼마나 많았다고 생각하시는지요? 올해 연말에도 새로운 여행지에서 헌옷같이 낡은 사람들이 다시 만나기를 기대합니다.
< 2013. 12. 30. 2,706m의 페난자칸 전망대. 아침에 거울을 본 사람처럼 모두 성난 표정이다. 좌측부터 국어과 필자, 영어회화에 능하신 국어과 정선생님, 고다솜양은 거울을 보지 않은 듯, 압축기 하나로 7일간 웃긴 천재 개그맨 수학과 윤선생님, 감기 기운 때문에 마스크를 한 영어과 이선생님, 여행 전체를 기획한 수학과 안선생님, 타칭 유리 전문가 도사장님. 보이진 않지만 사진을 찍고 있는 프랑스어 전문의 가이드까지 >
< 기타 느낀 점>
호평을 받은 부식들 : 고추고들빼기 장아찌, 돼지고기 된장고추장볶음, 씻은 김장김치, 멸치 볶음, 김치 볶음, 압축포장 맨 멸치, 맨 김, 볶음고추장(오뚜기). 땅콩. 그리고 또 있었는데....
세관 통과 시, 절대 줄지어 나가지 말 것.
공항 시간을 정상보다 30분 정도 여유를 두고 계획을 잡을 것.
<부록> 북두칠성 찾다가 눈 버리기 좋을 만한 사진. 그래도 찾고 싶을 걸.
< 정선생님 사진기에 찍힌 북두칠성의 모습. 5번 별자리는 달과 가까워서인지 희미해서 안 보인다. 그리고 7번 별자리는 희미하게 빛나는 위 쪽 별이지 밝게 빛나는 별이 아닌 것 같다 >
한 경 호 (2014.01.07)
첫댓글 들어왔어요^^ 간접 여행 넘 좋아요~~
또 다른 여행 기대할께요~~
풍부한 상상력으로 읊은 개구라 ㅋㅋㅋ
뭔가 있어 보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