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장 농민들에게는 절대적 생활 용구였던 죽제품들이 해가 바뀌면서 점차 생업에서 부업으로 전환되고 본격적으로 상품화되기 시작한 것은 1930년대 전후로 보아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죽세품을 만드는 각종 연모들이 대부분이 이 시기에 만들어져 수공작업이기는 하지만 어느 정도 다량생산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이 시기에 주로 만들어진 과일바구니, 담뱃대, 개량된 참빗, 대발, 고기통, 장구통, 목화활, 수저통, 채반, 조리, 각종 연모, 바구니등은 사용한 것으로 보아 일제시대 기계과학의 필요성과 외국의 새로운 학문, 그리고 실학사상을 바탕으로 한 기술적인 도구가 시도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 때의 각종 연모가 등장한 것도 본격적인 수공작업이 시작되었음을 시사하고 있다.
1940년대 이후부터는 구미문화의 영향으로 급성장을 보이면서 폭넓은 죽세공업의 길이 열리는 계기로 맞는다. 당시의 죽세품이 생활 가구로 영세농민들의 농외소득을 올리기 위한 상품으로 제작에 활기를 띄면서 1947년에 처음으로 미국을 비롯, 1954년 시카코 국제박람회에, 1964년에는 뉴욕 엑스포에 출품되는 등 5개국에 수출한 바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