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6. 10. 이은숙
나는 음치이다.
노래도 못 부르고 듣는 음감도 없다. 음에 대한 변별력이 없고 음을 기억하는 기억력이 없다. 학교 다닐 때, 음악과 무용시간이 제일 싫었다. 못 한다 싶으니 주눅이 들어서 더 앞에 나가서 노래 부르는 일이 힘들었다.
성인이 되어서도 쉬운 가요 한 곡도 여러 날을 마음먹고 익혀보려 해도 쉽지 않다. 노래방에 가서도 겨우 마지못해 나가면 옛날 노래 한 곡을 신청하여 가사 보며 박자 맞추기에만 급급하다 끝낸다. 감정을 넣어서 노래 분위기를 살려 부르는 일은 나한테는 먼 나라의 이야기이다.
아이들 키우며 수준을 높여보자고 집안에서 클래식 음악을 주로 틀어 놓고 들었다. 별다른 감흥을 못 느끼면서도 클래식이니 많이 듣다보면 듣는 귀가 열리고 감동도 오는 날이 있겠지 싶었다. 오랜 세월 들었는데도 늘 그 곡이 그 곡 같고 듣다보면 음악은 어디로 날아가고 다른 상념에 빠지곤 하였다.
가요도 배워보자 싶어 노래교실에 다녀보았다.
여러 해를 다녔으나 즐거움도 없고 지금 기억하는 곡도 하나 없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음치에 몸치이기까지 한 내가 락 밴드음악이 나오면 신나고 나도 모르게 리듬에 맞추어 몸을 흔들었다. 떠들썩하고 시끄럽고 흥겨운 리듬을 좋아하는 줄 모르고 살았나보다. 그러다 여러 해 전에 서울 딸네 집에 있으면서 TV에서 [부산 락 페스티발] 공연을 다큐로 보았다. 그때만 해도 다대포에서 하는 3일의 공연을 보여 주는데 너무 재미있었다. 부산에 내려가면 직접 현장에 한 번 보러가야지 마음 한 구석에 메모해두고 잊었다.
부산 내려와서 있으며 KBS에서 하는 [탑 밴드] 경연프로를 즐겨보았다.
밤늦은 시간대에 하는데 기다려서 보고, 한 번 보고서는 성이 차지 않아 [다시보기]로 여러 번씩 보았다. 그런데 2회를 하고서는 프로가 중단되었다. 그러자 [부산 락 페스티발]이 생각났다. 여름 한 더위 밤에 장소가 바뀌어 삼락공원에서 해마다 하고 있었다.
3년 전 여름에 중, 고에 다니는 손자손녀들을 데리고 처음으로 [락 페스티발] 공연장에 갔다. 낙동강 가에 공원으로 꾸며놓은 넓은 모래벌판에서 오후부터 하는 공연장에는 사람들이 꽉 들어차고 무대는 멀리, 그러나 커다란 화면이 양쪽에서 공연모습을 보여주고 여러 개의 스피커에서는 음악소리가 쾅쾅쾅 신났다. 밤하늘은 높이 별빛이 아득하고 둥근달도 떠다니고 강바람까지 시원하였다. 30분마다 밴드 팀이 바뀌며 공연을 펼치는데 신나는 음악 소리와 무대 앞에서 흔들어대는 젊은이들의 환성과 춤이 달빛 아래서 환상적이었다. 손자손녀들은 무대 가까이 가서 보고, 난 멀찍이 널찍한 뒤에 자리 잡고 앉아서 보았다. 많은 팀들이 나와서 방방 뛰면서 열창을 하는데 그냥 점잖게 안자서 들을 수 없어 일어나서 같이 흔들었다. 노브레인, 장미여관, 톡식의 공연들을 보았다.
하루 쉬고 그 다음날은 친구 둘을 꼬드겨 같이 갔다.
사상역에서 내려 E마트에서 김밥과 샌드위치와 음료를 사들고 소풍을 가는 기분이었다. 자리를 잡고 앉아서 수다도 떨며 음악이 나오면 음악에 맞추어 흔들었다. 흥겹고 신나는 음악이 좋고 떠들썩한 분위기도 축제마당 같았다. 난 내가 시끄럽고 요란한 락 밴드 음악을 좋아할 줄 몰랐다. 그냥 신나고 즐거웠다. 평소 보고 싶었던 김경호 밴드, 몽니, 로맨틱 펀치의 공연을 공짜로 친구들과 어울려 잘 보았다.
다음 해에는 손자손녀들도 친구들도 가지 않으려 하여 망설이다 혼자서 갔다.
영도 동쪽 끝에서 삼락공원까지는 거리도 멀고 늙은 할매가 혼자 가기가 망설여졌지만 즐기는 하루 음악여행이라 생각하기로 하였다. 좋아하는 윤도현 밴드와 데이 브레이크 팀과 디어 클라우드 밴드들이 나오는데, 공짜로 가서 볼 수 있는데 싶어 용감하게 나섰다. 오후 5시부터 11시까지 내 나이도 잊은 채, 혼자라는 쭈뼛거림도 잊은 채, 서서 팔을 올려 리듬에 따라 흔들면서 즐기고 밤늦게 집에 왔다.
딸들은 못 말리는 할매라고 놀리기도 하지만 난 내게 놀라고 있었다.
공연장을 잘 가는 편이어서 다양한 공연들을 꾀나 보러 다녔다. 문화를 알며 즐겨보자는 마음으로 내 치장에는 인색하지만 공연과 영화, 여행, 책 구입에는 좀 과감하게 투자하는 편이었다. 영화와 여행만큼 음악 듣기는 감동을 주지 않았다. 그런데 60이 넘어서 락 밴드공연에 빠져들고 있다. 뒤늦게 발견한 음악 취향이다.
우리 집은 어려운 시대를 가난하고 조심스럽고 힘들게 살아온 데다 집안에 예술적인 기질도 전혀 없고 유머나 장난기가 조금도 없는 재미없는 분위기였다. 그냥 점잖기만 하고 욕도 싸움도 술주정도 폭력도 없는 대신 떠들썩하게 노래 부르며 웃고 떠드는 일이 별로 없었다. 성장해서 소풍이나 수학여행 때, 노래 부르는 여흥시간에도 나가서 부르는 것은 꿈도 꾸지 못 하였고 자리에서 박수치는 것도 부끄러워 제대로 못 쳤다. 그러던 사람이 나이 먹어가며 노련해진 건지 아니면 뻔대가 돼 가는지 음치도 부끄러워 않고 시키면 주저 없이 나가서 엉터리 곡조로 한 곡 부르곤 한다.
이젠 젊은이들 전유물인 락 밴드를 진정으로 즐기며 밤중에 먼데를 찾아가서 신나게 춤이라기에는 부족하지만 온몸을 음악에 맞추어 흔들고 즐기는 게 좋다. 발라드 같은 차분한 노래보다 신나는 기타와 드럼, 건반등 악기연주와 어울려 목청을 높여 멋대로 흔들며 부르는 밴드 음악에 빠져 있다.
지난해에는 일이 있어 못 갔지만 올 여름 페스티발에는 꼭 가려고 마음먹고 있다.
8월 26일 ~ 28일에 삼락공원에서 한다.
국카스텐팀과 데이 브레이크팀등이 온다. 국키스텐의 보컬 하연우는 복면가왕 프로에서 가왕을 9연승이나 하며 감동을 주었다. 이들이 하는 날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꼭 가서 라이브로 락 밴드 음악을 즐기려고 벌써부터 설레며 기다린다.
그리고 남편과 같이 좋아하는 [자우림]밴드 공연이 부산에 오면 아무리 비싸도 무조건 가서 꼭 보자고 약속하고 기다리고 있다.
첫댓글 정선생님 댓글 안 보이네요. 전 댓글까지 달았다고 들었어요.
여름에 함께 [락 페스티발] 가기로 한 약속, 너무 좋고 기대됩니다.