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린애-이별후애 / 연인
군에 입대하기 1년 전이었습니다. 이대 앞 ‘타임스퀘어’란 음악다방에서 아르바이트로 DJ 노릇 좀 한 적이 있습니다. 고대 다녔던 한동철이라는 친구와 함께였는데 그 업소 사장님한테 스카웃(?)된 거죠. 친구들과 함께 경포대 해수욕장에서 갔다가 돈이 떨어져 무턱대고 찾아간 곳이 휴가 겸 해변에 간이업소를 차린 타임스퀘어였습니다. 처음엔 설거지 담당으로 들어갔다가 그 사장님과 음악적 취향이 비슷하다는 이유로 DJ석을 꿰찬 겁니다.
해변에 포장을 두른 간이다방이었지만 있을 건 다 있었습니다. 앰프는 그 당시에 누구나 가지고 싶어했던 독일제 마란쯔 Marantz란 놈이었으며, 스피커도 영국제 탄노이 Tannoy였습니다. 별표전축과는 그 성능이 천지차이였지요.
빽판(불법복제 LP음반)도 엄청 많았습니다. 레드 제플린, ACDC, 레인보우 등 하드락을 비롯하여 제니스 조플린, 도어스, 비틀즈 등 200여 장이 구비되어 있었습니다. 일주일 계획으로 떠난 경포대행이 결국에는 그 업소가 철수하여 서울로 돌아오던 날, 여름방학이 거의 끝날 무렵까지 계속되었습니다.
개학 후에도 이대 앞 타임스퀘어에서 계속 알바를 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지금까지 제가 우려먹고 있는 대중음악 상식은 거의 그때 익혔던 겁니다. 나름 제법 인기도 있었습니다. 이대생들이 주고객이었는데, 더러 묘한 쪽지가 DJ석에 전달되기도 했습니다. 대우도 짭짤했었지요. 근데 주머니 사정이 좋지 않았던 나와는 달리 비교적 넉넉했던 한동철은 알바비를 몽땅 세운상가 빽판 가게에 투자하곤 했습니다.
지금 그 친구는 일산 성사동 ‘자유로 청아공원’이란 데에 거주하고 있습니다. 유명을 달리했다는 말입니다. 8년 전에요. 고등학교 동기로 이 친구와에 얽힌 이야기는 대부분 음악에 관한 건데, 어쩌면 제가 대중음악을 이렇게 즐기게 된 것도 그로부터 받은 영향이 큽니다.
각설하고, 이 친구가 어느 날 '빽판' 하나 사들고 왔습니다. ‘브루라이또 요꼬하마 Blue light Yokohama‘라고 일어로 크게 적힌 자켓에는 흑백사진이 하나 박혀 있었는데, 매우 고혹적이면서 엑조틱한 분위기를 가진 여자였습지요. 가수 이름은 ’이시다 아유미‘, 바로 턴테이블에 올리고 감상했습니다. 뭐랄까.. 일본 노래 특유의 맛이 살아 있으면서도 미국풍의 리듬이 가미된 아주 새로운 경험이었습니다.
거리의 불빛이 무척 아름답네요, 요꼬하마 블루라이트 요코하마
당신과 둘이 행복해요
언제나처럼 사랑의 말을, 요꼬하마 블루라이트 요코하마
<후략>
70년대 중후반에 청소년기를 경험한 분들이라면 아마 이 노래 아시는 분이 많으리라 믿습니다.
한국에 상륙하기 이미 오래전인 68년에 일본에서 발표된 노래였지요.
알고 보면, 우리 대중가요가 미국보다 일본의 영향을 더 크게 받아왔습니다. 일본 대중음악 참으로 기반이 탄탄합니다. 전통가요 엔카는 소위 뽕짝에 크게 영향을 주었고, 재즈, 블루스, 락 등 영미 음악도 일본을 거쳐 들어온 예가 많습니다. 물론 주한미군의 영향도 무시할 수는 없지만요.
패전 후 미국 식민지(?) 시절에 일본인들이 받아들인 서양음악은 일본의 대중음악 발전에 매우 큰 기여를 하게 됩니다. 오다쿠(한 분야에 매니어 이상으로 심취한 사람)들이 많은 것이 일본의 특성 중 하나 아닙니까? 워낙 매니아층의 두텁고 충성심이 깊다보니, 다른 나라에 비해 재즈, 블루스, 락 등 각 장르에 걸쳐 실력 있는 아티스트들이 먹고 사는데 크게 지장이 없답니다. 심지어 미국의 유명 밴드의 경우 오히려 본토보다 일본 연주회에 더 많은 신경을 쓸 정도로 일본 대중음악계가 깊고 다양하게 발전되어 있다고 할 수 있겠지요.
지금은 덜하지만 한동안 우리나라 가수들이 일본 곡 노래 리메이크해 부른 노래 참 많습니다.
베이비 복스의 ‘우연’, 컨츄리꼬꼬의 ‘오 마이 줄리아’, 이수영의 ‘굳바이’, 박화요비의 ‘당신과의 키스를 세어 보아요’ 등등. Mc the max도 일본 노래 리메이크를 무지 많이 했었죠. SES의 '감싸 안으며'도 일본 곡 'misia'입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우리의 리메이크 곡이 대부분 원곡보다 더 훌륭하다는 거죠.
오늘 소개하려는 린애의 ‘이별후애’ 역시 일본 곡 리메이크 버전입니다.
원곡은 일본 여가수 이쓰와 마유미가 1980년에 발표한 ‘고이비또요 戀人よ(연인이여)’입니다. 앞서 소개한 ‘블루라이트 요코하마’와 함께 일본 내에서 2대 불후의 명곡으로 인정받고 있는 노래입니다. ‘고이비또요"가 대히트를 치면서 이쓰와 마유미는 대중적 인지도를 넓히지만, 이 가수가 제임스 테일러 James Taylor 등 미국 팝뮤직을 일본에서 가장 먼저 도입한 싱어 송 라이터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되지요. 1972년의 데뷔 앨범 ‘소녀’는 미국의 전설적인 컨츄리 가수 캐롤 킹이 음반 제작에 참여할 정도로 국제적 인지도도 있었으며 소울, 펑크, 퓨전, 샹송 등 폭넓은 음악성을 가진 그녀는 일본 국민가수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우리나라 가수로 치면 패티김 수준이라 할까요?
4옥타브를 넘나드는 가창력, 탤런트 못지않은 외모, 뛰어난 작곡 실력 등 여느 가수보다 다양한 ‘재능’을 지닌 ‘린애隣愛’라는 가수가 있었습니다. KmTV의 '에이벡스 star for JAPAN' 콘테스트 가창 부문에서 1위를 거머쥐며 가요계로부터 관심을 끌기 시작한 린애는 1999년 동덕여대 실용음악과 재학당시에는 미스 유니버시티 대회에서 포토제닉 상을 수상하면서 '실력과 미모를 겸비한 아티스트'라는 별칭을 얻게 됩니다.
글도 잘 씁니다. 수년 전 제가 ‘화니북스’라는 출판사를 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전 직장이었던 세광음악출판사 동료로부터 그녀를 소개 받았는데, 싱어송라이터인 그녀가 평소 틈틈이 옴니버스 형태의 소설을 쓰게 되었던 모양입니다. 그녀의 팬이었던 저로서는 그 책을 출간하고 싶었지만, 검토해 보니 워낙 회사 이미지와는 좀 괴리된 작품이었기에 아쉽지만 음악전문 출판사인 ‘예종’이란 곳에 소개해 준 일이 있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대중 앞에서 자취를 감추고 맙니다. 그래서 요즘 ‘린’이라는 가수는 알아도 ‘린애’를 아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오늘 소개한 그녀의 히트곡 ‘이별후애離別後愛’는 동명의 영화 주제곡입니다. 함께 올리는 ‘연인’은 제가 즐겨 색소폰(앨토 버전)으로 연주하는 곡입니다.
동영상 순서는 1.린애-이별후애 2.린애-연인 3.이쓰와 마유미-고이비또요 4.이시다 아유미-블루라이또 요꼬하마입니다. 즐감하시길 바랍니다.
첫댓글 자세한 설명과 함께 감성 풍부한 노래 잘듣네...
브루라이또 요코하마도 일본에서는 이미자의 동백아가씨 만큼
국민가요라지요...
마지막에 올려 놓은 ‘브루라이또 요꼬하마 Blue light Yokohama‘ - 그 판이 우리 집에 있다네.. 경음악으로도 멋진 곡이지.
귀중한 자료 즐겁게 감상하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설명을 듣고 노래를 들으니 참 좋구나. 린애의 남은 여정이 어떻게 됬는지 궁금하다.
좋은 음악 올려줘서 고맙다. 기분이 좀 머시기하다만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